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레미콘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김성욱
레미콘 제조회사들이 이처럼 지입 차 기사 대신 파견 기사를 저임금으로 착취할 수 있었던 구조적 배경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레미콘 믹서트럭 운전원을 파견허용 업종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파견법이 만들어진 취지는 기업이 유연한 고용을 보장하되 간접 고용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보호하고 고용불안을 막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임시적이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인력을 파견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되, 건설 현장의 위험업무나 제조업의 상시적 업무 등에 대해서는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도록 사유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파견법은 건설 현장의 업무를 '절대 파견 금지 업무'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건설기계에 해당하는 레미콘 믹서트럭 운전 업무에 대해서는 시행령을 통해 노동자 파견을 허용합니다. '레미콘 믹서트럭 운전 업무'를 파견 허용 업종인 '자동차 운전 종사자의 업무'라고 보는 겁니다.
김씨와 같은 파견 기사들의 업무는 단순히 레미콘 믹서트럭을 통해 레미콘을 운송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현장 도착 이후 레미콘 타설의 준비 작업으로 '펌프카'에 레미콘을 직접 부어 넣는 작업을 수행하는 등 실질적으로는 건설 현장의 업무와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이처럼 건설 현장의 위험업무가 혼재된 레미콘 믹서트럭 운전 업무를 자동차 운전 종사자의 업무로 해석하는 것은, 파견법이 건설 현장 위험 요소를 고려해 파견 금지한 취지에 비춰 보면 문제가 큽니다.
게다가 파견 회사가 최저임금 수준으로 인건비를 낮춰 경쟁하는 파견 노동시장을 고려하면, 레미콘 믹서트럭 운전기사의 파견 허용은 레미콘 운송 노동시장의 전반적 보수 단가를 떨어뜨려 레미콘 운송 노동시장을 황폐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처럼 지입차량 기사의 반값에 초과 연장수당도 안 주는 데다가, 김씨가 일하는 레미콘 제조회사에서는 파견법의 사용기간 2년 제한을 위반한 불법파견이 수시로 이뤄졌습니다. 파견법에 따르면 파견업체는 2년을 초과하여 근로자를 파견할 수 없고 사용사업주는 2년을 초과하여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만 55세 이상은 예외).
이를 위반하면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 모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사용사업주는 2년을 초과해 불법파견 받은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합니다. 김씨가 일하는 레미콘 제조회사는 9명의 파견 기사를 파견법상 사용 제한 기간인 2년을 초과해 사용하며 법을 위반했습니다. 만 55세 이상 파견 기사까지 포함하면 2년을 초과해 사용한 파견 기사는 전체 파견 기사의 절반 가까이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저임금에 파견 기사들이 그만둘까 봐 근속 수당을 지급했는데, 연차휴가를 쓰면 이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연차휴가를 쓰면 월 20만 원의 근속 수당이 없어지는데 누가 연차휴가를 쓸까요? 연차휴가 사용을 이유로 근속 수당을 깎는 행위는 연차휴가의 자유로운 사용을 정한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 위반입니다.
파견 기사들이 원청인 레미콘 제조회사를 상대로 불합리한 노동 관행을 문제 삼으면 레미콘 회사는 파견업체를 통해 파견계약 기간 만료를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절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견디다 못한 김동욱씨는 올해 4월에 동료 파견 기사들과 노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란봉투법) 에 따라 원청인 레미콘 회사와 직접 교섭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당시 김씨가 일하는 레미콘 제조회사에서 운송일을 담당하던 파견 기사 약 40명 중 38명이 가입했습니다. 그만큼 열악한 노동환경에 불만이 컸던 겁니다.
레미콘 회사는 자신들이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다"라면서 파견노동자들이 만든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거부했습니다. 노동조합은 레미콘 제조회사가 파견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실질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을 근거로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레미콘 제조회사가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취지의 시정 신청을 제기했습니다.
노동조합은 7월이 되어 가까스로 경기지방 노동위원회로부터 '원청레미콘 회사가 노조 교섭의 당사자가 맞다'라는 취지의 결정을 얻어 냈습니다.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3개월이 꼬박 지나는 동안 교섭은커녕 교섭의 상대방임을 인정받는데도 이렇게 지난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책임 회피하는 원청... 검찰총장 출신 전관을 변호인으로 선임
레미콘 회사는 교섭의 상대방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결정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중앙노동위원회에 "원심을 취소해 달라"는 취지의 재심 신청을 했습니다. 때마침 파견 기사 10명이 속해 있는 파견 회사는 "경영상 사정으로 8월 말에 근로자 파견 사업을 폐지할 예정"이라며 문자로 계약 종료를 통보했습니다. 다른 이름의 파견업체를 통해 버젓이 파견노동자를 모집하는 걸 보면 김씨를 비롯한 파견노동자들 처지에서는 명백히 파견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위장폐업이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습니다.
노조 상급단체의 도움을 받아 노동청에 레미콘 제조회사의 파견법 위반과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등에 대해 근로감독 청원을 제기했지만 아직 근로감독관으로부터 실효성 있는 조치가 취해졌다는 소식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지난 6월에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유로 파견업체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조합원을 도와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제기했지만, 사건이 많이 밀려 9월에나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회사는 계약이 만료된 조합원과의 계약을 계속해서 해지하며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하고 있습니다.
11월이면 계약이 만료되는 김씨는 마음이 급합니다. 김씨는 노란봉투법이 만들어졌으니,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하면 정당한 노동의 권리가 보장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원청레미콘 회사는 파견노동자의 정당한 초과 연장수당 지급을 거부했고, 노동조합이 교섭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검찰총장 출신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교섭의무를 회피하려 합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래도 조합원들과 파견 기사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사회에 알리고 교섭을 통해 지금까지 공짜로 빼앗겼던 초과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겠다고 다짐합니다.
김씨와 노동조합은 파견 사용기간 2년을 초과한 레미콘 제조회사를 상대로 파견법 위반 혐의로 관할 고용노동지청에 고소와 함께 근로감독청원도 했습니다. 회사는 처벌이 두려웠는지 9명의 파견 기사를 마지못해 정규직으로 고용했습니다. 작지만 소중한 성과입니다.
김씨는 국회를 찾아 이러한 파견노동자 착취를 구조적으로 가능하게 했던 제도의 개선(레미콘 믹서트럭 운전 업무의 파견업 허용 폐지)을 촉구하려고도 합니다. 김씨와 동료 노동자들의 노력이 열매를 맺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