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11시에 마산합포구 벽화마을의 온도, '39.5'에 육박하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연합뉴스
도시의 표준은 '부부 한 달 현지 생활비 150만 원 이하'여야 한다. 교통비를 포함해도 200만 원을 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를 넘으면 특권층만 이용할 수 있으니까 넘지 말아야 한다. 주택은 35~42제곱미터 부부형을 중심으로 1인형과 가족형을 더한다. 한국과 러시아가 연해주에 공동 모듈공장을 세워 러시아 목재·철강과 한국의 욕실·창호·공조·통신 기술을 결합한다. 영하 30도의 겨울도 견디는 사계절 주택이어야 한다.
다차는 값비싼 별장보다는 생활비를 낮추는 제도다. 각 집에는 작은 텃밭을 두되 노인에게는 자급을 강요하지 않는다. 개인 텃밭, 전문가가 운영하는 마을 공동농장, 주변 러시아 농가와의 계약재배를 결합하고, 공동식당·목욕탕·세탁실·공구실·냉장저장고를 함께 쓰면 편리하게 살 수 있다. 여름 신선식품의 절반, 연간 식품의 25~30퍼센트를 권역 안에서 조달할 수 있기도 하다.
에너지는 사할린 가스를 축으로 삼을 수 있다. 나홋카에 소규모 액화천연가스(LNG) 인수·저장기지를 두고 각 계절도시에 공급해 열병합발전과 지역난방에 쓴다. 태양광·풍력·목재 부산물·바이오가스를 결합해 점점 가스 의존을 낮추는 방향으로 간다. 한국의 고단열 모듈과 에너지관리 기술로 러시아 가스를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도시를 만드는 셈이다.
교통편은 처음에 배가 주력이고 항공이 보조가 될 것이다. 부산·동해·속초와 나홋카·블라디보스토크 사이에 대형 카페리를 띄워 장기체류 가족이 차와 생활도구를 가져갈 수 있게 한다. 도시 안에서는 전기버스와 공유차를 중심으로 한다. 장기적으로 남북관계가 풀리면 북한을 내리지 않고 통과하는 봉인열차와 봉인도로를 협상할 수 있다. 북한에는 통과료와 정비·물류수입을 주고, 한국에는 부산에서 연해주까지 이어지는 생활도로를 연다.
돈은 이용권을 모아 조달해야 한다. 개인은 30~50년 계절이용권을 출자하고, 폭염 취약 노인과 아동에게는 국가와 지자체가 2~4주의 공공체류권을 제공한다. 국민이 매달 일정액을 적립하는 기후이동계정을 만들고 정부가 취약계층 적립을 매칭한다. 고급형 주택은 전체의 10~15퍼센트로 제한하되 더 높은 토지사용료를 받아 공공형 다차를 보조한다.
기후가 더워질수록 서늘하고 물이 있으며 동아시아 대도시에서 가까운 땅의 가치는 올라간다. 그러니 지금이 기회다. 개발 전부터 한러 공동조사권, 우선협상권, 환경보전구역, 장기 이용료 산정공식을 협정에 묶어야 한다. 20년 뒤 연해주의 여름이 국제적인 희소자산이 되었을 때도 한국의 표준형 이용료가 폭등하지 않도록, 물가연동 상한과 공공물량을 예약해야 하는 방안도 있다. 미래의 접근권을 선점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북한, 넘어야 할 문제들
문제는 정치다. 러시아의 전쟁과 제재, 외국인 재산권, 송금과 보험, 지방정부와 연방정부의 권한, 산불·태풍·수자원과 생태보전이 모두 선결과제다. 그러니 민간 개발회사가 먼저 토지를 사서는 안 된다. 한러 양국이 토지 장기사용권, 투자보호, 출입국, 의료·보험, 분쟁해결, 기반시설 분담 등을 먼저 짚어야 한다. 이에 관한 조약 또는 그에 준하는 정부 간 협정으로 보장한 뒤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다.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북한 변수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북한 노동자들은 시베리아와 연해주 지역에 상당수 진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단 경제적으로 이들과 연계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고 주민 간 우발 접촉, 망명·구조 요청, 정보·사이버 위험에 대한 한러 공동 매뉴얼도 필요하다. 반면 제재가 해제된다면, 북한을 값싼 노동력으로 쓰지 말고 직접임금과 동일노동기준 아래 세 번째 참여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계획이 성공해도 문제다. 한국인 100만 명은 연해주 현지 인구에 비해 매우 많은 숫자다. 이 관광도시가 '한국령 자치도시'처럼 보이는 순간 러시아의 경계와 지역주민의 반발을 부를 것이다. 행정·치안·토지주권은 러시아에 두고 운영기구를 공동화하며, 병원·학교·도로와 축제는 현지인에게 연중 개방해야 한다. 한국인이 비우는 계절에는 러시아인이 주택을 이용해야 한다. 우리는 땅의 주인이 아니라 여름의 손님이자 도시의 공동 건설자여야 한다.
국내에서는 "그 돈이면 평창과 태백을 살리라"는 반론이 나올 것이다. 맞는 지적이지만 양자택일할 문제가 아니다. 강원 산간은 첫 번째 기후피난망이며, 연해주는 규모와 온도차와 장기 확장성이 다른 두 번째 망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오히려 강원권을 한국형 모듈 다차, 공동농업, 폭염취약계층 체류권의 국내 실험장으로 삼을 수 있다. 강원에서 검증한 주택과 운영방식을 연해주로 가져가고, 연해주에서 생긴 북방 관광·축제 수요를 동해·속초 항만과 강원 철도에 연결한다.
환경론의 반론도 일리가 있다. 기후위기를 피하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건 자기모순이다. 기존 항구와 쇠퇴한 정착지를 먼저 재생하고, 신규 개발은 작은 군집을 대중교통으로 잇는 방식으로 제한해야 한다. 시호테알린의 야생동물 이동로, 하천과 산림, 산불위험을 개발불가선으로 정하고 관광객 수가 아니라 물 사용량과 생태수용력으로 도시의 상한을 정해야 한다.
▲다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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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한반도를 두고 오랫동안 북쪽이 막힌 반도라 설명해 왔다. 그러나 북쪽 너머에는 세계에서 가장 넓고 인구가 적은 공간, 서늘한 여름, 산림과 바다, 에너지가 있다.
과거 한러 협력은 가스관·철도·항만처럼 물건을 움직이는 사업에 집중했다. 정세가 나빠지면 모두 멈췄다. 이번에는 사람이 움직이고 교류가 쌓여야 한다. 매년 100만 명이 한두 달을 함께 살면 한국어를 배우는 러시아 청년, 러시아어를 익힌 한국 가족, 공동기업과 학교와 예술단이 생긴다. 거래는 중단될 수 있지만 서로의 여름을 맡아주는 관계는 쉽게 끊기지 않는다.
우리가 러시아에서 얻어야 할 가장 귀한 것은 가스나 땅만이 아니다. 한반도의 여름이 너무 뜨거워졌을 때 국민이 북쪽으로 건너가 살아갈 수 있다는 선택지다.
기후위기는 한국의 여름을 국가적 문제로 끌어왔다. 답도 국토정책의 크기로 내놓아야 한다. 한러 양국이 '동해 북방생활권 공동조사위원회'를 구성해 3년간 기후·수자원·생태·교통·에너지·북한 위험을 조사하고, 연간 100만 명의 기후이동권을 보장하는 30년 공동계획을 수립해 보자.
상상은 크되 시작은 정확해야 한다. 먼저 지도를 만들고, 수요를 묻고, 러시아 주민의 동의를 구하고, 한국 부부가 실제로 150만 원으로 살 수 있는지 계산해 보자. 그러나 조사부터 100만 명을 전제로 해야 한다. 크게 잡아야 항만과 에너지, 외교와 복지, 문화와 국토의 답이 나온다.
덧. 해마다 8월에는 에딘버러의 페스티벌 프린지 같은 걸 여기서 하자. 다른 나라 여행자들까지 몰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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