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 뿐이 아니다. 라온이도 종종 개어놓은 빨래 위에 올라가 잠을 청하곤 한다.
송주연
상담심리사로 일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에게 엄격한 분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라'는 메시지는 넘쳐 나지만, 사람들은 이를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도록 노력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리고는 사랑할 만한 내가 되기 위해 자신을 몰아세운다.
고양이 집사인 한 내담자 역시 그랬다. 이 내담자는 모든 일에 완벽하기를 바랐다. 일할 때는 물론, 쉴 때조차 '생산적이고 완벽하게 잘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래서 주말에 쉬고 나서도, 휴가를 보낸 후에도 늘 피곤하기만 했다. 회사에서 실수라도 한 날에는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자괴감에 밤잠을 설치곤 했다.
그런데 이 내담자가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는 매우 달랐다. 고양이가 한밤중에 우다다를 해서 잠을 설치게 해도, 물이나 사료를 엎어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놔도 귀엽기만 하다고 했다. 회사에서 일거리를 가져와 책상 위에 서류 더미를 쌓아둔 적이 있었는데 그걸 재미로 한 장씩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 귀여워 영상을 찍어 두었다고도 했다. 내담자가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에는 바로 우리가 자기 자신과 관계 맺을 때 반드시 필요한 '자기 자비'의 요소들이 모두 들어있었다.
심리학에서 '자기 자비'는 실패나 고통을 마주했을 때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이해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에 따르면 자기 자비는 '자기 친절', '보편성에 대한 인지' 그리고 '마음챙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자기 친절이란 스스로를 너그럽게 바라보는 것, 보편성에 대한 인지는 고통과 실패는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일임을 인지하는 것, 마음챙김은 지금 이 순간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 내담자는 고양이의 실수나 말썽을 '친절하게' 바라봤고, "어떻게 고양이 실수에는 너그럽냐"는 질문에 "고양이들은 원래 그런 거 아닐까요?"라고 답했다. 보편성에 대한 인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양이의 행동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했다.
나는 자기 자비의 요소들을 설명했고, 내담자는 고양이를 대하는 자신의 다른 모습에 놀라워했다. 그 후 우리는 내담자가 자신을 탓할 때마다 '만일 고양이가 그랬다면?'이라고 상상해보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고양이에게 하고 싶은 그 행동을 나에게 실천함으로써 조금씩 자기 자신에게도 관대해질 수 있었다.
타인과의 관계 : 정신화
더욱 놀라운 건 반려동물이 우리에게 '정신화'를 일깨워주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자비'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한다면 '정신화'는 타인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심리적 요소다.
영국의 심리학자 피터 포나기가 개념화한 '정신화'는 쉽게 말하면 '내 마음에 나름의 이유가 있듯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저마다의 이유가 있음'을 인식하는 태도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의 마음을 근거로 타인을 판단하고 평가하기보다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전제하고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려동물은 인간의 언어로 말을 하지 않고, 몸짓으로 보내는 신호도 사람의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반려동물을 사람의 기준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반려동물을 대할 때는 '나는 너를 잘 모른다'는 마음이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반려동물이 어떤 행동을 하면, '도대체 왜 그럴까?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라며 그 행동을 판단하기보다는 이해해보려 애쓴다. '정신화'는 바로 그 태도다.
오래 내 마음에 남은 '빨래 사건'도 '정신화'의 유무에 따른 결과라 볼 수 있다. 아이에게는 '이러해야 한다'는 나의 기준을 적용했기에 버럭 화가 났지만, 은이에게는 '왜 저런 행동을 하지?'라며 은이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앞섰기에 빨래를 망쳐 놓아도 귀엽기만 했던 것이다.
반려동물이 일깨워주는 '정신화'는 오랜 상처를 치유해주기도 한다. 몇 달 전 둘째 강아지를 입양한 나의 한 이웃은, 두 강아지를 키우면서 자신의 부모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이웃은 첫째 강아지와 둘째 강아지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해주기 위해 애썼다. 둘이 똑같이 안아주고, 산책에 들이는 시간도 비슷하게 유지했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하려고 마음을 많이 썼다.
하지만, 첫째 강아지 쫑이는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뾰로통해 있는 상태다. 어린 둘째 강아지에게 곁을 내어 주지 않고, 둘째를 안아주기라도 하면 멀리서 뛰어와서 자신도 품에 쏙 안겨버린다. 둘째 강아지가 자신의 장난감을 물기라도 하면 으르렁거리기 일쑤다.
▲반려동물은 가족과의 관계를 '정신화'해서 바라보도록 돕는다.
픽사베이
이웃은 이런 첫째 강아지를 보면서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고 했다. 4살 터울의 동생이 있는 이 이웃은 부모님이 동생을 더 예뻐한다고 여기며 속상해 했고, 청소년기에도 음악에 재능이 있는 동생을 지원해주는 부모의 모습에 소외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 오랜 감정은 성인이 된 지금도 '원망스러운' 느낌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두 강아지를 양육하면서 이 이웃은 이렇게 말했다.
"난 정말 둘 다 똑같이 사랑하고, 공평하게 대해주려고 애쓰는데 강아지들은 다르게 느끼는 것 같아. 부모님도 그러지 않았을까. 나와 동생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엔 변함이 없는데, 내가 다르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어.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
나의 기준으로 부모의 마음을 판단하지 않고 '그만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바라보는 정신화된 태도였다. 아마도 이 이웃의 부모에 대한 마음은 한결 평온해졌을 것이다.
이처럼 반려동물과의 관계가 치유의 힘을 갖는 것은 단지 '조건 없는 사랑'을 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반려동물과의 상호작용은 건강한 관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태도- 자기 자비와 정신화-를 자연스럽게 실천하도록 만든다.
이론적으로 알고 연습하려 해도, 오랜 상담을 통해 행동을 바꿔보려 해도 쉽게 체화하기 힘든 이 두 가지 태도를 반려인이라면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그래서 상담자로서 나는 반려인들에게 자신있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반려동물을 키우신다고요? 그리고 지금 관계가 어렵다고요? 그렇다면 반려동물을 대하는 내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보세요. 아마도 당신은 이미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 스스로에게 자비롭고,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실천하고 있을 겁니다. 반려동물을 대하는 그 태도로 자신과 사람들을 대해 보세요. 관계가 훨씬 편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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