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16 11:47ㅣ최종 업데이트 26.09.1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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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를 바르게 푸는 방법을 연구한 운노 도쿠지 교수가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
▲코를 바르게 푸는 방법을 연구한 운노 도쿠지 교수가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TBS 뉴스 화면 캡쳐

"코를 제대로 풀려면 한쪽 콧구멍을 막은 후, 반대쪽 구멍으로 바람을 불어내야 한다."

'코 잘 푸는 방법'을 연구한 일본인이 올해의 '이그노벨상(Ig Nobel)'을 수상했다. 수상자 운노 도쿠지(海野徳二, 1933~2022)씨는 이비인후과 의사이자, 아사히카와 의과대학 이비인후과 초대 교수로 20년 넘게 재직한 인물이다.


그가 수상한 이그노벨상은 일명 '괴짜들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1991년 미국의 과학 유머 잡지인 <황당무계 연구 연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가 제정한 상이다. '이그노벨(Ig Nobel)'이라는 이름은 노벨상(Nobel Prize)에 '고상하지 않은'이라는 뜻의 영단어 'ignoble'를 합친 말이다.

엉뚱하지만 가볍지는 않는 상

이그노벨상 참가자들이 운노씨의 수상을 축하하며 코를 푸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그노벨상 참가자들이 운노씨의 수상을 축하하며 코를 푸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닛테레 뉴스 화면 캡쳐

이 상은 "사람들을 웃게 한 뒤, 생각하게 하라(Make people LAUGH, then THINK)"를 모토로 한다. 그에 걸맞게 매년 엉뚱하지만 사람들의 과학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연구를 수상작으로 선정해 과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엉뚱한 연구에 주어지는 상이라 해도, 마냥 가볍기만 한 시상식은 아니다. 역대 수상자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쟁쟁한 실력파 연구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그중에는 러시아 출신 물리학자 앙드레 가임(Andre Geim)도 있다. 2000년 '개구리의 공중 부양'으로 이그노벨상을 받은 뒤 2010년 '그래핀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이그노벨상이 인재를 먼저 알아본 셈이다.

수상자는 매년 주최 측에 추천으로 들어온 연구 후보자들 중에서 심사위원이 선발한다. 시상식은 지금까지는 매년 9월 미국에서 개최됐지만, 올해에는 참가자들의 안전과 비자 등의 이유로 처음으로 장소를 옮겼다. 지난 3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제36회 시상식에서는 운노 교수의 '코 푸는 방법' 외에도 '소변이 튀지 않는 소변기', '바퀴벌레 우유' 등의 10개 연구에 상패가 수여됐다.

2022년 타계한 운노 교수를 대신해 시상대에 오른 동료 다카하라 미키(高原幹) 교수는 "(운노 교수는) 연구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엄격하고 진지한 분이셨다. 하늘에서 기뻐하고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진료하며 '올바른 코풀기' 기준이 없다는 데서 시작

2026년 이그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고(故) 운노 도쿠지 교수를 대신해 다카하라 미키 교수가 수상하는 장면
▲2026년 이그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고(故) 운노 도쿠지 교수를 대신해 다카하라 미키 교수가 수상하는 장면Albinfo / 위키미디어 공용

일본의 각종 매체들은 운노 교수의 수상 소식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며 '올바른 코 풀기'에 대한 지도 기준이 없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이어 "코를 푸는 행동은 비강 위생에 아주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검증 자료가 없다"라며 과학적 검증을 시도했다. 1977년 운노씨는 14~48세 남성 15명에게 코를 풀게 한 뒤, 기류 측정기로 콧구멍에서 배출되는 공기의 흐름과 속도, 양, 시간을 측정했다.

결과는 자명했다. 양쪽 콧구멍을 동시에 풀기보다 한쪽씩 푸는 편이 공기 흐름을 높이고 분비물 배출에 유리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렇게 발표된 운노 교수의 연구는 약 반세기의 세월을 지나 이그노벨상을 수상하게 됐다. 일상의 작은 호기심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운노 교수의 이름이 전 세계의 주목을 모으는 순간이었다.

이 상은 일본인들 사이에서 높은 지명도를 자랑한다. 1992년 화장품 메이커 시세이도의 연구팀이 '발 냄새를 유발하는 화학 물질'로 첫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일본인 수상자를 배출해 왔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히 2007년을 기점으로 20년 연속 수상자가 배출되어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역대 수상 연구가 실제 제품 개발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화젯거리다. 대표적인 예가 2023년 수상작인 '전기 자극 미각 증강 기술'이다. 적은 소금으로 강한 짠맛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이를 응용해 식품 음료 업체인 '키린홀딩스'가 2024년 출시한 '에레키솔트 스푼'은 약 7개월 만에 당초 예상 판매량의 7배를 넘는 주문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해 수상한 '소에게 얼룩말 줄무늬를 칠해 흡혈 파리를 쫓는 연구' 역시 축산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소의 생산성 저하와 연결되는 흡혈 곤충을 해결하는 친환경 방제법이기 때문이다. 일부 축산 현장에서는 얼룩무늬 옷을 제작하는 등, 실용화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작은 호기심도 놓치지 않는 일본 연구자들

한 축산 업자가 특수 제작한 줄무늬 옷을 소에게 입혀 방제 효과를 검증하고 있다.
▲한 축산 업자가 특수 제작한 줄무늬 옷을 소에게 입혀 방제 효과를 검증하고 있다.TBS 뉴스 화면 캡쳐

그렇다면 일본인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이 지속적으로 탄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각지에서 연구 분야에 종사하는 지인들에게 물었다.

먼저 키타사토 대학의 전임 강사 가와카미 코토미(38)씨는 '일본 연구자들의 연구 태도'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해당 대학은 '바나나 껍질의 마찰' 연구로 2014년 이그노벨상을 받은 마부치 기요시 명예 교수가 몸을 담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는 "마부치 교수는 그의 전공인 인공관절의 마찰과 관련한 호기심에서 바나나 껍질이 왜 미끄러운지를 탐구했다"며 "내 주변만 해도 마부치 교수처럼 작은 호기심도 놓치지 않고, 끈기 있고 진지하게 연구에 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연구 태도가 수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라고 말했다.

가와카미씨는 일본인 연구자가 놓인 연구 환경에서도 이유를 찾았다. 그는 "지금 일본 연구 업계에서 대형 프로젝트는 연구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 때문에 작은 테마라 할지라도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주제를 찾는 연구자들이 많다. 이 과정에서 독창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도 수상자 배출의 배경일지 모른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흥미로운 의견도 있었다. 아오야마학원대 이공학부의 젠 슌고(39) 교수는 이그노벨상 수상이 초등학교의 방학 숙제인 '자유연구'와 연관성이 있다 말한다. '자유연구'는 아이 스스로가 주제를 정해 실험, 관찰한 결과를 문서로 정리하는 활동이다.

그는 "초등학생들의 자유연구는 아무리 사소한 질문이라도 연구 대상이 된다. 누구도 그건 연구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지하게 연구에 임하기만 하면 좋은 평가를 받고, 아이 스스로도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라고 했다.

이어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는 마치 초등학교 자유연구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자신만의 과학적 호기심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가 이그노벨상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왜 그럴까?' 하는 작은 호기심을 놓지 않았던 연구자들의 집념에 새삼 격려의 박수를 보내게 됐다. 물음표의 크기는 작았을지 몰라도,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을 터다.

이들에게 이그노벨상 수상이 마치 초등학교 숙제 노트에 찍히는 '참 잘했어요' 도장처럼 따뜻한 격려가 되었기를 기대해 본다. 어쩌면 이 엉뚱하고 진지한 호기심들 속에서 훗날 진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날 저녁, 운노 교수의 이그노벨상 수상 소식을 함께 TV 뉴스로 보던 초등학생 아들이 제법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런 연구가 상을 받는다면 나도 받을 수 있겠는데?"

그 말에 "내년 방학 자유연구로 이그노벨상 수상을 노려보라"며 응수하자 아이는 피식 웃더니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을 웃게 한 뒤, 생각하게 하라'는 이그노벨상의 모토가 그날 밤 우리 집 거실에서도 실현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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