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는 지하수 탱크에 흙탕물이 나온 흔적을 보여주었다. 산청 주민들에게 지하수는 생명줄이었다. 흙탕물이 나온다는 건 ‘틀림없이 고갈된다’는 뜻이었고 생명줄이 마른다는 뜻이었다.
정윤영
생수병을 몇백 톤씩 실은 대형 트럭이 하루에 몇십 대가 지나가는 것도 주민들에게는 오랜 스트레스였다. 트럭이 지날 때마다 소음과 진동으로 땅을 울리고 집이 흔들렸다. 도로가 내려앉고 마당이 깨지고 벽에 금이 가 벽지가 찢어졌다.
비대위가 증량 반대 서명을 받으러 돌아다니자 속으로만 앓아왔던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말라버린 펌프와 갈라져서 물이 새는 집 등 피해가 심각했고 관정 수위가 낮아졌다는 게 공통된 증언이었다. 그래도 그냥 참고 살았다. '물이 줄어들면 그런가 보다' 했다. 그간 증량을 한 줄도 몰랐다. 공청회도 주민 피해를 조사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또 증량을 한다고 하니 주민들은 목소리를 꼭 내고 싶었다. 삼장면 주민 1782명 중 1167명이 반대에 서명했다. 삼장에 살지 않는 사람을 제외하면 주민 대부분이 증량에 반대한 것이다.
비대위는 주민들의 반대 서명과 피해 사례를 근거로 제출하며 삼장면과 산청군, 경남도에 증량 허가 과정의 부당함과 주민 피해를 호소했다. 군과 도청, 낙동강유역환경청(아래 환경청) 앞에서 연장 허가를 취소하라는 기자회견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환경청은 피해 사례를 조사하기로 했고 군수에게는 '주민 뜻대로 처리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그럼에도 환경청은 업체의 환경영향조사를 통과시켰고, 그를 근거로 경남도는 5년간 연장 허가를 승인했다. 증량 반대 서명에서 시작한 비대위의 운동은 환경영향조사 부실 작성(지난 4월,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환경영향조사서가 허위·부실 작성된 것으로 의심하고, 환경청과 경남도에 재심의를 요청했다)에도 이를 승인한 환경청과 경남도를 향했고, 법 개정 투쟁을 이어가며 지리산지하수지키기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과 산청난개발대책위로 확장해갔다.
주민들이 먹는물관리법을 개정하려는 이유
비대위는 환경청이 통과시킨 환경영향조사는 집수구역 범위와 함양률을 왜곡했고, 양수시험을 누락했다고 지적한다. 조사의 대상이 되는 집수구역 면적을 2배 이상 확대해 집수구역이 아닌 구역까지 포함시켰고, 집수구역 함양률(강수가 지하수로 흡수되는 비율) 역시 '환경부지하수업무지침'에 맞춰 산청군의 8.1%를 적용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13.1%(남강댐)를 적용했다. 집수구역을 확대하고 함양률을 높게 적용한 것은 지하수의 개발가능량을 늘이고 고갈 위험을 은폐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동시양수시험은 여러 취수장에서 동시에 양수해 수위강하나 수질 변화 등 서로의 양수 영향을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취수허용량의 전부를 동시에 양수했을 때 수위변동 등 고갈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의무도 아니고 관련된 규정이 구체적으로 없다 보니 사실상 안 해도 그만이다. 기업은 허용량 최대치로 취수하지 않는다며 동시양수시험을 거부했고 환경청은 이를 강제할 법적 권한이 없다며 눈감아줬다.
지하수 수위강하와 지반침하, 취수영향 범위 1.2km 등 지하수 고갈의 심각성과 동시양수시험 불충족, 벤젠, 비소 검출과 탁도 초과 등 환경영향조사에 참가한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경남도는 "낙동강환경청의 전문가 심의 결과가 최종 결정"이라며 2026년 1월 연장을 최종 승인했다. 다만 최종 허가량은 272㎥로 감량됐다. 비대위 투쟁의 결과라고 추측하지만, 환경청 관계자조차 '(근거가) 따로 없다'고 할 정도로 취수 연장 허가 승인 과정은 주먹구구식이었다.
이제껏 이런 식이었다. 지하수가 얼마나 고갈되는지, 앞으로 얼마나 쓸 수 있는지 확인도 없이 무조건 물을 뽑아 올렸다. 기업들은 꾸준히 증량을 요구했고, 환경청과 경남도는 증량을 허가해 왔다. 30년 동안 '뽑을 만큼 뽑아먹은 것'은 그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공동행동 민영권 위원장의 말이다.
"먹는물관리법은 환경영향조사를 해요. 환경영향평가는 사업을 할 때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게 돼 있는데, 환경영향조사는 그런 규정이 없어요. 이 법의 목적은 오로지 먹는 물의 위생적 관리예요. 지하수 고갈이나 주민 피해는 고려 사항이 아닌 거죠. 30년 전에 만들어진 악법이에요. 30년 동안 (전국에) 주민 피해가 없었겠습니까? 그런 싸움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법이 그렇게 돼 있으니까."
먹는물관리법을 개정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생수 기업의 '공공재 탈취'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다. 개정안에는 투명한 정보공개, 주민참여절차 조항을 넣고 환경영향조사에는 수문지질조사와 동시양수시험 등 지하수의 지속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절차를 강화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먹는 물이 안전한 상품이 아니라 누구나 마실 수 있는 것, 그러려면 마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 모두가 살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다.
먹는물관리법을 앞세워 기업의 편을 든 환경청과 경남도는 증량에 반대한 1167명 주민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했다. 숱한 기자회견과 집회, 끝없는 민원과 천막농성에도 환경청, 산청군과 경남도는 주민의 편이 아니었다.
민영권 위원장은 산청 지하수와 지리산 난개발문제에 깊게 관여하면서, '자본과 권력이 주민들 눈치 보지 않고 개발사업을 밀어붙이는 일들이 노골적으로' 벌어지는 것을 보아왔다. 그렇게 된 데에는 수십 년간 보수적인 정치 지형이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이 컸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주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 다리만 건너도 전부 다 선후배이고 친척입니다. 조그마한 이권이라도 모두 연결되어 나눠 먹고 있기 때문에 쉽게 배반하지 못합니다. 그런 정서가 있다 보니까 지금도 서로 눈치를 봐요.
피해가 명백한데도 행정과 자본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난개발이에요. 일부 소수가 이익을 독점하고, 행정은 재정자립도가 낮고 지역 소멸 위기가 있다는 이유로 개발을 주장하죠. 개발은 발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논리에 맞서는 게 제일 어렵습니다."
그러니 비대위는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 '어떻게 관에 맞서냐'면서도 지하수를 지켜야 한다는 상식이 앞섰다. 주민들은 물이 말라가는 걸 매일 보고 있고, 물이 없는 땅에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다는 건 상식이었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멈출 줄을 몰랐다. 산청의 물싸움은 공공재 사유화에 맞선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업체들이 1병당 수질개선부담금을 고작 1.1 원씩 내고 30년 동안 장사를 해왔는데, 이제 관정에서 물이 안 나오니까 증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그러면 영업을 접어야죠. 그런데 관정 뚫을 데가 없다고 주변 땅을 매입하려고 해요. 주민이 완전히 살 수 없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면 상식적으로 그만해야죠."
민영권은 생수 산업 자체를 '근본적으로 잘못 태어난 산업'으로 보았다. 공공재인 물을 팔아먹는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었다. 그러나 이 불행은 편리함을 업고 모든 사람의 삶에 녹아들었다. 한번 맛본 편리함은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먹는물관리법에도 생수는 그리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 누군가 마실 물을 빼앗기고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잊곤 한다. 법을 개정하고 생수 업체를 규제하는 행정이 필요하지만, 지하수가 공공재라는 인식과 함께, 편리함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안전한 물이 곳곳에 있어야 한다.
▲생수를 수돗물 대신 식수로 쓰면서 수돗물에 대한 신뢰는 점점 떨어졌다. 여성환경연대는 물의 접근성과 공공성 회복을 위해 플라스틱 생수 대신 공공 음수대 확충을 요구하는 ‘저스트워터’ 캠페인과 ‘찾아가는 옹달샘 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여성환경연대 누리집 갈무리
2025년 봄, 산청에 산불이 크게 났다. 민영권은 산불이 갈대를 타고 마른강을 넘는 것을 보았다. 날아다니는 산불을 끄려고 애쓰던 산불진화대원 4명이 사망했다. 여름에는 크고 작은 산사태가 발생했는데, 산사태가 난 곳은 대부분 나무를 베고 산을 깎아 개발한 곳들이었다. 산청은 그 해 두 번이나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다. 강이 마르고 산이 무너진 곳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는 보았다. 물이 마르고 나무가 사라지는 건 재난이라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죽은 나무는 다시 살아나지 않고, 한번 고갈된 지하수는 다시 차오르지 않는다. 밑동만 남은 나무 건너편, 생수 공장 두 개가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였다.
정윤영
말라죽은 나무는 100살이 다 된 나무였다. 기둥이 굵은 나무 두 그루가 가지를 늘어뜨리며 커다란 그늘을 만들었다. 여름이면 동네 할아버지들이 시원한 나무 아래에서 더위를 식혔다. 나무는 할아버지들의 '놀이터'였다. 나무가 죽자 그늘도 놀이터도 사라졌다. 구시샘이 그렇듯 물길이 끊긴 곳에는 이제 아무도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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