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06 09:18최종 업데이트 26.08.0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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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의 모습
블라디보스토크의 모습Unsplash

"야, 너 들었어? 서울이 35도를 넘고 밤에도 27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때, 비행기로 두 시간 남짓 건너간 외국의 바닷가에서는 낮 18~23도, 밤 14~18도의 여름을 보낼 수 있대. 호텔도 아니고 작은 집과 텃밭이 있는 다차(러시아식 간이 별장)에서 부부가 한 달 150만 원 안팎으로 살고, 낮에는 숲과 바다를 걷고 밤에는 세계적인 공연을 본다더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러시아 연해주 동해안 이야기다. 프레오브라제니예 일대의 7월 평균 낮 기온은 약 18도, 가장 따뜻한 8월에도 평균 최고기온이 대체로 20~23도 수준이다. 차가운 바다와 해풍이 거대한 자연 냉방기 역할을 한다. 한국의 한여름과 계절은 같지만 체감은 초가을에 가깝다.


한국은 여름을 피해 갈 곳이 적다. 서울과 부산의 열대야가 길어지고 에어컨이 생존 장치가 될수록, 국민은 같은 위도와 같은 전력망 안에서 더 세게 냉방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부자는 홋카이도와 캐나다로 떠날 수 있지만 평범한 은퇴부부와 아이들은 피할 곳이 없다. 기후위기는 이동 가능성의 불평등이다.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국민이 계절적으로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생활공간을 확보하는 방법을 생각해 봤다. 이를 '가변국토'라고 부르고 싶다. 겨울에는 한반도 안에서 살고, 폭염기에는 북쪽으로 생활권을 늘리는 방식이다.

그 첫 후보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연해주 동해안이다. 나홋카 북방에서 라조·프레오브라제니예를 거쳐 올가만에 이르는 해안과 배후 구릉지에 5~8개의 계절도시를 분산 배치한다. 목표는 연간 이용자 100만 명, 여름 최대 동시체류 50만 명, 장기적으로 100만 명이다. 고급 리조트가 아니라 러시아식 다차와 한국식 모듈주택을 결합한 저비용 제2생활권이다.

이 계획의 본질은 한국이 30년 뒤에도 사용할 수 있는 '여름 공간'을 지금부터 확보하는 것이다. 러시아에는 극동을 살아 있게 할 장기 수요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국은 매년 찾아오는 100만 명의 소비·교통·의료·문화 수요를 러시아에 주고, 러시아는 토지의 장기사용권과 항만·도로·전력·상수도 같은 기간망을 제공한다.

자원이 많은 나라가 공급을 지배하듯,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대규모 인구는 개발의 방향을 바꾼다. 연간 100만 명이 평균 30~60일 머문다면 수천만 박의 숙박과 식사, 의료, 교통, 공연 수요가 매년 되풀이된다. 그 수요를 한국이 협동조합 이용권·공공체류권·기업복지·연금형 적립으로 조직해 장기 예약한다면, 기반시설 시장 자체를 들고 협상하는 셈이다.

박정재 서울대 교수의 <한국인의 기원>은 기후가 동북아 인구를 남북으로 움직였다는 큰 그림을 제시한다. 한반도와 아무르강 사이에서 여러 세대의 이동과 혼합이 반복됐다. 현대의 '계절도시'는 한반도인이 영원히 한 지점에 고정된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에서 착안했다.

에어컨만으로는 여름을 이길 수 없다

뜨거운 도시에 인구가 몰려 있는 채로 전기로 온도를 낮추는 방식은 전력수요와 탄소배출을 늘린다. 고령자에게 장기간의 열대야는 건강에 위협이 되고, 아이에게도 두 달의 여름이 실내 냉방 공간에 갇히는 계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 연해주인가. 홋카이도는 편리하지만 100만 명 규모가 되면 일본의 관광·주택 인프라에 의존하는 소비사업이 되기 쉽다. 중국 동북부는 정치사회적 불확실성이 크다. 아무르강 저지대는 습지·범람원과 여름 해충 문제가 있다. 반면 연해주 동해안은 차가운 바다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서늘하고, 한국과 시차가 없으며, 산과 바다와 배수 좋은 구릉을 함께 갖는다. 서울에서 멀리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동해의 북쪽 끝으로 여름의 온도대를 옮기는 것이다.

한여름의 반전 서울 35도·열대야의 시간에 연해주 동해안은 낮 18~23도, 밤 14~18도 안팎. 해무와 비는 있지만 방 안에 갇히지 않고 숲·바다·텃밭을 누릴 수 있다. 이 온도차가 기후이동권의 가장 직관적인 이유다.

러시아에도 절실한 이유가 있다. 러시아 극동은 국토가 넓고 인구가 적다. 러시아는 극동개발을 21세기의 국가 우선사업으로 부르지만, 극동에 도로를 놓아도 그것을 매일 쓸 사람이 부족하다. 한국의 계절인구는 중국의 정주인구와 다른 방식으로 러시아에 도움이 된다. 영토와 행정주권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소비와 기술과 문화수요를 가져오는 방언이다. 에너지 거래에서 생활협력으로 한국과의 관계를 넓힐 수도 있다.

지난 2일 오전 11시에 마산합포구 벽화마을의 온도, '39.5'에 육박하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2일 오전 11시에 마산합포구 벽화마을의 온도, '39.5'에 육박하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연합뉴스

도시의 표준은 '부부 한 달 현지 생활비 150만 원 이하'여야 한다. 교통비를 포함해도 200만 원을 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를 넘으면 특권층만 이용할 수 있으니까 넘지 말아야 한다. 주택은 35~42제곱미터 부부형을 중심으로 1인형과 가족형을 더한다. 한국과 러시아가 연해주에 공동 모듈공장을 세워 러시아 목재·철강과 한국의 욕실·창호·공조·통신 기술을 결합한다. 영하 30도의 겨울도 견디는 사계절 주택이어야 한다.

다차는 값비싼 별장보다는 생활비를 낮추는 제도다. 각 집에는 작은 텃밭을 두되 노인에게는 자급을 강요하지 않는다. 개인 텃밭, 전문가가 운영하는 마을 공동농장, 주변 러시아 농가와의 계약재배를 결합하고, 공동식당·목욕탕·세탁실·공구실·냉장저장고를 함께 쓰면 편리하게 살 수 있다. 여름 신선식품의 절반, 연간 식품의 25~30퍼센트를 권역 안에서 조달할 수 있기도 하다.

에너지는 사할린 가스를 축으로 삼을 수 있다. 나홋카에 소규모 액화천연가스(LNG) 인수·저장기지를 두고 각 계절도시에 공급해 열병합발전과 지역난방에 쓴다. 태양광·풍력·목재 부산물·바이오가스를 결합해 점점 가스 의존을 낮추는 방향으로 간다. 한국의 고단열 모듈과 에너지관리 기술로 러시아 가스를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도시를 만드는 셈이다.

교통편은 처음에 배가 주력이고 항공이 보조가 될 것이다. 부산·동해·속초와 나홋카·블라디보스토크 사이에 대형 카페리를 띄워 장기체류 가족이 차와 생활도구를 가져갈 수 있게 한다. 도시 안에서는 전기버스와 공유차를 중심으로 한다. 장기적으로 남북관계가 풀리면 북한을 내리지 않고 통과하는 봉인열차와 봉인도로를 협상할 수 있다. 북한에는 통과료와 정비·물류수입을 주고, 한국에는 부산에서 연해주까지 이어지는 생활도로를 연다.

돈은 이용권을 모아 조달해야 한다. 개인은 30~50년 계절이용권을 출자하고, 폭염 취약 노인과 아동에게는 국가와 지자체가 2~4주의 공공체류권을 제공한다. 국민이 매달 일정액을 적립하는 기후이동계정을 만들고 정부가 취약계층 적립을 매칭한다. 고급형 주택은 전체의 10~15퍼센트로 제한하되 더 높은 토지사용료를 받아 공공형 다차를 보조한다.

기후가 더워질수록 서늘하고 물이 있으며 동아시아 대도시에서 가까운 땅의 가치는 올라간다. 그러니 지금이 기회다. 개발 전부터 한러 공동조사권, 우선협상권, 환경보전구역, 장기 이용료 산정공식을 협정에 묶어야 한다. 20년 뒤 연해주의 여름이 국제적인 희소자산이 되었을 때도 한국의 표준형 이용료가 폭등하지 않도록, 물가연동 상한과 공공물량을 예약해야 하는 방안도 있다. 미래의 접근권을 선점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북한, 넘어야 할 문제들

문제는 정치다. 러시아의 전쟁과 제재, 외국인 재산권, 송금과 보험, 지방정부와 연방정부의 권한, 산불·태풍·수자원과 생태보전이 모두 선결과제다. 그러니 민간 개발회사가 먼저 토지를 사서는 안 된다. 한러 양국이 토지 장기사용권, 투자보호, 출입국, 의료·보험, 분쟁해결, 기반시설 분담 등을 먼저 짚어야 한다. 이에 관한 조약 또는 그에 준하는 정부 간 협정으로 보장한 뒤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다.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북한 변수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북한 노동자들은 시베리아와 연해주 지역에 상당수 진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단 경제적으로 이들과 연계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고 주민 간 우발 접촉, 망명·구조 요청, 정보·사이버 위험에 대한 한러 공동 매뉴얼도 필요하다. 반면 제재가 해제된다면, 북한을 값싼 노동력으로 쓰지 말고 직접임금과 동일노동기준 아래 세 번째 참여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계획이 성공해도 문제다. 한국인 100만 명은 연해주 현지 인구에 비해 매우 많은 숫자다. 이 관광도시가 '한국령 자치도시'처럼 보이는 순간 러시아의 경계와 지역주민의 반발을 부를 것이다. 행정·치안·토지주권은 러시아에 두고 운영기구를 공동화하며, 병원·학교·도로와 축제는 현지인에게 연중 개방해야 한다. 한국인이 비우는 계절에는 러시아인이 주택을 이용해야 한다. 우리는 땅의 주인이 아니라 여름의 손님이자 도시의 공동 건설자여야 한다.

국내에서는 "그 돈이면 평창과 태백을 살리라"는 반론이 나올 것이다. 맞는 지적이지만 양자택일할 문제가 아니다. 강원 산간은 첫 번째 기후피난망이며, 연해주는 규모와 온도차와 장기 확장성이 다른 두 번째 망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오히려 강원권을 한국형 모듈 다차, 공동농업, 폭염취약계층 체류권의 국내 실험장으로 삼을 수 있다. 강원에서 검증한 주택과 운영방식을 연해주로 가져가고, 연해주에서 생긴 북방 관광·축제 수요를 동해·속초 항만과 강원 철도에 연결한다.

환경론의 반론도 일리가 있다. 기후위기를 피하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건 자기모순이다. 기존 항구와 쇠퇴한 정착지를 먼저 재생하고, 신규 개발은 작은 군집을 대중교통으로 잇는 방식으로 제한해야 한다. 시호테알린의 야생동물 이동로, 하천과 산림, 산불위험을 개발불가선으로 정하고 관광객 수가 아니라 물 사용량과 생태수용력으로 도시의 상한을 정해야 한다.

다차의 모습
다차의 모습Unsplash

한국인은 한반도를 두고 오랫동안 북쪽이 막힌 반도라 설명해 왔다. 그러나 북쪽 너머에는 세계에서 가장 넓고 인구가 적은 공간, 서늘한 여름, 산림과 바다, 에너지가 있다.

과거 한러 협력은 가스관·철도·항만처럼 물건을 움직이는 사업에 집중했다. 정세가 나빠지면 모두 멈췄다. 이번에는 사람이 움직이고 교류가 쌓여야 한다. 매년 100만 명이 한두 달을 함께 살면 한국어를 배우는 러시아 청년, 러시아어를 익힌 한국 가족, 공동기업과 학교와 예술단이 생긴다. 거래는 중단될 수 있지만 서로의 여름을 맡아주는 관계는 쉽게 끊기지 않는다.

우리가 러시아에서 얻어야 할 가장 귀한 것은 가스나 땅만이 아니다. 한반도의 여름이 너무 뜨거워졌을 때 국민이 북쪽으로 건너가 살아갈 수 있다는 선택지다.

기후위기는 한국의 여름을 국가적 문제로 끌어왔다. 답도 국토정책의 크기로 내놓아야 한다. 한러 양국이 '동해 북방생활권 공동조사위원회'를 구성해 3년간 기후·수자원·생태·교통·에너지·북한 위험을 조사하고, 연간 100만 명의 기후이동권을 보장하는 30년 공동계획을 수립해 보자.

상상은 크되 시작은 정확해야 한다. 먼저 지도를 만들고, 수요를 묻고, 러시아 주민의 동의를 구하고, 한국 부부가 실제로 150만 원으로 살 수 있는지 계산해 보자. 그러나 조사부터 100만 명을 전제로 해야 한다. 크게 잡아야 항만과 에너지, 외교와 복지, 문화와 국토의 답이 나온다.

덧. 해마다 8월에는 에딘버러의 페스티벌 프린지 같은 걸 여기서 하자. 다른 나라 여행자들까지 몰려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의 전문은 피렌체의식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3108

필자 김현종은 언론인과 정당인을 거쳐 메디치미디어를 2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다. 현재 피렌체의식탁 발행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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