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서울시청역에 설치된 모두의 지하철 교통약자 안내표지. 청록색 띠에 교통약자 픽토그램이 그려져 있어 교통약자 안내용임을 나타낸다. 엘리베이터가 어느 방향에 있으며 환승인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인지 경로를 알려 준다. 하단의 화장실 픽토그램에는 휠체어를 그려 넣어 장애인 화장실이 함께 있음을 나타냈다.
무의
- 시안은 어떻게 검증했나.
"홍대 안 임시 실험공간에서 간이 테스트를 했다. 시안을 보고 좌회전, 우회전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보는 거였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백동주님이 참여해주셨는데 여러 번 왔다 갔다 시키는 게 죄송했다.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멀리서 오셨는데도 얼마든지 더 불러 달라고 하셨다. 이렇게 장애 당사자를 불러 실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리가 정말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당사자들은 사회문제를 푸는 데 이렇게 적극적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 디자인 협의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고 들었다.
"고려할 내용이 정말 많았다. 교통약자, 그중에서도 휠체어 이용자의 현장 연구를 통해 만든 디자인 체계이지만, 실제 적용될 때는 다른 유형의 교통약자는 물론 비 교통약자 시민들까지 같은 공간에서 이 표지를 지나치게 된다. '교통약자에게 충분히 눈에 띄면서, 비 교통약자가 길을 잘못 들지 않게 할 것'이라는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했다.
대표적인 게 화장실 픽토그램이었다. 서울시 표지에서 엘리베이터 픽토그램과 화장실 픽토그램이 비슷해 헷갈린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공식 표지이다 보니 바꿀 수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표지는 크게, 화장실은 작게 만들었다. 지하철 화장실 대부분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있지만 휠체어 이용자들 마음 한 켠엔 '혹시나' 하는 불안함도 있다는 이야길 들어 확신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휠체어 마크를 추가하자고 했다. 마침, 기존 서울시 표지 중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어 통과됐다. 나중에 휠체어 이용자에게 '화장실 표지에 휠체어가 그려져 있어 마음이 편했다'는 피드백을 듣기도 했다."
- 지난해 현장에 몇 번이나 나갔나?
"휠체어 이용자와 함께하는 조사 이전에 이미 시범 설치 대상 역 10곳을 모두 두 번씩 나가봤고, 각 역에서 진행된 섀도잉 조사엔 팀원들이 각각 3~4개 역씩 동행했다. 같은 팀 송지연 디자이너와 함께 10개 역 전체를 몇 번씩 들락거렸으니 100번은 넘게 나간 것 같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역은?
"아무래도 서울역이다. 1호선, 4호선, 경의중앙선, 공항철도, GTX까지 5개 노선이 있는데 일부 경로의 경우 교통약자 안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내야 했다. 특히 GTX-A 노선이 개통된 후 기존 교통약자 환승 경로가 크게 바뀌었다. 교통약자들은 1호선, 4호선을 환승하려면 비 교통약자와 달리 GTX-A 대합실을 거쳐야 한다. 처음 조사할 때만 해도 이 안내가 대합실 안에 아예 없어서 교통약자가 길을 찾아가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무의는 GTX 서울역과 협의해 '모두의 지하철' 안내 표지를 붙였다).
문제점은 명확했는데 막상 시공하려니 고민이 컸다. '누가 봐도 GTX 타는 곳이지 4호선 타는 곳은 아닌' 대합실로 사람들을 안내하려면 어떤 안내를 어디에 붙어야 하는가. 게다가 서울역은 전국에서 오가는 시민은 물론 외국인도 이용하는 역이라 이미 안내가 너무 많이 붙어 있다. 설치 위치를 잡거나 규격대로 표지를 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 공공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을 것 같은데 어떤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인가?
"공공디자인은 좀 다른 영역이다. 보통 디자인은 사람들이 안 해본 것, 창의적이고 낯선 것, 틀을 깨는 게 좋은 디자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안내표지는 기존과 거의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르고, 그러면서 약간 더 나은 설계를 해야 한다. 예술보다 설계에 가깝다. 그래픽디자이너로서는 창의적이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럴 때 타이포그래퍼 베아트리스 워드의 말을 떠올린다. 타이포그래피의 목적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와인을 마실 때 황금 잔과 투명한 잔이 있다면, 와인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건 투명한 크리스털 잔이라는 거다. 현대적 관점에서는 디자인을 제한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크리스털 잔 같은 디자인이 좋은 공공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교통약자의 길 찾기에 투명하게 스며들어

▲서울역의 1호선, 4호선, 경의중앙선, 공항철도 등 다양한 노선으로의 분기점 구간에 사단법인 무의가 기획한 '모두의 지하철' 표지 부착(오른쪽) 후 휠체어, 유아차 등을 이용하는 교통약자들의 환승과 이동 안내가 명확해졌다.
홍윤희
- '모두의 지하철'이 공공디자인어워드 후보에 올랐는데 어떤 의미인가?
"공공디자인 수상작을 보면 큰 건축물이나 시설물처럼 심미적 요소가 강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교통약자의 시간을 아껴주는 안내표지는 덜 심미적일 수 있을진 몰라도 꼭 필요한 공공디자인이다. 디자인 정의가 확대될 수 있는 계기라고 본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내부의 질서나 아름다움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으니까. 만약 수상하게 된다면 상이 크고 작고를 떠나서 각지에서 이동약자 관련 디자인을 할 분들께 이정표가 될 거다."
- 힘들지만 보람도 있었을 것 같다.
"사회적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마다 배우는 게 있다. 우리가 가진 전문성으로 어떤 미션에 기여하는 건 의미 있고 보람찬 일이지만, 그걸 너무 거대하거나 비장한 것으로 여기는 건 경계하게 된다.
사회에서는 디자인을 상업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욕망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디자이너들 스스로 그 반대급부로서 '인간을 위한 디자인', 사회 참여로서의 디자인에 매료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에 스스로 도취되다 보면 디자이너가 상황을 진두지휘할 능력이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심지어 문제 자체나 문제를 겪는 당사자보다 문제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번 프로젝트는 누구보다도 90명의 휠체어 이용자를 비롯해 실증 조사에 참여해주신 교통약자들,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한 여러 민간 협력기관과 그 안의 실무자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걸 항상 상기한다. 이 많은 사람의 감각과 전문성을 나누면서 더 나은 지하철 이동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거기에 디자인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가장 보람찬 일이다."
인터뷰 내내 김소미 실장은 자신의 공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을지로입구, 시청, 서울역에서 만난 당사자들이 공통으로 물었던 질문을 대신 전했다. "환승 정보를 어디서 볼 수 있어요? 도움은 어떻게 받아요? 디자인은 언제 나와요?" 무의 환승지도를 반가워하던 한 휠체어 이용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안 가본 곳은 낯설어서 안 가게 되는데, 이런 게 있으면 계획하고 가면 되겠네요." 외출 자체가 부담인 사람에게는 공간이 개선되더라도 사전 조사용 정보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지하철표지 하나를 바꾸는 데 10년이 걸렸다. 그 10년 사이, 도면을 들고 노원역에서 헤매던 디자이너는 서울역 GTX 대합실에 어떤 표지를 어느 높이에 붙일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표지 안에는 "얼마든지 더 불러 달라"던 사람들의 시간이 함께 들어가 있다.
크리스털 잔은 원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잘 만들어진 안내표지도 그렇다. 다만 그 잔이 없으면 아무도 와인을 마실 수 없다. 휠체어 이용자를 비롯해 교통약자의 길 찾기에 투명하게 스며들어 안내를 돕는 디자인이 전국으로 확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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