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7.21
연합뉴스
며칠 전, 식당에서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노동쟁의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되고 있다며 성과급 배분이나 공장 신설 등 경영상의 결정은 쟁의의 대상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광주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는 삼성전자의 결정에 노동조합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자, 대통령이 이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관련 기사:
이 대통령 "호남 반도체 투자가 쟁의대상? 국민 깜짝 놀라" https://omn.kr/2j4ta)
노란봉투법을 '주인에게 대들라는 법'이라고 말하던 아저씨의 말과 묘하게 겹쳤다. 그 사이엔 동네 식당과 국무회의라는 차이, 나라가 망했다는 한탄과 해석 지침 마련이라는 대통령 지시라는 차이가 있겠지만 근본엔 정확히 똑같은 것이 있다. 공장은 기업의 것이고, 노동자는 그 공장을 빌려 일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인식이다. 공장을 어디에 짓고, 어디로 옮기고, 무엇을 만들지는 모두 '주인의 일'이다. 노동자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인식이다.
모든 결정은 기업과 사업주가 하는 것이고 그 결정에 따른 성과를 기업과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시혜'하듯 나눠주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그 인식 위에서라면 노동조합은 주인에게 더 많은 시혜를 요구하며 대드는 집단이 되고, 노란봉투법에는 무한한 시혜를 제어하기 위한 '지침'과 '장치'가 필요해진다. 노동자는 그저 주인이 나눠주는 시혜를 감사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고, 주인이 부담을 느낄만한 요구는 해선 안 되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이던 2015년, 당시 굴뚝 농성 중이던 쌍용차 노동자들을 향해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선후보이던 2021년에는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에 대해 "노동자 구조조정이 대대적으로 이뤄져 일자리를 잃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막아야 한다"라면서 인수에 대한 노동조합의 우려가 타당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올해 처음으로 이름을 되찾은 노동절 축사에서 "노동은 한 사람의 일상을 지탱하며 가족의 오늘을 지키고, 우리 공동체를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쌍용자동차에서도, 대우조선에서도, 노동절 축사에서도 노동자의 '주인 됨'을 강조했던 대통령은, 그래서 노란봉투법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대통령은 왜 유독 삼성전자 노동조합에는 경영권은 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을까. 실은 쌍용자동차의 공장폐쇄도,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도, 일부 대학의 청소노동자 해고도 경영권을 행사한 것일 뿐인데.
그것들도 이제 와서 보니 경영권의 행사일 뿐이어서 쟁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생각이 바뀐 것일까? 쌍용자동차와 대우조선은 허락할 수 있는 정도의 시혜였고, 국책사업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신설은 허락할 수 없는 시혜이기 때문일까? 혹은 삼성전자 노조가 '국민적 밉상'으로 찍혀서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는 얼마든지 무리한 것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근무지 이전, 성과급 분배 방식, 고용 문제, 거주지 이전의 문제는 모두 경영권 행사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노동자에겐 삶의 문제다. 아니, 그보다, 노동자는 왜 경영권 문제에 관여해선 안 되는 것일까? 대통령의 말대로 노동은 세상을 움직이는 원천인데. 기업의 성과 중, 나아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 노동의 결과가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노동자는 자기 삶에 관해 말할 권리가 있는 사람

▲지난 4월 23일 경기 평택시 고덕동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주인'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누가 주인이고, 무엇의 주인일까. 자기 삶에 자기가 주인이 아닌 사람은 없다. 다만 자신을 주인으로 여기지 못하게 만드는 질서가 있을 뿐이다. 일이 곧 삶의 큰 부분이라면, 노동자 역시 자기 일에 관해 말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노동자를 자기 삶의 주체라기보다, 사업주가 정한 질서에 충실히 따르는 사람이라고 여겨 온 시간이 너무 길었다.
노동조합은 바로 그 오래된 질서를 다시 말해 보자는 데서 출발했다. 노동자는 주인의 시혜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에 관해 말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 성과를 어떻게 나눌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할지를 함께 논의하자는 요구는 '주인에게 대드는 일'이 아니다.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삶에 관여하겠다는 당연한 요구다.
그래서 노란봉투법은 중요하다. 사업주와 노동자 가운데 누가 진짜 주인인지를 가르는 법이어서가 아니다. 노동자도 자기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삶 전체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주인이 아니고, 누구도 그 시혜를 기다리는 객이 아니다. 서로 말하고 다투고 협상하면서, 지금보다 조금 나은 세계를 함께 결정해야 할 사람들일 뿐이다.
동네 식당에서 술을 마시던 아저씨도, 소년공 출신임을 말하는 대통령도, 열아홉 살에 인간의 잔인함을 운운하던 나도 모두 노동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물어야 할 것은 누가 주인인가가 아니다.
왜 우리는 아직도 누군가를 주인이라고 부르고 있는가.
*배달호 : 두산중공업 노동자. 노조 탄압과 65억 원 손해배상·가압류에 항의하며 2003년 분신했다. 그의 죽음은 노란봉투법 논의의 출발점이 된 사건으로 평가된다.
*김주익 : 한진중공업 노조 지회장. 정리해고 철회와 손해배상·가압류 철회를 요구하며 85호 크레인에서 129일간 고공농성을 벌이다 2003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8년 후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이 309일 간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당시 '희망버스'라는 사회적 연대 투쟁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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