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03 11:56최종 업데이트 26.08.03 11:56
  • 본문듣기
롯데 자이언츠의 1999년은 뜨거웠다. 비록 그 해의 우승팀은 한화 이글스였지만, 그해 가장 흥분된 시간을 보낸 것은 자이언츠 팬들이었다. 자이언츠가 큰 기대를 하기 어려운 전력임에도 주형광, 박석진, 문동환에 기론이 합세해 어떻게든 마운드에서 버텨낸 사이 박정태, 마해영, 호세를 앞세운 타선이 상상 이상의 위력으로 폭발하며 리그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역대 최고의 플레이오프로 꼽힐 삼성과의 다섯 판 승부에서는 야구장 안과 밖이 함께 폭발했고, 하얗게 재가 되어버린 채 시작한 한국시리즈는 자이언츠 팬들 중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각 속으로 던져졌다.


그 1999년, 원광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야구 신인지명전에서 2차 8라운드로 지명받아 3천만 원의 계약금을 받고 합류한, 조성환이라는 내야수가 있었다. 고교와 대학을 거치면서 스카우트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특별한 이력을 남기지는 못한 선수였고, 그나마 원광대 지도자들과 친분이 깊던 자이언츠의 스카우트가 '성실하다'는 소개를 마음에 두었다가 마땅히 고를 선수가 없던 8라운드에 찍은 경우였다. 가장 시끄러운 해에 가장 조용히 나타난 신인이었다.

흙수저 똑딱이 내야수

조성환의 역전결승타2008년 4월 26일 삼성전에서 역전 결승타를 때린 조성환롯데 자이언츠

롯데는 늘 당장 필요한 만큼만 돈을 쓰는 구단이었고 자이언츠는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싸우는 팀이었다. 그래서 그 해 준우승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이언츠의 진용은 곳곳의 자리가 홑겹이나 다름없는 지경이었다. 조성환은 얇았던 팀의 내야진 덕분에 데뷔 첫해부터 1군에 꾸준히 머물 수 있었고 점차 출장 경기 수를 늘려갔지만, 주목받을 만한 강점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데뷔 후 2002년까지 4년간 2루수와 3루수, 때로는 유격수로도 나서면서 모두 300경기에 출전했지만 타율은 2할대 초반에 불과했고 홈런도 한 해 걸러 하나씩 기록했을 뿐이었다. 아쉬운 대로 쓰긴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대체자를 구할 수 있는, 흔히 스쳐 지나갔던 똑딱이 내야수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선수였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2003년, 그러니까 호세와 조경환과 마해영, 그리고 임수혁이 각각 어딘가로 떠나버리며 자이언츠가 속절없이 꼴찌로 추락하던 그 시간에 조성환이 고개를 들었다. .307의 타율에 6개의 홈런과 23개의 도루. 대단하다고 할 것까지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텅 비어 있던 사직의 관중석에, 그나마 남아있던 자이언츠 팬들이 거의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타순이 그의 타석이었다.

자이언츠 팬들마저 최선을 다해 자이언츠 경기를 보지 않기 위해 용을 쓰던 그 시절, 조성환이라는 이름이 간혹 들렸다는 정도일 뿐이지 그가 무너지던 팀을 버텨낼 수 있었다거나 한 것까지는 아니다. 자이언츠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년 연속 최하위의 신기록을 세웠고, 조성환 역시 나름의 전성기를 시작하는 듯했던 2004년 봄, 투구에 맞은 손등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며 일찌감치 시즌을 접어야 했다.

게다가 그 뒤로 3년간 그는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병역의 부담을 회피하려다가 6개월간의 실형을 감수해야 했고 이어서 군복무까지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가 여러 차례 깊이 사죄한 일이긴 하지만, 어렵게 얻은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조급함에 주변의 잘못된 조언을 따라간 그의 큰 실수였고 짙게 남은 오점이었다.

그래서 그가 돌아온 것이 2008년이었는데, 그해에는 자이언츠도 달라져 있었다. '전국구 에이스' 손민한을 중심으로 장원준과 송승준, 매클래리가 경쟁력 있는 마운드를 구축했고 몇 년 사이 국가대표급으로 성장한 이대호와 강민호가 가르시아와 함께 국내 최강의 중심타선을 갖추고 있었다. 정수근과 김주찬의 테이블세터도, 박기혁과 박현승 등으로 채워진 하위타선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문제는 조성환의 자리였다. 잠시 반짝했던 내야수가 병역문제에 얽혀 4년 가까이 공백을 가진 뒤 복귀해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8번 타순에서 그 시즌을 시작한 조성환은 4월이 다 지나기 전 3번으로 자리를 옮겼고, 시즌 내내 한 단계 성장한 기량을 꾸준히 과시했다. 27개의 2루타를 포함해 151개의 안타를 양산하며 타격 4위에 해당하는 .327의 타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7월 중순에는 음주폭행사건을 일으키며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정수근을 대신해 주장 역할을 맡게 됐고, 어수선하던 선수단 분위기를 다잡으며 상승세가 꺾이지 않도록 하는 데 큰 몫을 하게 된다.

'캡틴' 조성환

자이언츠의 캡틴 조성환사직구장 관중석에 걸린 조성환 플래카드롯데 자이언츠

자이언츠 팬들은 조성환을 흔히 '조캡'이라고 부른다. '캡틴 조성환'을 줄인 말이다. 주장이라는 역할이 별명이 되어버린 선수. 그만큼 조성환은 개성 강한 선수들이 많고 그 개성에 날개를 달아주던 로이스터라는 독특한 감독이 지휘하던 팀에서 훌륭하게 중심을 잡아준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완력이 대단한 선수가 아니었고, 더구나 그 팀의 선수들이 어지간한 완력에 눌릴 만한 이들도 아니었다. 또 그는 특별한 스타플레이어도 아니었고 야구계를 주름잡는 명문 학연의 순혈도 아니었기에, 흔히 '카리스마'라는 말로 눙치고 넘어가는 어떤 무형의 힘을 가진 경우도 아니었다. 그는 지방대학을 거쳐 하위 순번으로 프로에 입문한 흙수저였고, 순탄치 못한 '군백기'를 거쳐 이제 간신히 제 앞가림을 시작한 처지였다. 하지만 그는 성실함과 진중함이 있었고, 자신의 것을 나누는 담백한 소통을 할 줄 알았다.

2009년 4월 23일, SK 채병용의 공에 맞아 눈 주변의 뼈가 무너져 내리는 부상을 당하는 순간은, 그 무렵 조성환과 자이언츠가, 그리고 그 팀의 팬들이 맺고 있던 정서적 관계를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물론 고의는 아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팀의 기둥이 쓰러졌고, 비록 내키지는 않았겠지만 최소한의 항의를 하기 위해 김일엽이 상대 팀 중심타자 박재홍에게 던진 보복구에 신경질적인 반응이 돌아오자 팬들도 폭발했다. 크고 작은 신경전으로 얽혀 있던 그 무렵 자이언츠와 와이번스의 관계가 얼어붙고, 여러 커뮤니티에서 두 팀 팬덤 사이에 댓글전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더 극적인 장면은, 그렇게 쓰러졌던 조성환이 돌아오던 순간이었다. 조성환이 40여 일만인 6월 2일에 돌아오면서부터 자이언츠는 공격과 수비 양쪽으로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4월과 5월 사이 최하위권으로 추락했던 팀 성적은 6월 말에는 4위까지 극적으로 상승했다. 조성환은 크게 목소리를 내는 선수가 아니었지만 더그아웃은 훨씬 시끄러워졌고 관중석은 그 몇 배로 크게 메아리쳤다.

짧은 전성기, 깊은 존재감

그의 전성기는, 좁혀서 말하자면 3할대 타율에 20개 이상의 2루타를 곁들이던 2010년까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주전으로서 의미 있는 기여를 했던 기간으로 넓히자면 2012년 정도까지로 볼 수 있다. 그가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2003년을 합치더라도 그가 자이언츠의 중심으로 활약한 기간은 5년 안팎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갖는 존재감은, 그 몇 배 이상의 깊이를 가진다.

자이언츠는 길고 깊은 암흑기를 건너온 팀이고, 여전히 통합우승이라는 못 이룬 꿈을 품은 팀이다. 하지만 끝내 지쳐 흩어지지 않고, 혹 애써 고개 돌리다가도 조금의 핑계만 주어지면 득달같이 돌아와 한 순간도 진심으로 관심을 끊은 적은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팬들을 가진 팀이다.

그런 자이언츠와 팬들에게, 조성환이란 특별한 이름이다. 길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그저 시간이 흘러가며 저절로 지나간 것이 아님을 떠올리게 하며, 혹은 최동원이나 이대호 같은 천재와 영웅들의 강림으로만 가능했던 것도 아님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야구란 잘하는 놈이 잘하고, 우승이란 잘하는 놈을 많이 모으는 데 달려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시간을 버텨주는 것은, 성실하게 자리를 지키고 겸손히 작은 몫을 감당해내며 주변에 사람을 모은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사실. 그것을 떠올려 콧등 시큰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조성환의 야구

은퇴 후, 조성환은 직접 쓰고 정리해서 제본한 소책자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책의 제목은 'Cho's Baseball'. '조성환의 야구'. 하지만 자신의 야구인생을 돌아보는 자서전도 아니고, 자신만이 아는 대단한 기술을 전수하기 위한 책도 아니다. 50쪽 안팎의 조그만 그 책 안에 촘촘히 적어 넣은 것은, 투수와 포수, 타자와 주자, 수비수와 지도자가 각각 그 자리에서 되새기고 명심해야 할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Cho's baseball조성환이 직접 쓰고 제본한 소책자 'Cho's baseball' 뒷면엔 "야구를 하는 것이 즐겁지 않은 일이 된다면 그것은 더이상 나에게 야구가 아니다"라는 조 디마지오의 말이 적혀있다.김은식

예컨대 투수는 '목적이 없는 공을 절대 던지지 말아야 하며, 모든 공에 이유가 있어야' 하고, 포수는 '아웃카운트를 수비수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타자는 '삼진이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일 뿐임'을 명심해야 하고 주자는 '모든 라인드라이브 타구에 몸을 웅크리며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감독과 코치들은, '반드시 팀의 모든 선수들에게 정확한 역할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선수로서 자신의 타석과 수비위치를 넘어 무엇을 보고 어떻게 나누려고 했는지 되짚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 이야기들을 되짚어보며 문득 생각하게 된다. 하위라운더 신인이 주전이 되고 주장이 되는 일, 오랜 공백기와 거듭된 부상에서 돌아와 다시 정상의 기량을 되찾는 일, 그것이 조금이라도 우연히 혹은 자연스레 되는 일이던가. 하루하루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고된 노력이 쌓이고, 너무 흔해 자칫 흘리기 쉬운 진리들을 되새기고 곱씹으며 견디고 버텨낸 시간이 뭉치지 않고서야 될 수 있는 일이던가.

2000년대 후반,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더라도 자이언츠가 기나긴 암흑기를 벗어나 강팀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손민한이 있고 이대호가 있고, 또 강민호와 홍성흔과 손아섭과 가르시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조성환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다고 해도 그 시간을 함께 한 자이언츠 팬들은 아마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조금의 과장도 없는 사실임을 적어도 그들은 알기 때문이다.

조성환의 은퇴식2014년 6월, 조성환은 은퇴를 선언했고 두 달 뒤 은퇴식이 열렸다. 암흑기와 부흥기의 기억이 뒤얽힌 자이언츠의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롯데 자이언츠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