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부터 1969년까지 프랑스 제5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샤를 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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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헌법과 국가를 설계하는 능력이다. 드골은 1958년 제5공화국을 만들면서 단순히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유와 질서, 권위와 민주주의, 국가권력과 국민주권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함께 작동할 수 있는 국가체제를 설계했다. 그가 제4공화국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은 분명했다. 정당의 난립과 잦은 내각 교체로 국가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민주주의도, 국가의 독립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드골이 구상한 대통령은 단순한 행정부의 수장이 아니었다. "마치 배의 선장 곁에 오랜 경험을 지닌 항해사가 있어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맡듯이, 대통령 곁에는 국정의 모든 일을 책임지는 수상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대통령은 국가의 장기적 방향과 헌정질서를 책임지고, 수상은 일상적인 국정을 운영하는 구조였다.
그 핵심에는 대통령을 국가의 중재자(arbitre)로 보는 독특한 국가관이 있었다. 대통령은 어느 정당의 대표가 아니라 국가 전체를 대표하고,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 질서를 지키는 존재여야 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과 정부, 의회 사이에 권한과 책임을 나누고 서로 견제하도록 설계했다. 대통령에게는 총리 임명권과 국회해산권, 국민투표권과 비상 권한을 부여하는 한편, 정부는 의회에 정치적 책임을 지도록 했다.
특히 대통령과 다른 정치세력이 국민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할 경우에는 그 의회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총리가 정부를 이끌도록 함으로써,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갖는 동거정부(cohabitation)도 헌법안에서 가능하도록 했다. 의회와 정부가 충돌하거나 정치적 교착에 빠질 경우에는 국회해산이나 총선 등을 통해 국민에게 다시 판단을 묻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1962년 대통령 직선제와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서 제5공화국의 국가 설계는 한층 완성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대통령의 권위가 정당이나 의회가 아니라 국민의 직접적인 신임에서 나오도록 한 것이다. 특히 결선투표제는 대통령이 특정 정치세력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되도록 하는 장치였다.
드골이 만든 것은 결국 '강한 대통령의 헌법'이 아니었다. 강한 국가와 자유로운 국민이 공존할 수 있는 균형의 헌법이었다. 대통령에게 권한을 주되 국민에게 최종적인 심판권을 돌려주고, 정부에는 국정 운영의 책임을 부여하되 의회의 견제를 받도록 했다. 정권은 바뀌어도 국가의 방향과 국가의 연속성은 흔들리지 않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드골 헌법의 본질은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권력의 구조에 있었다. 헌법을 한 사람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국가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설계도로 만든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의 개헌 논의도 여기에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권한을 늘릴 것인가 줄일 것인가에만 머물지 말고, 국가원수와 행정수반의 역할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대통령과 국회가 어떻게 견제와 균형을 이룰 것인지, 국민의 직접적인 의사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 뒤에 있는 정치 문화다. 드골에게 정당의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지속성이었고, 다음 선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의 미래였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헌법 개혁도 권력 구조뿐 아니라 공직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장관이나 총리로 자리를 옮길 때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제29조의 겸직 규정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맡긴 공직을 자신의 정치적 경력을 위한 사다리처럼 활용하는 정치 문화는 배격해야 한다. 공직은 다음 자리를 위한 경력이 아니라 국민에게 위임받은 책임을 다하기 위한 자리여야 한다.
결국 드골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헌법은 권력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국가를 지속시키는 질서이며, 공직은 개인의 경력을 위한 사다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책임이다. 드골은 프랑스를 두 번 구했다. 한 번은 전쟁에서, 또 한 번은 국가체제를 다시 설계함으로써 구했다.
오늘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에 놓인 나라가 아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공한 나라다. 그러나 성공한 국가가 저절로 위대한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공을 지키고 다음 세대의 미래를 설계할 때 비로소 위대한 국가가 된다.
대한민국이 프랑스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드골이 프랑스를 바라본 방식이다. 그는 프랑스를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는 국가가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고 그 선택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국가로 보았다.
대한민국도 이제 그래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을 탓하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강대국의 선택을 기다리기보다 우리의 국익을 먼저 정의하며, 정권의 성과보다 국가의 지속성을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권력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앞세워야 한다.
드골의 가장 큰 유산은 핵무기도, 대통령제도, 헌법도 아니다. 그것들을 하나의 국가 철학 아래 묶어낸 '국가를 설계하는 정신'이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다른 나라가 설계한 미래를 따라가는 나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위대한 대한민국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제 대한민국의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