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18 15:48최종 업데이트 26.08.1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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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일본 도쿄의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모식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참석했다.
지난 15일, 일본 도쿄의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모식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8월 15일 종전일에 야스쿠니신사에 공물 대금을 보내는 한편, 신사 쪽을 향해 요배(遙拜)를 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은 일왕이 사는 궁성을 향해 매일 같이 허리를 숙여 절을 해야 했다. 바로 그 궁성요배를 연상시키는 신사요배를 다카이치가 이번에 실행했다.

다카이치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로 전쟁 때문에 사망한 일본인 전체를 추모하는 전국전몰자추도식에 참석하고자 이달 15일 오전 11시 9분 일본무도관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그는 서북쪽 600미터 떨어진 야스쿠니신사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15일 자 <TV아사히>는 그가 두 번 절하고(허리를 숙이고) 두 번 박수 친 뒤 한 번 절하는 이배이박수일배(二拜二拍手一拜)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요배 의식이 끝난 뒤 그는 무도관으로 향했다.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추앙되는 대상과 달리, 야스쿠니신사에서는 19세기 중후반 이후로 일왕을 위해 전사한 군인·군속들이 신으로 추앙된다. 이배·이박수는 그들에 대한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신도식 예법이다. 이 의식은 공물 대금을 신사에 보내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공간적 간격만 있을 뿐, 절을 한다는 점에서는 참배와 다를 바 없다.

다카이치가 허리를 숙이는 방향이 야스쿠니신사 쪽이었다는 점은 그의 측근들이 명확히 확인을 해줬다. 15일 자 <지지통신>은 "수상 주변에서는 '야스쿠니신사를 향해 요배했다'고 분명히 말했다"는 점을 보도했다. 요배의 방향이 혹시라도 다른 데로 해석될 여지를 총리실이 차단한 셈이다.

일제가 야스쿠니 요배를 강요한 이유

<지지통신>은 "현직 총리에 의한 야스쿠니 요배가 밝혀지게 된 것은 이례적이다"라고 평했다. 아직까지 통계화되지 않은 특이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에 '사상 최초다' 같은 명확한 표현을 쓰지 못하고 '이례적이다' 같은 다소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이번 일은 특이한 사례에 속한다.

<지지통신>은 다카이치 총리가 이런 방법을 동원한 이유를 최근의 정치적 사정에서 찾았다. "참배 보류로 인한 보수층의 이반을 경계했기 때문"이라며 "내각 지지율이 하락 기조로 바뀌는 중"에 이번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웃나라들의 반발을 우려해 신사참배를 미루면 지지층 민심이 이반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이 같은 이례적 상황을 낳았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신사요배는 다카이치 내각의 창작물이 아니다. 패망 이전의 군국주의 시절에는 이런 풍경이 매우 흔했다. 일본 '국립공문서관 디지털 아카이브'에는 '야스쿠니 임시대제(大祭)에 붙이는 요배식 거행에 관한 건'이라는 공문서가 실려 있다. 문부성이 1938년 4월 8일 작성한 이 문건은 야스쿠니신사에서 제례가 거행되는 날에 참배 대신 요배를 하는 방안을 각 지방에 통지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43년 10월 21일, 문부성은 학도병 송별회인 출진학도장행회(出陣学徒壮行会)를 거행했다. '와세다대학 문화자원 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 소개된 <와세다대학 백년사>에 따르면, 이 행사에는 궁성 요배, 기미가요 제창, 메이지신궁 요배, 야스쿠니신사 요배, 선전포고문 낭독, 총리 훈시, 문부대신 훈시, 재학생 대표 송별사, 출정학도 대표 답사 등의 순서가 있었다. 궁성(황거)·메이지신궁·야스쿠니신사를 한꺼번에 단체 참배하기기 힘들므로 각각의 장소를 향해 요배하는 의식으로 대체했던 것이다.

군국주의 시기의 일본이 야스쿠니 요배를 강요한 것은 단순히 전사자 추모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는 그곳에서 제신(祭神)으로 추앙되는 전사자들의 최후가 군인뿐 아니라 일반 대중의 심리 속으로 확산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각정보국이 발행한 1938년 4월 20일 자 <주보(週報)> 제79호는 야스쿠니신사의 존재 의의는 "야스쿠니 제신의 충렬한 정신을 군인을 비롯해 일반 국민들 사이에 드높여 천황의 뜻과 통치를 받드는 성과를 거두게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일왕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정신과 태도를 확산시키는 곳이 야스쿠니신사라는 언급이다. 그런 야스쿠니를 향해 요배하게 한 것은 그런 정신과 태도를 일반 대중에게 확산시키기 위함이었다.

지금의 일본 사회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

지난 15일,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
지난 15일,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로이터/연합뉴스

군국주의 시절에 유행했던 그 같은 신사요배가 정치적 목적으로 다시 거론된 것은 극우세력이 자민당 정권을 장악한 지 얼마 안 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때였다. 2001년 취임 이후 해마다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고이즈미 총리로 인해 외교적 마찰이 심해질 때에 바로 이 요배 이야기가 나왔다.

2006년 5월 18일의 참의원 특위 회의록인 '제164회 국회 참의원 행정개혁에관한특별위원회 제9호'에 따르면, 자민당의 아라이 히로유키 의원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라는 표현을 사용해 가며 절을 올리는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요배라는 것이 있습니다"라며 "멀리서, 집에서 마음으로 부전(不戰)의 맹세와 그리고 또한 평화를 기원하고 세계와의 협조를 기원하는 이런 방식도 있을 수 있다"라고 발언했다. 직접 참배로 인한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요배 방식도 고민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이 시기에 거론됐던 요배라는 아이디어가 이번에 다카이치 총리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요배는 공물료 납부와 직접 참배 중에서 후자에 훨씬 가깝다. 아라이의 말처럼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직접 참배와 원격 참배의 본질적 차이는 미미하다.

이번처럼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를 향해 요배한다'고 명확히 공지하면, 야스쿠니 정신의 중요성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관심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은 '직접 가지 못하면 요배를 해서라도 반드시 경의를 표해야 하는 곳이 야스쿠니신사'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이번 8·15 요배에서 드러난 것은 다카이치 총리가 어떻게든 야스쿠니에 절을 올려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패망 이전의 영광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는 일본 극우의 열망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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