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츠의 캡틴 조성환사직구장 관중석에 걸린 조성환 플래카드
롯데 자이언츠
자이언츠 팬들은 조성환을 흔히 '조캡'이라고 부른다. '캡틴 조성환'을 줄인 말이다. 주장이라는 역할이 별명이 되어버린 선수. 그만큼 조성환은 개성 강한 선수들이 많고 그 개성에 날개를 달아주던 로이스터라는 독특한 감독이 지휘하던 팀에서 훌륭하게 중심을 잡아준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완력이 대단한 선수가 아니었고, 더구나 그 팀의 선수들이 어지간한 완력에 눌릴 만한 이들도 아니었다. 또 그는 특별한 스타플레이어도 아니었고 야구계를 주름잡는 명문 학연의 순혈도 아니었기에, 흔히 '카리스마'라는 말로 눙치고 넘어가는 어떤 무형의 힘을 가진 경우도 아니었다. 그는 지방대학을 거쳐 하위 순번으로 프로에 입문한 흙수저였고, 순탄치 못한 '군백기'를 거쳐 이제 간신히 제 앞가림을 시작한 처지였다. 하지만 그는 성실함과 진중함이 있었고, 자신의 것을 나누는 담백한 소통을 할 줄 알았다.
2009년 4월 23일, SK 채병용의 공에 맞아 눈 주변의 뼈가 무너져 내리는 부상을 당하는 순간은, 그 무렵 조성환과 자이언츠가, 그리고 그 팀의 팬들이 맺고 있던 정서적 관계를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물론 고의는 아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팀의 기둥이 쓰러졌고, 비록 내키지는 않았겠지만 최소한의 항의를 하기 위해 김일엽이 상대 팀 중심타자 박재홍에게 던진 보복구에 신경질적인 반응이 돌아오자 팬들도 폭발했다. 크고 작은 신경전으로 얽혀 있던 그 무렵 자이언츠와 와이번스의 관계가 얼어붙고, 여러 커뮤니티에서 두 팀 팬덤 사이에 댓글전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더 극적인 장면은, 그렇게 쓰러졌던 조성환이 돌아오던 순간이었다. 조성환이 40여 일만인 6월 2일에 돌아오면서부터 자이언츠는 공격과 수비 양쪽으로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4월과 5월 사이 최하위권으로 추락했던 팀 성적은 6월 말에는 4위까지 극적으로 상승했다. 조성환은 크게 목소리를 내는 선수가 아니었지만 더그아웃은 훨씬 시끄러워졌고 관중석은 그 몇 배로 크게 메아리쳤다.
짧은 전성기, 깊은 존재감
그의 전성기는, 좁혀서 말하자면 3할대 타율에 20개 이상의 2루타를 곁들이던 2010년까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주전으로서 의미 있는 기여를 했던 기간으로 넓히자면 2012년 정도까지로 볼 수 있다. 그가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2003년을 합치더라도 그가 자이언츠의 중심으로 활약한 기간은 5년 안팎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갖는 존재감은, 그 몇 배 이상의 깊이를 가진다.
자이언츠는 길고 깊은 암흑기를 건너온 팀이고, 여전히 통합우승이라는 못 이룬 꿈을 품은 팀이다. 하지만 끝내 지쳐 흩어지지 않고, 혹 애써 고개 돌리다가도 조금의 핑계만 주어지면 득달같이 돌아와 한 순간도 진심으로 관심을 끊은 적은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팬들을 가진 팀이다.
그런 자이언츠와 팬들에게, 조성환이란 특별한 이름이다. 길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그저 시간이 흘러가며 저절로 지나간 것이 아님을 떠올리게 하며, 혹은 최동원이나 이대호 같은 천재와 영웅들의 강림으로만 가능했던 것도 아님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야구란 잘하는 놈이 잘하고, 우승이란 잘하는 놈을 많이 모으는 데 달려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시간을 버텨주는 것은, 성실하게 자리를 지키고 겸손히 작은 몫을 감당해내며 주변에 사람을 모은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사실. 그것을 떠올려 콧등 시큰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조성환의 야구
은퇴 후, 조성환은 직접 쓰고 정리해서 제본한 소책자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책의 제목은 'Cho's Baseball'. '조성환의 야구'. 하지만 자신의 야구인생을 돌아보는 자서전도 아니고, 자신만이 아는 대단한 기술을 전수하기 위한 책도 아니다. 50쪽 안팎의 조그만 그 책 안에 촘촘히 적어 넣은 것은, 투수와 포수, 타자와 주자, 수비수와 지도자가 각각 그 자리에서 되새기고 명심해야 할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Cho's baseball조성환이 직접 쓰고 제본한 소책자 'Cho's baseball' 뒷면엔 "야구를 하는 것이 즐겁지 않은 일이 된다면 그것은 더이상 나에게 야구가 아니다"라는 조 디마지오의 말이 적혀있다.
김은식
예컨대 투수는 '목적이 없는 공을 절대 던지지 말아야 하며, 모든 공에 이유가 있어야' 하고, 포수는 '아웃카운트를 수비수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타자는 '삼진이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일 뿐임'을 명심해야 하고 주자는 '모든 라인드라이브 타구에 몸을 웅크리며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감독과 코치들은, '반드시 팀의 모든 선수들에게 정확한 역할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선수로서 자신의 타석과 수비위치를 넘어 무엇을 보고 어떻게 나누려고 했는지 되짚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 이야기들을 되짚어보며 문득 생각하게 된다. 하위라운더 신인이 주전이 되고 주장이 되는 일, 오랜 공백기와 거듭된 부상에서 돌아와 다시 정상의 기량을 되찾는 일, 그것이 조금이라도 우연히 혹은 자연스레 되는 일이던가. 하루하루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고된 노력이 쌓이고, 너무 흔해 자칫 흘리기 쉬운 진리들을 되새기고 곱씹으며 견디고 버텨낸 시간이 뭉치지 않고서야 될 수 있는 일이던가.
2000년대 후반,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더라도 자이언츠가 기나긴 암흑기를 벗어나 강팀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손민한이 있고 이대호가 있고, 또 강민호와 홍성흔과 손아섭과 가르시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조성환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다고 해도 그 시간을 함께 한 자이언츠 팬들은 아마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조금의 과장도 없는 사실임을 적어도 그들은 알기 때문이다.
▲조성환의 은퇴식2014년 6월, 조성환은 은퇴를 선언했고 두 달 뒤 은퇴식이 열렸다. 암흑기와 부흥기의 기억이 뒤얽힌 자이언츠의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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