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대법원
이정민
상황이 더 꼬인 건 조 대법원장의 전례없는 대법관 '패싱 제청'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을 포함해 13명의 대법관(법원행정처장 제외)으로 구성됩니다. 이흥구 대법관이 9월 초 퇴임하면 이미 퇴임한 노태악 대법관까지 포함해 두 자리가 동시에 공석이 됩니다.
전원합의체는 대법관의 3분의 2 이상이 참여하면 심리가 가능하지만 2명의 대법관이 빠진 상태에서는 원활한 진행이 어렵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이런 계산을 하고 대통령과의 사전 협의를 무시하면서까지 제청을 강행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어쨌든 대법원에선 제청을 했으니 후임을 결정하지 않아서 생기는 재판 지연 책임은 대통령이 부담하라는 속셈이라는 겁니다.
조 대법원장의 의도대로 고민에 빠진 건 청와대입니다. 청와대는 사전 조율이 없었던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에 대해서만 제청을 반려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닙니다. 재제청 요구를 받은 조 대법원장이 새 후보자를 제청하지 않고 마냥 시간을 끌거나 또다시 자신이 원하는 후보자를 제청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경우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다시 후보를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해 '제청→거부→재제청'의 도돌이표가 반복될 여지가 큽니다. 어느 쪽이든 대법관 공백 장기화와 이에 따른 재판 차질은 불가피합니다.
더 공고해질 대법관 보수 우위 구도... 우려되는 편향적 판결
우려되는 대목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지연 뿐 아니라 판결 내용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사태의 바탕에는 조 대법원장이 선호하는 인사들로 대법원을 채우겠다는 의지가 깔려있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현재 대법원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은 3명에 불과하고, 이흥구 대법관이 퇴임하면 2명이 남습니다. 나머지 10명은 모두 윤석열 대통령 시절 임명된 대법관들입니다. 지금도 보수 우위 구도가 뚜렷한데, 여기에 조 대법원장이 제청한 인사들이 가세할 경우 편향적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되면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김건희 판결과 한덕수·이상민 상고심 재판 결과도 뒤집힐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됩니다. 김건희 재판에서 명태균 여론조사를 놓고 1, 2심은 무죄를 선고한 반면, 윤석열·오세훈 1심은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법리적으로나 국민 상식으로 보면 유죄가 맞지만 대법관들의 성향상 무죄를 선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덕수·이상민 판결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일부를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결국 이번 '패싱 제청' 사태는 조 대법원장의 정치적 고려의 수단으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조희대 대법원' 체제에 대해 끝까지 감시의 눈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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