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뿌리와이파리
이 대목에서 <제국의 위안부>를 다시 보게 된다. 박유하는 책에서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 사이에 "사랑도 싹틀 수 있었다"고 썼고, 두 집단 사이에 "동지적인 관계"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인 위안부를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식민지인으로서의 "협력자"로 묘사한 대목도 있다.
물론 박유하가 일본제국과 일본군의 구조적 책임 자체를 부정했다는 것은 아니다. 법원도 책 전체에는 위안부 여성들이 식민 지배와 전쟁이라는 강제적 구조 안에 놓였다는 서술이 함께 존재한다고 봤다. 형사재판의 무죄 역시 그의 역사 해석이 옳다는 판정이 아니라, 문제의 표현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보다 학문적 의견과 평가에 가깝다고 본 결과였다.
박유하가 내세우는 것은 단순한 흑백논리를 넘어 역사의 복잡성을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복잡성은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으로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회적 지위와 교육, 전문성을 가진 식민지 엘리트를 두고 "구조적으로 친일파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면서, <제국의 위안부>에서는 훨씬 취약한 위치의 여성들에게서 협력과 동지성, 심지어 사랑의 가능성까지 적극적으로 찾아낸다.
이상한 것은 '어쩔 수 없음'이 향하는 방향이다. 선택지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식민지 엘리트에게는 시대와 구조를 앞세운다. 반면 선택지가 훨씬 적었던 위안부 여성에게서는 선택과 관계의 흔적을 집요하게 찾아낸다. 엘리트의 선택은 구조 속으로 숨기고, 피해자의 선택은 구조 밖으로 끌어낸다.
한마디로 강자에게는 구조를, 약자에게는 선택을 준다. 엘리트의 친일을 설명할 때 구조는 책임을 덜어주는 방패가 되고, 위안부의 삶을 설명할 때 개인의 행위는 협력을 찾아내는 확대경이 된다. 문제는 역사의 복잡성을 보는 데 있지 않다. 그 복잡성이 힘 있는 사람에게는 변명이 되고, 힘없는 사람에게는 책임이 되는 방식이다.
왜 피해자의 감정에서 '사랑'을 찾아내는가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 사이에 "사랑도 싹틀 수 있었다"고 썼다. 그런 감정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증명 따위도 필요 없다. 식민 지배와 군사적 성 착취라는 압도적인 권력관계를 앞에 두고 왜 굳이 피해자의 내면에서 '사랑'을 찾아내려 하는가. 성폭력 피해자에게서까지 사랑의 흔적과 감정의 결을 찾아내야 비로소 그가 말하는 '복잡한 역사'가 되는 걸까.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초자이자 제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과 그가 소유했던 노예 여성 샐리 헤밍스를 생각해 보자.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감정이 오갔든 헤밍스가 제퍼슨의 소유 아래 있던 노예라는 권력관계는 달라지지 않는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피해 여성이 일본군에게 무엇을 느꼈느냐가 아니라 왜 그곳에 있었고, 떠날 자유가 있었는지, 누가 그 제도를 만들고 유지했느냐다. 피해자의 감정은 지배관계의 성격을 결정하지 않는다.
박유하는 그 순서를 거꾸로 세운다. 먼저 물어야 할 가해의 구조는 뒤로 밀고, 피해자의 감정을 확대해 그 자리에 '사랑'과 '복잡성'을 끌어들인다. 그것은 피해자를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일이 아니다. 가해의 책임을 피해자의 감정 속에 분산시키는 일이다. '사랑'을 끌어들여 폭력의 초점을 흐린 것이다.
'순결강박'보다 더 위험한 '굴종강박'
박유하는 친일의 책임을 따지는 시선을 '순결강박'이라고 부른다. 물론 식민지 시대를 오늘의 안전한 자리에서 재단하며 모두에게 영웅적 저항을 요구한다면 그것도 폭력이다. 그러나 그 위험을 경계한다는 이유로 강제와 적응, 편승과 적극적 협력의 차이까지 지워버릴 수는 없다.
비판자의 조상도 창씨개명을 했거나 지원병에 지원했을지 모른다는 말은 아무런 답이 되지 못한다. 내 조상도 그랬다면 내 조상 역시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면 된다. 역사가 물어야 할 것은 '누구의 조상이냐'가 아니라, '누가 어떤 조건에서 무엇을 선택했고 그 선택으로 무엇을 얻었으며 누구에게 어떤 피해를 남겼느냐'다.
그런 구별마저 '순결강박'이라고 부르는 순간 더 위험한 강박이 시작된다. '굴종강박'이다. 식민 지배 아래 인간은 결국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제하고, 협력과 편승을 '어쩔 수 없었다'는 한마디로 녹여버리는 역사관이다. '어쩔 수 없음'이 설명을 넘어 결론이 되는 순간 책임은 사라진다.
순결강박이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 위험이라면, 굴종강박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역사를 만든다. 저항은 비현실적인 순결주의가 되고, 협력은 시대의 숙명이 된다. 그렇게 역사를 읽으면 끝내 남는 것은 지배에 적응한 사람들의 불가피성뿐이다. 지배를 불가피한 현실로, 순응을 인간의 정상적인 운명으로 만드는 굴종강박. 오히려 우리가 떨쳐내야 할 것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