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05 13:56최종 업데이트 26.08.0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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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자료사진.사진공동취재단

독재정권들이 간첩 사건을 조작한 것은 반공 분위기 유지와 공포심 확산 등을 위해서였다. 이는 간첩으로 몰려 투옥되거나 사형될 희생자들보다는 뉴스를 접하게 될 대중의 심리를 더욱 겨냥하는 것이었다.

대중의 마음에 반공정신과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공안당국은 새로운 아이디어 계발에 항상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대중이 식상함을 느끼는 순간, 사건 조작은 실패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그냥 '간첩을 잡았다'고 발표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무슨 간첩을 잡았다', '무슨 무슨 간첩을 잡았다', '무슨 무슨 무슨 간첩을 잡았다'라며 수식어를 늘려 갔다.


독재정권들은 부부 간첩 사건도 만들어냈다. 1974년 3월에 붙들려 각각 징역 2년형을 받은 차은영 김도원 부부는 "빨리 공산주의 사회가 돼야 한다. 깡패·부정부패 없이 잘사는 세상이 될 것이다"(차은영), "김일성은 조직력이 강해 땅굴을 파서라도 서울 청와대 밑까지 내려올 수 있는 인물이다"라고 말했다는 혐의를 받아 간첩으로 몰렸다. 2016년에 대법원은 이 부부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형제 간첩 사건도 만들어져 나왔다. 재일교포 김우철 김이철 형제는 북한 지령을 받고 남한에 침입했다는 이유로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두 사람이 고문 후유증으로 병원을 전전하다가 별세한 뒤인 2010년, 두 사람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문교부 선발시험에 합격해 1972년부터 1976년까지 재일한국인학교 교사로 근무한 문철태와 그 아들 문영석은 부자 간첩으로 몰려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아버지에 대한 유죄 선고가 잘못됐다는 재심 판결은 금년 6월에, 아들에 대한 선고가 잘못됐다는 재심 판결은 금년 1월에 선고됐다. 두 사건 다 무죄로 확정됐다.

부부 부자 형제를 묶는 조작이 있는가 하면, 아예 일가족을 통째로 엮는 조작도 있었다. 송형섭 일가족은 한국전쟁 때 월북했다가 1960년 10월에 갑자기 나타난 송명섭(송형섭의 동생)에게 숙식을 제공한 뒤 돌려보냈다. 이 일은 14년 뒤인 1974년에 일가족 간첩 사건으로 포장됐고, 가족 중 5명이 징역 3년 6월~5년형을 받았다. 이들은 2021년의 재심 재판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가족 간첩단 사건'

일가족을 엮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감하게 두 집안을 엮는 경우도 있었다. 일가족 간첩단 사건이 아니라 '이가족 간첩단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사례는 박정희 정권 말년인 1979년 8월에 일어났다. 2014년 12월 12일 자 <경향신문>과 2018년 2월 1일 자 <세계일보> 등이 "진씨와 김씨의 일가족", "진씨와 김모씨의 일가족"이 엮인 사건으로 보도한 삼척 가족간첩단 사건이 그것이다. 1979년 8월 9일 자 <동아일보>는 사건의 핵심 요지를 이렇게 보도했다.

"치안본부는 9일 강원도 삼척 지역을 거점으로 북괴 지하당을 조직하고 각종 기밀을 탐지·보고하며 불온선동과 민심 교란 등의 방법으로 민중봉기를 획책해오던 무장 고정간첩 9명과 불고지자 등 관련자 15명 등 일당 24명을 일망타진, 간첩 9명은 구속으로, 관련자 15명은 불구속으로 각각 검찰에 송치했다."

1979년 8월 9일 자 <동아일보> 기사 "무장 고정 간첩단 검거"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신문 지면에 공개된 위 9명의 사진 옆에는 진항식 김태룡 진창식 김상회 진형대 진윤식 김건회 김달회 김순자라고 적혀 있다. 기사 본문에 적힌 전·현 직업을 보면, 김태룡은 전직 방위병이고 김상회는 의류 행상 겸 주점 주인, 진형대는 선원이고 진윤식은 노조 지부장, 김건회 김달회는 농민이며 김순자는 보험 외판판원이었다.

진씨와 김씨가 번갈아 나오기 때문에 독자들은 '두 집안 사람들인가?' 하는 느낌을 갖기 쉬웠다. 손달용 치안본부장(경찰청장)의 발표에 근거한 위 기사 본문에 "친척이나 인척과 각종 친목계 관계"가 조직 구축에 활용됐다는 문구가 있다. 이 때문에 독자들은 '두 집안 사람들인가 보다'라는 좀 더 확실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치안본부장은 한국전쟁 때 월북한 진현식이 1974년에 동해안으로 침투해 가족들을 포섭한 뒤 북으로 귀환했다고 발표했다. 진현식이 공작금 250만 원을 남기고 갔다는 것이 본부장의 말이다.

250만 원이면 영등포 동쪽이라 하여 영동지구로 불린 지금의 서울 강남구·서초구에서 아파트나 단독 주택을 여유 있게 임차할 수 있었다. 1976년 3월 5일 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그 전년도에 도곡동의 13평형 아파트 전세보증금은 60만 원이고, 영동지구의 단독 주택 전세보증금은 150만 원 정도였다. 치안본부장은 진현식이 그런 돈을 놓고 돌아갔다고 발표했다. 돌아갔다고 했으니, 그 말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진현식이 남기고 갔다는 금액도 주목을 끌 만했지만, 거창한 내용이 더 있었다. 치안본부장은 진씨 집안과 김씨 집안이 삼척에 조선노동당 강원도지하당을 건설했다고 발표했다. 또 두 집안이 동해안 경비 상황 같은 군사기밀을 수집해 북에 보고한 것은 물론이고 민중봉기를 위해 조직을 확대하고 대학생 시위를 배후에서 선동했다고도 발표했다. 유신투쟁에 앞장서는 학생운동권의 배후에 진·김 두 집안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앙정보부, 국군보안사령부와 더불어 치안본부가 간첩잡기 경쟁을 벌이던 시절이었다. 한 가족이 아닌 두 가족을 등장시키고 노동당 강원도지부를 출현시키고 대학 운동권 배후 세력을 운운하는 등의 무리수가 경찰 발표에서 나왔다.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건이 발표된 1979년 8월 9일은 말복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이 당시 한국인들의 신경은 더위뿐 아니라 YH무역 사건에도 쏠려 있었다. 가발 제조업체인 이 회사의 부당한 폐업을 막고자 노동자들이 회사 정상화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벌인 이 싸움은 한국 사회가 부마항쟁과 10·26사태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했다.

이 투쟁이 막판 절정을 향해 고조된 시점이 7월 30일부터 8월 9일까지다. 7월 30일부터 노동자들이 야간 농성에 돌입했고, 이에 맞서 회사는 8월 6일에 폐업을 재차 공시했다. 7일에는 회사가 기숙사 식당을 폐쇄하는 야만적인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9일 제1야당인 신민당 당사로 농성장을 옮겼다. 이에 맞서 박 정권은 11일에 경찰 1000여 명을 투입해 강제로 해산시키고 노동자 김경숙이 4층에서 추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사건은 김영삼이 이끄는 신민당에 대한 박 정권의 탄압을 가중시키고, 거제 출신 김영삼과 같은 지역민인 마산과 부산 사람들의 부마항쟁 참여를 용이하게 만들었다. 이는 부마항쟁을 현지 답사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앞에서 총을 꺼내 드는 한 가지 원인이 됐다.

한국 사회가 '노동 대 자본', '민주진영 대 독재정권'의 갈등을 첨예하게 드러낸 8월 9일에 치안본부는 두 가족 24명을 등장시키는 대형 간첩 사건을 발표했다. 이 사건을 다룬 2014년 7월 8일 자 <연합뉴스>는 "일가족이 간첩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이라며 당시 사람들의 충격적 반응을 요약한다.

조작 사건이고 가짜 사건이었지만, 형의 집행만큼은 진짜 사건보다 무섭게 이뤄졌다. 진항식과 김상회에게는 사형이 집행됐고, 나머지 가족들에게는 무기징역과 징역 5~10년이 떨어졌다.

이 사건 때문에 두 가족이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는 이들의 모습을 묘사한 2014년 12월 12일 자 <연합뉴스> 등에서 확인된다. 이날 춘천지방법원에서 재심 승소 판결을 받아낸 이들의 모습을 이 신문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원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김순자는 2019년 11월 2일 자 <한겨레> 인터뷰에서 "걸핏하면 눈물이 나와요"라고 감정을 토로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고통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결국 이 사건은 재심 재판에 의해 뒤집어졌다. 2016년 9월 23일, 대법원은 관련자 9명에 대한 재심 상고심에서 가혹행위·협박·회유 등으로 받아낸 진술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통한의 눈물'과 '걸핏하면 나오는 눈물'을 완전히 닦아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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