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콩국수이인자
하지만 한때 콩국수가 가슴을 뛰게 했던 적도 있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는 친구 따라 강남이 아닌 재수학원에 갔다. 둘 다 문학 소녀였는데, 학원의 한 선생님을 함께 좋아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남자친구라도 만들었다면 둘 다 '삼수' 각이었을 테니까.
학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던 수학 선생님이었다. 수학은 질색이었지만 선생님 만큼은 멋있었다. 그 시절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건 연예인을 '덕질'하는 마음과 같았다. 우리는 모의고사가 끝나는 날이면 팬레터를 쓰듯 공원 벤치에 앉아 선생님께 편지를 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우리에게 영화를 보자고 하셨다. 학원이 끝나고 수강생들의 눈을 피해 선생님은 택시를, 우리는 버스를 탔다. 지금은 이름이 바뀐 어느 지하철역에서 만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비밀스러운 일인가 싶긴 하다. 수많은 역을 지나 시청역에서 내렸다. 영화를 보기 전 선생님이 정말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어느 허름한 식당에 데리고 가셨는데, 하필 내가 제일 싫어하던 콩국수집이었다.
소금을 넣어야 할지 설탕을 넣어야 할지 정신이 없었다. 자꾸 많이 먹으라고 하셨는데, 내숭이 아니라 진짜 맛이 없어서 면발만 겨우 몇 젓가락 건져 먹었다. 콩국물은 고스란히 남겼다. 가끔 그날을 생각한다. 그날의 설렘, 그리고 그 진하고 아까운 콩국물을.
재미있는 사실은 스무 살에 먹었던 설레지만 맛없던 콩국수 집과, 서른 넘어 국물까지 싹싹 비워낸 집이 같은 집이었다는 점이다. 세상의 단맛과 쓴맛을 골고루 맛보고 나서야 비로소 콩국수가 품은 슴슴하고 고소한 진짜 맛을 알아보게 된 것이다.
강릉까지 왔으니 바다는 보고 가야겠다 싶어 강문해변으로 향했다. 방학을 맞아 청춘을 만끽하는 대학생들 사이에 앉아, 도서관과 콩국수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조합을 어떻게 글로 담아야 하나 고민했다. 명랑, 위트, 설렘, 위로, 슬픔, 감동, 웃음… 이 다양한 감정들을 저 바다 같은 마음에서 기워 올려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나를 슴슴하게 해주는 두 가지
▲강릉강문해변뜨거운 여름
이인자
콩국수와 도서관에 대한 생각을 수평선의 소실점까지 아무리 몰고 가도, 떠오르는 단어는 '슴슴함'뿐이었다. 자극 없이 무해하다는 점에서 두 존재가 참 많이 닮아 있었다. 한때 내가 원하는 하루는 그저 슴슴한 것들로 채워지는 것이었다. 아침 출근길이 막히지 않았으면, 점심은 맛있었으면, 가족들에게 위급한 전화가 오지 않았으면… 그런 슴슴한 일상을 보내며 늙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오래 전에도 그랬지만 이상하게 글을 쓰면 자꾸 욕심이 생긴다. 내가 쓴 어떤 문장이 누군가의 뇌리에 확 내리 꽂혀서 하루 종일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슴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지 않는 날은 '글루미'해진다. 입맛이 뚝 떨어진다. 콩국수와 도서관이라는 이 무해한 조합은 자꾸 욕심을 부리려는 나를,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에 길든 우리 모두를, 좀 슴슴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나지막이 일깨워주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강릉을 떠나면서 생각했다. 바닷속 해초처럼 하늘거리던 콩국수의 면발을, 나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도서관의 800번대 서가를, 강릉이라 부를 때 코끝에서 요동치는 '릉'의 감각이 후각일지, 청각일지를. 그리고 내일 다시 시작될 도서관에서의 슴슴한 일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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