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경찰서장 재직 당시 안맥결 총경.
경찰청
안맥결과 가까운 사람 중에서 일제 경찰에 많이 쫓긴 또 다른 인물은 작은아버지 안창호다. 안맥결과 안창호는 일반적 의미의 조카-숙부 관계가 아니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박광종 선임연구원이 2019년 5월 24일 자 연구소 홈페이지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안맥결의 인생 노선을 결정한 것은 안창호의 가르침이다. 안맥결은 스승인 안창호를 "아버님"으로 불렀다.
본인과 남편 외에 '아버님'도 일제 경찰의 추격을 받고 시달림을 겪었기 때문에, 안맥결이 경찰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그런데도 그는 해방 이듬해에 신속히 경찰 간부가 됐다. 생계 문제가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이기는 해도, 또 일제 지배가 종료된 이후이기는 해도, 경찰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가 경찰이 된 것은 주위 사람들의 의문을 일으킬 만한 일이었다. 위의 서울경찰청 글에 이런 일화가 소개돼 있다.
"한번은 여동생이 안 총경에게 경찰이 된 이유를 묻자, '옛날에는 일본의 경찰이라 우리 애국자의 가족을 못살게 억압했으나, 지금은 해방된 우리나라의 파수꾼이니 신성한 직무가 아닌가' 하고 대답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친일 경찰이 해방 뒤에도 경찰의 실권을 쥐었다는 사실을 안맥결이 의식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지만 그는 해방을 계기로 경찰이 나라의 파수꾼으로 거듭날 것이므로 앞으로는 경찰의 직무가 신성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 인식이 그를 경찰의 길로 이끌었다.
생계 문제 때문에 경찰에 들어간 측면도 있어 보이지만, 나라의 파수꾼이 되겠다는 신념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볼만한 근거가 있다. 부패 경찰이 공공연히 용인되던 시절에 그는 청렴결백한 길을 걷고 약자 보호에 주력했다. 이는 '생계가 급해서 경찰이 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신성한 파수꾼이 되자'는 생각이 더 강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안맥결의 특이한 이름도 그에게 그런 삶의 가치를 환기시키는 요소였다. 위 박광종 연구원의 글은 "맥결(麥結)이란 이름은 춘궁기에 결실을 맺는 보리에 비유한 것으로 숙부인 안창호가 지어주었다"고 말한다. 춘궁기에 사람들을 살리는 보리처럼 되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다. '아버지'가 그 이름을 지어줬다. 경찰청이 경찰영웅으로 선정한 데서도 확인되듯이, 안맥결은 그 이름에 부끄러움 없는 경찰이었다.
평남 강서에서 출생해 평양 숭의여학교와 도쿄 나카무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 난징 동명학교에서 영어를 공부한 다음에 국내에서 교사 생활을 한 안맥결은 경찰 입문 후에 서울여자경찰서장, 치안국 보안과 여경계장, 국립경찰전문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다. 그가 1952년부터 1954년까지 근무했던 서울여자경찰서는 1957년에 청량리경찰서로 변모하고 2006년에 동대문경찰서로 바뀌었다.
경찰을 그만둔 것은 1961년 7월 1일이다. 5·16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이 러브콜을 했지만 '민주주의를 짓밟은 군사정권에 협력할 수 없다'라며 사표를 냈다고 알려져 있다. 실패한 쿠데타 세력과 거리를 두는 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공한 쿠데타 세력과도 거리를 둘 수 있는 용감한 경찰이었다. 1976년 1월 14일,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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