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노스의 첫 1번 타자 김종호준수한 출루능력과 빠른 발을 가진 김종호는 거포 나성범과 더불어 신생팀 다이노스를 상대하는 팀들을 잠시나마 긴장시키는 역할을 했다.
nc 다이노스
김종호는 빠른 발과 나쁘지 않은 타격 감각을 가졌지만, 약한 어깨와 부실한 내구력이라는 문제를 가진 선수였다. 더구나 그가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삼성에는 그와 비슷한 장점을 가진 선수가 넘쳐났다. 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최고의 1번 타잣감으로 꼽힐 만했던 배영섭과 오정복이 있었고, 그 둘만 아니었다면 정형식과 이영욱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테이블세터 외야수로 자리 잡을 만했다. 그래서 군복무 기간을 포함해 4년간 1군 무대를 구경도 하지 못했고, 5년 차가 되던 2011년에 간신히 단 한 번의 타석을 경험했을 뿐이었다. 또 그 이듬해에도 대수비와 대주자로 22경기에 출장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2013년부터 신생팀 NC 다이노스가 리그에 참가했고, 그 팀의 지휘봉을 김경문 감독이 쥐게 된 것은 김종호에게 행운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김경문 감독은 선수의 강점을 높이 산다는 강점과, 선수의 약점을 다루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동시에 가진 지도자다. 그런 김경문 감독이 뚜렷한 강점을 가진 김종호에게 특별지명권을 사용할 때 그가 가진 뚜렷한 약점을 개의치 않은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일 수도 있었지만, 이 팀은 그 정도 약점은 별로 눈에도 띄지 않을 사정의 신생팀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상무 시절을 포함해 6년을 2군에서 보내고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나이 서른을 앞두고 있던 김종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재능을 그라운드에 쏟아냈다. 다이노스의 첫 번째 리드오프가 되어 팀과 자신의 첫 시즌에 나선 그는 시즌 내내 3할을 오르내린 정교한 타격으로 상대 팀 마운드를 긴장시켰고 무려 50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쉼 없이 균열을 만들었다. 그 50개의 도루는 그해 리그에서 가장 많은 것이었고, 그는 다이노스가 배출한 첫 타이틀홀더가 됐다.
그 이듬해도, 또 그다음 시즌도 비슷했다. 그는 부지런히 치고 나가서 달렸고, 중심타선의 나성범과 더불어 상대 투수들이 그나마 다이노스를 상대로 긴장을 풀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2014년에는 어깨 부상이 겹치며 다소 부진했지만 2015년에는 .295의 타율에 41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자신의 안정적인 능력치가 어디까지인가를 입증했다.
그 세 시즌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김종호는 조금 독특한 선수였다. 선구안이 아주 정교하지는 못한 선수가 끝까지 공을 고르려는 집념을 놓지 않았고, 출루하게 되면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늘 2루를 노린다는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또 수비에서는 조금이라도 강한 공을 내야로 보내기 위해 한 걸음 더 도움닫기를 하고 온몸의 회전력을 짜냈다. 하지만 그래봐야 별 효과가 없는 듯한 가소로운 궤적의 공이 나갔기에, 팬들은 함부로 비난조차 할 수 없어 입맛을 다시곤 했다. 안타가 된 공을 주워 던지는 일에 자신이 없어 그랬던지, 빠른 발을 이용해 끝까지 따라가며 몸을 던져 걷어내는 다이빙캐치 역시 그렇게 만들어진, 멋있지만 위태로운 그의 장기였다. 그는 꽤 잘하는 선수였고, 참 열심히 하는 선수였지만, 뭔가 뚜렷이 비어 있는 선수였고 그럼에도 원망할 수 없는 묘한 선수였다.
약팀의 첨병, 강팀의 후보

▲강점과 약점이 뚜렷했던 선수김종호는 출루와 도루, 기습번트, 수비범위라는 면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가진 선수였다. 다만 장타력과 송구능력 면에서의 약점도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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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사이 다이노스가 조금씩 강해졌고, 그러면서 드러나기 시작한 문제가 있었다. 팀이 강해진다는 것은 우수한 선수들이 계속 보강된다는 의미였고, 김종호는 그 못지않은 강점과 그보다 적은 약점을 가진 선수들과 경쟁해야 했다. 우선 FA 계약을 통해 이종욱이 합류했고, 2차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뒤 군복무를 마친 삼성 시절 동료 오정복을 재회하게 되면서 '발 빠른 외야수' 자리가 빠듯해졌다. 그리고 다이노스의 첫 1라운더 신인 내야수 박민우가 입단 2년 만에 국가대표급으로 성장하면서 1번 타자에 넣을 수 있는 선수가 갑자기 넘쳐나게 됐다.
경쟁자가 불어나던 그 시점에 김종호의 무기는 오히려 녹이 슬어가기 시작했다. 주루에서든 수비에서든 매 순간 미련 없이 던지는 듯하던 그의 몸 곳곳에 탈이 나며 '부상 이탈' 소식이 잦아졌고, 또 그 사이 그의 나이도 30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송구는 점점 더 빈약해지며 '어깨'라는 그의 약점이 점점 더 선명하게 상기됐다. 그리고 약간씩이나마 장타력을 갖춘 경쟁자들 틈에서 연평균 1개 미만의 홈런 생산능력을 가진 그의 방망이는 새삼 짧게 느껴졌다.
2016년 FA 최대어 3루수 박석민을 영입하며 마지막 약점을 지운 다이노스는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서며 첫 번째 전성기의 개막을 알렸지만 김종호는 주전 자리에서 밀려났고, 2017년에는 스프링캠프조차 참가하지 못한 채 단 3경기에 대타와 대주자로 얼굴을 비치며 팬들과 안타까운 인사를 했을 뿐이었다. 그해 다이노스는 당연하게도 보호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제외했지만 2차 드래프트에서도 다른 팀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결국 시즌 내내 눈에 띄지 않던 그의 이름은 시즌이 끝난 뒤 발표된 방출자 명단에 올라있었다. 다이노스가 첫 우승에 성공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인 2020년이었다.
가난한 시절의 이름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다이노스가 가장 초라했던 시절부터 위협적인 신흥 강호로 변모하던 시절까지 김종호는 그 팀의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그냥 뛴 것이 아니라 죽을 듯 기를 쓰고 뛰었고, 그 덕에 그 팀은 꼴찌를 경험하지 않고 이륙한 첫 번째 신생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다이노스가 가장 높은 곳으로 떠올라 한국시리즈 우승을 다투는 팀으로 완성된 순간에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물론 그가 억울해하거나 또 누군가가 그에게 미안할 이유는 없다. 그는 그저 더 나은 선수들에 의해 대체되었고, 그것은 강팀이 만들어지는 당연한 과정이다. 그는 가난한 팀에서는 요긴한 선수였고 풍족한 팀에서는 남는 선수였을 뿐이며, 그 팀을 가난하던 시절에 만난 것은 행운이고 그 팀이 빠르게 풍족해진 것은 얄궂은 일이었을 뿐이다.
▲nc 다이노스의 첫 우승2020년, 창단 후 첫 우승을 달성한 다이노스 선수들이 게임업체인 모기업을 상징하는 '집행검'을 들어올리며 환호하고 있다.
이희훈
다만 팬의 기억까지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함께 밤새워 공부한 친구보다 함께 야자를 째고 떡볶이를 먹던 친구가 오래 남듯, 다이노스 팬들에게 남는 것도 우승 트로피를 든 사진 속 얼굴들만은 아니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던 시절 홀로 50개의 베이스를 훔쳐내며 팀을 두려워하지는 않더라도 무시하지는 못하게 만들던 그 안간힘이, 정작 우승의 순간에는 사진 밖에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한 번씩 떠올리게 만든다.
함께 굶주렸던 시간이 길었더라도 한 번 휘황찬란한 밥상을 함께하고 작별한 사람은 어찌어찌 잊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지도 못했던 사람은, 내 밥상이 불어날수록 기억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살아난다. 아마 그런 어긋남이 그를 쉽게 잊을 수 없게 하며, 최금강이라든가, 조평호라든가, 지석훈 같은 그 언저리의 또 다른 이름들을 불러내게 만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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