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경기도의 GRDP 및 지방세 수입 비중
사진=필자 제공
경기도의 속도가 국가 운명을 가른다
AI 혁명 역시 지방정부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AI 관련 메가프로젝트만 해도 24.7GW 규모의 추가 전력수요를 예고하고 있고,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22년 460TWh에서 2026년 1050TWh로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전력·산업용수 등 인프라 확충, 미래전략산업 및 인재 양성 등 단 하루도 허투루 쓸 수 없는 과제들이 눈앞에 놓여 있다. 미국과 중국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반도체 패권 전쟁을 벌이는 지금,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만, 일본, 독일까지 첨단산업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건 인프라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이 다자간 경쟁에서 한 걸음이라도 뒤처지면, 세계 최고 수준인 경기도의 반도체·IT 생태계 붕괴에 이어 국가 경쟁력까지 쇠퇴할 위험이 있다.
이런 속도 싸움을 중앙정부의 정책만으로는 충분히 감당하기 어렵다. 현장의 수요를 가장 가까이서 접하는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경기도가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는 것과 대한민국이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런 문제의식은 중앙정부의 '5극3특 국가균형성장 추진전략' 방향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지방재정분권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균형발전은 그저 허울 좋은 구호에 그치게 될 것이다.
경기도 예산의 절반은 복지에 쓰인다
지금 대한민국과 경기도의 인구 구성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3%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이 비중은 2036년 30.9%,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중 전체 인구의 1/4이 살고 있는 경기도는 인구 규모 자체가 전국 최대인 만큼, 복지 수요의 절대량이 다른 어떤 지역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실제 중앙정부의 경우 총지출 대비 복지 분야 지출 비중이 약 37%, 서울시는 40% 정도인 데 비해 경기도는 50%에 육박한다.
게다가 과거 개발도상국 시대의 복지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현대의 복지는 그 양뿐만 아니라 질도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인간다운 삶을 책임지는 복지행정은 시대적 과제이며, 이를 위한 충분한 재정 확보는 지방정부의 당연한 책무이다.
경기도는 정부 사업 및 도 자체 사업 등을 통해 타 지자체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복지비용을 부담하고 있지만, 중앙정부로부터 보통교부세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불교부단체'다. 국가 세수가 늘어나면 그 일부가 지방행정사무 등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지방교부세 재원으로 배분되는데, 경기도는 애초에 그 혜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경기도는 매년 약 4000억 원의 예산을 지역상생발전기금으로 다른 시·도에 보태야 하는 상황이다.
그 결과 경기도 2026년도 예산안 기준 41조 7000억 원 가운데, 필수 복지와 인건비 등 고정비를 제외하면, 정책 추진에 쓸 수 있는 재원은 3조 5000억 원 정도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사업 추진을 위해 지방채를 세 차례에 걸쳐 한도의 99.6%까지 발행해 썼고, 결국 올해 하반기에는 수천억 원 규모의 감액 추경이 불가피한 상황까지 이르렀다.
구시대적인 세입 구조가 변화한 사회의 행정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이 엇박자야말로, 지금 개혁을 미뤄서는 안 될 이유다.
정쟁이 아니라, 지방분권의 근간을 다시 묻는 개혁 과정이다
지난 8월 5일 경기도가 재정 비상 상황을 선언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를 전임 지사 시절의 재정 운용에 대한 책임 떠넘기기로 해석하기도 한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번 선언은 경기도의 미래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경기도가 마주한 위기는 누군가의 잘못된 선택이 빚어낸 결과가 아니라, 대한민국 지방재정 제도 그 자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또한 이번 재정 비상 상황 선언은 당해나 차년도, 혹은 민선 9기 임기 안의 예산 부족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작금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정확히 공표하는 것은 물론, 지속 가능한 경기도를 위해서는 세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절실한 외침이다.
일부에서는 경기도의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이 '지방재정법상 채무비율 기준(25%)'에 못 미친다는 점을 들어 '위기'라는 표현에 이견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장은 파산하지 않는다는 뜻일 뿐, 세입과 세출이 근본적으로 어긋나 있는 구조적 문제를 반박하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경기도는 지금 성장과 쇠락의 기로에서 개혁의 마지노선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개혁의 기조를 놓친다면 당장의 갈등은 피할 수 있어도,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의 성장을 함께 이끌어가는 더 나은 경기도, 글로벌 도시로의 도약, 도민의 삶의 질 개선은 요원해질 것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지난 10일 본격 가동된 TF 회의에서 주형철 경제부지사는 "낡은 지방재정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과 당면한 문제를 예산 구조조정으로 돌파하는 두 갈래 해법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라며 "3주 안에 실효성 있는 실행체계를 만들어 도민의 삶과 경기도의 미래를 지키겠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경기도가 제도 탓만 하며,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위기 극복을 위해 모든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강도 높은 자체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며, 국가·시군·민간의 역할을 가려 광역자치단체 본연의 기능에 가용자원을 모으는 등 뼈를 깎는 개편을 진행 중이다.
곧 의회에 제출될 수천억 규모의 감액 추경뿐만 아니라 2027년도 예산안도 고강도 구조조정 대상이다. 다만,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일률적인 예산 삭감이 아니라, 민생과 안전 등 필수 사업은 지키는 '핀셋 조정'을 한다는 원칙만은 반드시 지킬 것이다.
예산 부담 없이도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 즉 공공서비스의 질은 유지하면서 재정 부담을 줄이는 방법도 계속 찾고 있다. 경기도가 예산을 직접 지원하던 방식에서, 자원을 가진 여러 주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더불어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경기도의 세수 확보 문제는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지방정부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경기도 홀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닐뿐더러, 경기도 혼자 풀어서도 안 된다. 지방재정분권은 경기도만의 요구가 아니라, 대한민국 균형발전 전략 자체가 성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도 이미 123대 국정과제에서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3 수준으로 상향하는 '지방재정 확충으로 자치재정권 확대 및 지역경제 활성화(국정과제 53번)'를 발표한 바 있다. 목표는 분명히 정해졌고,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다. 지방재정 확충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더욱더 높일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해당 국정과제의 실현 방향을 두고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다.
경기도는 중앙정부, 타 광역단체뿐만 아니라 도내 31개 시군과도 긴밀히 협력해 나갈 생각이다. 약간의 이해관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 모두의 목적은 결국, 시민이든 국민이든 도민이든 더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 지방정부가 각자의 셈법으로 흩어져 목소리를 낼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 지방재정 제도의 구조적 개선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부담이 있는 곳에 재원이 함께 가야 한다는 원칙은 경기도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지방정부에 적용되어야 할 상식이다.
경기도는 이번 재정 비상 상황 선언을 계기로, 자체적인 재정 건전성 제고 노력과 함께 전국 지방정부와의 연대를 통해 지방재정분권을 실질적으로 완성해 나가는 데 역량을 총집중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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