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새덕후'에 지난달 25일 올라온 "고양이, 이젠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 현재는 제목이 "고양이,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로 바뀌었다.
오마이뉴스
혐오는 생각보다 얄팍하고 허술한 인식이기도 해서, 그 본질이 표면에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유튜버 새덕후 김어진씨의 주장이 그렇다. 그는 최근 '고양이, 이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는데 이 영상의 수정 전 제목은 '고양이, 이젠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였다. 김씨는 고양이들이 멸종 위기의 조류를 무차별로 사냥하고 있는데, 그런 고양이의 수를 줄이려면 살처분이 불가피하다며, 그게 새들을 보호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더해 김씨는 자신의 영상과 비슷한 취지의 국회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소유자 없는 고양이'를 중성화 이후 방사하는 게 아니라 '보호기간 경과 후 법정 절차에 따른 처리 대상'으로 분류하여 그에 따른 절차를 밟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절차에는 안락사가 포함된다.
이에 대해 김씨는 '소유자 없는 개'는 법정 절차에 따른 처리 대상으로 두지만 고양이는 예외로 두기에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금의 TNR(포획, 중성화, 방사의 줄임말로 고양이의 개체수를 인도적으로 조절하는 방식을 뜻함) 사업이 효과가 없어서 길고양이 수를 줄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이 정책도 중단 또는 축소해야 하며 같은 맥락에서 길고양이 '무단 급식'도 제한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무슨 법령에 근거하여 그걸 '무단'이라 칭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관련 기사:
'40년 새 사랑'도 화낸 '새덕후' 영상... "새 위해 고양이 죽이자? 그게 혐오" https://omn.kr/2j6pk)
왜 결론이 반드시 그래야 하는가
김씨의 영상과 청원에 동의할 수 없지만, 그의 주장이 허위나 잘못된 정보만을 기반으로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결론이 고양이를 살처분하거나 안락사로 이르는 관리 체계에 밀어 넣자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고양이가 개와 다르게 취급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개와 고양이 간에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 '소유자 없는 개'를 안락사시키지 않을 대안이나 애초에 유기견을 대폭 줄일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나. 형평성에 맞지 않으니 고양이도 안락사 대상으로 분류하자? 결론적으로는 공평하게 똑같이 죽게 만들자? 과연 이게 필연적인 결론이 될 수 있을까.
TNR 정책을 축소하고 '무단 급식'을 못 하게 하자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TNR 정책의 존재 가치는 명백하다. 가두고 죽이는 것보다 그게 인도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에 김씨의 주장처럼 지금의 TNR 정책이 효과가 떨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TNR에 대한 김씨의 주장이 현직 수의사들에게 비판을 받았음을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인도적인 정책이 효과가 없으면 그렇다고 비(非)인도적으로 태도를 바꾸면 되는 것일까. 보통은 그 인도적인 정책을 개량해서 더욱 실질적인 효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한다. 왜 답이 '제한과 중단'이어야 하는가. 만약에 길고양이들을 보살피는 사람들의 밥 주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 그럼 그걸 '무단'이라 부르며 법으로 제한하자고 할 게 아니라 문제없이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글을 시작하며 언급했듯 혐오는 생각보다 얄팍하고 허술한 인식이라서 그 본질이 표면에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경우가 많다. 김씨가 제시하는 근거를 일부 사실로 인정해도 그의 주장대로 결론이 나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당연히 '새 보호'라는 동기와도 김씨의 주장은 제대로 연결되지 않으며, 그저 길고양이가 사라지길 바랄 뿐인 것처럼 여겨진다. '죽이기와 굶기기'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철저히 비(非)인도적인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말이다. 이건 단순히 불쾌하거나 부적절한 주장이라 할 수 없다. 이건 위험한 주장이다.
또한 이와 같은 주장에는 전형적인 방식의 혐오와 멸시가 깔려있다. 나는 이걸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혐오와 멸시를 나는 이미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 나는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아오며, 김씨와 같은 주장을 가진 이들이 고양이를 대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나를 대하는 이들을 만났다.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성애의 유해함과 비정상성을 입증하고자 했다. 사실과 허위를 교묘히 섞어 근거를 만든 다음 동성애자가 이 사회의 보건과 건강, 문화적 건전성 그리고 아이들의 안전과 미래를 위협한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그리고 결론은 늘 한결같았다. 동성애는 하면 안 된다. 이 사회에 동성애자의 자리는 없다. 그들은 여기서 사라져야 한다. 어떤 방식을 따르건 간에.
혐오와 멸시가 만든 역사를 돌아보고 극단주의를 지양해야 한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CSD)에 차량이 돌진해서, 1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당했다. 지난 7월 26일 사고 현장 인근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7월 25일 '베를린 프라이드'로 알려진 독일의 성소수자 자긍심 축제인 베를린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CSD) 행사장에 차량 한 대가 돌진했다. 참가자 1명이 목숨을 잃었고 29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심적 충격을 받은 사람까지 더하면 피해는 막심하다. 범행의 동기는 아직 추측의 영역에 남겨져 있긴 하나, 가해자의 이전 행적을 보면 그는 정치적 극단주의에 지나치게 빠져있었고, 이와 관련하여 범죄 전과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가 CSD 행사장에 고의적으로 차를 몰고 돌진했을 때부터 누구를 죽이고 무엇을 붕괴시키기 위해 그런 짓을 했는지는 뻔히 드러나 있었다. 그는 그 행사장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베를린에서의 비극적인 사건을 보며 지금 여기서 발생 중인 소위 '길고양이 논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지 베를린에서의 일뿐이랴. 성소수자들뿐만 아니라 이주민, 장애인, 소수 민족, 비(非)백인 특히 흑인들에게는 유해한 존재로 지목되고 사회에서 격리되어 따로 살거나 퇴거하길 강요받은 역사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는 때로 그들을 그냥 죽였다. 사람들은 종종 잊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나치의 홀로코스트 당시 장애인, 집시, 동성애자들도 함께 수용소에 갇혔다 . 시계를 돌려 현재로 온다고 비슷한 일이 없겠는가. 자국민에게까지 총을 쏴서 사회에 충격을 안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주요 활동 목적이 무엇인가. 그 땅에서 미국인이 아닌 이주민을 쫓아내는 것이다.
특정 집단이나 존재가 사회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일정 부분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모든 과정과 결론은 공존을 목표로 하며 인도적이고 다원적이며 생태적이고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답은 이런 식으로 찾아야 한다. 김씨의 사례처럼 아예 존재를 절멸하는 식의 극단적인 결론을 먼저 내리고는 이것만이 답이라 주장해선 안 된다. 앞서 보지 않았나. 그런 위험한 이야기들이 판을 쳤던 세상이 결국 어떤 역사를 만들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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