▲8월 29일 제17회 봉하음악회(노무현 대통령 탄생 80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린 날,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노무현 평전>을 노무현 대통령 묘역 앞에 헌정하며 인사를 드렸다.
노무현재단
☞ [윤태영 심층인터뷰 ①] "수첩 600권과 10년의 세월, <노무현 평전> 헌정하고 '탈상'"(https://omn.kr/2joee)에서 이어집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17주기인 올해 드디어 <노무현 평전>(위즈덤하우스)이 세상에 나왔다. 노무현재단이 기획하고, 윤태영이 집필한 첫 공식 평전이다. 8월 29일 노무현 대통령의 80세 생신을 기념하는 '봉하음악회'가 열리던 날, 윤태영은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을 찾았다. <노무현 평전>과 국화꽃을 앞에 놓고 헌정 인사를 드렸다. 당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것으로 숙제를 끝내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고 한다.
책 곳곳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가 많다. 노무현의 첫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1994년)는 하마터면 책 제목이 <여의도 부시맨>이 될 뻔했다. 마케팅을 고려해 출판사가 붙인 제목이 싫었던 노무현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지금의 책 제목이 살아남았다. 학고재 손철주 주간이 구술을 받아 원고 정리까지 마쳤다가 끝내 출판되지 못한 책도 있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윤태영의 기록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운명이다>에도, 이번 <평전>에도 귀하게 쓰였다. (☞
<노무현 평전> 서평|'기억 속의 노무현'을 '역사 속의 노무현'으로 https://omn.kr/2joce)
928쪽, 단행본 세 권 분량이 한 권의 '벽돌 책'으로 만들어졌지만 빠진 내용도 있다. 노무현재단 평전평가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해찬·한명숙·정동영·김근태 등을 다룬 '인물 편'은 뺐다. 책의 큰 흐름은 노무현 대통령 한 사람으로 가자는 판단이었다. 반면, 평가위원회에서 빼자고 했던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은 윤태영이 살렸다. "잘 안 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과정을 겪었다는 걸 담고 싶었다"는 것이다. '탈(脫)권위'와 '균형발전'은 좀더 자세하게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프롤로그 마지막에 윤태영은 "두려움으로 (이 책을) 세상 밖에 내보낸다"고 썼다. 그 두려움의 정체는 이렇다. 노무현은 워낙 드라마틱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그냥 옮기기만 해도 재미있는 스토리인데" 자신이 재미없게 썼다면 어쩌나 하는 것. 현실 정치가 여전히 노무현을 너무 자주 소환하는 것은 부담이었다. '노무현 정신'이 오독되는 게 불편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의 답은 짧았다. "그래서 <노무현 평전>을 냈다."
▲ "<노무현 평전>에 이해찬·정동영 등 '인물 편' 써놓고 뺀 이유는..." ⓒ 고정미
그가 꼽은,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희망 독자층은 젊은 세대다. 그래서 '노무현을 모르는 세대'를 염두에 두고, 시대적 배경 설명과 주석에 더 신경을 쓰다보니 책의 분량이 늘었다. 그의 바람은 <평전>이 반짝 팔리기보다는 두고두고 읽히는 스테디셀러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 정치판에서 소환되는 노무현이라기보다, 현대사를 이끌어온 한 축으로서의 정치인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윤태영이 노무현을 처음 본 건 1988년, 스물일곱살의 다른 의원 보좌관 시절이었다. 의원이 들어오면 모두 일어서고 나갈 때는 차 타는 데까지 따라 내려가 90도로 인사하던 국회에서, 청문회 스타가 된 노무현 의원실은 "권위가 완전히 싹 빠져"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 진짜 그 방에 가서 일하고 싶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그에게 단 한 번도 정치를 하라고 권하지 않았다. "자네는 그것보다 나랑 글을 쓰는 게 더 일을 잘하는 걸 거야."
<평전>을 쓰는 동안 노 대통령이 꿈에 너무 자주 나왔다고 한다.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개는 섭섭한 표정으로, 아는 체를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평전>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면서 그 빈도는 눈에 띄게 줄었고, 요새는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7년 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은 제 인생의 절반"이라고 했던 그에게 '이제 윤태영의 삶을 살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짧은 답이 돌아왔다. "그런 시기이지 않을까요."
노무현에 관한 책은 더 이상 안 쓰겠다고 했지만, 노무현과 관련해 하고 싶은 일은 남아 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대중적인 방식으로 '인간 노무현'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다. <여보, 나 좀 도와줘>를 원 소스로 한 시나리오는 전문 작가가 이미 완성했다고 한다. 1988년 국회의원 당선부터 3당 합당까지, 노무현의 초선 의원 시절 이야기다. 지금은 감독을 찾고 있다.
다음은 윤태영 전 대변인과의 심층 인터뷰 ②이다.
"'이인제, 저 사람이 되면 안 된다'... 그게 노무현 정치의 뼈대"

▲<노무현 평전>을 집필한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2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지인의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과 정치적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유성호
-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출마를 결정한 주요 동인 가운데 하나가 '(기회주의자인) 이인제 의원이 절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특정인을 두고 '저 사람이 되면 안 되기 때문에 내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 건 이인제 의원이 유일했던 것 같은데.
"(2007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때도 그 얘기를 하셨고, 제가 이 책에 인용해놨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쪽에서 이인제 후보를 옹립하려는 분위기가 있을 때, 노 대통령이 그걸 반대하면서 쓴 글이 '세대교체의 깃발을 내려라'였다. 그걸 <오마이뉴스> 인터뷰 때 소개하면서 '그거 보셨습니까? 그게 제 정치의 뼈대를 이루는 겁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 예상했지만 <평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실명이 이광재, 안희정이다. 그 어떤 참모들보다 노 대통령과의 관계가 특수해서인가.
"어쨌든 (노 대통령의 핵심 참모는 이광재·안희정) 두 축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두 사람이 가장 오래됐고. 사람을 상대하는, 사업적 수완이랄까 그런 건 안희정이다. 그렇다고 안희정이 머리가 안 좋은 건 아니고(웃음). 아이디어와 기획 같은 건 이광재였다. 제가 며칠 전 북토크에서도 얘기했지만, 제가 (노무현 캠프) 홍보팀장으로 있을 때 (기획안을) 매일 써 올려도 대부분 안 받아주는데, 이광재가 몇 번 끄적댄 건 쉽게 오케이 하시더라. '이런 차이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여의도 부시맨>이 될 뻔한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
- 책 초반에 노 대통령의 어린 시절과 성장과정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기술돼 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게 많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퍼즐 조각을 모았나.
"<여보, 나 좀 도와줘>에 어린 시절을 서술하신 게 있다. 그 다음 2000년에 두 번째 책을 내려고 준비하며 구술했을 때 어린 시절을 또다시 얘기하셨다. 청와대에 계실 때도 과거의 경험, 어린 시절의 경험을 얘기하실 때 녹아 있는 것들이 있으니 그런 것들을 모았다. <여보, 나 좀 도와줘>에는 집안 형편,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단상, 형님들에 대한 단상이 기록돼 있다. 기본적인 큰 줄거리를 써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여보, 나 좀 도와줘>의 책 제목이 <여의도 부시맨>이 될 수도 있었다는 에피소드도 재밌었는데.
"<부시맨>이라는 영화가 인기가 있었다. (노무현이라는) 초선 의원 모습이 정치권과 안 어울리는 그런 모습으로도 연상되고 해서 (출판사에서) 책 제목을 <여의도 부시맨>으로 제안했다. 그런데 싫으셨나 보다. 출판사는 마케팅하려고 붙인 이름이고, 하여튼 싫으셔서 직접 제목을 지어오신 거다. 그런데 출판사 입장에서는 <여보, 나 좀 도와줘>도 황당한 제목이었다. 흔히 정치인들의 책 제목과는 거리가 멀었다."
- 학고재의 손철주 주간이 노무현의 정치역정과 정치철학을 소상하게 담은 책을 내려고 구술을 받고, 원고 정리까지 마쳤는데 끝내 출판이 불발됐다고 했는데, 그 원고는 남아 있나.
"그 원고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원고 자체는 없는데, 그 작업을 할 때 제가 옆에서 타이프를 치면서 남긴 기록이 있다. 그게 이번 평전에도 쓰였고 <운명이다> 때도 쓰였다. 제가 그 기록을 갖고 있었다. 계속 타이프를 쳐놓은 게 굉장히 도움이 됐다. 녹음도 다 있어서 기념관에 가면 (당시 노 대통령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다."
"이해찬·한명숙·김근태·정동영 등 인물 편은 뺐다... 노무현에 집중"

▲신간 <노무현 평전>(저자 윤태영)이 광화문 교보문고에 진열되어 있다.
유성호
- 노무현재단 평전평가위원회가 초고를 검토했다고 했는데, 평가위원회와 저자 간에 이견이 있었던 기술 방식이나 대목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
"이해찬, 한명숙, 김근태, 정동영 등 인물 편을 쭉 썼었다. 그런데 평가위원회에서 빼자고 했다. 인물 편을 넣으면 책 볼륨도 너무 두꺼워지고. 노무현재단과 상의하면서 (책의) 큰 흐름은 대통령님으로 가자고 정했다. 대통령님을 중심으로 서술하자는 거였다. 그리고 평가위원회에서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2007년 5월) 얘기를 빼는 게 어떠냐고 했는데, 제가 안 뺐다. 잘 안 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과정을 겪었다는 걸 (책에) 담고 싶었다.
- '인물 편'이 번외의 또다른 책으로 나오면 재밌을 텐데.
"그건 모르겠다. 제가 아까 글은 더 안 쓴다고 했으니, 다른 사람이 쓸 수도 있고."
- 책 분량이 928쪽이다. 보통 단행본 세 권 분량의 '벽돌 책'이다. 그런데도 끝내 담지 못한 내용이나 아쉬움이 있다면 무엇인가.
"탈(脫)권위에 대해 좀 더 상세히 다뤘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탈권위적인 모습이나 대통령상(像)을 바꾸려고 했던 모습은 아예 장을 따로 떼서 더 설명했어야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균형발전도 그렇다. 재미는 없지만 행정수도 말고도 균형발전을 위해 혁신도시를 만든 것도 더 얘기해야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막상 책으로 만들어놓고 보니 분량이 너무 많아서 안 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중간에 욕심을 낸 것도 있다. 미국에 가서 여론 주도층과 나눈 대화록을 제가 갖고 있는데, 답변하신 걸 보면 '어떻게 이렇게 답변을 잘 하시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걸 그대로 전재하려고 한번 넣어봤는데 분량이 50페이지쯤 확 늘어나더라. (그래서 뺐다.)"
- 예전에 "현실 정치가 시시때때로 노무현을 호출하는 게 걸림돌"이라면서 새 기록을 낼 때마다 정파적 논쟁의 대상이 될까 두렵다고 했다. 이번 책에서는 그런 걱정은 없나.
"돌아가신 지 17년 됐다. 원래 제 욕심으로는 (<평전>을 노무현 대통령 서거) 20주기에 내려고 했다. 20주기를 기대한 건, 그때쯤 되면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차분하게 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노무현재단에서 준비하는 노무현 대통령 탄생 80주년(2026년) 계획이 제가 (책의) 완성도를 (더 높이는 걸) 포기하는 계기가 됐다. 2년 더 쓴다고 더 잘 쓸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아직까지) 현실 정치에서 노무현이 너무 많이 소환되고 있어 부담이 되긴 했다."
- 지금 현실 정치에 노무현 대통령이 소환되는 방식이 정치적 대의를 위해서라기보다 정파적 이해관계나 자기 논리를 방어하는 기제에 가까워 보이는데.
"어쩔 수 없다고 본다. 그건 해석하는 사람의 몫이다. 제가 봐도 '저건 노무현 정신이 아닌데' 싶은 게 있지만, 노무현이라는 사람도 여러 면이 있지 않나. 그 여러 면 중에 어떤 면을 얘기하면서 노무현 정신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거고, 그렇다고 그건 아닌데 하고 일일이 말하기도 그렇다."
- 자칫 '노무현 정신'이 오독될 수 있다는 게 불편하지 않나. 특히, 노무현을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는.
"그래서 <노무현 평전>을 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미있는 분인데, 제가 재미없게 썼다면..."

▲8월 31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노무현 평전>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 책은 노무현재단이 기획하고, '노무현의 필사'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집필했다.
장철영
- 프롤로그의 마지막에 "두려움으로 (이 책을) 세상 밖에 내보낸다"고 썼다. 어떤 두려움인가.
"제일 큰 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대통령님이 워낙 드라마틱하게 살아오신 분이라서, 재미가 있고 참 쉽게 읽히는 분인데, 그걸 재미없게 썼다면 이게 참 그렇다. 그냥 옮기기만 해도 재미있는 스토리인데, 살아오신 역사가. 그런데 그걸 사람들이 재미없고 부족하게 느끼면, (저자가) 그걸 감당해야 할 생각을 하면 좀 두렵다."
- 저자로서 <노무현 평전>을 꼭 읽어봤으면 하는 독자층이 있다면.
"젊은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분량이 더 늘어났다. 평전이니 어떤 역사적 사건을 설명할 때 시대적 배경도 잘 써야 하지만, 그 사건이 뭔지에 대한 주석도 달아주고 설명도 해주려다 보니 분량이 늘어났다. 1차적인 희망은 젊은 세대들이 많이 읽었으면 하는 거다. 그래서 책이 지금 반짝 팔리는 것도 좋지만, 서서히 두고두고 팔렸으면 좋겠다. 스테디셀러로. 지금 당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이 사주시겠지만, 두고두고 읽는 분들은 젊은 사람들 아니겠나."
- 이 책이 젊은 세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으면 좋겠나.
"한국 현대사다. (노 대통령이) 태어나서 돌아가시기까지의 과정이 한국 현대사고, 현대사의 큰 흐름을 살아오신 분이다. 그 삶의 절반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에 서 계셨던 분이다. 현대사의 인물로서 중요한 고비마다 하셨던 역할이나 일들이 있으니, 역사적 인물이라는 관점에서 봐주셨으면 좋겠다. 지금 현재 정치판에서 소환되는 노무현이라기보다, 현대사를 이끌어온 한 축으로서의 정치인으로."
- 1988년 스물일곱 청년 시절, 윤태영은 다른 의원 보좌관을 하면서 노무현과 처음 만났다. 첫 느낌이 어땠나.
"제가 국회에 들어간 지 석 달 만이었나. 그 석 달 동안 (그 분은) 국회의원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제가 8월에 들어갔고 그 서너 달 사이에 (5공비리·일해재단) 청문회가 있었다. (노무현 의원이) 청문회 스타가 되고 나서 그 방(노무현 의원실)에 갔는데, 다른 국회의원들과 전혀 달랐다. 그 방도 그렇고 의원도 그렇고.
다른 방들은 의원님이 들어오시면 다 일어나서 '의원님 오셨습니까'라고 해야 하는 게 그때 국회였다. 그리고 방을 나가면 계단 아래 차 타는 데까지 내려가서, 차 타는 걸 보고 90도로 인사를 해야 하는 그런 분위기의 국회였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겠지만, 그때는 굉장히 권위적이었다. 그런데 이 분은 권위가 완전히 싹 빠져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굉장히 놀랐다. 진짜 그 방에 가서 일하고 싶었다."
- 그런 태도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까지 이어진 것 아닌가.
"그럼요. 해양수산부 장관(2000~2001년) 시절에도 청사에 들어가면 경비하시는 분들이 나와서 인사하는 걸 너무 불편해하셨다. 하지 마시라고, 하지 마시라고 하셨다."
- 그 때는 앞으로 20여 년간 노무현이라는 정치인과 이렇게 깊은 인연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텐데.
"못 했다. 제가 <노무현 평전>까지 쓸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 했다."
"대통령이 제게 '정치하라'는 말은 한 번도 안 했다"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은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는 돈과 권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글로 하는 것이다." 정치인 노무현은 말과 글을 무엇보다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겼다. 사진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윤태영 대변인.
노무현재단
- 2003년 청와대 대변인이 됐을 때 '왜 나를 대변인으로 임명했는지 미스터리'라고 얘기했다. 대변인을 그만두고 부속실장으로 갈 때도 사전에 말씀이 없었나.
"다른 사람들은 (본인이 어디로 옮겨갈 지 사전에) 아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제가 대변인이나 제1부속실장에 임명될 때는 (사전에) 대통령님께 듣지 못했다. 제1부속실장이 됐을 때는 사실 뜻밖이었다. 대변인을 하면 얼굴이 많이 팔려서 대부분 그게 일종의 정치적 자산이 돼 더 큰 외부로 나가는 게 상식인데, 그런 친구를 거꾸로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오신 것도 약간 뜻밖이긴 했다."
- 노 대통령은 임기 중반까지는 적극적으로 젊은 참모들에게 정치 일선으로 나가라는 권유를 많이 했다. 본인한테는 정치하라는 얘기를 안 하셨나.
"저한테 정치하라고 하신 적은 한 번도 없다. '자네는 그것보다 나랑 글을 쓰는 게 더 일을 잘하는 걸 거야', '그게 훨씬 더 보람 있는 일이 될 거다'라는 식의 표현을 하신 적은 있다."
- 천호선 전 의전비서관은 "해외순방 때 다른 나라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도 다 먹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거움을 더 잘 알게 됐다"고 했다. 비위 좋은 참모들도 제대로 못 먹는 음식인데 싫은 기색 하나 없이 거의 다 드시더라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돌아오셔서 라면을 꼭 드셔야 했다."
- 대변인이나 제1부속실장으로서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거움을 느낀 건 어떨 때였나.
"아무래도 해외순방 나갔을 때, 외국 정상들과 회담할 때다. 국내보다 굉장히 긴장된 순간들이었다. 저녁 먹는 자리도 옆자리 사람과 끊임없이 우호적인 얘기를 해야 하고, 그 속에서 관찰해야 할 것도 꽤 많다. 굉장히 긴장되는 순간이다. (대통령은) 애국자다, 정말로. 그래서 한마디 한마디를 엄청 고민하고, 외국에 나가시면 더 일찍 일어나셔서 아침부터 자료를 숙독하셨다. 통계 하나라도 알고 대회하면 상대가 기분 좋아지는 거니까.
그런 걸 보면 정말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싶었다. 나중에는 디지털 자료가 됐지만 초기에 그게 안 돼 있을 때는 이만큼 되는 (종이로 된) 자료를 다 숙독하고 들어가셨다. 비행기에서 '설마 안 보셨겠지' 하고 (참모들이) '여기 이런 게 있습니다, 알고 계셔야 됩니다' 하면 '그거 다 봤어요' 하시더라. 번번이 그러셨다."
- 노 대통령이 특별히 좋아했던 음식은 무엇이었나.
"삼계탕이다. 서촌에 있는 <토속촌> 삼계탕을 좋아하셨다. 나중에 (권양숙) 여사님한테 들으니, 국회의원에 당선돼 처음 여의도 아파트로 오셨을 때 가재도구가 채 갖춰지지 않아서 한두 달 동안 가족들이 삼계탕을 그렇게 (많이) 드셨다고 하더라. 청와대에 있을 때도 <토속촌> 삼계탕을 시켜서 먹은 적도 있다."
"첫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 원 소스로 한 영화 만든다"

▲<노무현 평전>을 집필한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2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 지인의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과 정치적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유성호
- 7년 전 인터뷰에서 "노무현은 제 인생의 절반"이라고 했다. 윤태영의 삶은 20대 학생운동, 30대 보좌관, 40대 참모, 50·60대는 노무현에 대한 기록과 <노무현 평전>이었다. 이제 <평전>을 마무리했으니, 노 대통령께서도 본인에게 얽매이지 말고 윤태영의 삶을 살라고 하지 않으실까.
"그런 시기이지 않을까요."
- 노 대통령께서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칭찬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과 관련된 일에 윤태영이 너무 오래 묶여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미안함도 있으실 것 같은데.
"어쨌든 요새는 (노 대통령이) 꿈에 안 나오신다."
- 이전에는 자주 나오셨나.
"(평전을 쓰느라) 하루 종일 대통령의 말과 글 속에 살다 보니 진짜 너무 많이 나오셨다.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 <평전> 마무리 작업을 하면서 그 추세가 현저히 줄어든 건 사실이다."
- 주로 어떤 모습으로 꿈에 나오셨나.
"대부분 나한테는 섭섭한 모습이다. (노 대통령이 나를) 아는 체를 안 하시려고 한다. 그게 참 희한한 게, 꿈속에서도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나오셨지' 하는 게 항상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 주로 대통령 신분으로 나오셨나.
"대통령 신분으로 나오셨다."
-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젊은 세대에게 저자로서 한마디 한다면.
"노무현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고비마다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한국 현대사를 이끌어온 한 인물로서 정확히 평가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노무현 평전>을 쓴 거다. 노무현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한테 읽혔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제가 만일 이제 더 이상 글을 안 쓴다면 하나 더 하고 싶은 게 있다. 이건(<평전>) 좀 딱딱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같이 대중적인 접근으로 인간 노무현의 모습을, 어떤 사람이었나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 그런 걸 만들어서 노무현을 알리려고 생각하고 있다."
- 현재 진행 중인 게 있나.
"지금 <여보, 나 좀 도와줘>를 원 소스로 해서 시나리오 작가가 시나리오를 완성한 상태다. 이제 감독을 찾고 있는 중이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돼서 '3당 합당' 때까지, 초선 의원 시절의 이야기다."
[관련기사]
☞ 2019년 윤태영 인터뷰 ①|https://omn.kr/2gkqp
"<노무현 평전> 탈고가 내겐 탈상... 자책감, 노무현의 말과 글 속에서 치유"
☞ 2019년 윤태영 인터뷰 ②|https://omn.kr/2gkrv
"노무현은 제 인생의 절반... 윤태영의 정치? 고민중이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노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발언을 기록한 포켓수첩. 윤 전 대변인은 포켓수첩과 업무 노트 등이 600권가량 된다고 밝혔다.
윤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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