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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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AI의 도움을 받는 부분도 있다. 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온갖 그럴싸한 외양·형식의 문서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얼마 전 2학기 평가계획서를 작성하는데, 14쪽의 내용 중에서 대부분은 오려 붙이기만으로 내용을 채워야 했다. 나중에 사소한 트집이 잡히지 않기 위한 표현이나 문구를 다듬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런 작업에 시간을 쏟게 되면, 학생들의 교육 평가를 위한 새로운 평가 방법의 도입이나 평가의 신뢰성이나 타당성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AI는 실제 생산성은 담보하지 못하는 수많은 단순 작업을 줄여준다. 지금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형식을 위해 몇 시간을 소비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간단한 명령 하나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중요시하는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적을 때에도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교육부와 학교 문화, 학부모의 욕망은 보강이나 기본 학력이 더 필요한 학생에게마저 온갖 미사여구가 들어간 칭찬을 요구한다. 교사들의 교육력을 감퇴시키던 이 업무 역시 AI가 대신해 주고 있다.
우려도 있다. 교사의 평가 내용이 무미건조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개성 없는 AI 그림이 금세 식상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학생에게 글자 수를 꽉꽉 채운 긍정적인 내용을 적어줘야 하는 무리한 요구를 AI는 훌륭하게 수행한다. 그런데 우리가 꿈꾸던 교육이 정말 이런 것일까.
AI가 대체하고 교사의 고민과 육필이 묻어 나지 않은 학생부 기록은 이 자료를 보고 학생들을 뽑아야 하는 교수들에게 더 많은 고민과 숙제를 안겨줄 거다. 어떤 학생을 뽑을 건지, 어떤 학생이 뽑혀야 하는지와 관련해 교사의 마음과 교수의 마음이 다르지 않을 거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마음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외양 너머의 본질을 보고 싶어 하고, 그걸 바탕으로 마음의 평가를 내린다.
어렸을 때 교실에 궤도가 있었다. 누가 궤도 글씨를 예쁘게 쓰나 뽐내기도 했다. 이후에 투명 필름을 올려놓고 쓰던 바로 기계(OHP)가 유행했고, 그다음에는 교실에 대형 TV가 설치됐다. 화려한 시청각 자료가(PPT)가 대세가 된 시기도 있다. 이제는 AI가 이 모든 작업을 대신해 주는 시대다.
그런데 교육의 본질과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학에서 인수분해는 여전히 공부해야 하고, 영어에서는 장문과 단문을 보며 해석해야 하고, 국어는 아름다운 시를 읊으며 정서를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한 도구는 그저 도구일 뿐이다.
오늘도 나는 교과서를 들고 칠판에 분필로 핵심 키워드를 적어 가며 할 2학기 수업을 준비한다. 교육에서는 유행보다 우직함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AI가 도구라는 것을 잊지 않을 때, 그 도구가 우리 교육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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