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자애생전의 백인천이 사인볼에 함께 써주던 글귀 '노력자애'. 그 네 글자 속에 그의 성공과 실패의 역설적이고 복합적인 사연들이 숨어있다.
김은식
노력자애(努力自愛)
그런 재능과 그런 노력으로 백인천은 최고의 야구 선수가 됐다. 고교 3학년이던 1960년 경동고의 32승 2무 무패 전관왕 신화를 이끌었고 일본 프로무대에서도 20년간 209홈런 212도루를 기록한 정상급 타자로 활약했다. 그리고 40세가 되던 해 한국에서도 프로야구가 시작되자 귀국해 전무후무한 4할 타율의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지도자로서도 그의 경력은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LG 트윈스의 초대 감독으로서 창단 첫 해 우승을 이끌었고 삼성 라이온스에서도 비록 우승을 하지는 못 했지만 1990년대 중반 팀의 침체기를 끝내고 대세상승기로 이끄는 대대적인 타선 리빌딩을 성공시켰다. 단단한 하체 근력과 그에 기반한 스피드를 강조하는 훈련 지도, 그리고 오랜 세월 생존경쟁 속에서 관찰하고 연구해 온 기술과 요령 전수가 주효한 덕분이었다.
"뛰는 데는 자신이 있었어. 1982년도에 프로가 시작되고도 그냥 뛰면 살았지. 그런데 딱 후반기로 넘어가면서 MBC 투수들의 타이밍이 달라지더라고. 백인천 감독이 투수들을 다시 지도한 거지. 그때 내가 처음으로 공부하고 연구를 하기 시작했어. 투수들마다 습관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다 분석하고 기록해서 스타트를 할 타이밍을 다시 찾아야 했던 거야." (김일권)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에 5번이나 도루왕에 오르며 '대도(大盜)'로 불렸던 김일권의 회상이다. 원년 OB 베어스의 우승을 이끈 최강 에이스 박철순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백인천 감독은 안 속거든. 배트를 요렇게 쥐고 있다가 고르고 커트하고, 그러다가 하나 몰리면 간결하게 휘두르면서도 넘겨버리거든. 백 감독 본인도 그렇고, 청룡 타자들이 쉽지 않았어. 그걸 또 가르쳐주잖아. 경기를 계속해 가면서 분석을 해가지고." (박철순)
거칠 것이 없었던 압도적인 투수에게도, 주자에게도, 백인천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한 수 위의 고수였고 거슬리는 방해꾼이었다. 감독 겸 선수로서의 부담감에 얇은 선수층의 한계를 미처 넘어설 수 없었던 청룡 시절과는 달리, 조금 더 준비하고 대비한 트윈스와 라이온스 시절에 감독으로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였다.
다만 그의 마지막 현장 경력이 되고 만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서 처참한 실패를 경험했고,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그는 좋은 결말을 남기지 못한 야구인으로 흔히 기억되곤 한다. 그를 감독으로 선임했지만 충분히 뒷받침하지 않는 구단과 불화를 겪었고,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확고한 지도철학과 어긋나는 선수들과 불화를 만들었다.
나름의 방식으로 리그를 농락할 수 있던 투수 손민한의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못마땅해했고 물러 보이는 하체와 둔한 스피드를 방치하는 이대호와 최준석의 몸매에 고개를 저었다. 또 자신의 지도 철학에 이래저래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거나 선수단의 자율성을 요구하던 그 팀의 상징적인 선수들에게 혀를 찼다.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채 표류하던 팀을 어느 순간부터 방치하는 듯 보였고, 자이언츠는 우리 프로야구에서 전무후무한 암흑기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그 유일한 길을 거부한다면 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그를 살게 한 오기가 오히려 그를 주저앉힌 역설이고 비극이었다.
노력과 성공, 성공의 역설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해설가로서 모두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일본의 명장이며 잠시 백인천과 한솥밥을 먹기도 했던 노무라 카츠야 감독은 자신이 뒤늦게 발견한 특이한 선수의 유형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쑥스러워하는 선수'다. 훈련장에서는 느슨하게 보이지만 실전에서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들을 흔히 '천재형'이라고 분류하지만, 그 중에는 남에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쑥스러워 남 몰래 노력하는 유형도 분명히 있더라는 이야기다.
'노력하지 않는 재능은 무의미하다'는 확신 이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는 생각을 그가 할 수 있었다면. 혹은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노력 여부는 선수에게 맡기고 그 결과만 평가하자고 한 걸음 물러날 결심까지 그가 할 수만 있었다면.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엄청난 허벅지 근육을 만든 특효약 '오리걸음'을 과용할 때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지에 관한 의학적인 조언에도 귀를 기울여 볼 수 있었다면. 어쩌면 그의 야구인생 마지막 장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 거대한 실패를 통해 그가 또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짧지 않은 야인의 세월을 거쳐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최고의 선수, 대단한 지도자. 하지만 마지막 순간 오점을 남기고 흘러간 옛 이름. 하지만 그가 떠난 자리에서 팬들은 그의 위대한 기록과 그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를 넘어 또 하나를 기억해야 한다. 그의 성공 너머에 존경할 만한 노력이 있었음을. 하지만 때로는 노력을 통해 얻은 성공이 시야를 좁히면, 세상에 또 다른 방식의 노력과 성공들이 있음을 부정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LG 트윈스의 초대 감독이자 첫 우승감독1983년, 사생활 문제로 MBC 청룡에서 불명예퇴진했던 백인천은 1990년 LG 트윈스로 바뀐 그 팀으로 돌아와 초대감독에 올랐고, 창단 첫 해 우승이라는 기적까지 만들어냈다.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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