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21 10:10ㅣ최종 업데이트 26.08.21 11:09
광주 군공항,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후보지.
▲광주 군공항,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후보지.전남광주통합특별시

이재명 정부는 국가 균형성장의 핵심 정책으로 5극 3특 권역별 성장엔진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3대 메가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업으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800조 원 규모의 민간투자를 유치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것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AI 데이터센터와 피지컬 AI 산업클러스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150조 원 규모로 조성하는 국민성장펀드는 전체 투자의 40% 이상을 지방에 배분해 권역별 신산업 육성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아울러 연간 10조 원 내외인 벤처투자 규모를 2030년까지 40조 원으로 확대하고, 그중 30% 이상을 비수도권에 투자하겠다는 방침이다.


중앙정부와 대기업이 계획 중인 투자가 순조롭게 추진되어 지방에 새로운 성장 거점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이에 발맞춘 지방 차원의 대응투자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역의 대응 투자 주도할 정책금융 기관 필요

우선, 산업단지 조성은 물론 전력·용수·교통망 등 기반 시설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와 민간의 적극적인 투자가 요구된다. 또한 대기업과 협력하는 지역 중소·벤처기업이 연구개발(R&D)과 생산설비를 확충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금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주거단지, 교육·문화 시설, 병원 등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생활 여건을 갖추는 데에도 투자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자체의 재정 여력이나 지역 내 민간 금융기관의 투자 역량으로는 이러한 투자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재정 규모가 가장 큰 경기도조차 2026년 8월 초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하였다. 지난 4년간 복지 예산이 14조 원에서 19조 6000억 원으로 급증한 반면, 부동산 경기 침체로 취득세를 비롯한 핵심 세원이 급감해 산업 육성용 신규 재원을 확보할 여력이 사라진 것이다.

대부분의 비수도권 광역자치단체는 재정자립도가 30% 내외에 머물러 있고, 인구 감소와 지방소멸에 따라 세원 자체가 축소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자체 예산이나 지방채에 의존해 AI 전환, 배터리·반도체 팹, 해상풍력, 수소경제 등 조 단위 자본이 소요되는 산업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방의 민간 금융 또한 크게 위축되어 있다. 수도권의 GRDP 비중은 52.8%에 그치지만, 은행권 예금과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71.6%와 68.2%에 달한다. 기업 대출에서도 수도권 기업의 비중이 68.5%를 차지한다. 충청, 동남, 호남, 대경, 강원·제주 등 5개 지방 권역에서 발생한 지역 자금 순 유출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104조 원으로 알려져 있다. 2016~2026년 신규 상장기업 877곳 중 661곳(75.4%)이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2026년 상반기 벤처투자 총액 2조 5207억 원 중 2조 50억 원(79.54%)이 수도권에 집중되었다. 이 가운데 서울 단독 비중만 53.7%에 이른다. 벤처캐피털 250개사 중 225개사(90%)가 수도권에 소재한다는 점 역시 지방 중소·벤처기업의 투자 유치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 5극 3특 권역별 성장엔진 육성과 그 선도 사업인 3대 메가프로젝트가 지역의 산업생태계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지역의 대응 투자를 주도할 정책금융 기관으로서 지역투자공사의 설립이 시급하다.

이재명 대통령도 후보 시절 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대안으로 동남투자은행 설립을 약속한 바 있으며, 민주당에서는 장철민·민병덕·박홍배 의원 등이 동남권투자공사와 충청산업투자공사 설립 법안을 발의하였다. 전재수 부산시장 역시 자본금 5조 원 규모의 동남권투자공사를 설립해 50조 원 규모의 지역투자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하였다.

지역투자공사는 정부·지자체·국책은행·지역금융기관의 공동 출자를 종잣돈으로 삼아 공사채 발행을 통해 자본시장에서 저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를 갖는다. 따라서 지자체의 직접적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조 단위 투자 여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시점의 유일한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성공적인 지역투자공사 운영을 위해 필요한 것들

국회에 계류 중인 두 개의 지역투자공사 설립 법안이 신속히 심의·통과되기를 기대하며, 성공적 운영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 지역투자공사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Financial Investor)가 아니라 전략적 투자자(Strategic Investor)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재무적 투자자는 다른 투자자들이 발굴한 투자 안을 수익성 관점에서 평가해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데 그치지만, 전략적 투자자는 투자처를 능동적으로 발굴하거나 자체 기획하여 투자를 주도한다. 지역투자공사 역시 지역의 경제 발전과 산업 성장을 이끌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기획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역 내 첨단산업 클러스터와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청사진을 그리고, 이를 실현할 구체적 사업을 발굴해 투자를 선도하는 역할이 요구된다.

둘째, 중앙정부가 운영하는 정책금융 기관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공동 투자를 집행해야 한다. 특히 40% 이상을 지방에 배정하기로 한 국민성장펀드와는 대규모 공동 투자를 기획할 필요가 있다. 권역별로 살펴보면 동남권은 해양금융·선박·북극항로·조선·재생에너지·전력반도체, 충청권은 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 광주전남은 AI·미래차·재생에너지, 대구경북은 로봇·바이오·원자력, 강원은 수소·데이터센터, 전북은 농생명·수소, 제주는 관광·청정에너지가 각 권역별 투자공사와 국민성장펀드의 공동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

지역 내 벤처투자를 위해서는 모태펀드인 한국벤처투자(KVIC)와 공동으로 지역 벤처투자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지역 금융기관과의 관계에서는 독일 KfW-메인뱅크 간접융자 모델을 원용하여, 지역투자공사가 지방은행·상호금융과의 협조융자(consortium loan) 및 재보증 파트너로 기능함으로써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다.

셋째, 지역투자공사의 법인격은 별도의 특별법을 통해 특수공기업 형태로 설립하되, 수신 기능을 배제한 투자은행으로 설계하여 금융기관에 대한 건전성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받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공사채 발행권을 부여하여 자본금의 5~10배에 달하는 투자 재원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정자본금은 지자체의 출자 여력이 제한적인 만큼 중앙정부·국책은행·지역금융기관 등의 공동 출자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중앙의 소관 부처는 산업 육성이라는 본원적 목적을 고려할 때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이 적절하되, 금융건전성 감독은 금융위원회와 공동으로 관장하는 이원 거버넌스 체계가 요구된다. 이사진과 투자심의위원회에는 권역 소속 광역시·도의 부시장·부지사, 산업은행 임원, 소관부처 고위공무원단, 민간 전문가를 균형 있게 배치하여 정치적 포획을 방지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동남권과 충청권 두 권역만을 대상으로 지역투자공사 법안이 발의된 상태이나, 전남광주통합특별시를 비롯한 여타 권역에서도 설립 필요성과 타당성 검토가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지역투자공사는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전략과 3대 메가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자금 공급자인 동시에, 산업정책과 정책금융을 지역 차원에서 공간적으로 결합시키는 유일한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병헌
▲이병헌교수포럼 사의재

*필자 소개 : 이병헌은 광운대 교수이자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으로, 현재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제2벤처 붐을 이끈 문재인 정부에서 중소벤처비서관과 중소기업연구원장을 역임했다. 중소·벤처기업의 경영전략과 과학기술혁신 정책을 연구해 왔으며, 한국전략경영학회와 기술경영경제학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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