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24 17:34최종 업데이트 26.07.2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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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숏폼 콘텐츠가 대세인 시대에 느림에 주목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성공보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드라마나 예능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김지은의 그거 봤어?'에서 다루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마흔이 지난 이후로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낄 때가 많다. 가족끼리 즐거운 한때를 보내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웃다가 문득, '언젠가 이 시간이 그리워지겠지' 하는 생각에 갑자기 아련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순간이라고 느낄 때, 그 기억을 잊지 않으려 '지금, 여기, 우리'에 대한 메모를 한다.

6년 만에 돌아온 <해피투게더>

MC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첫번째 출연자 <빈칸채우기>
MC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첫번째 출연자 <빈칸채우기>국내 최초 '스토리텔링 음악 오디션'이라는 기획에 맞춘, 토크에 적합한 무대 구성으로 보였다. MC 네 명과 출연자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KBS 2 해피투게더

지난 10일에 첫 방송을 한 KBS <해피투게더-혼자가 아니어서 좋아>에서도 '지금, 여기, 우리'가 보였다. 이전의 '해피투게더'는 '쟁반 노래방', '사우나 토크' 등 게임과 토크가 주를 이뤘지만, 이번에는 '스토리텔링 음악 오디션'이라는 새로운 기획으로 6년 만에 돌아왔다.

프로그램 뒤의 부제인 '혼자가 아니어서 좋아'처럼 혼자가 아닌, 팀을 이뤄서 출연하며, 지원 동기에 대한 서사가 노래 실력만큼이나 중요하다. 방영된 1, 2화를 보며 <유퀴즈>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결합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MC인 유재석, 장항준, 윤종신 그리고 스페셜 MC가 함께 프로그램을 연다. 해당 순서의 참가자 여러 명이 나와 의자에 착착 앉는다. 서로를 보며 쑥스러운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 토크가 시작된다.

참가자들은 '우리가 왜 지금, 여기에 나와야 했는지' 이야기 한다. 어색함은 사라지고, 그들만의 특별한 서사가 공간을 채운다. 모두가 자신이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친구, 동료, 가족 등)과 출연했다.

처음 출연한 '빈칸채우기'는 전설의 코러스팀. 항상 녹음실에서만 노래했는데 무대 위에서 함께 노래하고 싶어 지원했단다. 또 한 팀은 11년 만에 모인 클릭비. 이들은 사이가 틀어진 두 멤버가 10년 만에 화해했는데, 마침 이런 기회가 있어 지원했다고 했다.

11년 만에 뭉친 클릭비
11년 만에 뭉친 클릭비갈등이 깊어져 안 본지 10년이 됐던 두 멤버가 막상 만나서는 15분 만에 화해했다고 한다. 그 덕에 이렇게 한 무대에 설 수 있었다고.KBS2 해피투게더

서사가 넓게 펼쳐지고 그 위에 음악이 흐른다. 그들의 서사를 알고 나니 노래가 음색, 음정, 박자를 넘어 하나의 이야기로 들렸다. 노래는 혼자 할 수 있지만, 사람의 이야기는 혼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스레 혼자가 아닌 '함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1, 2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팀은 엄마와 아들이 함께 참여한 팀 '거북이처럼'이었다. 아들 전유준 군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노래에 소질이 있어 이미 여러 대회에서 수상한 경험이 있었다.

엄마와 아들로 이루어진 <거북이처럼>팀.
엄마와 아들로 이루어진 <거북이처럼>팀.서로 마주보며 팀 이름과 같은 제목의 동요를 부르고 있다.KBS2 해피투게더

유재석이 팀명이 '거북이처럼'인 이유를 물으니, 엄마 박은주씨는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금은 느리지만, 거북이처럼 천천히 나아가라는 바람을 담았다'라고 말했다. 유준이도 팀명이 마음에 든다며 "엄마랑 나랑 같이하면 천천히 가도 괜찮고, 느리게 가면 다 볼 수 있어서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이어진 노래 제목도 팀 이름과 같은 <거북이처럼>이란 동요였는데 유준이 뿐만 아니라 엄마 박은주씨의 목소리도 아주 맑았다. 동요의 가사도 앞서 말했던 이야기와 닮아 몰입이 됐다. 특히 '거북이처럼 천천히 나아간다면 네가 지나온 그 시간들은 어느새 네 꿈이 될 거야'라는 후렴구는 노래를 들은 이후에도 계속 생각났다. 이 팀이 천천히, 그러나 누구보다 더 묵직하고 빛나는 걸음을 한 발씩 딛으며 함께 나아가기를 응원했다.

17일 방영된 2화에서 A그룹의 본선 진출팀이 발표됐다. 두 팀뿐이라 아쉬웠지만, 떨어진 팀들에게도 그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함께 도전하고 싶은 사람을 발견하고, 서로 목소리를 맞춰가며 무대를 준비한 과정 자체가 두고두고 떠올릴 수 있는 추억으로 남지 않았을까. 참여한 모든 팀의 '지금, 여기, 우리'가 무척 반짝이고 아름다워 보였다.

집 팔고 떠난 3개월의 여행이 남긴 것

평생 중 가장 좋았던 하루
평생 중 가장 좋았던 하루9년전, 독일 드레스덴에서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탔던 하루. (한국 사람에게 찍어달라고 했다면, 저렇게 찍어주지 않았을텐데.)김지은

나에게도 '지금, 여기, 우리'를 놓치지 않았던 순간이 있다. 지금 중3인 아이가 일곱 살일 때, 집을 팔아 3개월 동안 여행을 떠났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긴 시간을 내기 어려울 테니, 그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기대와 달리, 가족과 24시간 붙어 지내야 하는 상황이 스트레스로 작용해 자주 투덜댔다. 사기를 당하고,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길게 예약한 숙소의 컨디션마저 좋지 않는 등 예상 밖의 일들도 있었다. 초반에는 서로 예민해져 날을 세우기도 했지만 결국은 이해하고, 허허허 하는 너털웃음으로 넘기는 내공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팔았던 집값이 두 배도 넘게 뛰어서 주위의 비웃음을 샀다. 내 집 마련은 아주 요원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 뒤로 9년이 흘렀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책 속의 한 문장에 한참 머물렀다. '살면서 제일 좋았던 하루'를 떠올릴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언제일까. 곧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아 남편에게 물었는데 그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십 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생각났다.

"나 생각났어! 우리 스톡홀름 놀이동산 갔던 날."
"나도 하루 생각났어. 드레스덴에서 강변 따라 자전거 탄 날."
"참, 컨디션 좋지 않은 몰디브 숙소에서 탈출한 날도 좋았지."

평생에 가장 좋았던 하루가 3일이나 되다니. 갑자기 흥이 났다. 집을 판 게 아깝지 않았다. 사춘기 아이와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마다 그때의 여행은 어김없이 대화 소재를 제공한다. 힘들었던 일도 지나고 나니 웃으며 떠올릴 추억이 되었다. 알고 벌인 일은 아니지만 과거의 우리가 '지금, 여기'를 놓지 않아 현재에 그 덕을 보고 있는 셈.

내 주변의 가족, 친구, 지인들을 떠올려본다. 그들과 지금, 여기서 어떤 일을 함께 도모할 수 있을까. <해피투게더>의 출연자들처럼 나도 이후에 두고두고 꺼내 쓸 수 있는 행복 적금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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