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27 07:33ㅣ최종 업데이트 26.08.2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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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남편이 경영하는 나라를 크게 기울게 만든 여성을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부른다. 과장이나 윤색이 있기는 하지만, 은나라(상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을 주지육림에 빠뜨려 멸망을 부추겼다는 달기(妲己), 주나라(서주) 유왕이 부인을 웃겨 보려고 툭하면 거짓 봉화를 올린 일로 인해 실제 변란이 일어났을 때는 제후들이 응원군을 보내지 않았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포사(褒姒), 오나라왕 부차를 타락시켜 왕조 멸망으로 유도했다는 서시(西施), 현종시대의 당나라를 쇠퇴하게 만들었다는 양귀비 등이 그런 인물로 거론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그런 사례를 굳이 고대사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80년도 안 되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그런 영부인들이 여럿 배출됐다.


북아메리카 뉴스 배급사인 북미신문연맹은 1960년 5월 19일 자 <경향신문>에 소개된 기사에서, 사치와 낭비를 일삼고 개혁을 방해하다가 남편인 루이 16세와 함께 1789년의 프랑스혁명을 초래한 마리 앙투아네트보다 "더 큰 권세를 부리던" 여성이 바로 프란체스카라고 지적했다.

육영수는 박정희가 굴욕적인 한일협정과 반민주적인 3선 개헌을 추진할 때 불우이웃 돕기 활동을 펼쳤다. 그는 남편이 나쁜 일을 못 하게 막지 않고, 나쁜 일을 하는 남편 옆에서 좋은 일을 함으로써 남편의 부조리한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는 3선 개헌 국민투표가 통과된 직후인 1969년 10월 28일의 전국체전 개막식 때부터는 우상화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

경국지색 소리를 들을 만한 인물들이 몇백 년 만에 한 번도 아니고, 1948년에 나오고 1963년에 나오고 1980년에 나오더니 2022년에 또다시 나왔다. 국가지도자의 부인들이 이처럼 집약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시기를 과거의 한국 역사에서는 찾기 힘들다.

일찌감치 예견된 '김건희 리스크'

2024년 7월 8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하와이를 방문한 김건희 여사가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하와이 주지사 부부 등 영접 인사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4년 7월 8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하와이를 방문한 김건희 여사가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하와이 주지사 부부 등 영접 인사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김건희의 경우에는 그가 남편의 일을 망가트릴 소지가 있다는 점이 일찍부터 확인됐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그 점에 대한 대비 없이 대선에 뛰어들었다.

윤석열 '서울지검 국정원 댓글수사팀장' 겸 여주지청장은 2013년 10월 17일에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체포 및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 그 직후 그는 서울지검 수사팀장에서 배제되고, 얼마 뒤 대구고검 검사와 대전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이렇게 된 근본 요인은 국정원 댓글수사에 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2013년 12월 31일 자 <관보> 제18172호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의 제청을 받은 박근혜 대통령이 윤석열에게 정직 1개월짜리 징계를 내린 사유 중 2가지는 댓글 수사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3번째 사유는 김건희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 <관보>에 게재된 법무부 공고 2013-289호는 그 사유를 이렇게 적시한다.

"3) 2013. 2. 21. 정기재산변동사항 신고 시 배우자 명의의 토지 등 총 9건 합계 515,136,000원의 재산을 중대한 과실로 잘못 신고하여 검사로서의 직무상 의무 위반."

본문에 언급된 <관보>.
▲본문에 언급된 <관보>.법무부

황교안의 대답, 그리고...

그런데 <관보>에 실리지 않은 또 다른 징계 사유도 있었다. 이 점은 위 <관보>에 적힌 징계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청한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의 공개 발언에서 나왔다.

윤석열이 촛불혁명에 힘입어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으로 기용(2016.12.1.)돼 국정농단 수사에 참여하고 있을 때인 2017년 2월 10일의 국회 대정부질문 때였다. '제349회 제7차 국회본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이 '댓글수사로 인해 좌천됐었던 윤석열 검사의 맹활약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취지로 질의하자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은 이렇게 답변했다.

"말씀하신 사안으로 좌천된 것이 아니고 그 이후에 다른 부적절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징계를 받은 일이 있고 그것 때문에 아마 본인이 원하지 않는 보직으로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댓글수사 때문에 윤석열을 징계했음을 인정하기가 곤란한 황교안은 댓글수사 이후에 불거진 사유가 진짜 징계 사유라고 답변했다. <관보>에 적힌 김건희 재산 부실신고는 윤석열이 댓글수사팀장에 임명(2013.4.18.)되기 이전의 일이다. 황교안의 답변은 <관보>에 적힌 것 이외의 또 다른 징계 사유가 2013년 10월 17일 이후에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그 사유를 추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김건희의 어머니인 최은순과 동업했던 정대택이 그해 12월에 법무부로부터 받은 공문이다. 정대택은 2003년에 최은순과 함께 부동산 투자계약을 체결해 53억 1천만 원의 이익을 냈지만, 이익을 분배받기는커녕 도리어 고소를 당해 2004년 11월 29일 1심에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뒤이어 2005년 1월 7일에 민사소송에서 패소한 인물이다.

정대택은 윤석열이 곤경에 빠진 2013년 겨울에 법무부에 민원을 넣었다. 2013년 12월 18일 제출되고 같은 날 처리된 정대택 민원에 대해 법무부의 '민원 회신'은 이렇게 답변한다.

"귀하께서 2013. 12. 18. 법무부 민원실을 통해 제출한 민원의 취지는 윤석열 검사에 대하여 엄중한 징계가 필요하다는 취지인 것으로 보입니다. 검사징계위원회에서는 2013. 12. 18. 윤석열 검사에 대하여 정직 1개월의 징계처분을 의결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정대택은 투자약정서를 근거로 53억 1천만 원에 대한 50% 지분을 주장했지만, 최은순을 강요해 허위의 계약서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고 궁지에 몰렸다. 그에게 맞대응을 한 쪽은 최은순뿐만이 아니었다. 검찰도 그를 무고죄로 기소했다.

약정서 체결에 참여한 법무사 백아무개도 자신은 약정서를 작성한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백아무개가 최은순에게 유리한 법정 증언을 해주는 일이 2004년 7월 26일에 있었고, 다음달인 8월에 김건희(당시에는 김명신) 명의의 서울 송파구 가락동 아파트에 백아무개 가족이 입주하는 일이 있었다. 아파트 소유권은 2005년 1월 11일 백아무개의 부인인 원아무개의 명의로 변경됐다.

그 뒤, 정상적인 매매에서는 볼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정상적인 거래였다면 백아무개 쪽에서 김건희 쪽으로 금전이 이동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백아무개가 아파트 입주 뒤에 추가 금전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백아무개는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정대택이 말한 약정서를 자신이 작성했다고 시인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도 검찰이 끼어들었다. 검찰은 백아무개를 변호사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이 때문에 징역 2년을 살고 나온 백아무개는 자신이 정대택 사건에서 모해위증을 했다며 2008년에 자수했다.

정대택 입장에선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검찰이 번번이 끼어들어 최은순과 김건희를 편들었다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그 뒤 김건희와 결혼한 윤석열에 관한 민원이 법무부에 들어가는 원인이 됐다.

윤석열이 징계와 좌천을 당한 일차적 원인은 국정원 댓글수사에 있지만, 그 상당 부분은 부인 김건희에게도 있었다. 김건희 재산이 중과실로 허위 신고된 사실, 나아가 정대택과 최은순·김건희의 분쟁에 검찰(윤석열)이 연루된 것이 그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건희는 남편이 대통령이 된 뒤뿐 아니라 검사였을 때도 남편의 일을 망가트렸다. 그 같은 부인 리스크를 충분히 경험했는데도 윤석열은 충분한 대비책 없이 대선에 뛰어들었다.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든 셈이다.



제도 밖의 권력, 영부인 리스크 - 실세 영부인, 인성인가 시스템인가

김종성 (지은이), 내일을여는책(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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