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25 07:21ㅣ최종 업데이트 26.08.25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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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은 가슴으로 낳은 사랑입니다." 입양을 아름답게 대표했던 이 문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개에게 잠식당했다. 입양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개 사진이 도배하기 시작했던 시기와 맞물려 우리 사회에 전통적인 입양 문화를 배격하는 또 다른 조류가 밀려들었다. 그 물살을 타고 떠오른 이념이 비판입양학이다. 그 후 이십여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이념은 입양법과 정책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었다. 2회에 걸쳐 그 이야기를 쓴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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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연합=OGQ

20년 전 딸을 공개 입양했다. 입양이란 단어가 긍정적으로 읽히던 시대 문화 속에서 순조로운 절차를 거쳐 입양에 성공했다. 주변에서는 그런 나를 응원하고 아이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생각해 보면 아내가 첫아들을 낳았을 때와 맥락은 같았지만 결은 조금 달랐다. 출산과 입양은 아이를 가졌다는 결과는 같아도 과정은 다르기 때문이었다.

입양하고, 입양가족모임에도 나가고 공개입양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2년 입양특례법 재개정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입양을 둘러싼 이념적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입양을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세력을 이루어 대립하고 있었다.


단지 입양이 시민들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을 살아온 내게는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을 뿐이었다. 그들의 대립 관계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뾰족했고 적대적이었다. 내게 그건 커다란 문화충격이었다. 그 두 이념의 연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전통입양학과 비판입양학. 이 대립의 두 언어는 처음부터 다른 세계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전통입양학의 실체는 20세기 중반 미국과 서유럽의 아동복지 현장에서 오랫동안 쌓인 상식이었다. 아이에게는 가정이 필요하다. 시설보다는 가정이 낫다. 국내에서 가정을 찾지 못하면 국경 너머에서 찾는다.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 사람이 영국 정신과의사 존 볼비다. 그는 전쟁 후 부모를 잃고 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을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다. 어릴 때 특정 양육자와 안정적 관계를 맺지 못한 아이들은 이후 감정 조절, 인지 발달, 대인관계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이것을 '애착이론'으로 정리했다. 영유아기의 안정적 애착이 이후 모든 발달의 기초가 된다는 결론이었다.

시설이 왜 문제인지 여기서부터 분명해진다. 시설에는 양육자가 여럿이고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다. 1990년대 루마니아 보육원에서 자란 아동들을 추적한 부쿠레슈티 프로젝트는 이것을 실증했다. 시설에서 가정위탁으로 전환된 뒤에도 뇌 발달 이상과 애착 장애가 지속됐다. 시설 수용 기간이 길수록 손상이 깊었다. 세계보건기구는 영유아기 시설 수용을 그 자체로 발달 트라우마로 규정한다.

1955년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자 한 명이 한국전쟁 고아 여덟 명을 오리건주 농장으로 데려갔다. 그가 바로 해리 홀트다. 그의 언어는 단순했다. 버려진 아이를 시설로부터 구한다. 1950~60년대 전국 900여 개 시설에 8만 여명의 아이들이 수용돼 있던 우리나라에서 이 언어는 설득력이 있었다. 일반 영아 사망률이 10%를 넘던 그 시절, 영아원에 입소한 아이들의 사망률은 30~50%에 육박할 정도로 시설의 생존 환경은 비참했다.

1953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된 아이는 약 16만 5000명이었다. 친인척 중심 비밀 입양이 거의 전부였고 비혈연 입양을 포함한 국내 입양은 공식 통계나 공적 체계가 전무한 실정이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해외 입양이 가능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국내 입양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1993년 채택된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과 그 이행지침의 핵심은 '보조성 원칙'이다.원가정과 국내 입양이 불가능할 때, 장기적인 시설 수용보다는 해외 입양을 통해서라도 아동에게 가정을 찾아주는 것이 아동 최선의 이익에 부합하며 시설 보호는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정신이다. 이 원칙이 바로 전통입양학의 뼈대다.

다만 이 흐름이 모든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복지 재원을 투입하는 대신 해외 입양을 선택했던 역사적 과오가 있다. 국가가 방임했던 아동복지 현장을 민간이 대체했던 60여 년 사이 일부 서류 위조나 입양 수수료를 둘러싼 논쟁도 피할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이 다른 언어가 등장하는 배경이 됐다.

지금 가족이 필요한 아이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

비판입양학의 기원은 아동복지 연구실이 아니다. 이 학문의 이론적 뿌리는 마르크스주의다. 마르크스는 역사가 계급투쟁에 의해 움직인다고 했다. 그러나 서유럽에서 혁명은 오지 않았다. 자본가들의 착취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체제를 지지했다. 192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무리의 학자들이 이런 기이한 현상에 골몰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을 착취하는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가. 이들이 프랑크푸르트 학파다. 이들의 답은 이것이었다. 지배는 총칼이 아니라 '이것이 상식이다'라는 감각을 통해 유지된다.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전략적 결론을 내렸다. 지배는 경제적 강제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문화, 언어, 상식, 교육이 피지배 계급의 동의를 생산한다. 그는 이것을 헤게모니라고 불렀다.

그람시의 전략은 진지론이다. 국가 권력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기동전이 아니라, 대학이나 언론, 문화와 교회 같은 시민 사회 제도 안의 진지들을 하나씩 장악하는 진지전이다. 이 전략을 통해 언어와 상식이 바뀌면 결국 정치권력도 따라오게 된다.

나치즘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헤르베르트 마르쿠제가 이것을 이식했다. 혁명의 주체를 공장 노동자에서 인종적·성적 소수자로 바꾸고, 전쟁터를 공장에서 언어와 문화로 옮겼다. 그람시 진지론의 미국화였다. 이 흐름이 1960~70년대 미국 흑인 민권운동과 만났다.

법학자 킴벌리 크렌쇼가 1989년 내놓은 교차성 개념이 핵심이었다. 억압은 인종·젠더·계급이 따로따로 작동하지 않고 겹치고 교차한다는 것이다. 1994년에는 유색인종 여성 권리운동 진영이 재생산 정의를 정식화했다. 낙태 찬반을 넘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의 공정성까지 요구하는 개념이었다.

한국의 일부 페미니스트 세력이 이 이론을 적극 수용했다. 페미니즘 안에도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열거하면 리버럴, 래디컬,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교차성 페미니즘 등 매우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이 있다. 특히 인종·계급과 젠더의 중첩을 강조하는 교차성 페미니스트들과 진보적 여성운동 진영에서 이 담론에 대한 수용성이 가장 강했다.

비판입양학은 이 계보의 끝에 위치한다. 이 프레임 안에서 해외입양은 이렇게 읽힌다. 가난한 나라 유색인종 여성이 경제 압박으로 아이를 포기하도록 구조화된 현실에서 그 아이가 부유한 나라 백인 가정으로 이동하는 과정 즉, 재생산 불평등의 물질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여성으로부터 아이를 떼어놓는 착취적 제도이자, 입양 수수료와 거래 절차가 존재한다는 기계적 사실에 입각해 아동을 상품화한 구조가 입양이라는 논리가 여기에서 나온다. '아동 구호'라는 목적성이 사라진 자리에 비판입양학에서는 '초국적 입양산업 복합체'라는 용어를 집어넣었다.

전통입양학과 비판입양학은 부모 없는 한 아이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고 질문한다. 전통입양학은 묻는다. 이 아이에게 지금 가족이 있는가. 비판입양학은 묻는다. 이 아이가 왜 혼자 있는가. 두 질문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아니다. 그러나 두 질문은 그 출발점이 전혀 다르다. 전통입양학은 입양이 필요한 아이가 발생한 이후에, 비판입양학은 그 아이가 발생하기 전에 방점이 찍혀있다.

비판입양학은 구조분석에 집중한다. 국가의 책임을 묻고 국가의 책임 강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개별 아동의 지금 상황보다 구조적 불평등에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구조가 바뀌기 전까지 지금 당장 가족이 필요한 아이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비판입양학은 대답하지 못한다.

심지어 비판입양학에 몰입한 일부 강경 활동가들은 구조적 완성에 이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동의)부수적 희생'은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넘겨버리기도 한다. 이들의 프레임 안에서는 친생모의 재생산권과 원가정 복귀 가능성을 남겨두는 시설 보호가 친권이 영구적으로 상실되는 입양보다 차라리 낫다는 왜곡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홀로 남겨진 아이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인가

2025년 9월 17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중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열린 제1차 입양정책위원회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2025년 9월 17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중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열린 제1차 입양정책위원회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보건복지부

유감스럽게도 2025년부터 시행된 공적 입양 체계 개편 역시 이러한 프레임과 깊게 닿아 있다. 국가 책임을 강화한다는 명분 뒤에서, 정작 가정을 기다리는 개별 아동이 시설에 머무는 시간과 절차적 지연은 정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양육이 포기되기 전 단계에서 탄탄하게 작동해야 할 원가정보호주의가, 이미 홀로 남겨진 아이의 입양 절차를 지연시키는 기이한 이상 현상으로 변질된 셈이다.

전통입양학은 이미 입증된 아동 발달의 과학적 근거로 가정 보호의 절대성을 강조한다. 시설보다 가정이 낫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가정이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는지를 충분히 묻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집중하지만 사건이 있기 전 구조적 문제는 다른 층위에서 다룰 문제로 인식한다.

1970년대 전국에 산재해 있던 400여 개 시설에서 아이들은 굶주림과 폭력으로 죽음 직전에 몰려 있었다. 실제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고 암매장되는 일도 있었다. 같은 시기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은 다른 나라에서 자라며 정체성 혼란을 겪고 그중 일부는 양부모의 학대에 시달렸다.

두 어려움이 동시에 있었다. 그러나 이 둘을 같은 선상에 동시에 올려놓을 수 있는 성질인지, 각각의 삶 중에 어느 쪽이 더 다행한 삶인지 나는 저울질하지 못한다. 각자의 개별적 삶은 각자의 경험과 판단에서 출발한다. 20년 전 내 딸을 낳은 여성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밀한 속사정도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저울질하지 못하는 것과, 지금 이 순간 부모 없이 혼자 있는 아이에게 가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층위의 문제다. 구조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은 내 몫이 아닐지 몰라도 눈앞의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내 딸이 내게 입양되기 전 분명한 법적 과정을 거쳐 생모가 양육을 포기했고 그 이후에야 내가 개입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더불어서 20년을 가족으로 함께 살아온 내 딸의 지극히 평범한 지금 삶은, 엄마와 아빠인 나와 오빠가 있는 가족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어쩌다 보니 전통입양학과 비판입양학이 현장에서 격렬하게 대치하는 현장에 서 있었다. 입양을 경험한 당사자로서 나는 보수적이고 종교적 색채가 강한 전통입양학을 지지하는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의 종교적 정치적 지향은 본래의 나의 지향과 전혀 다르다. 나는 무신론자이고 정치적 진보주의자다. 때문에 정치적 동지라 할 수 있는 비판입양학 계열의 정치인이나 활동가들과 마주칠 때의 곤혹스러움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가며 내가 계속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였다. 어떤 이유로든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가정이 필요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난 20년 동안 입양 부모로서의 경험은 이 사실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지금 여기, 어떤 이유로든 혼자 남겨진 아이가 있다. 이 아이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인가?"

이미 사건이 벌어진 후에 홀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이념이나 종교가 또는 정치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진영에 갇히고 이념에 휘둘리는 우리 사회 안에서 어리석게 취급된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은 이 질문에 우리 사회가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대답은 거창한 이념에 있지 않다. 다만, 우리 사회가 도달해야 할 가치를 묻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연재를 쓰고 있는 김지영 기자는 택시 운전을 하면서 입양가족단체 소속 활동가 일도 같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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