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07 09:05ㅣ최종 업데이트 26.09.0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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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골의 싸움(La Bataille de Gaulle)> 포스터
▲ <드골의 싸움(La Bataille de Gaulle)> 포스터파테

최근 프랑스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샤를 드골을 다룬 영화 <드골의 싸움(La Bataille de Gaulle)>이 지난 6월 개봉한 이후 500만 관객을 넘어섰다고 한다. 역사적 인물을 다룬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인 흥행이다. 더 주목할 것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영화의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프랑스 정치권에서도 좌우를 가리지 않고 드골의 리더십과 국가관을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드골이라는 인물을 통해 오늘 프랑스가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찾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의 자존심, 전략적 자율성, 국민통합, 그리고 미래를 향한 국가의 방향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도 영화의 흥행을 미국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과 전략적 자율성, 주권의 의미가 다시 부상하는 국제 환경과 연결해 분석했다. 나는 이 현상을 바라보면서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대한민국 역시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드골, 위대한 국가를 설계하다>라는 책을 쓰고 있다. 이 책은 드골의 생애를 소개하는 전기가 아니다. 한 사람이 어떻게 위기의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새로운 국가의 방향을 설계했는지를 살펴보며 그 경험이 오늘의 대한민국에 무엇을 말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집필하는 과정에서 드골의 리더십에서 오늘 대한민국이 깊이 생각해 볼 세 가지를 발견했다.

권력을 소유하되 사유(私有)하지 않는 것

첫째는 권력을 갖되 권력에 취하지 않는 절제다. 드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유 프랑스를 이끌었고, 전후 프랑스를 재건했으며, 제5공화국을 설계해 대통령이 되었다. 한 개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권력과 명예를 가졌지만, 그것을 자신과 가족의 특혜로 돌리지 않았다.

전후 전쟁 공훈과 관련해 세금 면제 혜택이 마련되었지만 그는 이를 누리지 않고 끝까지 세금을 납부했다. 국가를 위해 싸웠다는 공적과 개인적 특혜를 구분한 것이다.

아들 필리프 드골에 대한 태도는 더욱 상징적이다. 필리프는 18세에 자유 프랑스에 합류해 해군으로 프랑스 해방을 위해 싸웠지만, 드골은 아들에게 해방 훈장을 수여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권력으로 아들의 공훈을 평가한다면 족벌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도 엄격했다. 대통령으로서 누릴 수 있었던 대통령 연금과 각종 특혜를 거부했고, 대통령직을 개인적 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952년 유언에서 국장을 거부하고 대통령과 장관들의 참석도 원하지 않았다. 1970년 세상을 떠났을 때 파리 노트르담에서는 국가 차원의 추도식이 열렸지만, 그의 시신은 유언에 따라 콜롱베의 가족 묘지에 묻혔다.

세금 면제를 받지 않은 것, 아들에게 훈장을 주지 않은 것, 대통령 연금을 거부한 것, 국장을 거부한 것. 모두 하나의 원칙으로 연결된다. 드골은 권력을 가졌지만 권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을 '권력 사용의 절제'​라고 부르고 싶다. 국가 지도자의 위대함은 얼마나 강한 권력을 갖고 있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어디까지 행사하고, 어디에서 멈출 수 있느냐​에 있다.

대통령의 권력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국가의 권력이다. 따라서 지도자에게 필요한 질문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일 것이다. 드골에게 국가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샤를 드골 기념비 사진. 드골은 콜롬베이 공동 묘지에 샤를 드골(1890-1970) 이라는 비문이 새겨진 소박한 무덤에 안장되어 있다.
▲샤를 드골 기념비 사진. 드골은 콜롬베이 공동 묘지에 샤를 드골(1890-1970) 이라는 비문이 새겨진 소박한 무덤에 안장되어 있다.위키미디어 공용

시소게임의 안보론

둘째는 북핵 시대의 국가안보를 '책임적 현실주의'로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드골의 시대와 다르다. 그러나 국가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문제는 같다.

오늘 대한민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이라는 실존적 위협에 직면해 있다. 동시에 미중 전략 경쟁, 러시아·중국·북한의 밀착 등 국제질서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느 한쪽에 기대어 안보를 보장받는 국가를 넘어,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스스로의 전략적 능력을 갖춘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내가 제안하는 것이 '책임적 현실주의'와 햇빛독트린이다. 햇빛독트린은 과거의 햇볕정책을 반복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안의 사람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를 현실로 믿는다.

대한민국도 북한의 선의나 국제사회의 보장만을 현실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 위협은 핵 위협으로 직시하고, 평화는 평화를 지킬 힘을 갖춘 상태에서 추구해야 한다. 그렇다고 한미동맹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한미동맹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의 자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제안하는 것이 '시소게임 전략'​이다. 한쪽에는 한미동맹이라는 축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대한민국의 자강이 있다. 어느 하나만 강화하면 시소는 기울어진다. 동맹에만 의존하면 전략적 자율성을 잃을 수 있고, 자강만 강조하면 동맹이라는 현실적 자산을 훼손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동맹과 자강을 동시에 강화하는 전략적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그 핵심 가운데 하나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다. 전작권은 단순히 미국으로부터 권한을 돌려받는 행정적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자신의 전쟁을 스스로 지휘할 수 있는 국가인가라는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독자적인 감시·정찰·지휘통제 능력과 첨단 재래식 전력, 우주·사이버·전자전 능력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핵 억제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나는 이것을 '핵자강'​이라고 부른다. 핵자강은 동맹을 버리고 독자 핵무장으로 가자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미국의 확장억제를 신뢰하면서도 대한민국이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할 수 있는 전략적 능력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핵추진잠수함은 핵무기와 핵 추진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장기간 잠항하며 원거리에서 작전할 수 있는 해양 전력으로서 대한민국의 전략적 감시·억제 능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드골이 핵무기를 선택한 것도 핵무기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 핵무기는 프랑스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오늘 대한민국 역시 물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운명을 어디까지 스스로 결정할 것인가.

헌법은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구조다

1959년부터 1969년까지 프랑스 제5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샤를 드골.
▲1959년부터 1969년까지 프랑스 제5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샤를 드골.위키미디어 공용

셋째는 헌법과 국가를 설계하는 능력이다. 드골은 1958년 제5공화국을 만들면서 단순히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유와 질서, 권위와 민주주의, 국가권력과 국민주권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함께 작동할 수 있는 국가체제를 설계했다. 그가 제4공화국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은 분명했다. 정당의 난립과 잦은 내각 교체로 국가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민주주의도, 국가의 독립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드골이 구상한 대통령은 단순한 행정부의 수장이 아니었다. "마치 배의 선장 곁에 오랜 경험을 지닌 항해사가 있어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맡듯이, 대통령 곁에는 국정의 모든 일을 책임지는 수상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대통령은 국가의 장기적 방향과 헌정질서를 책임지고, 수상은 일상적인 국정을 운영하는 구조였다.

그 핵심에는 대통령을 국가의 중재자(arbitre)로 보는 독특한 국가관이 있었다. 대통령은 어느 정당의 대표가 아니라 국가 전체를 대표하고,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 질서를 지키는 존재여야 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과 정부, 의회 사이에 권한과 책임을 나누고 서로 견제하도록 설계했다. 대통령에게는 총리 임명권과 국회해산권, 국민투표권과 비상 권한을 부여하는 한편, 정부는 의회에 정치적 책임을 지도록 했다.

특히 대통령과 다른 정치세력이 국민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할 경우에는 그 의회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총리가 정부를 이끌도록 함으로써,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갖는 동거정부(cohabitation)도 헌법안에서 가능하도록 했다. 의회와 정부가 충돌하거나 정치적 교착에 빠질 경우에는 국회해산이나 총선 등을 통해 국민에게 다시 판단을 묻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1962년 대통령 직선제와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서 제5공화국의 국가 설계는 한층 완성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대통령의 권위가 정당이나 의회가 아니라 국민의 직접적인 신임에서 나오도록 한 것이다. 특히 결선투표제는 대통령이 특정 정치세력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되도록 하는 장치였다.

드골이 만든 것은 결국 '강한 대통령의 헌법'이 아니었다. 강한 국가와 자유로운 국민이 공존할 수 있는 균형의 헌법이었다. 대통령에게 권한을 주되 국민에게 최종적인 심판권을 돌려주고, 정부에는 국정 운영의 책임을 부여하되 의회의 견제를 받도록 했다. 정권은 바뀌어도 국가의 방향과 국가의 연속성은 흔들리지 않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드골 헌법의 본질은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권력의 구조에 있었다. 헌법을 한 사람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국가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설계도로 만든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의 개헌 논의도 여기에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권한을 늘릴 것인가 줄일 것인가에만 머물지 말고, 국가원수와 행정수반의 역할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대통령과 국회가 어떻게 견제와 균형을 이룰 것인지, 국민의 직접적인 의사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 뒤에 있는 정치 문화다. 드골에게 정당의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지속성이었고, 다음 선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의 미래였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헌법 개혁도 권력 구조뿐 아니라 공직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장관이나 총리로 자리를 옮길 때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제29조의 겸직 규정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맡긴 공직을 자신의 정치적 경력을 위한 사다리처럼 활용하는 정치 문화는 배격해야 한다. 공직은 다음 자리를 위한 경력이 아니라 국민에게 위임받은 책임을 다하기 위한 자리여야 한다.

결국 드골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헌법은 권력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국가를 지속시키는 질서이며, 공직은 개인의 경력을 위한 사다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책임이다. 드골은 프랑스를 두 번 구했다. 한 번은 전쟁에서, 또 한 번은 국가체제를 다시 설계함으로써 구했다.

오늘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에 놓인 나라가 아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공한 나라다. 그러나 성공한 국가가 저절로 위대한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공을 지키고 다음 세대의 미래를 설계할 때 비로소 위대한 국가가 된다.

대한민국이 프랑스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드골이 프랑스를 바라본 방식이다. 그는 프랑스를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는 국가가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고 그 선택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국가로 보았다.

대한민국도 이제 그래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을 탓하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강대국의 선택을 기다리기보다 우리의 국익을 먼저 정의하며, 정권의 성과보다 국가의 지속성을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권력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앞세워야 한다.

드골의 가장 큰 유산은 핵무기도, 대통령제도, 헌법도 아니다. 그것들을 하나의 국가 철학 아래 묶어낸 '국가를 설계하는 정신'​이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다른 나라가 설계한 미래를 따라가는 나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위대한 대한민국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제 대한민국의 차례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의 전문은 피렌체의식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3170

필자 정한용은 충남대학교에서 군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대우교수와 한국핵안보전략포럼 부대표 겸 총서발간위원장을 맡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제49기로 임관하여 맹호부대 26여단장을 역임했으며, 예비역 육군대령이다. 20여 년 동안 샤를 드골 대통령의 국가전략과 외교전략, 리더십을 연구해 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국가의 자율성과 전략적 선택 능력을 갖춘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드골식 국가전략과 외교전략,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특히 북핵시대에는 확고한 핵억제력을 바탕으로 남북 간 전략적 균형을 형성하고, 이를 토대로 군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핵억제능력 확보를 위한 연구와 정책 제언에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핵안보 프로젝트 5: 핵잠수함 개발과 운용 전략>(공저, 블루앤노트, 2026), <한국의 핵안보 프로젝트 4: 북한의 핵위협과 한국의 억제전략>(공저, 블루앤노트, 2026), <한국의 핵안보 프로젝트 2: 국제사회 설득과 초당적 협력>(공저, 블루앤노트, 2025), <샤를 드골 위대한 대한민국을 향하다>(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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