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에 휩싸인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8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18 민주유공자 심사 절차를 강화하고 유공자 명단과 공적을 공개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유성호
광복절 이틀 전의 5·18 청문회로 논란의 주인공이 된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이번에는 토론회가 아닌 입법적 수단을 통해 5·18에 대한 이의제기를 예고했다. 국회에서 제명 촉구 결의안이 통과된 지 닷새 뒤인 지난 31일, 그는 5·18 유공자의 명단과 공적을 공개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유공자 보상에 대한 심의권을 전남광주특별시장에서 국무총리 소속 기관으로 이관시키는 발언도 했다.
국민 세금이 5·18 유공자 지원에 사용되고 있으니, 가짜가 있다면 밝혀야 하고 이는 당연하다. 그런데 이진숙 의원이 발의하겠다는 법안은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그것은 모든 5·18 유공자의 명단과 공적을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이는 가짜 유공자를 솎아 내는 것에서 훨씬 더 나아가 있다.
5·18 유공자를 포함한 국가보훈 대상자들은 유공자인 동시에 희생자 혹은 피해자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제4조의 제1호 및 제2호에 열거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은 독립유공자인 동시에 일제 침략 희생자이고 피해자다.
제3호부터 제6호까지의 전몰군경·전상(戰傷)군경·순직군경·공상(公傷)군경 역시 유공자인 동시에 희생자 혹은 피해자다. 제11호부터 제13호에 열거된 4·19혁명 사망자·부상자·공로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민주주의 수호의 공로자인 동시에 이승만 폭정의 희생자 혹은 피해자다.
보훈 대상자들의 이 같은 이중적 처지는 이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와 정부의 태도에 주의를 요하게 만든다.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나 희생자들을 대할 때처럼 보훈 대상자들을 대할 때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보훈 대상자들의 공적은 그들의 희생 및 피해와도 직결된다. 그래서 그 공적은 그들 자신에게 영예가 되는 동시에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지극히 민감하고 내밀한 개인정보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명단과 공적을 공개하는 일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본인이나 유족의 의사와 관계없이 공개하는 것은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강제로 끄집어내는 일이다.
이진숙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국가는 5·18 민주유공자를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한 분들로 인정하고 법률에 따라 예우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국가가 그들을 예우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신원도 공개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누구를 유공자로 인정했고 어떤 공적을 인정했으며 어떤 절차를 거쳐 결정했는지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도 5·18 유공자 명단 공개 요구 기각
국가의 예우 대상이므로 누가 어떤 이유로 예우받고 있는지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언뜻 들으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희생자이고 피해자이기도 한 5·18 유공자들의 처지를 고려하면, 그의 주장은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것이다.
국가의 예우를 받고 있으므로 명단과 공적을 공개해야 한다는 이진숙 의원의 요구는 결국 국가유공자 전체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그가 명단 공개 입법의 발의를 선전포고하듯이 예고한 것은 5·18 유공자를 포함한 국가유공자들의 이중적 처지를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결과다.
5·18 유공자 중에는 불법 구금이나 구속·해직 등의 피해를 입은 이들도 있지만, 생명이나 신체상의 피해를 입은 이들도 매우 많다. 국가보훈부(당시에는 국가보훈처)가 2019년 2월 13일 밝힌 바에 따르면, 2018년 12월 31일 현재의 5·18 유공자 4415명 중에는 사망자·행방불명자 181명, 부상자 2289명 및 그 유족 473명이 포함돼 있었다.
절반을 넘는 유공자 및 유족이 생명·신체 상의 피해와 직결돼 있었다. 유공자와 유족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 명단과 공적을 공개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에도 지극히 폭력적이다.
2018년 12월 2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김용철)는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102명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명단을 공개할 경우에 유공자들이 입게 될 피해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공개 요구의 대상이 된) 각 정보에는 5·18민주유공자들의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망이나 행방불명, 부상의 일시와 장소 및 구체적 경위, 질병 치료의 내용 및 기간, 장해 발생의 내용 및 정도, 5·18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수감의 경위, 죄명, 선고 형량, 복역한 기간 등 구체적 사항이 포함되어 있는 점, ③ 가사(假使, 설사) 이름 중 일부를 가리고 명단을 공개한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사망·행방불명 또는 부상 경위 및 원인에 관한 구체적 정보와 결합하여 개인을 특정할 수 있으므로 해당 명단도 개인식별정보로 볼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각 정보는 개인식별정보에 해당하거나 개인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자체로 개인에게 내밀한 내용에 해당하여 그 공개로 인격적·정신적 내면 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고 자유로운 사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될 위험성이 인정되는 정보로서,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이 사건은 2022년에 대법원이 원고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종결됐다. 대법원은 서울행정법원 판결을 지지하면서 5·18 유공자 명단의 공개 요구를 기각했다.
5·18 유공자들은 다른 나라 민주주의가 아닌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렸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들에 대한 시혜자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예우를 베풀었으므로 명단이나 공적 등이 당연히 공개돼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다른 국가유공자의 신원도 공개하지 않아
정부는 5·18 유공자뿐 아니라 다른 국가유공자의 신원도 원칙상 공개하지 않는다. 위 판결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피고(국가보훈처장)는 5 · 18민주유공자 외에 국가유공자, 보훈보상대상자,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 특수임무유공자 등 예우의 대상이 되는 다른 유공자들의 명단도 공개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국가는 독립유공자 명단만큼은 공개한다. 그들의 공적도 마찬가지다. 국가보훈부는 <독립유공자공훈록>을 통해 인적 사항과 공적을 상세히 공개한다. 이 과정에서 독립운동가의 아픈 부분도 과감히 드러낸다.
일례로, 1986년에 발간된 <독립유공자공훈록> 제1권 이순구 편은 석주 이상룡(1858~1932)과 함께 활동한 이순구(1884~1972)의 의병 활동을 설명하면서 "1908년 의성 구봉산에서 적과 접전하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고 불구가 되었다"고 기술한다.
신체장애라는 개인정보의 공개는 본인이나 유족의 아픔과 상처를 상기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독립운동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픔과 상처로 인식되기보다는 영광과 영예로 인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립운동으로 인한 신체장애의 공개가 본인과 유족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거기다가, 그 같은 공개는 한국인들의 자주독립의식을 고취시키고 사회공동체의 보존·유지에도 기여한다. 개인적으로 보나 사회적으로 보나, 독립운동가의 내밀한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새로운 아픔과 상처를 낳지는 않는다.
5·18 역시 독립운동처럼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했지만, 독립운동으로 인한 아픔 및 상처와 달리 5·18로 인한 아픔과 상처는 우리 사회가 피해자 전체의 명단과 '공적'을 소상히 공개하면서까지 마음 편하게 대할 만한 대상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그 같은 공개는 5·18을 폄훼하는 토론을 벌이거나 그런 입법을 시도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거의 다 사라져 5·18에 관해 훨씬 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고려해 볼 일이다. 지금 단계에서는 5·18 유공자의 인적 사항 공개가 피해자와 유족들을 더욱 아프게 하는 일이 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