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03 11:59최종 업데이트 26.08.03 11:59
  • 본문듣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7월 15일 도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국가기초정책위원회 양원 합동회의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7월 15일 도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국가기초정책위원회 양원 합동회의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흔들리면서, 그가 이미 추진해 온 개헌 시간표를 앞당길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개헌은 지지율 하락 뒤 갑자기 꺼낸 카드가 아니다. 다카이치는 집권 전부터 헌법 9조 개정과 자위대 명시를 핵심 과제로 내세워왔다. 다만 정치적 추진력이 더 약해지기 전에 오랜 숙제를 밀어붙이려는 조급함은 커질 수 있다.

일본 보수세력의 설명만 들으면 대대적인 군사 헌법 개정은 아니다. 9조의 전쟁 포기 원칙은 남겨두고, 이미 존재하는 자위대를 헌법에 명시해 현실과 조문의 괴리를 없애자는 것이다. 위헌 논란을 끝내고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정상적인' 방위 체제를 갖추자는 논리다.


그러나 문제는 자위대를 적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위대를 적느냐다. 오늘의 자위대는 창설 당시의 제한적 국토방위 조직에 머물러 있지 않다. 아베 신조 시대를 거치며 집단적 자위권, 해외 군사지원, 미군과의 연합작전, 상대 영토를 겨냥한 반격 능력까지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 다카이치가 헌법에 넣으려는 것은 1954년의 자위대가 아니라 이미 다른 조직으로 변한 자위대다.

침략은 언제나 좋은 말과 함께 왔다

일본은 과거 아시아를 지배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서양 제국주의에서 아시아를 해방하고, 아시아인이 단결해 함께 번영하는 질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부터 정복이 아니라 공동과 번영을 내세웠다.

그 언어가 힘을 가졌던 것은 모두 허구였기 때문이 아니다. 당시 아시아에는 실제로 서구 식민 지배와 그에 맞선 독립의 열망이 존재했다. 일본은 그 정당한 분노와 희망을 자기 팽창의 논리로 흡수했다. 제국의 언어는 현실의 일부를 붙잡아 자기 지배의 명분으로 바꾸기 때문에 강하다.

일본군의 진출은 아시아 해방이 되고, 일본 중심의 질서는 공동번영이 됐다. 일본의 국가이익이 아시아 전체의 공동이익으로 번역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만들어진 것은 일본을 정점으로 한 위계와 점령지의 자원 동원, 군사적 강제와 식민지 확대였다.

오늘의 일본이 과거의 식민제국을 복원하려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자국의 군사적 권한 확대를 모두를 위한 보편적 가치로 바꾸어 말하는 방식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아시아 해방과 공동번영이 그 역할을 했다면, 오늘은 '평화'와 '정상'이 그 자리에 들어서고 있다.

'평화'의 의미를 바꾼 아베 신조

전후 일본 평화주의의 출발점은 일본이 다시 타국을 해치지 못하도록 자기 무력을 제한하는 데 있었다. 자위대는 이 원칙을 폐기한 군대라기보다, 일본이 직접 공격받을 경우 국민과 영토를 지키기 위한 예외로 정당화됐다.

여기에는 서로 다른 두 평화가 있다. 하나는 남을 해치지 않겠다는 평화이고, 다른 하나는 남에게 당하지 않겠다는 평화다. 앞의 평화는 자신의 힘에 경계를 긋는다. 뒤의 평화는 타자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힘을 키운다. 두 번째 논리가 평화의 전부가 되면 무장의 한계를 정하기 어려워진다.

아베는 이 두 번째 평화를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국가 교리로 만들었다. 일본이 국제분쟁을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 되며, 동맹과 국제질서를 지키는 데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평화주의를 버리자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야말로 평화를 더 적극적으로 실천한다고 말했다.

2014년에는 일본이 직접 공격 받지 않더라도, 밀접한 국가에 대한 공격이 일본의 존립을 근본적으로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일정한 조건 아래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헌법 해석을 바꿨다. '일본이 공격받았는가'라는 질문이 '외부 사태가 일본의 존립에 영향을 주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뀐 것이다.

그 결과 평화가 경계할 대상도 달라졌다. 전후 평화주의가 우선 의심한 것은 일본 자신의 국가폭력이었다. 아베의 적극적 평화주의에서는 중국과 북한, 테러와 지역 불안정 같은 외부의 위협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평화가 군사력을 제한하던 말에서, 군사력이 평화를 생산한다는 말로 바뀐 것이다.

전쟁할 수 있어야 '정상'인가

일본 해상자위대 관함식.
일본 해상자위대 관함식.연합뉴스

일본의 '정상국가론'은 1991년 걸프전 이후 힘을 얻었다. 일본은 막대한 돈을 냈지만 병력을 보내지 못했고, '수표책 외교'라는 비판을 받았다. 오자와 이치로를 비롯한 정치인들은 일본도 경제력에 걸맞게 국제 안보에 사람과 군사력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상국가'라는 말에는 이미 판정이 들어 있다. 전쟁할 수 있는 국가는 정상이고, 전쟁권을 스스로 제한한 국가는 비정상이라는 판정이다. 이를 받아들이는 순간 헌법 9조는 침략전쟁에서 얻은 역사적 성취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국가적 결손이 된다.

'정상화'는 재무장을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회복처럼 보이게 한다. 자기제한은 국제사회에 책임을 떠넘기는 수동성으로, 해외 무력행사 능력은 성숙한 국가의 책임으로 바뀐다. '평화'는 군사화를 선하게 만들고, '정상'은 군사화를 당연하게 만든다.

일본도 민주적 절차를 거쳐 새로운 노선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잃어버린 정상성을 되찾는 단순한 복원이 아니다. 일본의 군사적 예외는 이유 없는 차별이 아니라 침략전쟁 뒤에 만들어진 헌법적 자기제한이었다. 그것을 걷어내는 것은 전후 일본이 선택한 평화의 성격을 바꾸는 결정이다.

먼저 현실을 바꾸고 헌법더러 따라오라 한다

다카이치식 개헌은 9조의 평화 원칙을 남겨두고 자위대의 근거만 명확히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현실은 처음부터 지금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정치권이 헌법의 경계를 조금씩 밀어내며 만들어온 현실이다.

오늘의 자위대는 일본 열도만을 방어하는 조직이 아니다. 아베 정부의 해석 변경과 안보법제를 거치며 동맹국에 대한 공격에도 일정한 조건 아래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고, 해외 미군 지원과 연합작전의 범위도 넓어졌다. 이후에는 상대 영토의 군사 목표를 타격할 반격 능력까지 전수방위 안에 포함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그 논리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해협이 봉쇄되면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받는다. 그러나 경제적 의존과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은 같은 말이 아니다. 호르무즈가 일본의 생명선일 수는 있다. 그러나 생명선이라는 말이 곧 전선이라는 뜻은 아니다.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대만해협을 비롯해 일본에 영향을 미치는 세계의 모든 공간이 일본의 방위선이 될 수 있다.

순서는 분명하다. 개헌이 어려우니 먼저 평화의 뜻을 바꾸고, 그 뜻에 맞춰 헌법 해석과 법률을 고쳤다. 그 위에서 자위대의 임무와 능력을 확대했다. 이제는 확대된 현실과 헌법이 맞지 않는다며 헌법이 현실을 따라오라고 요구한다.

다카이치의 개헌은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이 처음 인정하는 일이 아니다. 아베가 해석과 법률로 바꿔놓은 군사적 현실을 헌법이 사후 승인하게 하는 일이다. 자위대의 역할은 달라졌지만 평화주의는 그대로였다는 형식을 남기려 한다.

과거에는 '공영', 오늘은 '평화'와 '정상'

오늘의 일본은 1930년대 일본과 같지 않다. 문제는 국가의 권력 확대를 모두를 위한 보편적 선으로 바꾸어 말하는 방식이다. 과거 일본은 자국의 팽창을 아시아 해방과 공동번영으로 번역했다. 오늘 일본 보수는 군사적 역할 확대를 적극적 평화라고 부르고,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의 전환을 정상화라고 부른다.

일본 국민은 헌법을 바꿀 수 있다. 다만 그것이 평화주의의 보완인지, 해외 무력행사 권한을 확대하는 새로운 국가 노선인지 정직하게 밝혀야 한다. 평화의 뜻을 바꿔놓고 평화는 그대로라고 말하며, 중대한 정치적 선택을 단순한 정상 회복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일본과 오늘의 일본은 같지 않다. 그러나 일본의 권력 확대를 모두의 선으로 바꾸어 말하는 언어는 낯설지 않다. 과거에는 아시아 해방과 공동번영이었고, 오늘은 평화와 정상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