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에서 늙은 몸을 밀어낸 그 선이, 이제 일감을 나누는 선이 된다.
veloradio on Unsplash
나이 든 모델은 섭외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40대 여성 모델은 선호되지 않는다. 이유를 길게 설명하는 사람은 없다.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적은 그대로다. 그려지는 몸은 젊은 몸이고, 젊음은 이 일의 자격 요건이다. 미술사가 오백 년에 걸쳐 정해둔 기준이 지금도 섭외 전화 한 통의 형태로 작동한다. 화폭에서 늙은 몸을 밀어낸 그 선이, 이제 일감을 나누는 선이 된다.
그래서 나는 시술을 고민한다. 처음에 이것을 설비 투자라고 불렀다. 시술은 사라지는 자격을 돈으로 조금 더 연장하는 일이다. 기계를 오래 쓰기 위해 부품을 갈듯, 일감을 잃지 않기 위해 몸을 손본다. 미용이 아니라 감가상각에 맞서는 일이다.
그런데 감가상각을 계산에 넣고 설비를 보수하는 것은 보통 고용주이거나 사업주다. 자기 자산의 수명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니다. 나는 설비이면서 동시에 그 설비를 제 돈으로 보수해야 하는 사람이고, 그러면서도 그 자산이 낡았을 때 아무것도 보전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몸의 노후를 책임지는 제도는 없다.
5화 '
프리미엄 누드모델이 천직이라서요 '에서 적었듯이, 나는 예술인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4대보험이라는 제도 밖에 있다. 늙는 몸의 문제는 그 이야기의 끝에 정확히 이어진다. 대부분의 노동자에게 나이 든다는 것은 호봉이 오르고 경력이 쌓이는 일이다. 시간이 그들의 편에서 값을 올려준다.
이 일에서 나이 든다는 것은 자격이 깎이는 일이다. 14년을 버틴 몸이 14년을 버텼다는 이유로 오히려 값이 내린다. 시간이 나를 숙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시장 밖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그렇게 밀려나는 순간을 대비할 어떤 안전망도, 나에게는 주어져 있지 않다.
더 많은 몸을 그리는 일
이전 글에서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적었다.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마흔의 몸이 먼저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할머니의 몸에도 쓰임이 있는 산업 구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은 늙은 몸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드'의 자격에서 밀려난 몸은 늙은 몸만이 아니었다. 마른 몸이 아닌 몸, 매끈하지 않은 몸, 아프거나 다친 몸, 표준에서 조금이라도 비껴간 몸들이 같은 선 바깥에 함께 서 있었다. 미술은 오래도록 몇 안 되는 몸만을 골라 그려왔고, 나머지는 그리지 않거나 알레고리로만 그렸다. 그리지 않는다는 것은 없는 셈 친다는 것이다. 화폭에 오르지 못한 몸은 세상에 없는 몸처럼 취급된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늙은 몸의 자리 하나가 아니라, 더 많은 몸을 그리려는 노력 그 자체다. 다양한 몸들이 상징도 예외도 아닌 그냥 몸으로 그려지는 일. 젊고 매끈한 몸 하나를 기준으로 세워두고 나머지를 재던 그 선을, 그리는 쪽에서 먼저 지우는 일.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을, 그 다양함을 조금 더 존중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건 그런 뜻일 것이다. 그런 자리가 있어야, 하고 싶다는 말이 천직이라는 말이 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