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준영은 지난 5월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다.
JTBC
지난 5월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을 때도 그랬다. 선한 역할과 악한 역할의 눈빛 차이를 보여달라고 하자 빨개진 귀를 쓸어 넘기며 금세 집중 모드로 들어갔다. 춤을 보여달라는 요청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셰프들과 나란히 서서 아이돌 출신다운 정확한 춤선을 보여줬다.
낯을 가리는 것은 그의 성향이다. 하지만 그 성향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낯은 가리지만 일은 안 가린다. 사람은 어려워해도, 일 앞에서는 몸을 사리지 않는다.
2024년 2월 유튜브 <살롱드립2>에 출연했을 때 이준영은 함께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로얄로더>를 찍은 이재욱과의 첫 만남을 이야기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이준영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함께 연기할 배우 이재욱과 빨리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 먼저 밥을 먹자고 했다.
그렇다고 이준영이 내향성을 극복한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낯을 가린다. 부끄러우면 귀가 빨개지고, 많은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라이브 방송을 꺼버린 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수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래도 해야 할 때는 한다.
내향적이라는 말은 종종 소극적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쓰인다. 낯을 가리니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싫어할 것이고, 어색한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피하려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준영을 보고 있으면 둘은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필요할 때 자신의 성향을 핑계로 삼지 않는 사람. 이준영의 매력은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배우가 되기까지
그가 배우가 된 과정도 비슷하다.
이준영이 처음부터 배우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스트릿댄서로 활동하다 아이돌 그룹 유키스의 멤버로 합류했다. 유키스 시절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면서 연기가 뜻대로 되지 않아 다른 멤버들은 촬영을 잘 마치는데 자신만 유난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속상했다. 그래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연기를 연습하다 보니 '내가 해볼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다. 배우 도전을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도 아니다. 당시만 해도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 대한 시선이 지금처럼 호의적이지 않았다. 촬영장에 자신이 등장하면 한숨부터 쉬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오디션에서도 수없이 떨어졌다. 가수 활동이 뜸했던 시기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연기를 준비했다. 그런데도 계속했다. 자신을 믿고 기회를 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다 tvN <부암동 복수자들>(2017)의 '이수겸'을 만났다.
배우 이준영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고, 첫 별명인 '수겸 학생'을 만들어준 작품이다. 나만 못해서 속상한 마음에 시작한 연기가 어느새 또 하나의 본업이 됐다.

▲유튜브 〈채널 십오야〉 라이브 출연한 배우 이준영.
유튜브
2025년 KBS2 드라마 <24시 헬스클럽> 방영 당시, 홍보를 위해 찾은 유튜브 <채널 십오야> 라이브에서 신원호 PD는 몇 개월 만에 헬스장 관장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이준영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부족한 부분을 죽자고 해낸다."
이준영의 지난 시간을 이것보다 더 잘 요약한 말이 또 있을까. 보통 잘하지 못하는 일 앞에서는 한발 물러서기 쉽다. 낯을 가려서 먼저 말을 걸지 못하고, 해본 적이 없어서 시작하지 않고, 자신이 없어서 피한다.
그런데 이준영은 반대로 움직인다. 낯을 가리면서도 함께 일할 사람에게 먼저 밥을 먹자고 했다. 연기를 못해서 연기를 배웠다.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다시 오디션을 봤다. 잘하지 못한다고 피하기보다, 일단 한 번 해본다. 그러면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하나씩 넓혀간다.
이준영은 배우로 더 많이 알려진 지금도 춤을 춘다. 스트릿댄서는 그가 오래 품었던 꿈 중 하나다. 배우로 자리를 잡은 뒤에도 직접 댄스 배틀에 참가해왔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친분이 있는 댄스 크루 뱅크투브라더스와 하루 종일 춤을 추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스트릿댄스가 아이돌이 되기 위한 전 단계였던 것도, 아이돌 활동이 배우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도 아니다. 배우가 된 지금도 춤을 추고, 무대에 서면 여전히 노래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이전의 일은 과거형이 되지 않는다. 그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가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늘려왔다.
'최정요'가 더 궁금해진다

▲tvN 드라마 〈포핸즈〉 관련 이미지.
tvN
지난 8월 29일 첫 방송된 tvN 드라마 <포핸즈>에서 이준영은 천재 피아니스트 최정요 역할을 맡았다. 피아노를 친구처럼 여기던 사람이지만 경연에서 벌어진 엄마의 사고 이후 무대가 두려워졌고, 오랫동안 음악을 떠나 있다가 우연한 계기로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해 다시 피아노 앞에 앉게 된다.
천재 피아니스트를 맡았지만 정작 이준영은 피아노를 능숙하게 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촬영할 곡을 통째로 외웠다. 멜로디가 나오는 구간과 연기가 필요한 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클래식을 거의 몰랐던 그는 쉬는 날이면 클래식을 듣고, 시간이 날 때마다 피아노를 연습했다.
어쩐지 익숙한 이야기다. 뮤직비디오 촬영에서 연기가 안 돼 속상해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던 이준영은 이번에는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해 곡을 외우고 건반 앞에 앉았다. 제작발표회에서는 이 작품을 통해 이런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이런 것도 소화 가능한 사람이구나."
생각해보면 이준영은 꽤 오랫동안 '이런 것도'의 범위를 넓혀왔다.
2회까지 <포핸즈>를 보고 나니 이제는 이준영보다 최정요가 궁금해졌다. 무대가 두려워 도망쳤던 최정요. 그가 다시 피아노 앞에 서고 건반에 손을 올려놓게 되는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지난 7월 21일 이준영은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다. 문득 2017년 KBS2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 유닛>에 출연했던 스무 살 이준영이 떠오른다.
첫 무대에서 관객의 선택을 받아 선배 가수들의 합격 심사를 거치지 않고 진출하는 첫 번째 '슈퍼부트'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랩에서는 박자를 놓쳐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무대를 거듭하며 노래와 춤, 랩을 두루 보여주는 '육각형 매력'을 가진 참가자로 성장했고, 마지막에는 16만 5309표를 얻어 남자부 최종 1위에 올랐다.
당시 'Butterfly' 무대를 준비하면서 이준영은 이 노래를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라고 소개했다. 마지막 랩 파트를 맡은 그는 가사를 직접 썼다. 그가 쓴 마지막 가사는 "Let it fly"였다.
스트릿댄서의 꿈을 품었던 아이돌 막내는 솔로 가수가 되고, 배우가 됐다. 데뷔 12년 차, 이준영에게는 어느새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아졌다. 앞으로 그가 어디까지 날아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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