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29 15:57최종 업데이트 26.08.2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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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르누아르 <뱃놀이 일행의 점심> 1881년
오귀스트 르누아르 <뱃놀이 일행의 점심> 1881년퍼블릭 도메인

쾌락과 고통은 견해의 차이를 막론하고 늘 한 쌍으로 등장한다. 쾌락을 지지하는 관점에서는 쾌락의 추구와 고통의 회피를 대비한다. 쾌락은 선이고 고통은 악이라는 점에서 둘은 상반된 관계다. 이와 달리 쾌락을 비판하는 관점에서는, 쾌락이 고통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둘은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과정이다. 쾌락을 고통으로 떨어지는 입구 정도로 취급한다.

쾌락과 고통은 대립만 하는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뱃놀이 일행의 점심>에는 오늘의 즐거움과 내일을 향한 기대가 가득하다. 파리의 센강을 따라 뱃놀이를 하다가 레스토랑 발코니에서 오찬을 겸해 휴식을 즐긴다. 르누아르의 친구들로 알려져 있는데, 이삼십 대로 보이는 십여 명의 남녀가 어우러져 파티 분위기를 풍긴다.


일상의 한순간을 포착하고, 빛의 흐름을 묘사하는 인상주의의 특징이 잘 살아난다. 발코니를 덮은 넓은 가림막 아래에서 빛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전체적으로는 햇빛이 왼쪽 하늘에서 아래로 쏟아진다. 사람 키보다 약간 위에 설치한 가림막이 직사광선을 막아주기에 사람들의 몸은 전체적으로 그늘이 진 상태다.

하지만 탁자에 놓인 접시나 유리잔, 하얀 식탁보에서 반사된 빛이 아래로부터 각 인물로 향한다. 이 효과로 앞의 여인들을 보면, 일반적인 명암 묘사에서는 가장 어두워야 할 뺨이나 턱의 아랫부분이 가장 환하다. 광원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기라도 하듯 신비로운 빛의 흐름을 연출한다. 투명한 병과 잔으로 빛이 투과하거나 반사하면서 영롱한 느낌도 자아낸다.

감상자가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생각이 들 만큼 일상을 생생하게 담은 점도 인상주의의 특징을 보여준다. 근대 미술은 신화·역사의 교훈을 구현하거나 비탄·절망·숭고의 감정을 담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인상주의는 카페나 술집에서의 유흥, 무도회장의 발랄한 춤, 센강의 뱃놀이, 경마장이나 야외에서의 여가 등 행복한 일상을 생동감 넘치는 빛과 색채로 표현했다.

특히 르누아르는 파티와 춤을 즐기는 사람들의 유쾌한 표정을 자주 그려서 '행복의 화가'로 불렸다. 이는 <뱃놀이 일행의 점심>에서 사람들이 뿜어내는 공통의 분위기이기도 하다. 단순히 뱃놀이라든가 맛있는 음식과 와인에서 오는 만족에 머물지 않는다. 주된 관심과 기대가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대화가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저마다 매력을 드러내는 데 열중하고 있다. 여자들은 화려한 모자와 옷으로 한껏 꾸미고, 살짝 몸을 틀어 유혹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남자들은 우람한 신체를 뽐내거나 깔끔한 정장 차림의 매력을 발산한다. 여자들에게 바짝 다가서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사랑의 달콤함을 향한 설렘이 묻어난다.

쾌락과 고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사랑은 그렇게 봄에 싹이 돋아나듯이, 마음속에서 설렘이 샘솟으며 시작된다. 말 그대로 자기 인생에 드디어 봄날이 찾아온 기분에 휩싸인다. 일단 사랑의 쾌락이 찾아오면 충만한 행복감이 계속 이어지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두 번 이상 깊은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생각에 고개를 가로젓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사랑과 고통>은 달콤했던 사랑이 고통스러운 결말을 맞이하는 순간을 담았다. 이제 그에게 여인은 쾌락과 행복이 아니라 고통을 안겨주는 사람이 되었다. 마치 피를 흘리듯 붉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목에 입을 대고 있는 모습 때문에 '뱀파이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작품이다.

뭉크는 20년이 넘도록 같은 주제로 비슷한 장면을 묘사했다. 유화·크레용·목판화·수채화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그때마다 색감이 달라졌을 뿐 공포가 묻어나는 분위기는 비슷하다. 그만큼 사랑에 고통이 따른다는 점이 뭉크의 삶과 생각에 깊이 각인된 듯하다. 공포에 가깝게 표현한 데는 뭉크 자신의 쓰라린 경험이 녹아 있다.

에드바르 뭉크 <사랑과 고통> 1895~1918년
에드바르 뭉크 <사랑과 고통> 1895~1918년퍼블릭 도메인

세 명의 여인이 뭉크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십 대 초반에 사촌 형수인 연상의 밀리를 만나 6년간 관계를 맺었다. 남몰래 사랑을 나누었지만, 그녀는 뭉크를 진지한 상대로 여기지 않았던 듯하다. 남편과 이혼한 후에 다른 남자와 곧바로 재혼했으니 말이다. 뭉크로서는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을 테고, 첫사랑이었던 만큼 큰 상처로 남았으리라.

다음 여인은 삼십 대에 들어서 만난 유엘이었다. 예술가 모임에서 만나 깊은 관계를 시작했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그녀는 여러 예술가와 교제했다. 유엘이 뭉크의 친구와 결혼함으로써, 뭉크는 다시 한번 씻을 수 없는 배신감을 겪어야 했다. 이후 그녀는 남편의 친구였던 청년에게 살해당했다. 사건 당시에도 4명의 남자와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뭉크에게 깊은 혐오감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만난 여인은 라르센이었다. 그녀는 결혼에 적극적이었다. 뭉크는 그녀의 집착이 자신을 구속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결혼에 소극적이었다. 이로 인해 둘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는데, 다툼 과정에서 권총이 발사되어 뭉크는 왼손 중지에 관통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끝이 났고, 그녀는 서둘러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몇 차례 극심한 갈등과 실연의 아픔을 겪은 이후 뭉크는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지 않았다. 죽는 날까지 평생을 독신 생활로 보냈다. 여러 작품으로 남긴 <사랑과 고통>에는 이 경험이 짙게 담겼다. 사랑을 시작할 때의 설렘과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극심한 고통을 반복하면서 그에게 사랑은 행복과 공포가 공존하는 과정으로 다가왔다.

뭉크만의 경험은 아니다. 우리도 쾌락과 고통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점을 체험과 직관으로 안다. 논리와 문장으로는 쾌락 추구와 고통 회피를 대립시키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좁히는 게 편리하지만,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순차적으로 이어지거나 맞닿아 있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쾌락과 고통의 변증법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쾌락과 고통>에서 인간에게 본질상 이 두 가지가 하나로 엮여 있음을 보여준다. 머리와 팔은 각각 떨어져 활동하는데, 몸은 등에서 다리까지 하나로 붙어 있다. 앞쪽의 한 사람은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고, 뒤에 붙어 있는 다른 한 사람은 여자다.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에로스를 논하면서 든 사례에서 착상을 얻은 듯하다. 본래 인간은 몸이 하나로 붙어 있었고, 머리·팔·다리가 별도로 있는 모양이었다. 워낙 힘이 강해 신을 공격하자, 제우스는 "인간들을 반으로 나누면 더 약해질 것"이라며 쪼개버렸다. 둘의 성기가 뒤로 연결되어 있었기에 나뉘고 난 후에 성애를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을 불쌍히 여긴 제우스가 생식기를 앞쪽으로 옮겨주었네. 그전까지 등에 성기가 있었고 상대의 몸을 통해 자식을 낳는 것이 아니라 매미처럼 땅속에서 수정해서 자식을 낳았지. 제우스는 성기를 앞으로 옮겨 놓아서 여자의 몸으로 들어가 자식을 낳게 했지. (…) 당시에 자웅 양성이라 불리던 결합한 성에서 잘려 나와 남자가 된 사람은 여자에 끌리게 되는데, 호색한은 대부분 이 부류에서 나온다네."

남자와 여자가 사랑으로 결합해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는 생각이 생겨난 데는 이러한 사정이 있었다. 본래 하나의 몸이었기에 다시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욕망이 자연스럽게 우러났다는 것이다. 에로스는 남녀가 하나로 돌아가 완전한 상태가 되려는 욕망이다.

그런데 다빈치는 짓궂게도 몸이 붙어 있는 상태인데 남녀의 성기를 각자의 앞쪽에 묘사해 놓았다. 이 모습대로라면 두 사람은 아무리 사랑해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애의 쾌락이 불가능하다.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는 다가설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쾌락 욕구가 간절할수록 이루지 못하는 고통도 커진다.

다빈치 <쾌락과 고통> 15세기 / 베르니니 <성 테레사의 황홀경> 1652년
다빈치 <쾌락과 고통> 15세기 / 베르니니 <성 테레사의 황홀경> 1652년퍼블릭 도메인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조각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1598~1680)의 <성 테레사의 황홀경>도 비록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환희와 고통이 동시에 실현된 순간을 담았다. 테레사 수녀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신비 체험을 "웃고 있는 아름다운 천사가 금으로 된 긴 창을 들고 내 심장을 여러 번 찔렀으며, 창을 뺄 때 엄청난 고통과 함께 신에 대한 말할 수 없는 희열과 사랑을 느꼈다"라고 기록했다.

천사가 긴 창을 들고 가슴을 향해 힘껏 찌르는 중이다. 그런데 그녀는 더없이 황홀한 표정이다. 신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 기쁨이긴 하지만, 사랑의 환희와 살을 찢는 고통이 공존한다. 이 조각은 성적인 느낌이 다분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반쯤 열린 입과 한껏 뒤로 젖혀진 몸이 성애의 절정을 담고 있는, 가장 저속하고 불쾌한 작품이라는 비난이다.

예술가들의 기발한 상상만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쾌락과 고통의 유기적인 관계를 철학적으로 규명하려는 문제의식도 있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더 영리한 손을 가져다, 더 깊은 행복 더 깊은 불행에 손을 뻗쳐라. (…) 고통을 말한다. '가 버려라! 고통이여!' 그러나 모든 고뇌하는 자들은 살기를 바란다. 성숙하고 쾌락과 동경을 갖기 위하여. 더 멀고 더 높으며 더 밝은 것을 동경하기 위하여. (…) 고통은 동시에 쾌락이고, 저주는 동시에 축복이고, 밤은 동시에 태양이다. (…) 그대들은 고통에 말하라. '가 버려라, 그러나 되돌아오라!' 모든 쾌락은 영원을 원하기 때문이다!"

니체에 의하면 먼저 육욕을 비롯하여 쾌락을 향한 욕구를 긍정하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흔히 사람들에 의해 쾌락은 "지금까지 가장 저주받아 왔고 가장 나쁜 평판을, 그것도 왜곡된 평판"을 받아왔지만, 니체는 이를 "인간적으로 좋은 것" 중의 하나로 간주한다. 세상 사람들의 통념으로는 쾌락을 획득하기 위해 고통이 사라져 버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고통은 곧 쾌락이기에 고통이 사라지는 순간 쾌락도 사라진다. 쾌락은 때로는 모험에 따른 위험을 동반하고, 우연에서 오는 불확실한 길을 헤매야 도달한다. 만약 더 높고 밝은 쾌락을 누리려 한다면, 더 깊은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니체는 "모험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죽음을 걸고 주사위 놀이를 하는 것, 그것도 가장 큰 자의 헌신"이라고 한다.

대신 '더 영리한 손'이 필요하다. 상반되어 보이는 둘 사이에서 유기적인 끈을 찾아내는 섬세한 인식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쾌락주의 선구자인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더는 쾌락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라고 한다. 고통과 쾌락은 서로에게 전제다.

쾌락은 선택한다고 쾌락이 찾아오는 게 아니고, 고통을 피한다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양자를 비교함으로써 이득이 되는 것과 해가 되는 것을 고려하여, 이런 문제들에 판단을 내려야 한다." 쾌락에서 고통으로 나아가기도 하지만, 반대로 고통에서 시작되어 쾌락을 향하기도 한다. 혹은 쾌락과 고통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 섞여 있는 상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행복을 실현하려면 니체가 지적한 영리함처럼 깊은 지혜와 사려가 필요하다.

쾌락과 고통의 뒤섞임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현상이다. 아주 쉬운 사례로 음식에서 오는 쾌락을 떠올려보자. 고추나 겨자와 같은 매운 재료는 사실 감각에 통증을 유발한다. 하지만 감각의 고통을 통해 전체로서 즐거움과 만족이 찾아온다면 피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찾는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대체로 경험했겠지만, 사랑의 과정은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나타난다. 서로 다른 성격과 습관을 지닌 사람들이 만나는 일이니, 갈등도 생기고 부정적인 감정이 나타나기도 한다. 만약 이러한 고통 모두를 거부한다면 사랑은 아예 통째로 거부해야 할 대상이 될 것이다.

사랑하면서 겪는 격한 갈등, 심지어 쓰라린 이별조차도 사랑의 한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다른 전망이 열린다. 상대의 변심과 헤어짐이 뭉크처럼 평생을 씻을 수 없는 상처나 공포·혐오로 남는 게 아니라, 더 성숙한 사랑을 위한 토양이 될 수도 있다. 집착이라는 늪에서 발을 뺄 수만 있다면 질투가 새로운 열정을 향한 디딤돌 역할을 한다. 세상의 터부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권태의 직감은 형식적 관계를 넘어서는 자극의 출발점이 된다.

행복을 향한 욕망은 본래 변증법적인 발상과 관계 속에서 실현되는 게 아닐까? 현상적으로 대립하는 쾌락과 고통이 상호작용하고 서로 침투함으로써 새로운 즐거움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 말이다. 쾌락은 오직 즐거움·웃음에 관련된 것들과 관계를 맺고, 고통은 오직 슬픔·두려움·혐오에 관련된 것들과 어울린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역동적인 관계로 받아들일 때 살아 있는 행복이 우리 곁으로 찾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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