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가 제시한 하모니OS 생태계. AI폰, 자율주행차, 웨어러블, 가전, 홈 시스템 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에이전트 생태계를 만들어 간다.
화웨이 홈페이지
모바일에서 앱이 사라집니다. 정확히 말하면 앱이라는 소프트웨어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앱을 찾고 열고 메뉴를 탐색한 뒤 원하는 기능을 실행하던 방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20년간 스마트폰은 '앱'의 집합체였고 기업의 존재는 앱이라는 형식으로 소비자와 닿아 있었습니다. 쇼핑을 하려면 쇼핑 앱을 열고, 택시를 타려면 모빌리티 앱을 찾고, 호텔을 예약하려면 여행 앱에 들어갔습니다. 스마트폰은 PC보다 훨씬 편리했지만 어떤 서비스를 사용할지 판단하고 화면을 움직이는 주체는 여전히 사람이었습니다. AI 에이전트의 등장은 이 관계를 뒤집고 있습니다.
PC시대가 사람 → Web → Service, 스마트폰 시대가 사람 → App → Service였다면, AI폰 시대에는 사람 → AI Agent → Service라는 새로운 구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앱을 조작하는 대신 AI가 인간의 의도를 이해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찾아 실행하는 것입니다.
화웨이의 통합 시스템, 하모니OS
이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 가운데 하나가 화웨이입니다. 하모니OS(HarmonyOS)는 화웨이가 개발한 분산형 운영체제입니다. 단순히 구글 안드로이드의 대항마로 여기면 부족합니다. 화웨이가 그리는 범위는 스마트폰에서 태블릿·PC로, 다시 워치·이어폰과 자동차, TV·스마트홈, IoT까지 이어집니다. 화웨이가 노리는 것은 앱 자체를 AI가 호출할 수 있는 서비스 단위로 다시 분해하여 인간의 모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통합 플랫폼이 되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하모니OS의 원서비스(元服务, Atomic Service)가 있습니다. 원서비스는 기존 앱 내부에 묶여 있던 주문·예약·주차·결제·쿠폰·멤버십 같은 기능을 독립적인 서비스 단위로 제공하는 구조입니다. 사용자는 앱을 설치하지 않아도 필요한 순간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화웨이는 기업을 위해 ASCF(Atomic Service Cross Framework)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존 미니프로그램 개발자와 서비스 사업자가 이미 보유한 코드와 개발 자산을 그대로 활용해 하모니OS 원서비스로 이전할 수 있도록 전환 비용을 낮추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징둥(JD.com)은 복잡한 쇼핑 과정을 200개가 넘는 상황별 카드로 분해해 하모니OS 시스템 영역에 연결했습니다. 쇼핑이라는 거대한 앱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는 대신, 할인과 상품 추천, 회원 혜택, 구매 같은 기능을 필요한 순간 꺼내 쓸 수 있도록 해체한 것입니다.
주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전(深圳)의 쇼핑몰에서는 차량이 접근하면 입차 관련 서비스가 나타나고, 주차한 뒤에는 차량 위치가 기록되며, 출차할 때 결제까지 연결하는 방식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제 기업의 서비스 유통 방식이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판구와 딥시크의 두뇌, 원서비스는 손과 발
화웨이의 시스템 AI 에이전트 샤오이(Xiaoyi, 小艺)는 화웨이 자체 모델인 판구(Pangu)를 기반으로 발전해왔으며, 딥시크의 추론 능력까지 결합해 AI 모델과 운영체제, 현실의 서비스를 하나의 실행 구조로 연결합니다.
판구와 딥시크는 인간의 언어와 상황을 이해하고 추론하는 두뇌입니다. 샤오이는 인간이 AI와 만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이자 어떤 기능과 서비스를 어떤 순서로 이용할지를 결정하는 지휘자가 됩니다. 그리고 Skill과 원서비스는 그 판단을 주문·예약·결제·이동이라는 실제 행동으로 바꾸는 손과 발입니다.
사진에서 사람을 지워주고, 통화를 요약하고, 이메일을 대신 작성해주는 기능이 들어갔다고 해서 스마트폰의 기본 구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기존 스마트폰에 생성형 AI라는 강력한 기능을 하나 더 추가한 것인데 진정한 전환은 AI가 앱보다 위로 올라가는 순간 시작됩니다.
사용자가 쇼핑몰에 도착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지금은 주차 앱을 찾고, 로그인하고, 차량을 확인하고, 결제 메뉴를 찾아야 합니다. AI폰에서는 사용자의 위치와 상황을 이해한 AI가 필요한 주차 서비스를 먼저 제시하고, 주차 위치를 기억하며, 출차할 때 결제까지 연결할 수 있습니다.
여행에서는 변화가 더 극적입니다. 항공사 앱, 호텔 앱, 지도, 택시, 식당 예약 앱을 각각 열어 처리하는 대신 사용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말 상하이 출장 준비해줘."
하나의 문장에는 항공편과 호텔, 공항 이동, 일정, 식당 예약 등 여러 개의 서비스가 숨어 있습니다. AI 에이전트가 이를 작업으로 분해하고 각각의 서비스를 호출해 실행한다면 인간에게는 수많은 앱의 존재 자체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GUI(Graphical User Interface)에서 LUI(Language User Interface)로, 다시 에이전트 인터페이스(Agent Interface)로 모바일 인터페이스가 이동하는 것입니다. AI폰 시대에는 AI가 얼마나 많은 서비스를 이해하고 호출하며 실제 행동까지 완수할 수 있는가가 새로운 경쟁력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화웨이의 전략은 애플과 구글을 만나고, 동시에 중국 모바일의 절대적인 슈퍼앱 위챗(WeChat)과도 충돌하기 시작합니다.
애플과 구글도 AI폰으로
글로벌 모바일 시장을 지배해온 애플과 구글 역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애플은 앱 인텐트(App Intents)를 통해 앱의 기능과 데이터를 운영체제가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개발자가 앱에서 수행할 수 있는 행동을 시스템에 노출하면 시리(Siri), 스포트라이트(Spotlight), 단축어(Shortcuts) 등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애플 인텔리전스(Apple Intelligence)가 사용자의 개인적 맥락을 이해하고 시리가 앱 내부의 기능을 더 깊게 실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사용자가 일일이 앱을 찾아 들어가는 과정은 점차 줄어들 수 있습니다.
구글의 움직임은 더욱 직접적입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단순한 운영체제에서 AI 에이전트를 위한 '인텔리전트 OS(intelligent OS)'로 진화시키겠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핵심 가운데 하나가 앱펑션스(AppFunctions)입니다. 앱이 자신이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을 시스템에 노출하면, 제미나이(Gemini) 같은 AI 에이전트가 이를 찾아 사용자를 대신해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입니다.
미국의 제재가 불 붙인 화웨이의 혁신 속도
미국의 제재 가장 최전선에 있는 화웨이는 안드로이드와 분리된 독자적인 하모니OS 생태계를 구축해야 했습니다. 스마트폰 시대에는 이것이 엄청난 약점이었습니다. 수백만 개의 앱이 축적된 기존 생태계를 다시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바일의 기본 단위가 앱에서 에이전트와 서비스로 이동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과거의 앱 생태계가 부족하다는 약점이 오히려 기존 앱 구조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비스 체계를 설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화웨이는 스마트폰만 가지고 있는 회사도 아닙니다. 자동차와 웨어러블, 가전, IoT를 하모니OS라는 하나의 운영체제 생태계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판구와 딥시크 같은 AI 모델, 샤오이라는 시스템 AI, 에이전트 프레임워크, Skill과 원서비스라는 실행 계층을 결합하려 합니다. 결국 화웨이가 만들려는 것은 하나의 뛰어난 AI 모델이 아니라, AI가 현실 세계에서 행동할 수 있는 전체 스택에 가깝습니다.
'슈퍼 앱' 다음에는 '슈퍼 에이전트'가 온다
여기서 시선을 중국 내부로 돌리면 더 흥미로운 장면이 나타납니다. 하모니OS의 AI폰 전략이 충분히 발전할 경우 직접적인 도전을 받는 것은 안드로이드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가장 떨고 있는 상대는 위챗입니다. 위챗이 중국 모바일에서 막강한 권력을 확보한 이유는 메신저 기능만이 아니라 미니프로그램(Mini Program)을 통해 쇼핑과 배달, 택시, 병원, 금융, 공공서비스, 결제까지 수많은 서비스를 위챗이라는 하나의 입구 안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용자가 "근처 세차장 예약해줘"라고 말했을 때, 샤오이가 위치와 가격, 사용자의 선호를 파악해 적절한 원서비스를 찾아 예약하고 결제까지 처리한다면 사용자는 위챗을 열 필요도 미니프로그램을 검색할 필요도 없습니다. AI 에이전트가 슈퍼 앱을 우회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사용자 경험의 변화가 아니라 플랫폼 권력의 이동입니다.
물론 위챗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텐센트에는 14억이라는 유저와 결제, 미니프로그램 생태계가 있습니다. 이제 텐센트 역시 위챗 자체를 강력한 AI 에이전트 플랫폼으로 진화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AI 에이전트 시대의 권력은 누가 사용자의 첫 번째 의도를 받는가. 누가 어떤 서비스를 선택할지를 결정하는가. 누가 결제와 실행까지 완수하는가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 세 가지를 장악하는 기업이 AI 경제의 새로운 승자가 될 것입니다.
AI 폰의 탄생은 앱의 종말이자 인터페이스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화웨이는 지금 새로운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폰과 자동차와 집으로 이어지는 사람의 모든 생활을 다시 정의하려 합니다. 앱에서 에이전트로, 슈퍼 앱에서 슈퍼 에이전트로 넘어가는 차세대 경제 혁신이 지금 중국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