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판 뉴타운'으로 불리는 수도 평양의 화성지구 2단계 1만 세대 살림집(가구)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어느덧 조선(북한)이 '남조선' 대신에 대한민국, 한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지도 3년이 지났고, 적대적 두 국가를 선포한 지도 3년 가까이 흘렀다. 그런데 국내에선 빗나간 진단에 근거한 희망적 사고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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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글에서 조선이 한국을 두려워해 '적대적 두 국가'를 선택했다는 분석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또 많은 전문가와 언론은 조선의 상황 변화를 기다려야 한다고 주문한다. 여기서 '상황 변화'란 경제발전을 중시하는 김정은 정권이 남북관계의 개선 없이는 이게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고 다시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할 때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처방부터가 모순이다. 조선이 한국이 두려워 적대적 두 국가를 선택했다고 하면서, 한편으론 조선이 경제발전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는 다시 경제협력을 비롯한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할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김정은 위원장은 2020∼2021년에 경제건설 전략의 실패를 자인하고 인민의 고초에 눈물까지 보이면서도 금한령과 자력갱생을 선택했었다.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시선은 또 있다. 여러 전문가와 언론은 조선이 체제의 안전을 위협할 것을 두려워해 개방을 거부하고 폐쇄를 고집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런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조선이 중단한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중단한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들 사업을 재개하기로 김정은 정권과 합의했었다. 그런데 이들 사업은 재개되지 않았다. 조선이 마다해서가 아니라 제재의 벽에 막혀 한국이 결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조미·조일관계가 정상화되었다면, 조선의 개방 수준은 높아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무산되었다. 이 역시 조선이 마다해서가 아니라 미국과 일본이 마다하거나 까다로운 조건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대외 개방이 체제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라고 걱정해 폐쇄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개방하고자 해도 상대가 호응하지 않자 자립을 선택한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 더구나 조선은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통해 경제발전의 모멘텀을 만들어내고 있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우호 국가"들과 교류협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선의 '기적적인 변화'?
지난달 미국 언론의 조선에 관한 보도가 화제가 되었다. 유력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월 7일 자 기사에서 "지금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경제적 성공담의 주인공은 바로 북한"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도 같은 날 분석 기사에서 조선이 "기적적인 변화"를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5월 하순 평양을 방문한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교장관은 조선이 대북 제재에도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다며, 특히 "평양은 동남아, 또는 심지어 동북아에 있는 어느 현대적인 도시와도 비견할 만한 도시"라고 평가했다.
이를 두고 조선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진단이 유행한다. 조선이 러시아에 다량의 무기 제공과 대규모 파병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에 따라 러-우 전쟁이 끝나면 조선이 누리는 '전쟁 특수'도 사라질 것이고, 조선이 다시 경제난에 처하면 한국과의 관계 개선 및 제재 해결을 목표로 미국과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조선의 경제는 김정은 정권이 경제 실패를 자책할 때도, 러시아에 무기와 병력을 제공하기 전부터 좋아지고 있었다. 일례로 조선은 2021년 7월에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고위급 정치포럼'에 제출한 '자발적 국가 검토 보고서'(VNR)를 통해 "2015∼2019년 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5.1%"라고 밝혔다. 이는 같은 기간 한국은행 추정치보다 6%포인트 높다. 또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알곡 생산량을 약 567만 톤으로 보고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한국 농촌진흥청 추정치보다 105만 톤가량 많다.
김정은 정권이 2021년 1월 8차 당대회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자평한 2021~2025년에는 경제성장과 식량 생산 등에 있어서 더 큰 성취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3년 연말에 국내총생산이 2023년에 2020년에 비해 1.4배 늘어났다고 밝혔는데, 이를 연평균 성장률로 계산하면 11.9%에 달한다. 그런데 이는 조러 관계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서기 전의 일이다. 조선이 '초과 달성'했다고 자평한 2024년·2025년에도 이 수치를 적용하면 한국은행 추정치와의 차이는 약 10% 정도로 벌어진다.
2021~2025년 농촌진흥청의 연평균 조선 식량 생산량 추정치는 474만 톤이다. 이에 반해 조선은 2021년 알곡 생산량이 550만 톤이었고, 2023년에는 목표치의 3%를, 2024년에는 7%를 초과 달성했고 2025년에도 "만풍년"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조선의 발표에 따르면, 농촌진흥청 추정치와의 격차가 더 벌어진 셈이다. 아울러 조선 인민의 먹거리가 알곡뿐만 아니라 육류, 수산물, 다양한 가공식품과 기호식품, 채소와 과일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솔직하다'고 하더니 이제는 '믿지 못하겠다'
▲2025년 4월 1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시내 '뉴타운' 지구 중 하나인 화성지구 3단계 준공식에 직접 참석하며 인민 생활 챙기기 행보를 보였다. 조선중앙통신은 16일 화성지구 3단계 1만세대 살림집 준공식이 전날 성대히 진행됐다고 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 대목에선 조선을 바라보는 한국의 주류적 시선의 굴절을 발견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경제정책 실패를 자인하면서 눈물을 보였을 때에는 '솔직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고 자평할 때는 '믿지 못하겠다'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조선 측 자료나 발표를 외면하면서 2차 자료에 해당하는 한국은행과 농촌진흥청의 추정치에 의존하곤 한다. 조선이 러-우 전쟁 특수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주장도 막연한 추정에 근거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조선'을 바라보는 데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정책적으론 더 중요한 함의가 있다. 조선이 또다시 경제난에 처해 한국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주장이 '막연한 바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2월 하순과 3월 하순에 각각 열린 9차 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에서 "경제분야에서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다년간의 발전계획을 성과적으로 완수하고 생산장성의 토대를 구축"했다고 했다. 자립적 경제 기반의 개선과 더불어 러시아는 물론이고 중국과의 경제협력도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이는 조선이 또다시 경제난에 처하기보단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낼 공산이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바라는 북한'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조선'을 직시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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