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에 철거된 백궁보 자리하천 바닥에 설치한 '인공 여울' 때문에, 보가 없는데도 상류의 물이 정체되어 있다
김혜진
이어 우리는 200여 미터를 더 걸어, 백궁보가 있던 자리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맞닥뜨렸다. 보를 없앤 게 분명한데, 마치 보가 있는 듯했다. 가파른 경사 위의 물은 정체돼 있고, 그 아래의 물은 울퉁불퉁한 돌바닥 위로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물소리는 시원했으나, 물길은 시원하지 않았다. 이 사무국장은 그것 또한 하상이 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돌을 철망으로 고정한 '스톤네트'를 바닥에 설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또한 '인공 여울'이라고, 그는 씁쓸하게 덧붙였다.
"잘못된 공사예요. 호안도 원래 있던 걸 없애고, 시멘트로 다 정비했어요. 보를 철거한 건, 물길을 다시 잇고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이 경사진 인공 여울을 물고기들이 거슬러 오르긴 쉽지 않아 보여요."
'수생태계 연속성 확보사업'이라는 모순
탄천의 보를 허물어 물길을 연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 이면엔 결코 조화롭다 할 수 없는 모순이 존재했다. 백궁보와 백현보는 환경부의 '수생태계 연속성 확보사업'으로 철거되었다. 수생태계 연속성 확보사업이란 '하천의 자연스러운 물길과 생태적 흐름을 되살리기 위해 환경부와 지자체 등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는 환경사업'을 말한다. 이름 그대로 '생태 복원'이 주가 되어야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백궁보와 백현보의 경우, 보 철거와 하상, 호안 정비가 한 세트로 계획됐어요. 저희가 백궁보의 인공 여울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아서, '백현보는 절대 그렇게 공사하지 말라'고 요구했어요. 그래서 하상 공사는 피했지만, 대신 호안의 조경석이 좀 과하게 조성됐어요. 예산이 과도하게 책정되면, 하상이나 호안을 불필요하게 정비하는 일이 생겨요."
성남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보 해체 후 자연기반해법을 활용한 자연성 회복 토론회'에서 백경오 한경국립대 토목안전환경공학과 교수는 '인위적인 조치가 없어도 하상은 장기적으로 안정된 경향을 띤다'며 인공 여울 설치 같은 관행적 사업의 비효율성을 지적한 바 있다.
백 교수의 지적처럼, 보 철거의 본질은 '자연성 회복'이어야 한다고 이 사무국장은 강조했다. 자연의 자생력을 믿고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이른바 '자연기반해법'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보 철거의 모든 과정을 지켜본 그는 그 부분을 가장 안타까워했다.
"보가 있는 것보다야 낫죠. 하지만 보를 철거한 뒤, 인공 여울을 설치하고 조경석을 쌓으면서 자연스러운 하천의 모습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건 아쉬워요. 보 철거의 목적은 단순히 구조물 하나를 없애는 게 아니라, 물길의 종적 연결성을 회복하고 하천과 수변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횡적 연결성까지 되살리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백현보 철거 뒤 호안에 조성된 조경석조경석 대신 나무나 갈대 같은 식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생태적으로 훨씬 바람직한 방법이다
김혜진
보 철거 뒤, 탄천에 찾아온 놀라운 변화
19세기 미국의 자연주의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인간의 어떤 제도도 자연을 통제하거나 그 속으로 스며들지 못한다. 자연에는 또 다른 종류의 권리가 지배한다'는 말을 남겼다. 소로의 통찰처럼, 보를 걷어낸 탄천은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드러내듯 점차 되살아났다.
백현보 철거 후, 탄천의 수질은 1급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물길이 열리자, 물은 힘차게 흐르며 스스로 자정 능력을 회복했고, 탄천은 유연하게 굽이쳐 흐르는 자연스러운 사행하천(蛇行河川, 뱀이 기어가는 모양처럼 구불구불 흘러가는 하천)의 모습으로 차츰 변해갔다.
물길의 회복은 곧 생태계의 풍성함으로 이어졌다. 성남환경운동연합의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탄천은 다양한 야생생물의 소중한 터전으로 거듭났다. 깨끗한 자갈밭과 모래톱이 드러난 구간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흰목물떼새가 찾아왔고, 물가와 수풀 사이엔 원앙과 해오라기가 날아들었다.
또한 자연스럽게 형성된 여울과 소를 따라 토종 민물고기들이 서식하게 되었고,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수달의 서식 흔적이 호안의 수풀과 갈대군락 등에서 잇따라 확인되었다. 이는 탄천의 생태계가 건강하게 회복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탄천에 찾아온 흰목물떼새깨끗한 모래나 자갈밭에 서식하는 희귀 텃새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돼 있다
성남환경운동연합
▲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수달 탄천 상류 '수달 쉼터'의 모니터링 카메라에 찍힌 모습 ⓒ 성남환경운동연합
이 밖에도 보 철거는 홍수의 위험을 감소시켰다. 이 사무국장은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들려주었다.
"보를 철거하면, 물의 흐름을 가로막던 구조물이 사라지면서 홍수 때 하천의 수위를 낮추는 효과가 있어요. 실제로 탄천의 보 철거 후, 홍수위가 무려 1.1미터나 낮아졌어요. 집중호우가 잦은 기후 위기의 시기에 1.1미터는 굉장히 큰 거예요. 가장 쉽고도 효과적인 홍수 대비책이 강을 파내는 '준설'이 아니라 '보 철거'라는 것을 말해주는 거죠."
보는 걷어냈지만... "불필요한 시설 없애야"
성남시는 민선 8기부터 '재해로부터 안전한 하천 정비'를 내세우며, 탄천 준설(하천 바닥에 쌓인 흙이나 모래를 파헤처 바닥을 깊게 만드는 일) 작업을 계속해 왔다. '매년 정기적으로 퇴적토를 퍼낸 결과, 통수 능력이 개선돼 하천 범람과 수해를 예방했다'고 발표했지만, 이희예 사무국장은 '성남시가 준설의 홍수위 저감 효과를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남환경운동연합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성남시가 탄천 전 구간에 준설을 했지만, 준설 전과 후 수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 사무국장은 '하천의 자연스러운 토사 이동으로, 시간이 지나면 하천 바닥이 다시 메워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8월 초 탄천을 찾았을 때, 둔치에 설치된 수영장, 그늘막, 파크골프장, 테니스장 등 다양한 시설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 사무국장은 그것들을 마주칠 때마다 '홍수 피해를 키울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곤 했다.
"2022년 여름, 성남시가 집중호우로 인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어요. 당시 탄천 둔치 홍수 피해액만 34억 원에 달했어요. 평소 산책로로 쓰이는 둔치는 하천의 수위가 오를 때 넘치는 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홍수터의 역할을 해요. 그런데도 시는 이러한 홍수터의 기능을 저해할 수 있는 파크골프장 등 과도한 체육시설을 예산을 들여 계속 설치하고 있어요."

▲탄천 물놀이장홍수 시 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홍수터의 역할을 하는 둔치에 물놀이장과 그늘막 등이 설치돼 있다
김혜진
▲그물망 펜스둔치의 체육시설을 에워싼 그물망 펜스는 홍수 시 물의 흐름을 막아 피해를 키울 수 있다
김혜진
한편 성남시는 2023년부터 매년 가을 '성남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축제 때면, 시는 행사 중 하나인 '카약 체험'에 필요한 수심을 확보하기 위해 *가동보를 작동해, 하천의 물길을 인위적으로 가로막았다. 인간들이 카약을 즐기는 동안, 가동보에 갇힌 상류의 수질은 악화됐고, 물이 빠진 하류에선 물고기들이 헐떡이며 죽어갔다. (관련 기사:
성남시, 카약체험 추진에 시민·환경단체·정치권 반발... "탄천은 생명의 강" https://omn.kr/2fakv)
*가동보: 필요에 따라 눕히거나 세워서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보. 현재 탄천 성남 구간에 있는 불필요한 보 11개 중 5개가 가동보이며, 나머지는 콘크리트 보다.
"가동보가 하천 바닥에 내려가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언론에서는 콘크리트 보만 다루는데요. 쓸모없기는 마찬가지예요. 카약 체험의 폐해를 보면서, '사람들은 쓸모없는 시설을 어떻게든 이용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필요한 시설은 빨리 없애는 게 좋아요."
▲가동보 작동으로 죽은 물고기들물길이 막히자, 상류의 수질은 악화됐고 하류에선 물고기들이 죽어갔다
성남환경운동연합
현재 전국엔 약 3만 4천 개의 보가 있고, 그중 상당수는 기능을 상실하거나 파손된 채 방치된, 운명이 다한 보들이다. 민관협치를 통해 미금보, 백궁보, 백현보를 걷어내 물길을 열고 건강한 생명력을 되찾은 성남 탄천의 여정. 그것은 콘크리트 보에 갇혀 신음하는 전국의 수많은 하천이 나아갈 길을 안내해 줄 묵직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짓고 파헤치는 손을 거둘 때, 자연은 비로소 가장 온전한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인간의 손으로 건축하는 것은 자연이 될 수 없다. 자연은 건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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