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26 18:20ㅣ최종 업데이트 26.08.2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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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노동, 운동, 대중문화, 기타 등등... 그러니까 오늘의 세상 전부는 마치 거대한 농담같습니다. 거창하지만 정작 진심이라곤 없는 그런 허무한 농담. 그러나 그 허무한 농담 속에서 하나의 진실이나 한올의 진심을 길어내는 것이 모든 말하기와 글쓰기 의무일 것입니다. 거창한 농담의 세계에서 작고 소소하지만 소중한 한 올의 진심을 길어올리는 이야기를 씁니다.[기자말]
2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및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주가가 표시돼있다.
▲2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및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주가가 표시돼있다. 연합뉴스

사실 주식이나 비트코인 같은 건 잘 모른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다음에 이사 갈 때는 지금 집보다 조금은 더 큰 집으로 가면 좋을 것 같아서, 이사 가고 싶은 동네의 우리 집보다 조금 더 넓은 평수의 집 전셋값 정도를 가끔 찾아보는 것이 내 부동산 정보 취득의 전부다. 하지만 요즘은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정보를 전보다는 훨씬 빠삭하게 알게 됐다. 동네 카페에 30분만 앉아 있으면 거의 모든 테이블에서 주식과 코인과 부동산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자기 부정'의 시대정신

투자와 투기, ETF와 레버리지, 보유세와 토지 공개념. 이런 어려운 이야기들을 한창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오히려 그보다 먼저 순수하게 궁금한 것은 이렇게 온 나라의 사람들이 단 한 가지의 주제에 집중했던 일이, 카페의 모든 테이블에서 한 가지의 주제로 떠들었던 적이 있었나 싶은 것이다. 이쯤 되면 이제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투자는 모종의 '시대정신'에 가깝다. 그럼, 이 시대정신을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TV에는 주식으로 수백억 원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들을 추켜세운다. 온갖 강연회 같은 데에 나서는 그들은 주식 투자를 해서 내가 투자한 기업이 성공한 사례를 공유하거나, 미래의 산업은 어떻게 변화할지를 전망하고 그 미래에 어떤 기업들이 의미 있을지를 토론하기보다는 짧은 시간 안에 주식을 사고팔아 차익을 남기는 법을 이야기한다.

적어도 우리가 주식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미래의 가치에 투자하는 일보다는 얼마나 이른 시간 안에 얼마의 차익을 남겼느냐를 이야기하는 게임에 가까워졌다. 뉴스에서는 연일 부동산 가격에 대한 뉴스를 다룬다. 마용성 한강 벨트의 집값이나, 강남 아파트, 동탄과 하남의 신도시 아파트 분양권에 대해 듣게 된다. 우리 회사는 상암동이지만 일단 하남 미사에 아파트를 사는 것이 이득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이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 모습.
▲서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 모습.연합뉴스

하지만 주식과 부동산이 본래적 의미를 잃고 부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나, 그래서 온 나라가 거대한 투기장처럼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지겹게 들은 이야기다. 지금 영끌해서 레버리지 ETF에 전 재산을 쏟아부은 사람들에게, 은행은 물론 장모님에게마저 돈을 빌려서 산 아파트값이 떨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그런 말은 어차피 들리지도 않는 쓸데없는 잘난 척이다.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이들이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서, 강남에 아파트를 갖기 위해서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을 더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TV에 나오는 수백억 자산의 주식 부자가 아니다. 나랑 같은 직장에서 같은 월급을 받아 일하면서 어쩌다 주식으로 번 돈으로 차를 바꾼 옆자리 동료다. 강남의 아파트에 산다는 이른바 '천룡인'들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아파트값이 졸지에 수억 원 올라버린 아이 유치원에서 만난 어느 엄마다.

부유해지고 싶은 마음은 태초의 욕망이다. 그 욕망이 인간을 발전시켜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이제 와서 인간의 탐욕을 성토하고, 과한 물신주의와 배금주의를 운운하며 개탄하는 것은 오히려 뻔뻔한 일이다. 마치 인간이 그런 존재가 아닌 적이 있었던 것처럼. 인간은 언제나 탐욕스러웠고, 그 탐욕으로 세상을 병들게 하기도 했고, 세상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다만 지금 다른 것은 오직 하나, '희망'이다.

옆자리의 직장 동료가 차를 바꾸면 나도 차를 바꿀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당장의 경제 사정이 다르고, 소비 습관이 달라서 그럴 여력이 없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하고, 그게 적정한 수준의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희망이란 어쩌면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오늘 하는 일과 내가 내일 누릴 삶 사이에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믿음이다.

갑자기 누구네 집값이 크게 올라 내가 그에 비해 '벼락 거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상할 수 없는 일로 감당할 수 없는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는 예측 불가능성의 사회는 결국 희망을 거세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것'이 존재하는 사회.

들뢰즈는 욕망을 결핍에서 비롯된 갈망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힘으로 이해했다. 욕망은 현실 바깥의 무엇을 꿈꾸는 일이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사람이 자신의 바람을 따라 움직이고, 그것으로 자기 삶과 세계를 조금씩 바꾸어 나가는 힘. 그런 의미에서 욕망이란 기본적으로 희망이다.

하여 희망이 없는 곳에서 발생하는 것은 욕망이 아니라 차라리 '자기부정'이다. 내가 가진 능력과 내가 들이는 노력으로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지 못하는, 자기 역능에 대한 부정. 그렇다면 오늘 이 사회의 시대정신은 자기의 역능과 자기의 노력을 믿지 못한 채 예측 불가능한 우연에 삶을 의탁하는 '자기부정'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노동소득, 나의 역능을 믿는 힘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물류센터에서 한 작업자가 폭염의 날씨로 땀에 젖은 옷을 입고 우체국 택배 등 분류 배송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2023.8.1.
▲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물류센터에서 한 작업자가 폭염의 날씨로 땀에 젖은 옷을 입고 우체국 택배 등 분류 배송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2023.8.1.연합뉴스

오늘의 사회를 자기의 역능을 믿지 못하고 예측 불가능성에 의탁하는 자기부정의 시대로 이해한다면 오늘날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부동산 정책이나 금융 규제 같은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물론 가장 먼저 해야 할 다른 것이 있다는 말이지,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세제 개혁과 부동산 보유 및 금융소득에 대한 조세 정의의 실현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시 '욕망', 갖고 싶은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향해 노력하면 내 삶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다. 모든 욕망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약속이 아니라, 적어도 자기의 노력으로 자기 삶의 위치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이다.

'노동소득'. 열심히 일해서 더 나은 삶을 욕망하고, 자신의 힘으로 미래를 쟁취하는 힘. 그러니까 우리가 만들어온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의 욕망을 계획으로 바꾸어주는 가장 일상적인 근거는 어쩌면 노동소득이다. 단지 월급봉투를 숭배한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가진 능력과 시간을 들여 무엇인가를 만들고, 그 대가가 축적되어 내 삶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

내가 나로서 역능을 발휘하여 내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쩌면 단지 노동소득을 믿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가 제일 처음 해야 할 것은 노동소득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일이다. 지난달, 정부 주최로 열린 부동산 국민 대토론회에서 한 대학생의 발언이 이목을 끌었다. 열심히 일해서 얻은 노동소득으로 미래를 계획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대통령이 박수를 보냈다.

아주 사소한 희망, 아주 근본적인 욕망

사실 주식이나 비트코인 같은 건 잘 모른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이제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다음에 이사 갈 집에 대해 조금 자세히 알아보고 있지만, 정황상 이번 이사에서는 더 넓은 집으로 가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고, 다음 이사쯤에는 그래도 가능할 것 같다.

사람들이 주식과 부동산을 하지 않는 사회를 바라지 않는다. 부유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더 많이 욕망해야 한다.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더 좋은 차를 타고 싶고,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더 멀리 여행하고 싶다는 욕망이 세상을 더욱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이다.

다만 그 욕망을 이루는 방법이 주식시장의 그래프와 아파트 호가표에만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하는 일이 내 삶을 바꿀 수 있고,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으며, 몇 년의 시간을 들여 계획하면 갖고 싶은 것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다고 다시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으로 욕망하는 사회란 자기를 부정하는 투기의 사회가 아니라 나의 힘으로 나의 바람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는 희망의 사회에 가깝다. 어쩌면 노동소득에 대한 믿음을 회복한다는 것은 그런 뜻일 것이다.

다음 이사 때는 더 넓은 집을 계획할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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