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05 16:54최종 업데이트 26.08.0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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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연극으로 데뷔해 영화와 연극, 드라마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차유진의 사는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지난 7월 엄마가 몸이 자주 축 늘어지고 진땀이 난다고 해서 동네 병원을 찾았다. 피검사 결과지를 받아든 의사와 간호사의 움직임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간수치가 3배 정도 올라있어요. CT 검사부터 받아보시죠."


CT 촬영을 마친 뒤, 의사는 큰 병원으로 가보라며 진료 의뢰서를 건넸다. 종이 위에 적힌 의사 소견 한 줄이 눈에 박혔다.

"간경화가 의심되니 초음파 및 정밀검사 요청."

86세 엄마 앞에서 울음이 터지다

서둘러 신촌 세브란스병원 진료를 예약했다. 가져간 CT 영상을 바라보는 의사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복수도 차 있고, 황달도 보입니다. 담석도 있고요. 다만 조영 CT 검사를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설명을 듣는 내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엄마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식탁에 마주 앉는 순간, 끝내 참았던 눈물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엄마, 휠체어를 타도 좋으니까 나랑 오래 같이 있자."

엄마는 올해 여든여섯이다.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이별이 찾아오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자식으로서 충분한 효도도 다하지 못했다는 마음이 더욱 엄마의 시간을 붙잡았다. 다음 날 드라마 첫 촬영이라 새벽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한숨도 이루지 못한 채 밤을 지새웠다.

촬영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가 사경을 헤매듯 힘겨워하고 계셨다.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와 엄마를 붙잡고 소리 내어 울었다.

"엄마, 죽지 마. 엄마 없으면 나도 못 살아."

엄마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셨다. 그리고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셨다. '너를 두고 내가 어떻게 가니...!'라는 근심 어린 눈빛으로.

내가 이토록 극심한 공포가 밀려온 이유는 8년 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한 달 만에 급성 위암 말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순식간에 성벽이 무너지듯 병세가 악화되는 아버지 앞에서 어떻게든 시간을 붙잡아 보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마치 전조처럼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하나둘 고장 나기 시작했다. 휴대전화가 고장 나고, 자동차가 멈췄고, 현관 도어록도 작동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항 속 물고기들까지 차례로 죽었다.

이번에도 이상하리만큼 비슷했다. 환풍기가 고장 나고, 자동차에 문제가 생겼다. 거실 탁자 유리도 이유 없이 금이 가 깨졌다. 또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그때의 기억이 기시감처럼 밀려왔다. 하나라도 불길한 예감을 지우고 싶어 서둘러 고장 난 것들을 모두 고쳤다.

1주일 뒤, 엄마는 조영 CT 검사를 받으셨다. 이제 남은 것은 결과를 기다리는 2주뿐이었다. 하루하루 피가 말라가는 시간들. 엄마는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하고 담담하게 말씀하셨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마음뿐이었다.

2주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

걸을 때도, 촬영 이동중에도 계속 돌렸던 묵주. 갈색 묵주는 엄마가 주신 것이다.차유진

성당으로 향했다. 봉헌초를 켜고 기도했다. 길을 걷다가도, 운전하다 신호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화살기도를 드렸고,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기도는 무엇이든 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직이 말을 걸었다.

"예수님. 성경에서 보여주셨던 기적을 우리 엄마에게도 허락해 주세요. 당신의 손으로 엄마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낫게 해주세요."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이전과 달리 밝은 얼굴로 기지개를 펴며 일어나셨다.

"밤새 정말 좋은 꿈을 꿨어. 꿈인데도 너무 생생했어. 생전에 존경하던 김수환 추기경님이 내 앞에 오셔서 아픈 곳에 손을 얹어 주셨어."

기도에 응답해 주신 걸까. 그날 이후로 신기한 일이 시작됐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가장 먼저 듣는 말은 하나였다.

"어머니 어떠세요?"

그리고 빠짐없이 이어지는 한마디.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들은 정말 알고서 한 말이었을까. 아니면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해 건넨 덕담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그 말은 주저앉을 뻔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들은 응원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엄마에게 전해 드렸다.

"다들 괜찮아지실 거래."
"모두 기도하고 있대."

엄마 역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되찾으셨다. 누렇게 변했던 얼굴빛에도 다시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마치 시들어 있던 화초가 촉촉한 물을 머금고 다시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지옥 같은 2주가 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오히려 서로를 더 깊이 의지하고, 더 많이 사랑하며, 더 자주 웃게 된 시간이었다.

운명의 검사 결과 날. 엄마와 함께 진료실 문을 열었다. CT 영상을 바라보던 의사가 "허..." 하고 짧은 숨을 내뱉었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잠시 침묵하던 의사가 화면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참 신기하네요.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거의 다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복수만 조금 남아 있네요. 약 드시고 3개월 뒤에 추적검사해 봅시다."

진료실을 나서자 긴장이 풀리며 그제야 허기가 밀려왔다. 병원 푸드코트에서 호떡을 한 입 베어 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목을 축였다. 엄마는 이제껏 먹어 본 호떡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중 가장 맛있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엄마와 마주 앉아 먹는 저녁밥

집에 와서 소식을 기다려 준 한 분 한 분께 전화를 드려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셨다. 그리고 함께 기도와 응원을 보내 준 분들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으셨다. 불교 신자도, 개신교 신자도, 천주교 신자도 종교를 가리지 않았다. 오직 엄마가 다시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기도해 주셨다. 엄마는 한결 편안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기도해 주니 백 살까지 살겠네."

나는 이 모든 것을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누군가는 우연이라 말할 수도 있고,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람은 혼자 버티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지난 2주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것이었다.

"어머니 어떠세요?"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기적은 거창한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한마디, 진심 어린 기도와 응원은 보이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이어 주고, 끝내 한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와 마주 앉아 저녁밥을 먹는다. 엄마가 정성껏 만들어 주신 음식을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자칫 잃어버릴 뻔했던 평범한 일상이 오늘도 선물처럼 내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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