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02 16:24최종 업데이트 26.09.0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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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8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이 진열되어 있다.
지난 7월 28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이 진열되어 있다.연합뉴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을 모두 따라 읽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비평가로서 판단하기에 그의 작품이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한다고 보진 않지만, 히가시노가 득의(得意)의 영역을 개척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추리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로서 안타깝다. 히가시노가 일본에서, 한국에서 개척한 문학적 영토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석이 나왔다. 작품의 질을 떠나서 히가시노는 보기 드문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히가시노는 단독으로 105권의 책을 냈다고 한다. 일본에서만 총 1억 부가 넘는 발행 부수를 기록했다. 일본에서만 인기를 얻은 게 아니다. 히가시노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읽은 외국 작가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2009년 1월부터 2019년 1월까지 교보문고가 집계 발표한 10년 치 소설 누적 판매량에서 국내외 통틀어 히가시노가 127만 부로 1위였다. 도서 대출 영역도 비슷하다. <한겨레>가 2016년부터 2026년 7월26일까지 전국 1600여 개 도서관의 대출 데이터를 살핀 결과, 역대 대출 1위가 히가시노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다. 약 28만 건 정도이다.


또한 국립중앙도서관이 전국 도서관 대출 데이터를 2016년부터 최근까지 합산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종합 인기 대출 1000종' 안에 히가시노 작품만 15종이 들어 있었다. 그중 상위를 차지한 작품 목록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용의자 X의 헌신>, <라플라스의 마녀>, <가면 산장 살인 사건>, <기린의 날개>, <녹나무의 파수꾼>, <악의>, <연애의 행방>, <그대 눈동자에 건배>, <위험한 비너스> 등이다. 나도 모두 읽었는데, 작품들의 세부 경향은 차이가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왜 이렇게 많이, 널리 읽혔는가?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은 히가시노가 이렇게 인기를 끈 이유이다. 조심스러운 판단이지만, 내가 알기로 국내 문학계에서 비평가나 연구자들이 히가시노를 본격적인 연구나 비평대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이런 경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미야베 미유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히가시노나 미야베를 장르문학이라는 틀로 규정짓고, 본격문학에서 배제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이런 판단의 타당성을 상세히 검토할 수는 없다. 다만, 범박하게 말하면 문학에는 오직 좋은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이 있을 뿐이고 그 좋음과 나쁨의 기준에 대한 논의만이 유효하다는 점은 적어둔다. 본격 소설, 장르 소설, 대중소설이니 하는 명칭은 편의적 구분일 뿐이다.

다시 묻자. 왜 히가시노 작품은 긴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이, 널리 읽혔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뻔해 보이는 답이지만, 따져보면 그 의미가 만만치 않다. 소설의 재미는 무엇인가? 예전에 읽은 어느 계간지에 평론가 김현 30주기를 기념하는 특집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김현을 아는 분들이 참여한 좌담에서, 김현이 생전에 작품 감상의 개념으로 '재미'를 언급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그 당시에 김현 선생이 개발한 작품 감상에 관한 용어가 '재밌다'였습니다. '니 작품 재밌더라.' '니 글 재밌더라' 이런 얘기 하셨는데 그것 때문에 황동규 선생님은 되게 싫어하셨어요. '재밌다니 감동했다고 해야지.'(일동 웃음)" - <문학과 사회> 2020년 여름호 중

이 대화에서 "재미"는 "감동" 등에 비해 뭔가 수준이 낮은 것으로 치부된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재미는 무엇인가? 미야베의 빼어난 시대 소설 <세상의 봄>을 평하면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재미는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이라고 되어 있다. 어떤 이유로 우리는 즐거운 기분과 느낌이 들게 되는가? 재미의 어원을 따져보면, 재미는 순수한 한국어는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재미는 어원적으로는 한자어인 자미(滋味)와 연결된다는 해석이 있다. 자미는 영양분이 많고 맛있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재미는 맛의 문제다. 한마디로 그 음식, 영화, 소설을 맛보는 주체의 반응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심이 생기는가? 관심과 재미는 작품 자체가 지닌 고유한 맛이 물론 있어야 한다." (오길영 <희망의 비평>)

재미에도 여러 급이 있다. 히가시노 소설이 잘 보여주듯이 디테일의 생생한 설정, 실감 나는 장면 만들기, 문장의 고유한 맛 등에서 발생하는 잔재미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진짜 재미는 그들의 작품을 보거나 읽으면서 관객이나 독자가 느끼게 되는 감각과 인식의 충격이다. 그런 충격은 관객이나 독자가 인지하지 못해 온 다른 삶과 세계를 느끼게 해주는 데서 나온다. 그들의 세계는 이미 있는 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그 세계에 기반을 두되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 일종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을 창조한다.

문학은 있는 현실의 소박한 재현이 아니다. 이런 창조성은 소위 본격문학만이 아니라 장르문학에서도 관건이 된다. 특히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악의 형상화가 중요하다. 나는 한국문학의 한 구멍이 악의 문제를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하는 점이라고 판단한다. 최근 어느 문학상 심사를 위해 최근 출간된 한국소설을 읽으면서 그 점을 다시 확인했다.

히가시노 소설은 다양한 인물 형상화를 통해 악의 형성과정을 포착한다. 그가 자주 쓰는 범죄소설에서 살인과 같은 범죄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 그런 범죄의 맥락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독자가 느끼는 호기심의 궤적도 있지만, 그 범죄에서 드러나는 우리 시대 인간의 형질(character)이 주는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모든 좋은 작품이 그렇듯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how)'가 아니라 '왜(why)' 이다. 히가시노 소설은 이런 질이 좋지 않은 인간, 악인에게 개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왜 그런 자들이 그런 일그러진 인격을 갖게 되었는지를 파고든다. 그리고 그런 인물형은 한 개인의 특별한 자질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사회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임을 드러낸다. 그 점에서 히가시노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 작품과는 다른 맥락에서 사회파 미스터리의 성격을 지닌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중 인물을 통해 독자에게 하고 싶었던 말

<투명한 나선> 겉표지
<투명한 나선> 겉표지북다

국내에서 가장 최근에 발행된 <투명한 나선>(원작은 2021년 출간)에도 그런 뒤틀린 인물이 나온다. "특이한 성격이 차례로 밝혀졌다. 특히 많은 사람이 입을 모아 지적하는 것이 양면성이었다. 그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에게는 다정하고 친절하지만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사람은 가차 없이 몰아세우는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나선>은 히가시노가 창조한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한 명인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가 등장하는 시리즈이다.

곧 일본에서 출간될 히가시노의 유작에도 유카와가 나온다고 한다. 히가시노 작품 목록에는 나도 인상 깊게 읽은 <가공범>, <백조와 박쥐> 등에 등장한 경찰 고다이 쓰토무, 그리고 유카와 시리즈만큼 인기를 끌었던, 역시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가가 시리즈'의 주인공 가가 교이치로 등이 있지만, 내게는 유카와 마나부가 가장 돋보인다.

그는 경찰이 아니라 물리학자이고, 논리 기계라 불렸던 셜록 홈스와 유사한 차가운 이성과 추리력을 발휘한다. 유카와는 감성적인 기질과는 거리가 멀다. 상투적인 면모로 보이지만, 그게 매력으로 작용한다. 작가가 밝힌 바로는 유카와 마나부는 일본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로부터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나선>은 다른 유카와 시리즈 작품과 비교하면 아주 돋보인다고 할 수는 없다. 캐릭터 형상화, 주제, 사건의 해결 방식 등에서 다소 납작하다는 느낌이다. 예컨대 유카와 시리즈를 대표하는 작품이고 히가시노에게 후보 추천 여섯 번째 만에 나오키상을 안겨준 <용의자 X의 헌신>에 비교하면, 캐릭터 형상화의 깊이가 떨어진다.

하지만 <나선>에는 그동안 궁금증을 안겨준 유카와의 다른 면모, 특히 그가 단지 논리 기계가 아니라, 독자와 마찬가지로 숨겨진 상처와 그로 인한 여러 정념을 지닌 존재라는 게 드러난다. 작품의 초반부에서 여전히 유카와는 독특한 인물로 그려진다. 작가는 시리즈에서 유카와에게 사건을 의뢰하고 협력하는 고정 캐릭터인 유카와의 대학 동창이자 경찰 수사관 구사나기, 구사나기의 부하인 여성 경찰관 가오루의 시선을 통해 그 점을 드러낸다.

그들이 보기에 유카와는 "그리 꼬인 성격"을 지닌 가까이하기 힘든 학자이기에, "이 괴팍한 물리학자가 어머니의 기저귀를 간다. 아무래도 상상이 되지 않아 당혹스러웠다"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 나온다. 그래서 가오루는 유카와에게 묻는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선생님처럼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비합리적인 줄 알면서도 끝내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나선>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스포일러라서 밝힐 수 없지만 유카와의 '비밀'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유카와가 지닌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유카와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어요. 그로부터 몇십 년이나 지나서, 수많은 사람의 수많은 인생을 보아 온 지금은 그때의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압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요. 지금 제가 있는 건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입니다."

이처럼 이전 시리즈에서는 보지 못한 유카와의 면모를 확인한다. 유카와 시리즈를 시작할 때 30대의 부교수였던 유카와도 이제 쉰이 넘은 정교수가 되었고, 그의 내면에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걸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게 유카와를 통해 작가가 독자와 세상에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는 느낌이다. 예상치 못한 타계 소식을 접하고 보니 더욱 작가의 말처럼 느껴진다.

아쉽게도 유카와가 앞으로 어떻게 변모해갈지를 더는 알 수 없게 됐다. 넷플릭스에는 오래전에 일본 드라마 시리즈로 만들어진 <갈릴레오>의 교수 유카와 마나부의 활약상이 올라 있다. 소설 원작을 떠올리면서 모두 재미있게 봤다. 그의 타계를 접하고 다시 챙겨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다른 건 몰라도 독자들에게 꾸준히 재미있는 작품을 선사해준 작가 한 명을 잃었다. 작가는 떠났어도 그가 남긴 많은 작품은 앞으로도 꾸준히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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