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때도, 촬영 이동중에도 계속 돌렸던 묵주. 갈색 묵주는 엄마가 주신 것이다.
차유진
성당으로 향했다. 봉헌초를 켜고 기도했다. 길을 걷다가도, 운전하다 신호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화살기도를 드렸고,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기도는 무엇이든 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직이 말을 걸었다.
"예수님. 성경에서 보여주셨던 기적을 우리 엄마에게도 허락해 주세요. 당신의 손으로 엄마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낫게 해주세요."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이전과 달리 밝은 얼굴로 기지개를 펴며 일어나셨다.
"밤새 정말 좋은 꿈을 꿨어. 꿈인데도 너무 생생했어. 생전에 존경하던 김수환 추기경님이 내 앞에 오셔서 아픈 곳에 손을 얹어 주셨어."
기도에 응답해 주신 걸까. 그날 이후로 신기한 일이 시작됐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가장 먼저 듣는 말은 하나였다.
"어머니 어떠세요?"
그리고 빠짐없이 이어지는 한마디.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들은 정말 알고서 한 말이었을까. 아니면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해 건넨 덕담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그 말은 주저앉을 뻔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들은 응원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엄마에게 전해 드렸다.
"다들 괜찮아지실 거래."
"모두 기도하고 있대."
엄마 역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되찾으셨다. 누렇게 변했던 얼굴빛에도 다시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마치 시들어 있던 화초가 촉촉한 물을 머금고 다시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지옥 같은 2주가 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오히려 서로를 더 깊이 의지하고, 더 많이 사랑하며, 더 자주 웃게 된 시간이었다.
운명의 검사 결과 날. 엄마와 함께 진료실 문을 열었다. CT 영상을 바라보던 의사가 "허..." 하고 짧은 숨을 내뱉었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잠시 침묵하던 의사가 화면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참 신기하네요.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거의 다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복수만 조금 남아 있네요. 약 드시고 3개월 뒤에 추적검사해 봅시다."
진료실을 나서자 긴장이 풀리며 그제야 허기가 밀려왔다. 병원 푸드코트에서 호떡을 한 입 베어 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목을 축였다. 엄마는 이제껏 먹어 본 호떡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중 가장 맛있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엄마와 마주 앉아 먹는 저녁밥
집에 와서 소식을 기다려 준 한 분 한 분께 전화를 드려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셨다. 그리고 함께 기도와 응원을 보내 준 분들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으셨다. 불교 신자도, 개신교 신자도, 천주교 신자도 종교를 가리지 않았다. 오직 엄마가 다시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기도해 주셨다. 엄마는 한결 편안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기도해 주니 백 살까지 살겠네."
나는 이 모든 것을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누군가는 우연이라 말할 수도 있고,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람은 혼자 버티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지난 2주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것이었다.
"어머니 어떠세요?"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기적은 거창한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한마디, 진심 어린 기도와 응원은 보이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이어 주고, 끝내 한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와 마주 앉아 저녁밥을 먹는다. 엄마가 정성껏 만들어 주신 음식을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자칫 잃어버릴 뻔했던 평범한 일상이 오늘도 선물처럼 내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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