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14 18:19최종 업데이트 26.08.1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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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를 '학'의 이미지, '청와대 내 야당'의 이미지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격이나 정치 기여도 측면에서 그를 좋게 평가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학처럼 고고하게 날지 않았다. 권력 확대를 위해 국민들을 군홧발로 짓눌렀다. 또 정상적인 정치 시스템을 파괴했다. 학이니 청와대 내 야당이니 하는 육영수의 이미지가 구체적인 실천과 결합됐다면, 박정희 정권이 그처럼 막 나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육영수는 일반적인 영부인 차원을 뛰어넘어 대통령 못지않게 활동했다. 그에게는 실질적 권력도 있었다. 고위층 및 저명인사의 배우자들로 구성된 양지회라는 사조직이 그를 보좌했다. 또 권력 행사를 뒷받침할 정치자금도 두둑했다. 미국 의회에서 나온 <프레이저 보고서>는 박정희뿐 아니라 "박의 부인"에게도 박정희·정일권·이후락·박종규 등과 비슷한 규모의 정치자금이 들어간 일이 있다고 기술한다.

그처럼 막강했던 인물이 다른 곳도 아닌 정권 핵심부 내에서 '학'처럼, '야당'처럼 활동했다는데도 박정희 정권은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부조리한 집단이 됐다. '학'과 '야당'은 허구의 이미지였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육영수 우상화' 움직임

육영수 여사
육영수 여사연합뉴스

육영수 자신도 학처럼 살고자 하지 않았으며, 야당처럼 살고자 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자료들이 있다. 박정희 정권은 박정희뿐 아니라 육영수까지 국민적 존숭의 대상으로 격상시키는 작업을 벌였다. 육영수는 우상화로 나아가는 이 작업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전국체전 이벤트다.

지금은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해외 프로리그 등을 즐기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이런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던 1960년대에는 전국체전(전국체육대회)이 최고의 스포츠 축전이었다. 시도 대항전으로 진행된 이 행사는 1970년대 고교 야구나 1980년대 이후 프로야구 못지않은, 혹은 그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1968년 9월 12일 서울에서 개막된 제49회 전국체전 때는 고등학생 장병권(신문 보도에는 강병권)이 주목을 받았다. 그는 남자 단축마라톤(20km)에서 대회 신기록인 1시간 5분 48초를 기록하면서 대회 첫 금메달을 땄다. 이틀 뒤 제작된 정부 홍보영상인 <대한뉴스> 제692호는 장병권을 박정희 다음으로 비중 있게 거명했다. 이는 그 시절 전국체전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 전국체전에서 1967년부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그해 10월 5일 서울에서 개막된 제48회 개막식에 관해 이날 발행된 <경향신문>은 "이번 전국체전의 개회식은 예년에 없이 원색으로 뒤덮인 것이 이색적"이었다면서 "모든 선수단의 대통령을 향한 경례가 히틀러 식의 경례로 바뀐 점"이 특히 눈에 띄었다고 보도했다.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오른팔을 쭉 뻗는 히틀러 경례법이 박정희 면전에서 연출됐던 것이다. 박정희 우상화의 초기 조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69년 10월 28일, 서울에서 제50회 대회가 개막됐다. 3선 개헌 국민투표가 통과된 지 11일 뒤에 개막된 이 대회에서는 박정희뿐 아니라 육영수까지 치켜세우는 이벤트가 벌어졌다. 11월 4일 자 <동아일보>는 "입장식을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은 3천여 한성여고 학생들이 스탠드에 수놓은 카드색숀 플레이"라며 "박 대통령 내외 초상화가 그려졌다"라고 전했다.

박정희 정권은 전국체전을 '국민의 정치적 동원'을 위한 무대로 만들었다. <한국융합과학회지> 2018년 제7권 제4호에 실린 한승백 배재대 외래교수의 논문 '전국체육대회 연설문을 통해 본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의 스포츠'는 박정희가 강조한 것 중 하나를 이렇게 지적한다.

"박정희는 이 같은 정신력을 잘 갖추고 국가를 위해 언제든지 희생할 수 있는 인간을 민주시민이라고 강조하였다. 이 같은 정신력의 강조는 스포츠를 통한 규율형 인간의 생산에 그 목적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전국체전 이벤트를 통해 체제 순응적인 규율형 국민들을 육성하고자 했던 박정희 정권은 3선 개헌이 통과된 직후부터 '육영수 격상'이라는 상징적 장면을 체전 무대에서 연출했다. 이런 양상은 이후의 체전 개막식 때도 되풀이됐다. 육영수의 격상은 박정희 장기집권 움직임과 때를 같이해서 나타난 현상이다.

육영수가 국민적 존숭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또 다른 광경은 영부인배 쟁탈 체육대회다. 대통령영부인배 쟁탈 여자탁구대회, 대통령부인배 전국여자테니스대회, 대통령배 및 대통령부인배 쟁탈 전국남녀배구대회 등은 육영수의 이미지를 외국의 일반적인 영부인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박정희는 형식상으로나마 '선출된 권력'이었지만, 육영수는 그나마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육영수에게 특별한 위상을 보여주는 스포츠 이벤트들이 국가권력의 참여하에 진행됐다.

영부인배 쟁탈대회는 외형상으로는 대한체육회 산하의 체육단체들이 주관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 행사나 다름없었다. 하얀 원피스 차림의 육영수가 시구하는 사진이 실린 1973년 9월 20일 자 <조선일보>는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대통령영부인배 쟁탈 제3회 전국여자테니스대회 개막식에 "김종필 국무총리, 민관식 문교부장관 등"이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제1회 대통령 내외분컵 쟁탈 전국남녀배구대회 실황입니다"라는 첫 코멘트로 시작하는 1970년 5월 2일 자 <대한뉴스> 제774호에는 육영수와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이 참관한 이 대회에서 국세청팀과 국군보안사령부팀이 각각 여자부·남자부 우승을 거두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부인과 대한체육회장이 참관하고 국세청팀·보안사팀이 수상하는 영부인배 대회가 정부 홍보영상의 소재가 된 것이다. 이처럼 영부인배 쟁탈전이 한국 스포츠의 주요 무대가 된 1970년대 초반에 이런 대회를 통해 떠오른 신예들이 테니스의 이덕희와 탁구의 이에리사다.

육영수를 경모(敬母)님으로 부르자는 운동도 있었다. 프란체스카에게 사용된 국모님이나 미국 대통령에 사용되는 퍼스트레이디를 대신해 '육영수 여사'를 '육영수 경모님'으로 부르자는 운동이었다. 경외하는 어머니, 혹은 존경하는 어머니를 뜻하는 이 용어와 관련해 1968년 4월 27일 자 <조선일보>는 "대통령 부인에 대한 존칭을 양지회에서 경모로 정하고 그 보급에 주력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육영수는 공식적으로는 이 호칭을 거절했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육영수의 사조직이 이 운동을 벌였으니, 진심으로 거절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 용어는 널리 확산되지는 못했지만, 금방 사라지지도 않았다. 1997년 11월 7일 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김재규 중앙정보부 차장 내정자는 1973년 12월에 육영수를 경모님으로 불렀다.

청와대 내 야당? 정말 그랬을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젊은 시절 모습.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젊은 시절 모습.연합뉴스

육영수 우상화로 나아가는 움직임들은 그때까지의 북한에도 없었던 현상이다. 김일성 부인인 김정숙에 대한 우상화가 김정일 후계 체제가 확립되는 1970년대 중반에 본격화됐지만, 김정숙이 1949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그것은 고인에 대한 신격화였다. 현직 영부인에 대한 격상 운동은 육영수 사례가 남북한을 통틀어 한반도 최초다. 왕후를 대중적으로 그처럼 떠받드는 일은 조선시대에도 없었던 일이다.

육영수를 국민적 존숭의 대상으로 격상시키는 움직임은 3선 개헌 및 유신체제 구축과 발맞춰 전개됐다. 이는 단순히 육영수를 미화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방향과 보조를 맞췄다. 육영수는 학처럼 사는 듯이, 청와대 내의 야당인 듯이 했지만, 그의 행보는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움직임과 일치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런 점에서 '학'과 '야당'은 기만적인 이미지다.

김건희의 경우에는 남편이 한밤중의 쿠데타에 실패하는 바람에 그 자신이 우상화될 시간적 기회가 없었다. 그에 비해 육영수에게는 1961년 5월 16일부터 1974년 8월 15일까지의 시간이 있었다.

이를 발판으로 육영수는 1968년경부터 국민적 존숭의 대상으로 부각됐고 그는 이 흐름을 거부하지 않았다. 육영수 격상운동은 한국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위태롭게 만드는 박정희 우상화와 거의 비슷한 시점에 시작됐다. 육영수의 영부인 리스크는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제도 밖의 권력, 영부인 리스크 - 실세 영부인, 인성인가 시스템인가

김종성 (지은이), 내일을여는책(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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