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16 19:58최종 업데이트 26.08.2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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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크스헨 알트
푸크스헨 알트윤한샘

시청으로 향하는 길, 쭉 이어진 도로를 사이에 두고 술집과 레스토랑이 끝없이 줄지어 보였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였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뒤셀도르프가 이렇게 발랄했었나? 나의 기억엔 작고 조용한 도시였는데.

시선을 끈 것은 분위기뿐만 아니었다. 아이리시 펍, 뮌헨 펍, 브라질 레스토랑처럼 다국적 음식점들이 양 옆으로 즐비했다. 그 순간, 베를린이 떠올랐다. 물론 메트로폴리탄, 베를린과 뒤셀도르프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긴 하지만 다른 독일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개방성과 다양성은 베를린 외에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것이었다.

뒤셀 강의 어촌 마을, 뒤셀도르프

쾰른에서 쾰쉬를 마셨으니, 다음은 뒤셀도르프의 알트를 만날 차례였다. 쾰른에서 40km,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뒤셀도르프는 원래 작은 어촌이었다. 어원 또한 '뒤셀 강의 마을'이라는 의미다. 별 볼일 없던 이 도시가 역사 속에 등장한 계기는 다름 아닌 쾰른 상인들이 대주교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벌였던 보링엔 전투 때문이었다.


쾰른 대주교에 맞서 싸웠던 진영에는 상인뿐만 아니라 귀족도 있었다. 라인 강 동쪽에 위치한 베르크 지역의 백작 아돌프는 쾰른 대주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13세기 보링엔 전투에서 상인들 편에서 함께 승리한 후, 그가 새로운 거점으로 키운 도시가 바로 뒤셀도르프였다.

100여 년 후, 백작령이었던 베르크가 공국으로 승격되며 뒤셀도르프는 라인란트의 중심도시로 성장했다. 점차 봉건 영지의 행정, 사법의 중심지로 떠오른 뒤셀도르프는 18세기에는 문화 예술의 도시로 명성을 날렸다. 게다가 19세기에는 루르 공업기지로서 금융 자본이 몰렸고 20세기 들어서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주도로 지명되기도 했다.

문화, 예술, 금융, 심지어 주도까지 작은 어촌 마을에게 내어주자 쾰른 시민들은 배가 아팠다. 아니, 박탈감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이후, 쾰른과 뒤셀도르프는 때론 직설적으로 때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경쟁의식을 드러냈다.

가장 격렬하게 서로를 조롱하는 장은 축구였다. FC쾰른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가 맞붙는 날이면 라인 강이 들썩이고 출렁였다. 도시 축제에서는 서로를 놀리는 다양한 구호와 조형물이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경쟁심이 표출되는 분야는 바로 맥주였다.

쾰쉬와 알트, 나 같은 동양인조차 두 맥주를 마실 때면, 두 도시의 자존심과 경쟁심 그리고 자부심이 폐부까지 전달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희한하다. 서로의 맥주를 미워하고 조롱함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엔 비슷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많은 것을 공유하는 이란성쌍둥이처럼.

피부색만 다른 이란성쌍둥이

알트(Alt)는 뒤셀도르프의 맥주다. 적갈색을 띠고 투명하다. 4.5~5% 알코올에 섬세한 건자두 향, 옅은 쓴맛, 가벼운 바디감, 깔끔하고 청량한 목 넘김까지 가지고 있어 마시기 편한 녀석이다. 겉모습만 보면, 알트는 쾰쉬와 완전 다르다. 그런데, 이면을 살펴보면 색만 다르지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아니 거의 동일하다.

먼저, 양조방식이 같다. 쾰쉬가 상면발효를 한 후, 저온숙성을 하는 것처럼, 알트도 똑같은 양조과정을 거친다. 조금 더 진한 맥아를 사용해서 색만 다를 뿐, 다른 특징은 유사하다. 서빙방식도 동일하다. 맥주 서버 쾨베스, 원통 형 맥주잔, 맥주를 담는 크란츠, 그리고 주문하지 않아도 다 마시면 맥주를 가져다주는 관습까지, 완전 쌍둥이다. 다른 점은 쾰쉬가 200ml 용량이라면, 알트는 250ml로 나온다는 정도뿐이다.

아니, 그렇게 맥주로 자존심과 경쟁심을 표출하면서 왜 알트와 쾰쉬는 이리도 비슷한 걸까? 그 답은 두 맥주의 탄생 배경에서 유추할 수 있다. 19세기 라거 맥주가 독일을 휩쓸면서 뒤셀도르프 전통 맥주, 코이테비어(Keute)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밀이 들어가고 상면발효를 한 이 전통 맥주는 청량한 황금색 라거에 비하면 투박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라거의 위협에 가장 먼저 대응한 사람이 마티아스 슈마허였다. 1838년 슈마허(Schumacher)는 뒤셀도르프 전통 맥주를 라거처럼 저온숙성 시켰다. 그리고 추가적인 시험을 통해 현재 알트의 원형에 가까운 맥주를 선보였다. 상면발효 후 저온숙성, 우리가 쾰쉬에서 알고 있는 이 방식을 최초로 시작한 곳은 쾰른이 아니고 뒤셀도르프였던 것이다.

'옛것', '오래된 것'을 의미하는 알트라는 이름이 이 맥주에 붙었다. 새로운 양조공법을 적용하지만 뒤셀도르프 맥주의 정체성을 잇는다는 의미였다. 슈마허가 붙였다는 설도 존재하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이후 1848년 퓌크스헨(Füchschen), 1850년 슐뤼셀(Schlüssel), 1862년 우에리게(Uerige)가 동일한 스타일을 판매하며, 알트는 뒤셀도르프 맥주로 정착했다.

우에리게 알트
우에리게 알트윤한샘

이렇게 보면, 맥주 공법에서는 뒤셀도르프가 쾰른보다 앞섰다고 볼 수 있다. 쾰른에서는 20세기 들어서 자신들의 전통 맥주인 비스를 저온 숙성을 통해 쾰쉬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쾰른 양조사들이 라거로 멸절할 수 있는 전통을 지키기 위해 경쟁 도시의 비법을 차용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뒤셀도르프 양조사들도 알게 모르게 그런 쾰른의 움직임에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맥주 전문가로서 상상의 영역일 뿐 근거는 없다. 그러나 두 맥주를 관통하는 끈은 묘한 연결성을 속삭이고 있었다.

두 맥주의 서빙방식이 동일한 것도 사실 라인란트 지역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쾨베스와 크란츠는 특정 도시의 문화와 발명품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보면, 겉으로는 알트와 쾰쉬로 티격태격해도 사실 두 도시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형제가 아닐까라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퓌크스헨과 우에리게, 같지만 서로 다른

1986년 쾰쉬는 쾰쉬 콘벤치온을 제정해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그 결과, 쾰른 이외 지역에선 쾰쉬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는 쾰쉬를 마케팅적으로 더 알려지게 만들었고 다른 지역에서 마실 수 없다는 희귀성의 법칙이 특별한 맥주로 인식하게 했다.

반면 알트는 자신을 규정하는 어떠한 제한도 만들지 않았다. 뒤셀도르프 밖에서도 양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이름으로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알트는 쾰쉬가 갖지 못한 다채로운 개성을 가지고 있다.

알트를 따르는 모습
알트를 따르는 모습윤한샘

뒤셀도르프에 도착하자마자 마신 알트는 이런 가르침을 바로 건네주었다. 뒤셀도르프 시내, 간신히 주차를 하고 작은 골목을 따라가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니, 건물 밖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알트를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이건, 그냥 지나갈 수 없지.

마침 자리가 난 테이블에 앉아 무작정 알트를 주문했다. 비어코스터를 보니 작은 여우가 쳐다보고 있었다. 아, 퓌크스헨이구나. 퓌크스헨은 작은 여우를 말한다. 우연히 들어온 곳이 마침 180여 년 동안 알트를 만들고 있는 퓌크스헨 브루펍이었던 것이다.

쾰쉬보다 조금 더 넓은 원통 형 슈땅에가 눈앞에 놓였다. 투명한 적갈색 퓌크스헨 알트를 한 모금 마시자, 아니 웬 걸, 눈이 번쩍 뜨이는 게 아닌가. 십여 년 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알트는 쓴맛이 도드라지고 깔끔한 목 넘김을 가진 적갈색 맥주였다. 프랑켄하임이라는 알트였는데, 한국에 잠시 수입되었던 우에리게 알트도 비슷했다.

뭉근한 단맛을 머금은 퓌크스헨은 거침없이 혀를 타고 목 뒤로 넘어갔다. 쓴맛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 또한 알트구나. 한두 개의 알트를 마시고 스타일을 정의한 나의 무지함을 반성했다.

원래 한 잔만 마시고 일어나려 했는데, 퓌크스헨은 나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너무 맛있었다. 몇 잔 더 마셨을까, 살짝 취기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아쉽지만, 더 늦기 전에 일어나야 했다. 이미 우에리게 알트에 저녁 식사를 예약했기 때문에.

우에리게는 시청을 지나 라인 강변으로 가는 방향에 위치했다. 시청으로 향하는 길에 바로 그 '세계에서 가장 긴 술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아무 데나 앉아서 놀고 싶었지만, 우에리게에서 저녁을 먹어야 했다.

시청으로 가는 도중, '세상에서 가장 긴 술집'
시청으로 가는 도중, '세상에서 가장 긴 술집'윤한샘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눈앞에 나타난 우에리게도 별반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라인 강이 보이는 언덕 밑에 위치한 우에리게 주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알트를 마시며 파티를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야외 테이블에 앉아, 알트를 주문했다. 예상했지만, 우에리게는 퓌크스헨과 다른 향미를 품고 있었다. 섬세한 초콜릿, 또렷한 쓴맛, 훨씬 더 청량한 목 넘김, 옅은 홉 향까지, 복합성 측면에선 더 멋진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저녁으로 맛본 뒤셀도르프 전통 요리와 알트비어의 조합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우에리게(Uerige)의 내부는 전통과 개방감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인테리어는 클래식한 멋을 고수하면서도, 양조장 곳곳에서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아, 이런 게 바로 뒤셀도르프의 DNA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스쳤다.

쾰른이 묵직하고 정통을 지키려는 분위기라면, 뒤셀도르프는 전통을 트렌디하고 발랄하게 재해석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듯했다.

우에리게를 나와 라인강 변을 따라 걷는데, 저 멀리 노을빛이 강가를 따라 길게 이어진 테라스 펍들을 따스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함께 어울리고 싶었지만, 떠나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아쉬움만 삼켜야 했다.

라인 강을 따라 펼쳐진 맥주 집의 정경
라인 강을 따라 펼쳐진 맥주 집의 정경윤한샘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에 이상한 포스터가 눈에 띄였다. 맥주 전문가만 알아챌 수 있는 요상한 문구였다. '옥토버페스트 in 뒤셀도르프'. 뒤셀도르프에서 옥토버페스트를 한다는 광고였다. 정말? 이게 가능하다고? 옥토버페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뮌헨의 상징인데, 알트의 도시, 뒤셀도르프에서 뮌헨 맥주 축제를 한다고?

하지만, 뒤셀도르프를 돌고 나니, 뮌헨 옥토버페스트가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쾰른이 "알트는 손톱만큼의 맥주도 아니다"라며 라이벌의 이름조차 부르길 꺼릴 때, 뒤셀도르프는 옥토버페스트 포스터를 홍보하며 즐기는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 개방성과 다양성이 뒤셀도르프의 힘이라는 사실이 와닿았다.

아마, 그래서 이 도시를 '작은 베를린'처럼 느꼈던 것 같다. 오래되었다는 뜻을 가진 '알트'는 '가장 열려 있었다'는 반어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힘,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힙한 대한민국이 알트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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