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기후변화로 치솟는 밥상물가와 음식물쓰레기를 주제로 한 공론장에서 '먹거리 순환 시스템 마련'이라는 의제가 도출되었다. 이 의제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동네 모두의 냉장고’라는 사업이 기획됐다.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서울 도봉구에는 시민단체와 복지기관, 지역 활동가, 정치인 등 다양한 시민 주체가 함께 조직한 '기후불평등 대응 네트워크'가 있다. 그 출발점은 2023년, 기후변화로 치솟는 밥상물가와 음식물쓰레기를 주제로 한 공론장('기후불평등 이야기주간 2023')이었다. 당시 채택된 연대선언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하나, 시민으로 존재하는 우리 모두의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
하나, 기후불평등으로 고통받고 소외된 모든 이들도 함께 사는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하나, 우리가 길이고 우리가 대안이다.
당시 공론장을 통해 도출된 의제가 '먹거리 순환 시스템 마련'이었다. 밥상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의 식탁을 돌보고, 가정에서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를 줄이자는 취지였다. 네트워크는 이 의제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동네 모두의 냉장고'라는 사업을 기획해, 현재 도봉구 내 4호점까지 운영하고 있다. 지역에서 버려지는 먹거리를 줄이고(생태적 한계선 지키기), 먹거리 돌봄이 필요한 주민에게 연결하는(사회적 안전망 확보) 이 사업은 주민의 공론과 지역의 연대로 시작되어 도넛도시가 구현된 구체적 단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위기는 한 가지 단면, 한 가지 과업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다면적인 연결과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절실함에서 2026년 '도넛도시 도봉'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도넛도시 도봉의 첫걸음은 지역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워크숍을 열어 지역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 결과 서울시 내 노후주택 비율 1위, 열대야 및 폭염·폭우로 인한 산불과 산사태 등 기후재난 고위험, 그늘이 되어줄 녹지 접근성의 부족 등 우리 동네가 딛고 선 생태적 한계선과 사회적 안전망 지표가 매우 취약한 상황임이 드러났다. 이는 앞서 언급한 변압기 폭발과 정전 같은 일상적 재난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결과였다.
우리는 도넛도시 도봉을 그리며 네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도넛도시는 우리 삶을 둘러싼 모든 범주로 공감의 반경을 넓혀가는 과정이다. 둘째, 기후위기와 삶의 불평등에 맞서 대응·회복·적응을 이야기하고, 모두의 좋은 삶을 위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셋째, 데이터가 완전하지 않더라도 함께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지역을 이해하고 거버넌스(다양한 주체들의 협치)를 통해 같은 눈높이를 맞춰가는 길이다. 넷째, 모든 이가 반드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안녕과 생태적 한계를 분리하지 않는 통합적 시각, 그리고 지역의 가능성을 함께 찾아가는 연대의 힘을 다질 수 있다.
현재는 여러 영역의 시민 주체가 함께하고 있지만, 기후위기 시대의 지속가능성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에서 나온다는 믿음으로 시민-행정-정치-연구가 함께하는 협력적 거버넌스로 끊임없이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도넛모델을 도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려면 복지와 생태를 동시에 고려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유럽 등에서는 복지 정책을 설계할 때 생태적 이슈를 함께 고려하려는 시도가 정책 설계와 커뮤니티 공론장에서 일부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아직 복지와 기후·생태를 별개의 문제로 나눠서 다뤄왔다. 이는 주민의 실질적인 좋은 삶, 기후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삶을 지키는 데 큰 난관으로 작용한다. 이제는 지역의 모든 이슈를 복지·생태적 관점으로 함께 들여다보고, 정책 설계자와 지역 커뮤니티, 주민 모두가 이를 자신의 권리이자 역할로 인식하며 지역의 힘을 길러야 한다.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 지역사회에는 어떤 생명력이 필요할까. 가장 먼저, 가장 깊고 아프게 삶을 마주하는 이들부터 서로 돌보기 위해, 지역의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체가 되어 도시의 모습을 새롭게 그려가는 것, 그것이 도넛도시 도봉의 방향이자 출발점이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사람다운 삶을 지켜내며 살아가는 도시를 상상하는 것, 지금부터 시작해 보자.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의 위기를 함께 넘어서는 힘은, 공감의 반경을 넓혀 서로를 돌보는 마음에서 시작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는 어떤 도시에 살고 싶은가? 우리는 어떤 지역사회에 존재하고 싶은가?
▲김난미 / 리을미음 대표
본인
저자 소개 : 김난미는 앎과 삶을 연결하는 겹받침 '리을미음' 대표로 활동하며, 한신대 일반대학원(협) 박사과정 중에 있습니다. 최근 주요 관심사로는 탈성장, 커먼즈, 기후돌봄, 지역순환경제, 사회연대경제, 지역공동체로 만들어가는 모두의 좋은 삶, 협동하는 삶 등이며, 이를 위한 근본적 전환을 궁리하고 있습니다. 2025년까지 20년 차 사회복지사로 활동하며 지역복지운동, 생태복지, 복지 커먼즈를 실천해 왔으며 현재는 지역 내 기후불평등 대응 네트워크 '도넛도시 도봉' 운영 총괄,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과 사회적협동조합 도전연구소의 이사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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