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신청으로 개헌안 표결이 또 다시 무산된 데 대해 울분을 토하다 눈물을 닦고 있다.
남소연
4월혁명 직후(1960.6.15.)와 6월항쟁 직후(1987.10.27.)에는 헌법 개정이 있었다. 두 개헌의 공통점은 각각의 시민혁명을 초래한 핵심 원인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1960년 개헌 때는 제2의 이승만을 예방하기 위한 내각제가 채택됐고, 1987년 개헌 때는 제2의 전두환을 예방하기 위한 직선제가 채택됐다. 강력한 권한을 갖는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파탄시킬 가능성, 국민의 선택을 받기 힘든 인물이 간접선거 루트를 이용해 청와대로 들어갈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두 개헌 모두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시민혁명을 유발한 핵심 원인을 도려내 동일 사태의 재발 가능성을 낮추는 데는 성공했다.
촛불혁명과 빛의혁명을 초래한 요인도 대통령들에게 있다. 촛불혁명 직전에는 대통령의 권한이 얼마든지 사유화될 수 있음이 확인됐고, 빛의혁명 직전에는 민주주의체제하의 대통령도 얼마든지 내란을 일으켜 제2의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 될 수 있음이 확인됐다.
그러므로 두 시민혁명 직후에도 대통령 권한을 수술하는 개헌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제2의 박근혜, 제2의 윤석열을 막기 위한 그런 개헌은 없었다. 촛불혁명 직후에 아무런 개헌도 없었던 것은 촛불혁명 이전의 문제점이 그대로 보존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2024년에 훨씬 더 큰 사태가 벌어지는 원인이 됐다.
정치체제의 모순을 헌법적으로 해결하는 개헌은 문제 해결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것의 필수적인 일부다. 1960년·1987년과 달리 2017년·2025년에 개헌이 없었던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해치는 일이었다.
1958년 총선 때 자유당은 총 233석의 과반을 넘는 126석을 차지했다. 이 숫자는 4월혁명 직전에는 더 늘었다. <국사관논총> 1991년 제27집에 실린 손봉숙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의 논문 '자유당의 정당정치'는 "자유당은 무소속 포섭 공작에 나서 총 의석 137석으로 원내 안정세력을 확보하였다"고 말한다. 이런 거대 여당을 상대로 4·19 당시의 민주당은 79석을 갖고도 6·15 개헌을 성사시켰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2019년도 대한민국 헌정사 자료 편찬을 위한 연구용역 결과보고서>는 1987년 5월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국회 내 정당들의 의석 구도는 민정당 148석, 통일민주당 67석, 신한민주당과 국민당이 각 20여 석"이었다고 알려준다.
1985년 2·12 총선 당시의 전체 의석은 276석이다. 민주정의당(민정당)이 그 과반수를 차지한 상태에서도 1987년 개헌이 성사됐다. 6월항쟁 때의 구호가 직선제였기 때문에 야권의 개헌 협상이 훨씬 수월했던 점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2016년 12월 9일 당시의 민주당은 300석 중에서 121석을, 국민의당(안철수)은 38석을, 정의당은 6석을 갖고 있었다. 탄핵을 지지하는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상태에서 민주당은 새누리당 이탈표를 끌어들여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새누리당 이탈세력인 바른정당이 32석을 확보한 이후인 2017년 3월에는 새누리당 의석이 전체의 3분의 1 미만인 94석이 됐다. 4월혁명 직후의 자유당과 6월항쟁 직후의 민정당에 비해 촛불혁명 직후의 새누리당은 현저히 약했다. 그런데도 2017년 당시의 야권은 개헌을 이루지 못했다.
12·3 내란 8개월 전에 치러진 2024년 4·10 총선 때 민주당과 조국혁신당과 진보당이 획득한 의석은 전체 300석 중에서 188석이다. 3분의 2에는 약간 못 미쳐도, 과거의 시민혁명 때에 비하면 야권의 의석이 매우 많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이 시기의 야권 역시 개헌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대통령을 도려내는 응급조치만 있었을 뿐, 체제의 문제점을 없애는 치료는 없었다.
민주당의 의석 수가 훨씬 적었던 4월혁명과 6월항쟁 때도 개헌이 성사돼 정치체제의 문제점이 어느 정도 치유됐다. 이는 촛불혁명과 빛의혁명 이후의 민주당도 얼마든지 개헌을 성사시킬 가능성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그 기회를 놓쳐 시스템의 질병을 치유하지 못한 것이 민주주의 체제의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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