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모와 아이
AI가 만든 사진-제미나이
2003년 법이 생긴 뒤에도 입양기관 위탁 시스템은 따로 운영됐다. 법이 시행됐지만 혈연중심으로 위탁제도가 운영됐고 거기에만 의지했다. 일반위탁은 사실상 멈춘 거나 마찬가지였다. 입양기관 위탁모가 일반위탁 가정보다 두 배나 많이 유지되고 있었다.
2022년 국가가 전문위탁가정 제도를 도입하면서 민간시스템은 정리 대상이 됐다. 기존 위탁모 다수가 일반입양부모 자격에 준하는 까다로운 자격심사 기준에 못 미쳤다. 가장 가슴 아픈 탈락사유는 나이제한이었다.
수십 명의 아이를 돌보면서 몸으로 익힌 양육 능력도 60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단절시켰다. 건강을 증명하려 해도 소용없었다. 공적 행정의 기계적 잣대는 아동 최우선의 이익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여기(전문위탁)는 60세가 정년이라 저는 계속 아기를 보고 싶어도 못 봐요."
아이가 좋아서 시작한 위탁모였고 서른 명 넘는 아이를 돌본 경험이 있으며 아직 건강한 정씨의 말이다. 그가 전에 몸담았던 입양기관은 정년이 70세였다. 그래도 아무 문제 없었다. 그러던 것이 국가사업이 되면서 문턱이 높아졌다. 수십 년 쌓인 노하우를 흡수할 방법을 국가는 만들지 않았다. 대신 입양기관을 지우는 방식을 택하면서 시스템의 좋았던 부분마저 부정당했다.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전문위탁으로 넘어와 처음 맡은 아기는 목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정씨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는 입양기관 시절을 이렇게 기억했다.
"(지정된) 병원에 가면 다 예약되고 저는 아기만 이렇게 하면 됐어요."
지금은 달랐다. 담당 기관도, 시청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정씨는 아이의 상태를 발견하고도 어디로 가야 할지부터 스스로 알아내야 했다. MRI는 돌이 지나야 찍을 수 있다는 답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재활의학과가 있는 인근 의료원을 찾아냈다. 예약도, 통원도, 치료 도구를 사는 것도 전부 자신의 몫이었다. 담당 기관 직원이 동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없어요. 전혀 없어요. 지금은 그냥 애만 던져요."
1년 새 세 번 바뀐 담당 공무원
나이 제한에 걸린 정씨가 지금 마지막으로 돌보는 아이는 시설에서 5개월 만에 온 아이였다. 그런데 그 5개월 동안의 건강 발달 기록은 제대로 넘어오지 않았다.
"인지가 100일 수준밖에 안 됐어요."
병원 진료 결과는 담당 공무원에게 서면으로만 전달된다. 정씨가 직접 겪은 아이의 변화는 전달되지 않는다. 그는 결국 아이의 재활 치료를 스스로 중단했다. "재활을 계속 다니면 늦다는 기록만 남을까 봐"였다. 담당 공무원은 1년 사이 세 번 바뀌었다.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시청도, 아동권리보장원도, 위탁을 관리하는 재단도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 그 사이에서 아이의 발달 과정을 계속 이어받아 챙기는 담당자는 없다. 정씨는 그 공백을 이렇게 짚었다.
"만약에 제가 나서서 가르쳐 주지 않았으면, 그냥 그 종이에 쓰여 있는 게 다겠죠."
여기저기로 분절된 담당자들이 아는 건 서류 한 장이 전부라는 뜻이다. 아이를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은 위탁모 한 사람뿐이다. 그 지식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과거 해외 입양 갔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 한국을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정씨가 오래전 키워 보낸 아이가 열아홉 살이 되어 지난달 엄마와 함께 한국에 와서 정씨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 아이는 정씨가 지금껏 돌 본 아이 중 가장 오래 길렀던 아이였다. 보통은 8~9개월 안에 해외로 갔지만 그 아이는 사시가 있어 수술이 필요했다. 그런 아이를 계속 맡아 키울지 시설로 되돌려 보낼지는 순전히 정씨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정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가 그때 포기했으면 입양을 못 갔을 거예요. 여기서 커서 시설에 갔으면 놀림도 많이 받았을 거예요. 그 아이 인생을 바꿔준 거죠."
그렇게 돌아온 아이와의 만남을 주선해 줄 곳이 없었다. 아동권리보장원에 전화했더니 자기들 업무에 없는 일이라고 했다. 결국 예전 입양기관 직원이 통역과 만남 자리까지 챙겨줬다.
전문위탁제도의 실상
정씨는 최근 시사 프로그램 얘기를 꺼냈다. 예비 입양 부모가 18개월까지 아이를 원한다고 했는데 우편으로 4살짜리 아이와 결연됐다는 통보가 왔다는 사례였다.
"(국가에서는) 결국은 서류로 움직이고,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같은 일을 민간 중심이었을 때와 국가 중심이었을 때 직접 경험한 당사자로서 현장과 동떨어진 '행정중심'의 공적체계를 빗댄 말이었다. 국가의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며 법과 제도 정비를 서둘렀던 행정부에서 내건 슬로건은 '아동중심'의 공적체계였다.
2025년 정부는 지방으로 넘겼던 가정위탁제도를 중앙으로 되가져오겠다고 밝혔다. 일 년이 지난 지금 구체적인 로드맵은 아직 없고 남은 건 선언뿐이다.
정씨 같은 위탁모들이 수십 년간 몸으로 만든 것은 매뉴얼이 아니었다. 아이 하나하나의 얼굴과 습관, 울음소리를 구분하는 감각이었다. 그 감각은 서류로 옮겨지지 않는다.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제도가 개편될 때마다 감각은 함께 사라진다.
지금 국가가 로드맵을 만들면서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예산이나 조직도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국가가 외면했던 아이들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이어받을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공적 체계로의 개편은 그동안 국가를 대신해 온 민간 체계의 감각과 전문성을 최대한 살려내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에 대한 피해는 단순히 돈이나 물적 손해가 아니다. 앞으로 백 년을 살아갈 한 아이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정씨가 남긴 마지막 말은 공적 체계 개편과 맞물려 시행된 전문위탁제도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여기는 그냥 애기만 주면 끝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