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07 12:10ㅣ최종 업데이트 26.09.0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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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실업급여 수급자격 신청 창구 모습.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실업급여 수급자격 신청 창구 모습.연합뉴스

지난달 1일부로 갑작스레 실직자가 되었다. 8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 요청을 받았다. 극도의 재정 악화로 인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이유였다. 쉽게 말해서 회사가 월급 줄 돈이 없으니 나가길 부탁한다는 얘기였다. 사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조정과 협상을 한다고 달라질 게 있나. 그렇다고 내 전 직장이 재정 상황을 꽁꽁 숨기는 곳이었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회사는 투명하게 재정 상황을 공유했고 사태의 심각성은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안 그래도 불안한 상황에 우리까지 동요할 순 없다는 생각에 묵묵히 있었을 뿐.

모두가 원하지 않았지만 안타까운 결론이 불가피하다면 결국 답은 하나다. 서로가 최대한 상처 받지 않는 방식으로 상대를 배려하며 결별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적당히 포기할 건 포기하며 별로 마음에 드는 말은 아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태도는 때로 필요하다. 모두가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이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업이 극단적인 일신상의 변화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일단 8년간 하던 출퇴근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되고 당연히 내 자리도 사라진다. 퇴직과 동시에 급여도 나오지 않으니 생계가 막막해진다. 그럼에도 회사의 제안을 수락하며 비교적 담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일단 지금 시대에 실직자가 되는 건 더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나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슬프게도 사실이다. 인공지능 혁명과 반도체 호황으로 고용이 늘고, 성과급을 배당받은 직원들 덕에 특정 지역의 백화점이 매출 기록을 세우게 하는 분야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장기 불황과 저성장으로 사업체가 무너지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곳도 있다. 소위 말하는 'K자형 성장', 양극화된 경제 구조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이제는 '쉬었음'이 전혀 낯설지 않은 키워드인 세상이 되어버렸다.

구직급여를 받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까지 글을 읽고 암담한 기분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비록 갑작스러운 실직에 당장의 생활비 마련이 곤란해졌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정부가 마련한 비빌 언덕이 있다. 바로 사람들에겐 '실업급여'라는 단어로 더 익숙한 구직급여다. 일하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실직하여 재취업을 해야 하는 기간 동안 생계 안정을 위해 지급되는 급여. 특히 갑작스레 실직을 마주하여 막막한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동아줄과 같은 제도이다.

나 또한 구직급여를 신청했고, 최근의 실업난을 반영하듯 현장 수급교육을 받기 위해 방문한 교육센터 대강당에는 눈대중으로 봐도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누가 봐도 세상 인자해 보이는 제도이지만 지급에 조건이 없는 건 아니다. 일단 수급자의 퇴사가 비자발적이어야 하며 실직 전 일정 기간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급 자격이 인정되어 급여를 받는 중에도 꾸준히 재취업 노력을 증명해야만 한다. 가령 구직활동을 문서로 증빙하는 식이다. 나는 특히 이 자격요건과 관련하여 농담 아닌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아니 재취업 노력을 꼭 증명해야 해? 구직급여가 나오는 건 길어야 200일 정도잖아. 집에 돈이 썩어나지 않고서야 그 사이에 구직 노력을 안 할 사람이 있어? 안 그러면 어쩔 거야. 200일 지나고 나서 '끝났네? 나 이제 죽을게' 이럴 거야?"

요지는 구직급여는 정말 감사하고 소중한 제도이지만 그렇다고 그걸 받기 위해 실업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업의 과정은 험난하고 재취업을 하지 못하면 개인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보다 구직급여 하한액이 더 높은 게 정말 문제일까?

서울 시내의 한 고용센터에 설치된 최저임금 안내판
▲서울 시내의 한 고용센터에 설치된 최저임금 안내판연합뉴스

이 농담이 다시 떠오른 건 얼마 전 고용노동부가 구직급여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는 기사를 본 후였다. 핵심은 매회 지급되는 구직급여 월 지급액은 낮추되 총지급 금액은 유지하는 것이다. 즉 지급 방식을 가늘고 길게 가져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에 실업급여 기준 일수에 포함되었던 무급 휴일을 제외하게 되는데, 이 경우 구직급여의 월 하한액은 198만 원에서 176만 원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급여의 월 하한액이 낮아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받을 급여의 총 지급액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그러면 아낄 때 아끼고 모은 돈을 유연하게 쓰는 식의 계획도 가능하다. 그리고 제도란 담당 부처의 정책 방향에 따라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다. 이런 일은 지금까지 늘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개편에 대해 '재정의 지속 가능성 확보와 제도 합리화'가 목표라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수용이 가능했다. 필요하다면 해야지 어쩌겠는가.

하지만 정부가 밝힌 제도 개편의 이유 중 한 가지가 눈에 밟혔다. 마음에 걸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노동자의 경우, 일할 때 임금보다 구직급여액이 더 높아지는 현상'을 해결하겠다는 부분이었다. 즉 최저임금 노동자의 실수령액보다 구직급여의 하한액이 더 많은 걸 문제로 본 것이다.

정말로 그럴까.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의 실업자가 일을 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 게 이상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구직급여와 임금이 정말 같은 성격의 돈일까. 두 급여의 성격이 다르다면 나란히 놓고 비교하며 누가 누구보다 더 받는다고 문제 삼을 필요도 없다. 심지어 수급자들은 이미 직장을 다니며 고용보험료를 납부해왔으니 구직급여 재원에 어느정도 기여를 하기도 했다. 즉 우리가 공짜로 이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다.

'통념에 대한 의심'을 제안한다

또한 저 문제의식이 타당하다고 해도 결론이 반드시 지금과 같아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일하는 사람보다 일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받는 게 문제라고 본다면, 일하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임금이 지나치게 적다고 생각하는 게 순리에 맞지 않을까. '세상에 일을 하는 사람의 최저임금이 실직한 사람들의 긴급 생계비 지원금보다 적다니, 최저임금이 낮아도 너무 낮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이 문제는 최저임금을 조금이라도 올리는 방식으로 해결해야지, 구직급여 월 수령액의 하한을 깎는 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에게 '이제는 당신이 실직한 사람보다 더 받으니 공정해졌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심지어 최저임금 실수령액과 구직급여 하한액이 드라마틱하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몇만 원 차이다.

보도자료의 여러 문장 중에 저 한 문장에 과하게 반응하는 게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사실 이건 내게도 아주 강력한 '통념'이었다. 그런데 막상 구직급여 수급자가 되어보니 저 말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최저임금보다 겨우 몇 만 원 더 받는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몇 만 원을 덜 받아도 나도 안정적인 급여를 받고 싶지, 금방 끊길 구직급여에 의존하고 싶지 않은데. 그리고 나도 성실히 일하며 열심히 납세하고 고용보험도 납부했는데 왜 나를 단순히 '(일 안 하는데 돈 받으니까)일하는데 돈 받는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받으면 안 되는 사람' 취급한다는 기분이 들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괜히 움츠러드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건 단순하다. 저 강력한 통념을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한번만 의심해보자는 것이다. 그랬을 때, 모두가 공감하는 호소력이 있는 정책 제안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특히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직이 더이상 놀라운 일이 아닐 정도로 실업난이 거센 시대에는 말이다. 정말로 진심으로 전하는 제안이다. 왜냐면 나도 수급자가 되기 전까지는 저 말이 어떤 느낌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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