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03 15:43최종 업데이트 26.08.0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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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
기후위기와 생태학살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 하루하루 현실로 다가오는 생존의 위기 앞에서 과연 다른 세계는 가능할 것인가를 묻는다. 다른 세계는 물론 가능하다고 믿는다. 다만 다른 행성이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과 아직 푸른 하늘과 바다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나무와 새들, 함께 호흡하는 뭇생명들이 공존하는 세계를 함께 상상하고자 한다.

지난 3월, 지인에게서 전국의 환경 보호 현장을 기사화하는 르포 프로젝트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약간 당혹스러웠다. 환경, 생태, 현장, 르포. 이 네 단어는 소설가인 나에게 생소했다. 소설은 개인의 경험에 상상을 덧입힌 결과물이다. 따라서 현장을 취재하는 르포를 써 본 적도, 써 볼 생각도 없었다. 환경 보호 활동에 참가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제안을 수락했다. 1년간 붙들었던 장편을 막 탈고한 참이라, 집중할 다른 건수가 필요했다.

취재 소재로는 '해양보호구역(Marine Protected Area, 아래 MPA) 지정과 관리 실태'를 골랐다. 나는 바다를 싫어하는 '육지인'이다. 바다는 가족 여행 때만 들르고, 소금기로 찐득한 바닷물이 몸에 닿으면 수도꼭지를 찾는다. 이렇게 바다와 거리를 두다 보니 해양생물에 관심도 지식도 없다. 취재 전까지 나는 도루묵이 도토리묵의 한 종류인 줄 알았다. 농담이 아니다.


나는 육지보다 해양오염이 더 취재가 쉽다고 여겼다. 나에게 '오염된 바다'는 일종의 스틸컷이었다. 적조로 빨개진 바다, 플라스틱이 떠다니는 바다, 유출된 기름으로 검게 물든 바다. 나는 스틸컷으로 바다의 오염도를 재어 왔다. 측정 장소는 언제나 육지였다.

네이버에 '해양보호구역'을 검색해 보았다. 보전적 관리를 위해 국가 기관이나 지자체가 지정하고 보호하는 해양 공간이라고 한다.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MPA는 총 39개소, 면적은 대략 3120㎢. 해마다 한두 곳이 새로 지정되니, 지정 개소와 보호 면적을 누적한 그래프는 꾸준히 우상향한다. 갯벌은 습지보전법의 보호를, 기타 해역은 해양생태계법의 보호를 받는다. MPA는 해역의 특질에 따라 섬세하고 체계적인 관리를 받는 듯했다. 고시된 숫자는 양호하게 보호 중인 MPA만을 보여줬다.

오염된 MPA 역시 화면 안에만 있었다. 언론은 MPA를 '문서 공원(Paper park)'-실효적인 관리가 부재하여 쓰레기로 잠식당한 곳-이라고 주장했다. 숫자의 의미와 현장의 상황이 다르다는 생각에, 나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아래 국시모) 정인철 국장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오염된 해양보호구역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 국장이 추천한 곳은 포항 호미곶이었다.

호미곶, 숫자가 옳다는 증거

가정의 달 5월, 호미곶은 가족 단위 관광객으로 붐볐다. 호미곶 바다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오염의 현장을 찾아 해안도로를 따라 걸었다. 해안가에 뒹구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정체불명의 투명한 물이 바다로 방류되고 있었다.


호미곶을 훼손하면 받는 처벌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숫자였다.

한 시민이 현수막을 지나가고 있다.
한 시민이 현수막을 지나가고 있다.양성윤

인터뷰차 만난 정 국장에게 호미곶을 방문한 소감을 말했다. 깨끗했다고, 문제가 없어 보였다고. 정 국장은 예상 밖의 대답을 들려줬다.

"대다수가 육지에서 본 바다로 오염 여부를 판단해요. 진짜로 오염된 곳은 바닷속이에요. 해양생물이 자취를 감춘 수중을 직접 보셔야 합니다. 고성군에 있는 백도에 들어가 보세요. 갯녹음이 심각한 곳이거든요."

대답을 듣자 나는 뜨끔했다. '대다수'는 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동시에 두려워졌다. 수영도 못하는 내가 다이빙을 해야 한다니. 그러나 정 국장의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진짜로 오염된 바다를 모른 채 해양오염을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사막을 닮은 동해

바다의 날인 5월 31일, 다이빙 실습을 받고자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백도항에 갔다. 강사는 윤재준 코스디렉터였다. 호미곶에서처럼 날씨가 좋았다. 잔잔히 찰랑이는 바닷물에 햇살이 부딪혀 반짝였다. 구름 없는 하늘은 검푸른 바다색을 닮아 있었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백도로 향하는 바닷길, 나는 '오염된 바다'의 스틸컷에 일치하는 장면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수면에 쓰레기는 하나도 없었다. 백도 수역은 호미곶보다 사정이 훨씬 좋아 보였다.

배에서 바라본 백도와 작은 백도
배에서 바라본 백도와 작은 백도양성윤

백도항을 떠난 지 15분, 나는 입수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하얀색과 분홍색을 띤 암반이 늘어났다. 알록달록하니 귀여웠다. 바위에는 수중 기뢰처럼 생긴 성게가 가득했다. 성게 주위로 짤막한 해조 줄기와 밑동이 듬성듬성했다. 물고기는 거의 없었다. 나는 이것이 동해 수중의 일반적인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떼 지어 기다란 해조숲을 노니는 장면은, 외국 바다를 촬영한 다큐멘터리에서나 봐왔으니까.


복귀하는 선상에서 나는 윤 디렉터에게 물었다. 지금 본 것이 일반적인 동해의 모습인지를. 윤 디렉터는 말했다. 오늘 본 백도 수중은 갯녹음이 빠르게 진행 중인 곳이라고.

그제야 나는 갯녹음의 뜻을 찾아보았다. 갯녹음. 갯가에 바닷말(미역·다시마 같은 해조류)이 녹아 없어진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갯녹음의 원인은 급격한 수온 상승이다. 바닷물이 이전보다 뜨거워지면, 해조류가 녹는 시기가 당겨진다. 해조류에 알을 낳거나, 해조류를 먹는 해양생물이 사라진다. 포식자가 없어진 그때 성게가 온다. 성게는 남아 있는 해조를 먹어 치운다. 성게밭이 된 암반을 무절석회조류가 덮어 버린다. 해조류가 자랄 수 없는 암반은 분홍색에서 흰색으로 변한다. 내가 귀엽게 여긴 암반들은 갯녹음의 심화 단계에 접어든 상태였다. 성게 주변에 해조와 물고기가 없는 이유다.

갯녹음이 진행되는 암반의 모습
갯녹음이 진행되는 암반의 모습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갯녹음의 다른 말은 '바다사막화'다. 지구온난화가 뉴스의 단골이던 시절, 지구 해양이 사막이 된다는 소식을 접한 기억이 났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금세 잊었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황색이 아니라 파랬으니까. 나에게 '바다의 사막화'는 수사적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와 나는 윤 디렉터에게 물었다. 내가 가보지 못한 백도 수중은 어떤 상태인지를 말이다. 사진 두 장이 도착했다. 내가 다이빙했던 맞은편 수중이 보였다. 해조를 먹어 치운 성게가 해초(잘피) 서식지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윤 디렉터는 이대로면 백도 수중은 속초 조도(鳥島)처럼 될 것이라며, 사진 한 장을 더 보냈다. 지난해 11월에 촬영한 조도 수중이었다. 수심 2m, 암반은 완벽히 하얬다. 성게가 장악한 암반에는 해초 뿌리조차 없었다. 조도의 수중은 바다에 잠긴 사막이었다.


나는 사진을 닫으면서 백도의 두 얼굴을 마주한 바다의 날을 떠올렸다. 백도항의 바다는 창창(蒼蒼)했다. 하지만 백도 수중은 표백(漂白)되어 있었다. 잘려 나간 해조의 밑동과 성게뿐인 바닷속은 모래 덮인 사막처럼 황량했다. 바다의 사막화, 그것은 비유가 아니었다. 엄연한 현실이었다.

군사작전 같은 해양정화활동

6월에는 정 국장의 제안으로 제주도에 갔다. 차귀도에서 열리는 해양정화활동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차귀도는 천연기념물이자 천연보호구역이다.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자연 그대로 이루어진 상태'를 뜻하는 천연(天然)이라는 말에서, 나는 차귀도를 철저히 보전하려는 정부의 굳은 의지를 느꼈다. 게다가 차귀도는 무인도이다. 쓰레기로 뒤덮인 차귀도가 존재할 리 없지 않은가.

차귀도의 해양정화활동을 상상해 봤다. 역시나 뉴스에서 본 영상-시민들이 해안을 거닐며 생수병과 담배꽁초를 집게로 집어 올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번 정화활동은 차귀도 절경을 배경 삼아 산책하듯 해안을 가볍게 청소하는 활동일 것이라고, 나는 예측했다.

정화활동 1일 차, 6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차귀도 해안가에 쌓인 쓰레기와 바다에 가라앉은 납봉돌을 수거하는 임무를 맡았다. 나는 후자를 수행하는 수중정화 팀을 따라갔다. 항구에서 팀별로 배치된 다이버들은 주의 사항을 전달받았다. 다이빙에 유리한 날씨가 아니었다. 비구름이 햇빛을 가렸고 파도 또한 거셌기에, 다이버가 입수할 차귀도 수중은 시야가 탁하고 조류가 거칠 것이었다. 모든 다이버는 진지한 표정으로 팀원의 몸 상태와 장비를 점검했다. 웃음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산책에 가까운 해안 청소'를 예상했던 나는 엄숙한 분위기에 사뭇 당황했다.


수중정화 팀을 태운 배 6척이 하나씩 항구를 떠났다. 차귀도가 가까워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다에 낚시찌를 드리우는 낚시꾼 서너 명이었다. 그제야 나는 수중정화 팀이 수거할 납봉돌의 정체를 알았다. 연간 30만 명이 넘는 차귀도 관광객의 대다수는 낚시꾼이다. 차귀도는 참돔, 돌돔, 벵에돔이 잘 잡히는 '일급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낚시꾼은 찌를 신속하게 가라앉히려고 납봉돌을 쓴다. 중금속인 납은 바닷물에 녹으면서 차귀도에 서식하는 해조류와 산호 군락을 해친다.

나는 선장에게 납봉돌 낚시가 차귀도에서 가능한지를 물었다. 선장은 답했다. 차귀도는 낚시가 가능하며, 납봉돌 사용을 단속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었다. 여기는 정부가 차귀도의 '천연'을 법으로 보호하는 곳 아닌가.

낚시꾼과 입수를 준비하는 다이버
낚시꾼과 입수를 준비하는 다이버양성윤

낚시꾼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차귀도 해안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예측과 달리, 차귀도에는 바다 쓰레기가 말 그대로 쌓여 있었다. 마치 마을에서 수거한 쓰레기를 포클레인으로 가지런히 정리한 모양새였다.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이 모아뒀다고밖에 볼 수 없는 저 쓰레기 더미는 누구의 소행인가. 나의 질문에 선장은 쓰레기 더미를 옮긴 것은 북서풍과 해류라고 답했다. 납봉돌은 인간의 소행, 쓰레기는 자연의 소행이었던 것이다.

해안가에 쌓인 쓰레기를 훑어보는 선장
해안가에 쌓인 쓰레기를 훑어보는 선장양성윤

육상정화는 정오 무렵에 시작했다. 미끄러운 돌이 많은 해안은 다이버가, 나머지 해안은 육상정화 팀이 담당했다. 쓰레기 포대를 수거하는 절차는 간단치 않았다. 선박이 정박하기에는 해안 근처가 수심이 얕았던 것이다. 해안에 쌓인 포대를 다이버가 대기 중인 모터보트까지 끌어왔다. 모터보트가 포대를 다시 크레인선에 넘겼다. 크레인선이 포대를 올려 실으면 한 차례가 끝났다. 이 과정은 세 시간 넘게 반복되었다.


나는 정화활동을 지켜보던 선장에게 이렇게 쓰레기를 치우면 효과가 있는지 물었다. 선장은 안타까움이 깊게 밴 목소리로 답했다. 아무리 치워도 다음 물때에 해류가 쓰레기를 다시 실어 온다고, 인근의 무인도 수십 곳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고. 할 말이 없어지는 대답이었다. 그때 크레인선이 재차 눈에 들어왔다. 주황색 포대가 크레인선 후미에 쌓여가고 있었다. 모터보트 두 대는 쉬지 않고 포대를 실어 날랐다. 현장을 지휘하는 정 국장의 육성이 들려왔다. 선상에는 다이버 팀이 최대한 수거한 납봉돌 자루가 놓여 있었다.

소풍쯤으로 낙관했던 해양정화활동은 대규모 군사작전에 가까웠다. 이 작전의 핵심 전력은 전국에서 모인 자원봉사자였다. 곁에서 지켜본 자원봉사자는, 인간이 더럽힌 바다를 안타까워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바로 그 안타까움이 그들을 제주행 비행기에 태웠고, 차귀도로 이끌었던 것이다. 다만 차귀도처럼 정화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무수히 많은 것뿐이다. 납봉돌의 무덤인 차귀도 수중처럼, 정화의 발길이 닿지 못하는 곳이 곳곳에 있는 것뿐이다. 그런 곳에 쌓인 쓰레기는 인간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선 것뿐이다. 인간은 일개 소대였고, 해양 쓰레기는 군단이었다. 그것이 선장이 들려준 안타까움의 진짜 의미였다.

육지로 향하는 배 위에서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변함없이 찌를 드리우는 낚시꾼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숫자가 말하지 않는 숫자들

나는 제주도를 떠나면서 법을 찾아봤다. 납봉돌 낚시를 단속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선장의 말을 잊을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납봉돌 낚시를 단속할 근거가 두 개 존재한다.

납봉돌은 '낚시 관리 및 육성법' 제8조가 금지하는 유해 낚시도구에 해당한다. 제조와 수입뿐 아니라 사용도 금지 대상이다. 납이 수생태계를 해치는 중금속이기 때문이다.

자연유산법은 천연기념물의 수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를 국가유산청장의 허가 대상으로 규정한다.

차귀도는 국가유산청이 지정하고 제주도가 관리하는 천연보호구역이다. 차귀도에 '사실상' 없었던 것은 제주도에서 파견한 단속 인력이었다. 지켜야 할 자들이 방기한 차귀도를 돌본 이들은, 쓰레기와 납봉돌을 주워 올린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그들이 이룬 성취를 숫자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청소한 해안선 길이 90m, 수거한 쓰레기 2300kg.

해양생물다양성을 보존하자는 범지구적 요구에 맞춰서,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 육상·해양의 최소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이른바 '30by30' 프로젝트는 어떤 숫자를 기록하고 있는가. 한국의 해양 영토는 약 43만 8천㎢이다. 2021년 기준 MPA의 총면적은 약 8085㎢, 해양 영토의 약 1.8%에 해당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해양수산부의 지정 면적과 기후에너지환경부, 국가유산청의 지정분을 합친 것이다. 30by30을 달성하려면 4년 안에 약 12만 3300㎢를 새로 지정해야만 한다.

기사를 쓰면서, 나는 3월에 보았던 화면 속 숫자를 다시 확인했다. MPA 지정 개소와 보호 면적을 누적한 그래프는 여전히 우상향했다. 그래프의 숫자가 침묵하는 사실이 있었다. 호미곶에서 마주쳤던 정체불명의 물은 양식장 배출수였다. 배출수는 연안을 부영양화시킨다.

숫자는 다른 숫자들도 말하지 않았다. 갯녹음에 질식하는 백도 암반의 수, 차귀도와 주변 무인도에 해류가 쌓고 있을 쓰레기의 규모, 전국의 MPA에서 낚시꾼들이 던져대고 있을 납봉돌의 수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신경 쓰지 않는 한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덧붙이는 글 기획 공동진행: (사)세상과함께>,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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