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김구 탄생 150주년 유네스코 기념해'를 맞아 미디어 게이트가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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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9일은 경술국치 116년인 동시에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조선이 일본의 강압에 못 이겨 굴욕적인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병자수호조약)를 체결한 1876년의 여름철에 그가 태어났다.
문헌에 기초한 기상청 과거 관측 자료에 따르면, 그날 한양에서는 구름이 매우 많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20도 안팎의 기온이 나타났다. 이것을 보면 김구의 출생지인 황해도 해주 역시 그렇게 무덥지는 않았겠지만, 그날 그곳에서 일어난 그의 출생은 유난히 험난했다.
할머니 기일인 음력 7월 11일에 황해도 해주 백운방 텃골에서 일어난 그의 출생은 장차 그가 걸어갈 길만큼이나 위태위태했다. <백범일지>는 "나는 병자년 7월 11일 자시에 텃골의 속칭 웅덩이 큰댁이라 불리는 조부와 백부가 사시는 집에서 태어났다"라고 한 뒤 이런 일화를 전한다.
"내 일생이 기구할 전조였는지, 유례가 없는 난산이었다고 한다. 진통이 시작된 지 거의 일주일이 지나면서 어머니의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다. 의술 쪽으로, 미신 쪽으로 온갖 시도를 다 해봤지만 효험이 없었다. 황망하고 두려운 가운데, 어른들이 아버지에게 소길마를 머리에 쓰고 지붕에 올라가 소 울음소리를 내라고 했다. 아버지는 따르지 않았지만, 할아버지 형제분들이 엄히 명하자 그렇게 하고 난 후에야 내가 비로소 나왔다고 한다."
'문화의 힘' 강조한 김구
그처럼 어려운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 뒤 한국 해방과 분단 반대를 위해 일생을 바친 김구의 탄생 150주년을 유네스코가 특별히 기념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지난해 10월 31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개최된 제43회 총회 때 2026년을 '김구의 해'(유네스코 기념해)로 지정했다.
유네스코는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인 2012년을 정약용의 해로,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인 2021년을 김대건의 해로 지정했다. 김구의 해 지정은 한국인에 관한 것으로는 세 번째다.
<유네스코문서 디지털도서관>에 실린 '2026~2027년에 유네스코가 참여할 수 있는 기념일 행사에 관한 회원국들의 제안'에 따르면, 이 2개년 동안 유네스코가 김구 탄생 150주년과 함께 기념하는 것은 아르메니아 언어학자 흐라치아 아자리안 탄생 150주년과 튀르키예 시인 바키 탄생 500주년을 포함해 총 66건이다. 2026년은 김구의 해이기도 하면서, 아자리안의 해이기도 하고 바키의 해 등등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주재 한국대표부는 지난해 11월 3일 홈페이지에 쓴 글에서 "유네스코 관련 기념일은 회원국들이 평화 및 안보에 대한 기여에 더해 교육·과학·문화를 통한 국제협력 증진을 비롯한 유네스코의 목적과 가치에 부합한다고 판단할 때, 이 나라들에 의해 신청된 역사적 사건과 뛰어난 개인들을 위해 지정된다"라며 김구의 해가 지정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결정문에서 유네스코 총회는 김구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장을 지내고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적 인물이었음을 지적했다. 또한 1945년 해방 이후에 그가 문화를 통한 국가 발전을 주창하고 그의 글인 '나의 소원'에서 인류의 행복을 조성하고 세계 평화를 증진시키는 일에서 문화가 갖는 힘을 강조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김구가 문화를 강조한 것은 약육강식의 생존투쟁이 우리 민족에게 끼친 해악을 그 자신이 절절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방식으로는 인류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절감했다. 그래서 해방 이후의 한국은 문화의 힘을 키우고 그것으로써 세계 각국과 협력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백범일지>에 실린 '나의 소원'에서 그는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살고 인류 전체가 의 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라고 한 뒤 자신의 정치이념을 설명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무력은 우리의 생활을 충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의열투쟁과 문화국가 추구는 모순되지 않는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경교장에서 열린 김구 탄생 150주년 기념 '백범 김구, 세계의 가치가 되다' 특별전에서 관계자가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이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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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구의 독립운동은 외교적 방식이나 한국광복군 운용을 통해서도 전개됐지만, 그보다는 의열투쟁 방식으로 훨씬 강한 인상을 남겼다. 독립운동권 내에서 비주류였던 김구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결정적 계기는 1932년 1월과 4월에 그가 주도한 이봉창 의거와 윤봉길 의거다. 약산 김원봉의 의열투쟁이 훨씬 더 조직적이었지만, 국제적으로 더 강렬한 인상을 준 쪽은 김구의 의열투쟁이다.
김구가 문화국가를 꿈꾸고 이를 추구한 것에 비하면 그가 한인애국단을 통해 의열투쟁을 벌인 것이 역사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도 유네스코는 문화국가를 추구한 독립운동가라는 이유로 2026년을 김구의 해로 지정했다. 이는 김구가 의열투쟁을 수행한 것과 그를 문화국가 추구자로 평하는 것이 모순되지 않음을 유네스코가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와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등의 참여하에 지난 5월 28일(미국 시각)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전시회의 안내문에는 '김구의 저항은 단순한 독립운동을 넘어서는 것', '그것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제적 연대', '제국주의 폭력에 맞서 싸우는 일' 등의 문구가 있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는 김구의 독립운동이 궁극적으로 문화국가 건설을 위한 반제국주의 투쟁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김구의 해를 지정한 것은 그 같은 설명 방식을 유네스코가 거부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유네스코가 무력투쟁을 무조건 거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태도에서도 확인된다. 유네스코는 프랑스제국주의를 상대로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한 베트남 호찌민의 탄생 100주년인 1990년을 기념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또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인 호세 마르티의 탄생 150주년인 2003년을 기념했다.
김구의 해 지정은 한국의 무장독립투쟁이 제국주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싸움이었고 이것이 인류 문화 발전에도 기여했다는 점에 대한 일종의 국제적 공인이 된다. 한국 독립운동이 자민족 중심주의에 토대를 둔 게 아님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빙이 되기도 한다.
유네스코가 김구를 높이 평한 것은 K-독립운동이 한국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일본이 미워서 벌인 것만도 아닌 인류 공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음을 입증하는 데에 힘을 실어준다. 또, 일본의 군사대국화 노선에 대한 세계 대중의 공동 견제를 확산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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