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시절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27일 서울역에서 관련 방송이 생중계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집행유예 3년이 딸린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2021년 11월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인 2021년 12월에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에게 이남석 변호사를 소개한 일이 없다'는 취지로 발언하고, 이듬해 1월에 '건진법사 전성배를 당 관계자로부터 소개받았고, 김건희와 함께 만난 적은 없다'는 취지로 발언해 유권자의 의사결정을 침해하기에 충분했다는 이유다.
이제 1심을 막 끝낸 이 재판이 최종 확정돼 대통령 당선이 무효화되면 국민의힘이 국고에서 지원받은 선거 비용 약 397억 원을 반납해야 한다는 점이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윤석열 재판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재판 과정이 꽤 길다는 점도 문제다.
윤석열 재판의 목적은 그 개인을 응징하는 것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신속히 안정시키는 데도 있다. 너무 늘어진다는 느낌을 주는 이 재판이 그 같은 신속한 안정에 기여할 수 있겠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늦어지는 재판, 윤석열 정치생명은 그만큼 연장된다
2024년에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은 이번 재판 외에도 '내란 우두머리 등' 재판, '체포방해 등' 재판, 평양 무인기 침투 재판,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재판, 이종섭 호주 도피 의혹 재판, 명태균 무상 여론조사 재판, 한덕수 사건 위증 재판을 받고 있거나 받았다.
이 여덟 개 중에서 재판이 끝난 것은 이달 9일 대법원에서 징역 7년 형이 확정된 체포방해 사건뿐이다. 채상병 사건과 이종섭 사건에서는 아직 1심 선고도 나오지 않았고, 나머지 다섯 재판에서는 현재까지 1심 판결만 나왔다. 개별 재판 하나하나가 다 지연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복잡하기도 하고 느리기도 하다.
윤석열이 가장 핵심적인 내란 우두머리 재판에 넘겨진 것은 지난해 1월 26일이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판사가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은 금년 2월 19일이다. 1심 기소에서 1심 선고까지 389일이 소요됐다.
전두환·노태우가 내란수괴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은 1996년 1월 23일이고 서울지법이 각각 사형 및 징역 22년 6월을 선고한 것은 216일 만인 같은 해 8월 26일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스 뇌물 사건으로 기소된 것은 2018년 4월 9일이고 서울중앙지법이 징역 15년과 벌금 130억 원을 선고한 것은 179일 만인 동년 10월 5일이다. 박근혜 국정농단의 경우에는 2017년 4월 17일부터 이듬해 4월 6일까지 354일이 소요됐다.
1942년생인 제이컵 주마 전 남아공 대통령(재임 2009~2018)의 부정부패 사건이 다시 기소된 때가 2018년인데도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의 학살·납치 재판의 공판 개시에서 1심 선고(2009.4.7.)까지는 484일이 소요됐다. 이런 사례까지 감안하면 윤석열 재판만 느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유사한 사례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재임 2019~2022)의 쿠데타 모의에 대한 재판과 비교하면 매우 느린 편이다. 보우소나루가 기소(2025.2.18)되고 1심 선고(9.11)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205일이다.
윤석열은 전두환·노태우처럼 17년 전의 내란 때문에 기소된 게 아니다. 제이컵 주마처럼 부정부패를 주된 이유로 기소된 것도 아니다. 윤석열은 보우소나루처럼 현직 대통령 지위를 이용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재판에 회부됐다. 이 같은 윤석열 재판의 성격을 감안하면 지금 상황은 거북이걸음에 비유될 수 있다.
이처럼 느린 재판이 한국 사회에 주는 이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 하나는 극우세력의 새로운 구심점이 쉽게 형성되기 힘들게 됐다는 점이다. 극우세력이 열광하는 '대중을 억압하는 과감한 공권력 행사' 때문에 수감된 윤석열이 뉴스 화면에 자주 나타나다 보니, 여타 인물들이 극우세력의 정점에 오르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2013년 국정원 댓글사건 당시에는 법무부장관으로서, 2016년 촛불혁명 당시에는 대통령권한대행으로서 윤석열 검사(댓글사건 특별수사팀장, 박영수특검팀 수사팀장)와 대립하는 위치에 있었던 황교안 전 총리도 지금은 윤석열을 지지하고 있다. 윤석열 변호인단에 합류하고(2025.2.5.), 12·3내란을 정의로운 결단으로 칭송했다(2.28).
지금 상태에서는 극우세력의 지지를 얻자면 일단 12·3 내란을 구국의 결단으로 긍정해야 하므로 윤석열을 뛰어넘는 새로운 리더십이 그 내부에서 형성되기가 곤란하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는 극우세력의 최고 구심점을 감옥에 가둬둘 수 있게 됐다.
그런 점은 있지만, 지금의 재판 지연이 가장 위험한 극우적 인물인 윤석열의 정치적 재기 가능성을 살려두는 측면도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여러 개의 재판이 모두 끝나기 전까지는 그에 대한 극우의 지지가 잔존하게 되므로 재판 지연은 그의 정치생명을 연장시키는 측면이 있다. 이는 향후에 일어날 수 있는 정권교체 뒤에 그의 사면 가능성을 높이거나 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여지가 있다.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의 조속한 안정 위해서라도...

▲윤석열씨가 4월 9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장관 내란중요임무종사 사건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증언을 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윤석열의 재기 여하보다 중요한 것은 재판 지연이 정치적 불안정 요인을 상존시킨다는 점이다. 왕조국가들이 폐위된 군주를 신속히 정리한 것도 그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태양에 더해 '폐위된 태양'까지 함께 떠서 대중에게 노출되면 민심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58세 때인 1973년에 칠레의 사회주의 정권인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킨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단순히 장기집권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소 3천 명을 살상하고 최소 2천 명을 실종자로 만드는 등의 인권범죄를 저질렀다. 75세 때인 1990년에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그는 신병 치료 차 영국에 갔다가 1998년에 그곳에서 체포됐다. 스페인 국민 살해 등의 혐의 때문이었다. 피노체트로 인해 자국민 인권이 유린된 프랑스·벨기에·스위스 등에서는 피노체트 체포를 환영하며 범죄인 인도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재판은 지연됐고, 2000년에 영국은 그를 칠레로 송환했다. 이런 속에서 칠레 사회는 극심한 분열상을 보였다. 처벌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사이에서 유혈충돌까지 벌어졌다.
그해 4월 28일 자 <가디언>은 "피노체트 장군의 지지자들은 15 대 1로 숫적 열세에 놓였지만, 변호사와 인권 시위대를 향해 동전과 병과 돌을 던지며 혼란을 야기시켰다"라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은 재판의 주요 단계마다 되풀이됐다. 이렇게 시간을 끌던 중에 피노체트는 2006년 12월 10일 죽었다. 체포된 지 8년이 넘도록 재판이 지연되다가 1심 선고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런 식의 재판 지연은 극우세력의 준동을 낳을 뿐 아니라 진보진영의 불만도 터트릴 수 있다. 인권탄압 등의 권위주의 정치를 벌이다가 2011년 '아랍의 봄' 때 퇴진한 호스니 무바라크(1928~2020) 전 이집트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지연은 진보진영을 거리로 불러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지 시각 그해 4월 8일, 수만 명의 이집트인들이 카이로 타흐리르광장에 모여 무바라크에 대한 신속한 재판을 요구했다.
무바라크는 그해 2월 11일 퇴진했다. 4월 8일에 대규모 군중이 신속한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대중을 억압한 독재자에 대한 재판 지연은 이 정도로 참기 힘든 일이다.
윤석열은 한밤중에 국민들을 상대로 총을 들었다. 이런 인물을 장기간의 재판 상태에 두는 것은 사회의 불안정 요인을 키우는 일이다. 다른 데에 투입돼야 할 사회적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허비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윤석열 재판이 속도를 내도록 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의 조속한 안정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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