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병든 바쿠스> 15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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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의 신이니 회화에서 술잔을 든 모습으로 등장한다. 또한 머리에는 포도 덩굴 관을 쓰고 있다. 이 신이 전파하는 쾌락은 그리스에서 매해 봄에 열린 디오니소스 축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축제 기간에는 시민들이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억압되었던 욕망을 분출했다.
축제 행렬에는 술이 가득 담긴 항아리가 따라다녔고, 사람들은 두 갈래 피리인 아울로스와 놋쇠 바라, 북 연주에 맞춰 춤과 노래를 즐겼다. 산이나 들에서도 밤까지 술을 곁들인 격한 춤과 노래가 이어졌다. 행렬에 거대한 남근상을 앞세우는 전통이 있었음을 봐도 성적 쾌락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술과 황홀경에 취해 남녀가 뒤섞여 성적인 만족을 구했다.
로마에서도 바쿠스 축제가 열렸다. 그리스에서 도시 국가 차원의 공개적인 축제 성격이었던 데에 비해 로마에서는 은밀한 집회 성격이 강했다. 마찬가지로 남녀노소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노래·춤으로 황홀경에 빠졌다. 로마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음란한 성적인 유희가 결합한 의식이었다. 가면을 쓰고 익명성 뒤에서 금기를 넘어서는 대담한 행위를 누렸다.
<병든 바쿠스>에서도 상징을 이용해 성적인 쾌락을 암시하고 있다. 탁자에 놓인 과일을 보면, 술을 뜻하는 포도보다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가 더 우리의 눈길을 끈다. 복숭아는 특유의 부피감과 함께 중간에 팬 골 모양 때문에 예로부터 여성의 엉덩이나 성기를 비유하는 과일로 쓰였다. 카라바조는 복숭아를 강조함으로써 육체적 쾌락에 휩싸여 살아왔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마뱀에게 물리는 정도의 경고가 아니다. 제목이 아니더라도 병색이 짙은 모습이 완연하다. 입술이 창백하고 얼굴과 몸의 피부가 노란색·검은색이 섞여 치명적인 중병에 걸린 상태다. 손에 쥔 포도도 누렇게 색이 바래고 시들어 있다. 쾌락을 추구한 인간에게 몰락이 기다린다는 메시지다. 일시적으로는 즐거움을 주지만 결국 스스로 인생을 파괴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깔려 있다.
로마에서는 바쿠스의 쾌락이 단죄 대상이 되기도 했다. 로마 원로원은 기원전 186년에 '바쿠스 축제에 관한 원로원 법령'을 제정하여 도덕적 타락을 조장한다며 대대적 탄압에 나섰다. 기독교가 지배한 유럽 중세에는 법적으로 인정된 부부 관계를 넘어선 각종 성행위에 대해 도덕적 비난이 쏟아졌음은 물론이고,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규정하여 가혹한 처벌이 가해졌다.
현대사회에 들어서 쾌락 추구에 대한 사회적 탄압이나 처벌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도덕적 경고는 여전하다. 쾌락은 본질상 순간적·감각적이기에 필연적으로 고통으로 귀결되고, 인생을 낭비한다는 훈계를 자주 접한다. 경제학에서 흔히 거론되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 즉 재화의 소비량이 늘어날수록 추가로 얻는 만족감이 점차 줄어든다는 논리가 적용된다.
쾌락에 몸을 맡겼을 때 처음에는 즐거움이 크지만, 반복될수록 점차 만족감이 떨어지게 된다는 식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더는 즐거움을 주지 못하기에 허무나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를 들이밀기도 한다. 쾌락을 추구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도파민이 처음에는 상당한 만족을 주지만, 같은 정도의 자극으로 더는 만족하지 못하게 되면서 무기력과 같은 부작용만 커진다는 것이다.
육체적 쾌락 추구를 경멸한 소크라테스
육체적 쾌락을 사악한 욕구로 규정하고 경건한 정신만을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 주장한 철학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 장 바티스트 레뇨(1754~1829)의 <쾌락에서 알키비아데스를 구하는 소크라테스>는 쾌락에 대한 그의 단호한 비판 태도를 잘 보여준다.

▲장 바티스트 레뇨 <쾌락에서 알키비아데스를 구하는 소크라테스> 17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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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알키비아데스를 쾌락의 늪에서 강제로 데리고 나오는 장면이다. 아테네의 젊은 장교이자 정치가였으나, 부유한 집안을 배경으로 사치·향락 등 쾌락에 몸을 맡겼다. 소크라테스는 "이 친구를 사랑한 후로 아름다운 젊은이라고는 단 한 명도 바라볼 수가 없었네"라고 할 정도로 아꼈기에 그를 쾌락의 굴레에서 빼내려 애를 썼다.
그림을 보면 알키비아데스가 여인들과 성적 유희에 빠져있다가 벌어진 일이다. 모두 반라 차림이어서 한창 즐기던 중임을 알 수 있다. 침대 아래의 술병 옆으로 황급히 벗어놓은 투구·갑옷·칼이 나뒹군다. 소크라테스가 팔을 붙잡고 강제로 끌어낸다. 그리스 출신 역사가·철학자 플루타르코스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온 이야기를 묘사한 듯하다.
"때로는 쾌락을 미끼로 하여 알키비아데스의 환심을 사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것에 넘어간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를 뿌리치고 뛰쳐나가는 수도 있었다. 그럴 때면 소크라테스는 노예를 잃은 사람처럼 그를 찾아다녔다."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의하면 알키비아데스는 늘 값비싼 향수와 외투를 사는 등 사치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성적 향락에 젖어 살았다. 아테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여인들과 차례로 성관계를 맺는 것을 보고 아내가 집을 나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바람을 피웠다. 심지어 나중에 스파르타로 망명했을 때 왕비를 유혹하여 마침내 임신까지 시켰다.
소크라테스는 쾌락에 집착하는 알키비아데스를 정신적 경건함과 탁월함으로 이끌고자 했다. 여자들과 어울리는 데 정신이 팔려있으면 찾아가서 끌어내곤 했다. 화가도 소크라테스의 문제의식을 그림에 충실히 반영했다. 그리고 사악한 욕망의 뿌리에 바쿠스가 자리 잡고 있다고 여겼다. 왼편 기둥 뒤에서 신상에 향을 피우는데, 머리에 포도나무 덩굴 관을 쓰고 있으니 바쿠스다. 바쿠스의 쾌락을 타락의 배후로 규정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문제의식이 특정 제자에게만 향한 것은 아니다. 대화하는 모든 이에게 육체적 쾌락을 멀리하고 영혼의 함양에 힘쓰라고 항상 강조했다.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는 디오티마라는 가상의 여인을 통해 자기 생각을 밝힌다.
"육체로 임신하는 사람은 여자에게 이끌립니다. (…) 반면에 영혼을 중시하는 사람은 영혼 속에서 훨씬 더 많이 잉태하고 출산합니다. 사려 깊음과 탁월함이 있기에 창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시인과 장인을 낳습니다.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유형의 사려 깊음이란 도시 국가와 가정의 적절한 질서와 관련된 것인데, 그것은 바로 절제와 올바름이라고 하지요."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육체와 감정의 욕구에 따라 이성에게 이끌리는 사람들은 사려와 탁월함을 지닌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쾌락이 주는 만족조차도 지속될 수 없다. 그는 육체적 욕망과 사랑이란 "그가 결여하고 있는 바를 욕망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사람의 곁에 없거나 갖고 있지 않은 대상, 다시 말해 결핍된 대상을 얻으려는 욕구다.
그런데 결핍의 충족이란 결국 "원하는 것을 얻으면 갑자기 살아났다가 이내 죽어버립니다"라고 한다. 충족되는 순간 잠시 만족감이 찾아오지만, 결핍이 사라지면 곧 욕구가 사라지므로 만족감도 줄어들어서 다시 또 다른 대상을 통해 쾌락을 찾는 악순환이 이어질 뿐이다. 앞에서 언급한 이른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논리다. 그러므로 "육체에 관련된 아름다움은 사소한 것"이라고 여기고 절제와 영혼의 고양에 힘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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