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31 14:24ㅣ최종 업데이트 26.08.3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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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현상'은 민주주의 시스템의 위기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개인적 특성과 이해관계뿐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보여주는 측면도 많다. 이는 촛불혁명과 빛의혁명의 차이를 드러내는 현상 중 하나다.

촛불혁명 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정치안정이 상당부분 회복됐다. 국가권력의 사유화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초래한 제도적 취약성이 근원적으로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인용 결정을 통해 많은 부분이 해결됐다.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2025.4.4.)된 뒤에도 정치안정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코스피 지수가 폭등하고 인공지능(AI)·반도체 호황이 나타나고 있지만, 박근혜 파면 이후와 같은 안정성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는 윤석열 탄핵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촛불혁명 때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이재용 당시 삼성그룹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고, 박근혜·최순실·이재용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돼 재판이 지연되는 등의 일이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당시의 사법부는 국정농단을 응징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그래서 사법부가 국정농단 극복에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사법부가 12·3 내란 해결에 긍정적 작용을 미치지 못한다. 삼권분립을 지탱하는 균형과 견제의 원리를 넘어, 사법부가 내란 재판에 제동을 건다고 볼 수 있는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다.

지귀연 판사의 특이한 구속기간 산정 방식으로 윤석열이 석방된 점, 윤석열 재판을 포함한 내란재판들이 전반적으로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점, 법원행정처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에 우려를 표시한 점은 내란 재판에 대한 사법부의 시선이 일반 국민들의 시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항소심을 통과한 한덕수·이상민 재판에 대한 최종 판결이 대법원 소부에서 곧바로 선고되지 않고 전원합의체로 회부돼 재판 종결이 지연된 점, 내란 재판과 김건희 재판이 전원합의체로 넘어가는데도 대법관 공석을 채우는 일이 신속히 진행되지 않는 점, 대법원장이 종래의 관행을 무시한 대법관 제청을 통해 대통령에게 시비를 거는 듯한 인상을 풍긴 점 등도 마찬가지다.

시스템의 '결함' 보여주는 불안한 정치 국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예산 언박싱 2027'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 발표에 앞서 청년 예산과 주요 사업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2026.8.28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예산 언박싱 2027'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 발표에 앞서 청년 예산과 주요 사업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2026.8.28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

촛불혁명 때도 극우세력의 맞불시위가 대단했지만, 당시의 극우세력은 한국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에 대한 불신을 근거 없이 드러내는 부정선거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6·3 지방선거 때의 부실한 선거관리는 부정선거론에 더욱더 불을 지피는 결과를 초래했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것은 왕조시대로 말하면 군주의 혈통을 부정하는 일이다. 이는 단순히 군주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과 차원을 달리한다. 위화도회군 이후의 이성계 그룹이 공민왕의 자손인 우왕과 창왕을 왕씨가 아닌 신씨로 몰아세운 일은 고려왕조의 판을 뒤엎는 일이었다. 이는 결국 신왕조 창업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체제에 대한 도전 의식을 담은 부정선거론의 확산은 지금의 극우세력이 촛불혁명 때의 극우세력과 세계관을 달리함을 의미한다.

지금이 촛불혁명 때보다 불안정하다는 것은 민주당 정권의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빛의혁명을 배경으로 집권했으므로 민주당 정권은 밝고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띠어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민주당 정권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적 사법 리스크와 많이 얽혀 있다. 새로운 일을 추진하거나 새로운 인물을 임명할 때마다 '이재명 공소취소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라는 의혹에 휩쓸리고 있다. 사법 리스크의 사실 여하와 관계없이 이것은 국정운영에 지장을 주고 있다.

이는 큰 업적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문재인 정권이 촛불혁명의 열기를 타고 비교적 안정되게 국정을 운영한 것과 대비된다. 지금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거대 여당이 대통령 개인의 사법 리스크에 휘말리는 측면이 있다. 시스템 안에서 개인 문제가 녹아들지 않고 시스템이 개인 문제의 영향을 과도하게 받는 것은 시스템에 결함이 생기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개헌의 기회를 놓쳤던 것이 문제

지난 5월 8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신청으로 개헌안 표결이 또 다시 무산된 데 대해 울분을 토하다 눈물을 닦고 있다.
▲지난 5월 8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신청으로 개헌안 표결이 또 다시 무산된 데 대해 울분을 토하다 눈물을 닦고 있다.남소연

4월혁명 직후(1960.6.15.)와 6월항쟁 직후(1987.10.27.)에는 헌법 개정이 있었다. 두 개헌의 공통점은 각각의 시민혁명을 초래한 핵심 원인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1960년 개헌 때는 제2의 이승만을 예방하기 위한 내각제가 채택됐고, 1987년 개헌 때는 제2의 전두환을 예방하기 위한 직선제가 채택됐다. 강력한 권한을 갖는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파탄시킬 가능성, 국민의 선택을 받기 힘든 인물이 간접선거 루트를 이용해 청와대로 들어갈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두 개헌 모두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시민혁명을 유발한 핵심 원인을 도려내 동일 사태의 재발 가능성을 낮추는 데는 성공했다.

촛불혁명과 빛의혁명을 초래한 요인도 대통령들에게 있다. 촛불혁명 직전에는 대통령의 권한이 얼마든지 사유화될 수 있음이 확인됐고, 빛의혁명 직전에는 민주주의체제하의 대통령도 얼마든지 내란을 일으켜 제2의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 될 수 있음이 확인됐다.

그러므로 두 시민혁명 직후에도 대통령 권한을 수술하는 개헌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제2의 박근혜, 제2의 윤석열을 막기 위한 그런 개헌은 없었다. 촛불혁명 직후에 아무런 개헌도 없었던 것은 촛불혁명 이전의 문제점이 그대로 보존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2024년에 훨씬 더 큰 사태가 벌어지는 원인이 됐다.

정치체제의 모순을 헌법적으로 해결하는 개헌은 문제 해결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것의 필수적인 일부다. 1960년·1987년과 달리 2017년·2025년에 개헌이 없었던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해치는 일이었다.

1958년 총선 때 자유당은 총 233석의 과반을 넘는 126석을 차지했다. 이 숫자는 4월혁명 직전에는 더 늘었다. <국사관논총> 1991년 제27집에 실린 손봉숙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의 논문 '자유당의 정당정치'는 "자유당은 무소속 포섭 공작에 나서 총 의석 137석으로 원내 안정세력을 확보하였다"고 말한다. 이런 거대 여당을 상대로 4·19 당시의 민주당은 79석을 갖고도 6·15 개헌을 성사시켰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2019년도 대한민국 헌정사 자료 편찬을 위한 연구용역 결과보고서>는 1987년 5월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국회 내 정당들의 의석 구도는 민정당 148석, 통일민주당 67석, 신한민주당과 국민당이 각 20여 석"이었다고 알려준다.

1985년 2·12 총선 당시의 전체 의석은 276석이다. 민주정의당(민정당)이 그 과반수를 차지한 상태에서도 1987년 개헌이 성사됐다. 6월항쟁 때의 구호가 직선제였기 때문에 야권의 개헌 협상이 훨씬 수월했던 점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2016년 12월 9일 당시의 민주당은 300석 중에서 121석을, 국민의당(안철수)은 38석을, 정의당은 6석을 갖고 있었다. 탄핵을 지지하는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상태에서 민주당은 새누리당 이탈표를 끌어들여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새누리당 이탈세력인 바른정당이 32석을 확보한 이후인 2017년 3월에는 새누리당 의석이 전체의 3분의 1 미만인 94석이 됐다. 4월혁명 직후의 자유당과 6월항쟁 직후의 민정당에 비해 촛불혁명 직후의 새누리당은 현저히 약했다. 그런데도 2017년 당시의 야권은 개헌을 이루지 못했다.

12·3 내란 8개월 전에 치러진 2024년 4·10 총선 때 민주당과 조국혁신당과 진보당이 획득한 의석은 전체 300석 중에서 188석이다. 3분의 2에는 약간 못 미쳐도, 과거의 시민혁명 때에 비하면 야권의 의석이 매우 많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이 시기의 야권 역시 개헌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대통령을 도려내는 응급조치만 있었을 뿐, 체제의 문제점을 없애는 치료는 없었다.

민주당의 의석 수가 훨씬 적었던 4월혁명과 6월항쟁 때도 개헌이 성사돼 정치체제의 문제점이 어느 정도 치유됐다. 이는 촛불혁명과 빛의혁명 이후의 민주당도 얼마든지 개헌을 성사시킬 가능성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그 기회를 놓쳐 시스템의 질병을 치유하지 못한 것이 민주주의 체제의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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