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26 16:29ㅣ최종 업데이트 26.08.2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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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권창준 차관이 1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6.8.12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권창준 차관이 1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6.8.12연합뉴스

메가 프로젝트 추진과 관련하여 노동권에 어디까지 예외를 두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한국도 AI와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산업계의 절박함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국가경쟁력을 위해 노동권을 어디까지 유보할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선성장 후분배를 모토로 했던 추격형 경제 시대가 지난 지도 한참이기 때문이다.


최근 논쟁에서는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이나 파견 허용 직무 확대보다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상한제의 예외를 인정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영계는 중국의 이른바 '9·9·6' 근무와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기술개발 경쟁을 거론하면서 R&D 인력에게 보다 큰 노동시간 유연성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와 고용노동부는 선택근로제 등 이미 여러 유연근로 제도가 존재하는데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도 않은 채 규제 완화만 요구한다고 반박한다.

어느 쪽 주장이 더 타당한가? 그리고 우리가 정말 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특별연장근로, 예외가 원칙을 잠식해선 안 돼

우선 R&D 인력이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는 현실적 필요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와 AI 개발은 제품 출시 타이밍, 장비 활용, 팀 협업 등에 따라 노동투입이 특정 시기에 집중될 수 있다. 노동시간 제도가 이러한 업무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기술경쟁력을 제약할 수도 있다.

문제는 현행 제도가 이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경직적인지, 그리고 규제를 더 완화하는 것만이 해법인지 하는 점이다. 현행법에는 선택근로제, 재량근로제, 특별연장근로 등 R&D 부문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이미 상당수 존재한다.

특별연장근로는 원래 자연재해나 재난 등 특별한 사정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였지만, 일본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수출규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긴급한 경영상 사유까지 허용 범위가 확대되었다.

반도체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의 결과 주 52시간 상한제의 큰 틀은 유지하되, 법 제정에 앞서 행정적 절차를 다소 완화해 주었다. 그럼에도 경영계는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하는 절차가 너무 까다롭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그러나, 예외적 제도인 만큼 일정한 행정적 심사절차를 두는 것은 불가피하다. 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유만으로 일반적인 노동시간 규제를 다시 완화한다면 예외가 원칙을 잠식할 우려가 있다.

R&D 인력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선택적 근로시간제다. 일정한 정산기간 안에서 업무의 필요와 노동자의 선택에 따라 일별 노동시간을 비교적 유연하게 배분할 수 있다. 연구개발 업무에 대해서는 정산기간도 이미 3개월까지 확대되었다. 경영계는 이를 더 늘려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정산기간이 길어질수록 장시간 노동이 집중되는 일수가 늘어나고 건강을 해칠 가능성도 커진다. 따라서 추가적인 완화를 논의하려면 단순히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집중근무가 필요한 경우와 기간, 최대 노동시간, 회복기간, 건강권 보호를 하나의 패키지로 논의해야 한다.

높은 노동강도와 자율성·보상 패키지 이뤄야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손을 잡고 있다. 2026.6.2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손을 잡고 있다. 2026.6.2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도 같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고소득 전문직은 업무수행 방식과 노동시간에서 자율성이 크므로 노동시간 규제의 일부를 면제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정 소득을 넘는다는 사실만으로 노동시간 규제를 면제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실제 업무수행과 시간배분에서 상당한 자율성이 있는지, 규제 면제에 상응하는 보상체계가 있는지, 충분한 휴식과 건강권이 보장되는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

특히 메가특구에는 대기업뿐 아니라 충분한 성과급이나 주식보상을 제공하기 어려운 중소 규모의 소재·부품·장비 기업들도 들어오게 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사례를 단순하게 끌어오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미국 빅테크 엔지니어들이 프로젝트에 따라 장시간 집중적으로 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노동시장에는 높은 임금과 스톡옵션·RSU 같은 보상, 높은 직무 자율성, 활발한 이직 가능성이 함께 존재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오래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높은 노동강도와 높은 자율성·보상이 하나의 패키지를 이룬다는 점이다. 미국의 장시간 노동만 수입하면서 그에 결합된 보상과 자율성을 외면하는 것은 국가 간 비교에서 사회경제적 맥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놓치는 것이다.

중국은 공대에 미친 나라이고 한국은 의대에 미친 나라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도 한때 기술입국을 내세워 엔지니어를 우대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기술인력의 고용안정성과 상대적 보상은 약화되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서도 엔지니어의 상대적 임금이 장기간 하락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경쟁력을 이유로 R&D 인력에게 더 많은 노동시간을 요구하는 것이 타당한가? 경쟁력의 핵심은 엔지니어를 더 오랜 시간 일하게 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인재가 이 분야에 들어오고, 성장하고,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한한 노동유연화가 아니다

1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반도체 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공동행동 관계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6.8.11
▲1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반도체 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공동행동 관계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6.8.11연합뉴스

사실 한국의 노동시간 법제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복잡하고 규제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랫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장시간 노동을 경험한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실노동시간이 충분히 단축되고 장시간 노동의 관행이 약화된다면 유연화에 대한 논의를 보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경우에도 핵심 질문은 남는다.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한다면 그 시간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시간주권(time sovereignty)'이다. 유연성에는 서로 다른 두 얼굴이 있다. 사용자가 필요할 때 노동자의 시간을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업주도형 유연성이 있는 반면, 노동자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일할지에 더 큰 결정권을 갖는 노동자주도형 유연성도 있다.

현실의 R&D 업무에서는 어느 한쪽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프로젝트 일정과 팀 협업이라는 기업의 필요와 노동자의 건강권·생활권을 조화시키는 '교섭된 유연성(negotiated flexibility)'이 필요하다. 독일은 이와 관련된 가장 좋은 예일 것이다.

교섭된 유연성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노동자의 의사가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대표성도 중요하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단체교섭이나 노사협의회를 통해 규칙을 만들 수 있다. 노조가 없는 기업이라면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의 대표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고, 노동시간 제도를 둘러싼 협의가 형식에 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노동시간 유연화의 핵심을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노사가 함께 규칙을 설계하는 문제로 바꿔 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R&D 노동시간의 유연화가 정말 필요하다면 노사가 집중근무의 조건과 한도, 회복시간, 보상, 노동자의 선택권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노사가 새로운 노동시간 규칙을 만들고 실근로시간을 줄이면서도 생산성을 높인 사례는 이미 적지 않다.

노사발전재단의 일터혁신 컨설팅 사례를 참조하시라.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아 '오징어잡이 배'에 비유되던 IT·게임업계에서도 2010년대 후반 이후 노조 결성, 포괄임금 관행 개선, 기업의 인사관리 변화가 함께 진행되면서 과거의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은 상당 부분 완화되었다. 그렇다고 IT·게임산업이 몰락하지 않았다. 기업과 노동자는 새로운 규칙에 적응해 왔을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연구개발 인력에게 무한한 노동시간 유연성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일할 수 있으면서도 일과 생활의 양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노사 협력적 유연근로시간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시간 활용권뿐 아니라 노동자의 시간주권, 충분한 휴식과 보상, 건강권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메가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도 결국 우수한 엔지니어를 얼마나 오랜 시간 집중적으로 일하게 하느냐보다, 그들이 건강하게 창의적으로 일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소버린 AI'를 만들겠다면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시간주권'부터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조성재
▲조성재선임연구위원포럼사의재

*필자 소개: 조성재는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노사관계와 노동경제, 노동시간 및 작업장 혁신을 연구해 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고용노동비서관을 역임했으며,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과 한국산업노동학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 제도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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