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현지시간), 스위스 블라텐 산사태 1주년 추모식 도중 촬영된 주택 잔해. 2025년 5월 28일 스위스 발레주 로에첸탈의 블라텐에서 빙하가 붕괴되면서 대피가 완료된 마을의 90%에 해당하는 130채의 주택과 교회를 포함한 지역이 암석, 얼음, 잔해 아래 묻혔다.
EPA 연합뉴스
2025년 5월 28일 스위스 남부 산간마을 블라텐, 금방이라도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달려 나올듯한 그림 같은 산촌을 향해 엄청난 양의 바위와 토사, 얼음덩어리가 밀려옵니다. 빙하 일부가 무너져 내리면서 약 2000만 톤의 암석과 얼음이 마을을 향해 쏟아져 내려옵니다. 현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불과 2분 만에 마을의 90%를 뒤덮었습니다. 800년 역사의 마을이 2분 만에 사라진 셈입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스위스 당국의 조기 경보 시스템 덕분에 주민 300여 명이 사고 발생 9일 전 모두 대피해있던 상태였습니다. 산악 국가인 스위스는 기후변화로 고산지대 빙하 붕괴와 산사태 발생 위험이 커지자, 빙하의 변형을 지속적으로 감시해 왔습니다. 이 사안을 취재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부자나라들로 둘러싸인 알프스는 그렇다치고, 히말라야는? 안데스는?
세계 곳곳에서 극한 추위가 보고되던 지난 1월 12일, 인도 언론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히말라야산맥 중앙부인 '가르왈 히말라야'의 해발 3650미터 정상 봉우리(퉁나트 고산 봉우리)의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사진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눈이 없었습니다. 이곳에 눈이 쌓이지 않은 모습은 관측이 시작된 1980년대 중반 이후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히말라야의 눈 가뭄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녔습니다. 겨울 강설을 불러오던 서풍 유입 기압골의 변화와 지구 온난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예전부터 눈이 많이 내리던 지역은 눈이 늦게 오고, 눈 대신 비가 내리며 더 빨리 녹고 강설량이 불규칙해지는 등 '패턴의 변화'가 확연히 관찰되고 있었습니다.
현지인들은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라다크에 거주하는 영화 제작자 이프티카르 후세인이 찍은 사진을 보면 한 겨울에 2미터 눈이 쌓이는 인도의 시베리아 '마타얀 드라스'의 풍경이 극적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2023년 1월 16일 평상시처럼 눈으로 덮여있는 '인도의 시베리아'는 1년 뒤인 2024년 1월 11일에는 눈이 완전히 사라진 채 버스가 오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눈과 얼음이 사라질수록 온난화 속도는 급격히 빨라집니다. 눈과 얼음이 반사하던 햇빛은 줄어들고 더 많은 태양에너지가 지표에 흡수되는 '알베도 피드백'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산 정상 부근 부서진 바위들을 잡아주던 빙하가 녹으며 대규모 산사태와 빙하호에 의한 홍수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2021년 2월 인도 차몰리에서는 약 2700만㎥의 암석과 빙하 얼음이 붕괴했고, 20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됐습니다. 2024년 네팔 에베레스트 지역 타메 마을에서도 연쇄적인 빙하호 붕괴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마을이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지표면 온도가 2년 내 가장 뜨겁다"

▲27일(현지시간) 돌발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한 후 네팔과 중국 티베트 자치구 국경 지역에 형성된 댐 호수를 보여주는 위성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남극조사국의 빙하학자인 해미시 프리처드 박사 연구팀은 붕괴 지점에서 10km 떨어진 곳에 센서를 설치했다. 그는 높은 온도가 눈과 얼음의 상태를 약화시키고, 균열에 물이 스며들면서 빙하와 암석의 결합을 약화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가디언>, 2026. 8. 27.)
네팔에서 빙하가 붕괴하기 이틀 전, 히말라야 붕괴 지점 부근에 센서를 설치해 지표면 온도를 측정하고 있던 영국의 빙하학자는 측정 결과를 보고 놀랐습니다. 히말라야의 지표면 온도가 최근 2년간 가장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틀 뒤 대재앙이 시작됐습니다. 과학자들은 처음에는 규모 4.4 수준의 지진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러나 곧 위성사진 판독과 지진파 분석 결과 빙하 붕괴에 의한 산사태 가설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장주기 지진파 분석 결과 7000미터 높이의 랑탕 리룽 산 북쪽 경사면에 거대한 얼음벽이 무너져 내린 것이 산사태의 원인으로 추정되며 그 충격은 규모 5.2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빙하 붕괴에 따른 산사태가 지진 규모로 환산하면 약 5.2 규모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방출한 셈입니다.미국 컬럼비아대 지구물리학자인 고란 엑스트롬 교수는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규모의 지구물리학적 사건입니다."
남의 일이 아니다

▲27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지역 데비가트 마을에서 갑작스러운 홍수가 발생한 후 생존자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이송된 군 기지 밖에 피해자의 가족이 서 있다.
EPA 연합뉴스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빙하호 중 위험 단계에 이른 호수가 37개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이 근방에 사람이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대응에 대한 재원도 천문학적 수준에 달할 것입니다. 그동안 히말라야 인근 국가들은 지속적으로 '손실과 보상'을 주장해 왔습니다. 탄소배출에 거의 기여하지 않은 가난한 나라들이 탄소배출로 인한 피해를 온전히 감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허튼 말이 아닙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제6차 종합 보고서에서 지구 온난화에 의한 빙권 지역 위험을 경고하며 '빙하 후퇴와 눈 손실로 인한 홍수, 산사태, 담수 부족은 전 세계 산악 지역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명시해 왔습니다.
이를 근거로 네팔 등 히말라야 인접국들은 지속적으로 탄소 배출국들의 보상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논쟁'의 영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최근 국제사회가 '손실과 피해' 기금을 마련하는 단계까지 나아갔지만, 실제 필요한 규모와 재원 조달 방식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남의 일' 혹은 '가난한 나라들의 안타까운 일'이라는 제3자적 시각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참사는 그런 시각에 교정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실종자 중 500명 이상이 외국 관광객이나 순례자들입니다.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인들도 있습니다. 누가 이번 참사를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있겠습니까.
참사 며칠 전 우리나라 수도권의 온실가스 상황 데이터를 짧게 언급하겠습니다. 지난 18일 퇴근 시간대 경기도 평택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480.3 ppm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산업화 이전인 200여 년 전의 280ppm에 비해 무려 71% 증가한 수치였습니다.
미세먼지는 한 번의 비로 씻겨 나갈 수 있지만 이산화탄소는 일부가 100년에서 1000년까지 대기층을 떠도는 장수명 온실가스입니다. 산업 국가인 우리나라가 이번 참사를 네팔과 인접한 나라 간의 일, 혹은 시혜나 구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맞는 것일까.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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