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공연장과 공유서재책을 펼치기 좋은 곳
이인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안과 바깥의 경계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 이 도서관의 매력인가 싶었다. 실내는 푸른 정원으로 가득 채우고, 바깥 한쪽 벽면은 서재로 채웠으니 말이다. 성곽이라는 것이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이라면, 이 도서관은 그 경계를 지우는 느낌이었다. 안과 밖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이 마음 저 마음 옮겨 다니는 나 같은 사람이 반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어느새 도서관 안쪽의 두 번째 탐색을 시작했다. 처음 들떴던 마음과 달리, 두 번째는 좀 더 끌리는 곳에 오래 눈길이 간다. 이를테면 실내 정원의 저 나무는 왜 고개를 꺾고 있는지, 이 넓은 정원의 관리사는 누구인지, 사서는 무슨 마음으로 북큐레이션을 기획했는지, 이곳의 시그니처로 보이는 '어린이 전집 대출'은 어떤 방식으로 대출이 이루어지는지 하나하나 파헤치고 싶어진다.
조용히 책을 읽는 이용자들에게도 눈길이 간다. 저 사람은 나와 같은 이방인인지, 매일 오는 동네 주민인지. 다정함과 오지랖 사이, 아슬아슬 줄타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쉬움도 보이기 시작한다. 서가의 모양은 유려했지만 너무 높아서 사다리가 필요할 것 같았고, 어린이실에 쪼그리고 앉아보니 어린이 눈높이에는 서가가 높아 보이기도 했다. 직원 무릎이 고단하기는 하겠지만, 어린이실에는 그래도 낮은 서가가 옳지 싶었던 것이다.
3층 문학 자료실로 올라갔다. 서울 시내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좋은 자리가 있었다. 그런데 네 명의 가족이 앉으면 딱 좋을 자리여서 욕심을 내려놓고 자료실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모처럼 일본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마스다 미리의 <귀여움 견문록>과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면산장 살인사건>을 서가에서 가져왔다.

▲3층 문학자료실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높긴 높구나
이인자
가을에 한 번 더 와야지
이상하게 재미있는 책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 있다. 그날이 딱 그랬다.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는데, 때마침 <오마이뉴스>에서 친한 시민기자의 기사 알림이 떴다(관련 기사 :
32인치 초대형 캐리어를 끌고 79세 엄마가 왔다). 내 눈물의 치트키인 '딸과 엄마' 이야기였다. 왜 이렇게 가슴을 후벼 파게 잘 쓰는지, 내 서러움까지 보태져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손수건을 꺼내 콧물까지 훌쩍였는데, 건너편에 앉아 있던 청년의 시선이 느껴졌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몸을 책상 모서리 쪽으로 45도쯤 틀었다. 감정이 다 쏟아지고 나자, 비로소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좀 울면 또 어떤가 싶은 것이다. 옆 사람 사탕 굴리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은 들어봤어도, 앞 사람이 운다고 들어온 민원은 받아본 적이 없다.
누군가의 고단한 서사에 내 감정을 쏟아붓고 나면, 이상하게 내 이야기도 건네고 싶은 묵직한 용기가 차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다산성곽도서관은 아니 세상의 모든 도서관은 감정을 주고받는 거대한 우체통 같았다.
다산성곽도서관은 주말보다는 평일에, 휴가 내서 사라지고 싶을 때, 다시 살아나고 싶을 때, 오고 싶은 도서관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에게도 가르쳐주지 않고 싶은. 나 혼자만 몰래 오고 싶은 도서관이었다.
▲다산성곽길에서 바라본 도서관오징어먹물바게트를 닮은 구름
이인자
다만 도서관 주변에 간단히 식사할 데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도서관 한쪽 귀퉁이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이 점심이 되었는데, 그 허기 때문인지, 하늘의 먹구름이 먹물 오징어빵으로 보였다. 이번엔 선글라스를 끼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다산성곽길을 따라 내려왔다. 한여름의 성곽길을 걸으며 계절을 타지 않는 돌담과 계절을 탈 나무들이 어우러질 가을을 상상했다. 가을에 한 번 더 와야지. 아껴둔 휴가를 써야지. 회색과 빨강, 회색과 노랑 사이를 원 없이 걸어봐야지. 아직 버리지 못한 바바리코트를 꺼내봐야지. 깃도 세워봐야지. 걷는 내내 저 건너의 계절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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