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29 19:47최종 업데이트 26.07.29 19:47
  • 본문듣기
정치와 노동, 운동, 대중문화, 기타 등등... 그러니까 오늘의 세상 전부는 마치 거대한 농담같습니다. 거창하지만 정작 진심이라곤 없는 그런 허무한 농담. 그러나 그 허무한 농담 속에서 하나의 진실이나 한올의 진심을 길어내는 것이 모든 말하기와 글쓰기 의무일 것입니다. 거창한 농담의 세계에서 작고 소소하지만 소중한 한 올의 진심을 길어올리는 이야기를 씁니다.[기자말]
2003년 3월 14일 분신사망한 고 배달호씨 영결식이 경남 창원시 두산중공업 노동자광장 옆에서 유가족과 두산중공업 사원.조문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고 있다.
2003년 3월 14일 분신사망한 고 배달호씨 영결식이 경남 창원시 두산중공업 노동자광장 옆에서 유가족과 두산중공업 사원.조문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고 있다.연합뉴스

1년 전 이맘때쯤, 동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어떤 아저씨가 들어와서 나라가 망했다며 술을 마셔야겠다고 말했다. '나라가 망한 백성처럼 술 마시기'는 내 취미 생활이기도 해서 웃고 넘기려고 했는데, 이 아저씨 하는 말이 덜컥 목에 걸렸다. 그는 "노란봉투법인지가 통과되어서 나라가 망했다"며 "주인한테 대들라고 부추기는 법이 어디에 있냐"고 말했다. 평소라면 별로 대수로이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어쩐지 내내 입맛이 쓰고 기분이 좋지 않아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일어서서 나왔다.

배달호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고3이 되던 해의 정월이었다. 논술 준비 운운하면서 교실에서 학급비로 받아보던 <한겨레21>에 실린 이름이었다. 두산중공업, 65억. 그런 글자들은 도무지 잊히지 않는다. 죽겠기에 파업한 사람에게 받지도 못할 (혹은 갚지도 못할) 65억 원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 시절엔 라디오를 종종 들었는데, <정은임의 영화음악>은 그렇게 즐겨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김주익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웃기게도 '정은임이 어제 라디오에서 뭔가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라고 수군거리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였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100억 원대의 손배가압류, 80만 원 월급에 대한 압류. 아이들에게 사주지 못한 힐리스 신발. 논술을 앞두고 있어서였을까.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생물인가' 같은 손발 오그라드는 글을 그 인터넷 커뮤니티에 썼던 것 같다.

그리고 쌍용자동차. 작은 인터넷 언론사의 기자가 됐을 때, 편집장은 매일 아침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로 출근하게 했다. 분향소에는 숫자가 있었고 그 숫자는 너무 자주 바뀌었다. 매일이 부고였다. '눈물이 마를 새 없는' 같은 말은 오히려 사치스러웠다. 모두의 눈물은 이미 말라 있었던 것 같다. 그 분향소를 드나들던 사람들 모두. 어영부영 기자 명함 같은 것을 받아 들게 되어서 아무런 준비도 훈련도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울 시간에 보탬이 되는 기사를 쓰라"라고 다그치던 편집장이 무서워서 기사를 열심히 쓰긴 했는데, 그 기사가 정말 겨자씨만 한 도움이라도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평택 작은 동네에서 자동차 만들고, 술 마시고 애들 데리고 목욕탕 다니던 아저씨들 수천 명이 갑자기 잘렸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매일 뉴스에 나오고 철탑에 오르고 굴뚝에 오르고 무르팍이 없어지도록 절을 하며 서울 시내를 기어다니고 매일매일 상주가 되어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그렇게 길거리에서 텐트를 치고 풍찬노숙을 하며 살았는데, 돌아온 것은 또 갚지도 못할 백억 원대의 손해배상, 돌려받지도 못할 것을 알고도 내는 가압류였다.

노조법 개정, 노란봉투법(파업한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대한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그로부터 아주 조금만 나아지자는 노력이었다. 살겠다고 파업한 사람들 돈으로 협박해서 진짜 죽이지는 말자고. 개인으로서 가난하고 허약한 노동자들이 힘과 마음을 모으면 더 좋은 삶을 상상할 수 있다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은 더 현명하고 따듯하고 그나마 살만한 곳이 되길 바란다고. 적어도 열아홉 살짜리 고등학생이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나' 같은 글을 쓰면서 폼을 잡는 세상이 되진 말자고. 학급비로 받아보던 주간지엔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려는 사람들, 더 좋은 세계에 대한 상상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리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그날 식당에서 입맛이 썼던 건 그런 시간과 생각들이 너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서였다. 그리고 '주인'이라는 말. 그 아저씨도 당연히 일을 하고 돈을 벌어 김치찌개도 사 먹고 소주도 사 먹는 노동자일 텐데. 누구를 왜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하는 속상함.

노란봉투법이 필요하다던 이재명 대통령, 어디로 갔나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7.21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7.21연합뉴스

며칠 전, 식당에서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노동쟁의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되고 있다며 성과급 배분이나 공장 신설 등 경영상의 결정은 쟁의의 대상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광주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는 삼성전자의 결정에 노동조합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자, 대통령이 이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관련 기사: 이 대통령 "호남 반도체 투자가 쟁의대상? 국민 깜짝 놀라" https://omn.kr/2j4ta)

노란봉투법을 '주인에게 대들라는 법'이라고 말하던 아저씨의 말과 묘하게 겹쳤다. 그 사이엔 동네 식당과 국무회의라는 차이, 나라가 망했다는 한탄과 해석 지침 마련이라는 대통령 지시라는 차이가 있겠지만 근본엔 정확히 똑같은 것이 있다. 공장은 기업의 것이고, 노동자는 그 공장을 빌려 일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인식이다. 공장을 어디에 짓고, 어디로 옮기고, 무엇을 만들지는 모두 '주인의 일'이다. 노동자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인식이다.

모든 결정은 기업과 사업주가 하는 것이고 그 결정에 따른 성과를 기업과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시혜'하듯 나눠주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그 인식 위에서라면 노동조합은 주인에게 더 많은 시혜를 요구하며 대드는 집단이 되고, 노란봉투법에는 무한한 시혜를 제어하기 위한 '지침'과 '장치'가 필요해진다. 노동자는 그저 주인이 나눠주는 시혜를 감사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고, 주인이 부담을 느낄만한 요구는 해선 안 되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이던 2015년, 당시 굴뚝 농성 중이던 쌍용차 노동자들을 향해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선후보이던 2021년에는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에 대해 "노동자 구조조정이 대대적으로 이뤄져 일자리를 잃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막아야 한다"라면서 인수에 대한 노동조합의 우려가 타당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올해 처음으로 이름을 되찾은 노동절 축사에서 "노동은 한 사람의 일상을 지탱하며 가족의 오늘을 지키고, 우리 공동체를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쌍용자동차에서도, 대우조선에서도, 노동절 축사에서도 노동자의 '주인 됨'을 강조했던 대통령은, 그래서 노란봉투법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대통령은 왜 유독 삼성전자 노동조합에는 경영권은 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을까. 실은 쌍용자동차의 공장폐쇄도,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도, 일부 대학의 청소노동자 해고도 경영권을 행사한 것일 뿐인데.

그것들도 이제 와서 보니 경영권의 행사일 뿐이어서 쟁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생각이 바뀐 것일까? 쌍용자동차와 대우조선은 허락할 수 있는 정도의 시혜였고, 국책사업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신설은 허락할 수 없는 시혜이기 때문일까? 혹은 삼성전자 노조가 '국민적 밉상'으로 찍혀서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는 얼마든지 무리한 것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근무지 이전, 성과급 분배 방식, 고용 문제, 거주지 이전의 문제는 모두 경영권 행사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노동자에겐 삶의 문제다. 아니, 그보다, 노동자는 왜 경영권 문제에 관여해선 안 되는 것일까? 대통령의 말대로 노동은 세상을 움직이는 원천인데. 기업의 성과 중, 나아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 노동의 결과가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노동자는 자기 삶에 관해 말할 권리가 있는 사람

지난 4월 23일 경기 평택시 고덕동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4월 23일 경기 평택시 고덕동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주인'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누가 주인이고, 무엇의 주인일까. 자기 삶에 자기가 주인이 아닌 사람은 없다. 다만 자신을 주인으로 여기지 못하게 만드는 질서가 있을 뿐이다. 일이 곧 삶의 큰 부분이라면, 노동자 역시 자기 일에 관해 말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노동자를 자기 삶의 주체라기보다, 사업주가 정한 질서에 충실히 따르는 사람이라고 여겨 온 시간이 너무 길었다.

노동조합은 바로 그 오래된 질서를 다시 말해 보자는 데서 출발했다. 노동자는 주인의 시혜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에 관해 말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 성과를 어떻게 나눌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할지를 함께 논의하자는 요구는 '주인에게 대드는 일'이 아니다.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삶에 관여하겠다는 당연한 요구다.

그래서 노란봉투법은 중요하다. 사업주와 노동자 가운데 누가 진짜 주인인지를 가르는 법이어서가 아니다. 노동자도 자기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삶 전체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주인이 아니고, 누구도 그 시혜를 기다리는 객이 아니다. 서로 말하고 다투고 협상하면서, 지금보다 조금 나은 세계를 함께 결정해야 할 사람들일 뿐이다.

동네 식당에서 술을 마시던 아저씨도, 소년공 출신임을 말하는 대통령도, 열아홉 살에 인간의 잔인함을 운운하던 나도 모두 노동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물어야 할 것은 누가 주인인가가 아니다.

왜 우리는 아직도 누군가를 주인이라고 부르고 있는가.

*배달호 : 두산중공업 노동자. 노조 탄압과 65억 원 손해배상·가압류에 항의하며 2003년 분신했다. 그의 죽음은 노란봉투법 논의의 출발점이 된 사건으로 평가된다.

*김주익 : 한진중공업 노조 지회장. 정리해고 철회와 손해배상·가압류 철회를 요구하며 85호 크레인에서 129일간 고공농성을 벌이다 2003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8년 후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이 309일 간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당시 '희망버스'라는 사회적 연대 투쟁이 만들어졌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