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파출소 사진 (기사와 관련 없음. 자료사진)
연합뉴스
이처럼 파출소 경찰들이 권위주의적이고 위압적이었던 시절에 경북 칠곡경찰서 왜관파출소에서 꽤 대담한 발언을 한 시민이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2006년 하반기 조사보고서>에 직업이 '노동'으로 표기된 이 인물은 "통행금지시간에 거리에서 고성방가"를 했다는 이유로 칠곡군 왜관읍 왜관동의 파출소로 연행됐다.
길거리에서 술주정을 했던 그 노동자는 파출소에 들어간 뒤에는 단순히 고성방가로 볼 수 없는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경범죄처벌법 위반 정도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이 일은 그런 발언들로 인해 심각성을 띠게 됐다. 위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이런 말들을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살기 싫다. 땅덩어리는 토끼새끼만한데, 대가리는 이북에 있고 꼬리만 이남에 있다. 박정희 ○○, 조그만한 ○○, 세금만 거둬먹고. 이놈의 ○○ 죽인다. 국민을 속여 대통령을 해먹으면서 남북통일도 못하고 지랄한다. 김일성이는 정치도 잘한다."
한반도 모양을 갖고도 불만을 드러냈다. 토끼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이북에 있고 꼬리 부분은 이남에 있다는, 지각 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 것을 갖고도 불평을 했다.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질 불평을 하는 인물은 아니었다는 느낌을 주는 대목이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속어를 써가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표기된 '조그만한(조그마한)'이라는 단어는 그가 사용한 비속어를 그대로 옮기기 힘들어 음절 하나를 늘린 결과일 수도 있다.
이 노동자는 "이놈의 새끼 죽인다"로 보이는 말까지 했다. 박정희의 권력이 가장 강력했을 때인 1972년~1979년 기간에 다른 곳도 아닌 파출소에서 그런 말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박정희를 저주하고 욕하던 시절이지만, 이 노동자처럼 파출소에서 원색적으로 박정희를 욕하고 그 욕설이 국가 기록에까지 남은 사례는 드물다.
1972년에 박정희가 사실상의 종신집권체제인 유신체제를 선포한 명분 중 하나는 '조국통일 추진'이다. 그런 명분하에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설치하고 이 기구가 대통령과 국회의원 3분의 1을 선출하도록 했다. 이 노동자는 그 같은 명분을 내걸고 장기집권하는 박정희를 겨냥해 "통일도 못하고 지랄한다"라고 조롱했다.
당시의 파출소는 일반인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곳이었다. 노동자의 발언은 대통령 박정희가 아닌 인간 박정희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이었다. 그곳의 경찰관들이 주먹질을 한다 해도 딱히 뭐라 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그는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노동자의 과도한 발언 이상으로 경찰과 검찰의 대응은 훨씬 과도했다. 경·검은 긴급조치 제9호 위반 및 반공법 위반이라는 죄목을 적용했다. 유언비어 유포 및 사실 왜곡·전파(제9호 긴급조치 제1항 가호), 반국가단체 찬양 등(반공법 제4조 제1항)이 그 죄목이다. 길거리가 아닌 경찰 조사 과정에서 나온 발언인데도 유언비어 유포죄를 적용하고, 술에 취해 상황 파악도 못 하고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에게 반국가단체 찬양죄를 적용한 것이다.
당시의 헌법인 1972년 헌법(유신헌법) 제53조 제1항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을 때에 실시되는 것이 긴급조치라고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그 정도 위기나 우려가 있을 때 시행되는 것이 긴급조치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를 아무 때나 시행했다. 그런 윗물을 본받아 왜관파출소 경찰관들도 아무 일에나 긴급조치 위반죄를 적용했다.
이 사건은 2심 문턱까지 갔다. 대구지방법원은 파출소 발언을 근거로 징역 10월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하고, 대구고등법원은 1심 선고가 과하다는 피고인의 항소와 1심 선고가 약하다는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노동자의 과도한 발언과 파출소의 훨씬 과도한 법 적용으로 인해 이 사건은 징역 10개월짜리 시국사건이 됐다. 노동자의 책임도 없지 않지만, 국민들을 겁주기도 하고 범죄자로 둔갑시키기도 했던 당시 파출소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무죄 판결 났지만... 노동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2013년 3월 21일 헌법재판소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공포됐던 긴급조치 제1호, 제2호, 제9호에 대해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린 당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유신·긴급조치 피해자 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헌재 위헌 결정에 환영하는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
유성호
2013년 3월 21일,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제9호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4월 18일. 대법원도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 이로써 왜관파출소 사건을 포함해 긴급조치 제9호를 근거로 선고된 유죄판결들의 합법성이 흔들리게 됐다.
2018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은 왜관파출소 사건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대구지법은 긴급조치 제9호는 위헌이므로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역시 죄가 아니라는 논리에 입각해 무죄를 선고했다. 또 범죄사실이 증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법제처 국가법령센터 홈페이지는 이 사건의 판결문을 보여주는 페이지에서 이 사건이 '확정'됐음을 알려준다. 검사가 무죄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위 판결문은 피고인을 "망(亡) 피고인"으로 지칭한다. 그 노동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무죄 판결을 들을 수 없었다.
독재정권 시절의 파출소는 국가권력에 대한 공포심을 국민들 가까이에서 확산시키는 기능도 수행했다. 그 노동자는 그런 데 들어가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그의 행동이 과하기는 했지만 징역형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는 점이 재심 재판을 통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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